지난 토요일 사고로 숨진 대학 동기생 빈소를 다녀왔다.
그는 해양대 항해과를 나와 해운회사의 선장을 오랫동안 하다가 말년에는
해양수산연수원 실습선 선장도 역임하였다. 은퇴후 집에 있으면서 가끔 친구들과 등산도 하고
해운대 부근에 밭을 두어고랑 빌려 농사도 지었다고 한다. 워낙 술을 좋아해 별명이 홍초였다.
그날도 총동창회 체육대회에 동기생 10명과 같이 만나서 식사도 하면서 술을 한잔하고 혼자서 먼저 간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고 한다. 박 아무개 친구가 1시43분경에 걱정이 돼서 전화를 했더니 정문으로 간다고 통화흫 ㅙㅆ고
그 다음으로 이 아무개가 1시49분, 민 아무개가 1시53분에 통화를 했는데 알고 보니 자기는 정문으로 나가지 않고
캠퍼스 뒷쪽 바닷가로 가면서 거짓으로 정문으로 간다고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캠퍼스 좌측 바닷가로 갔다가 체육시설에서
운동하는 장면도 경찰이 CCTV로 확인했다고 함. 안쪽으로 쭉 들어가면 채석장이 나오고 낭떠러지가 있어 낚시꾼들이 겨우
기어서 올라가는 험한 길이 있어 거기서 돌아나온 것으로 추정됨. 다시 나오다가 구 기숙사를 가로 질러 반대편인 자갈마당으로
내려오는 계단을 내려와 약간 넓은 곳에서 최종으로 모습이 확인된 후 실종되었다. 그때가 2시43분경이었다고 함.
부인이 집에서 핸드폰으로 연락해도 안되고 해서 그날 참석했던 미 아무개와 연락하여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고 함.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이 일차 핸드폰으로 신호를 보내도 묵묵부답, 최종신호를 보낸곳을 확인하니 조도였다고 함.
경찰이 CCTV로 위치추적을 한 후 주변을 수색했으나 발견치 못하였고 지녁 때 총장이 당직자와 학생들을 동원했지만
찾지 못함.
한편 부인은 대구에 있는 삼촌을 내려오라고 하여 새벽 두시에 후라쉬를 들고 자갈마당 뒷편까지 찾으러 갔지만 찾지 못하고 나왔다고 했음.
그 다음날인 5일 민 아무개가 카톡에 올린'긴급상황' 메시지를 보고 08시경 급히 차를 몰고 학교로 달려가 경찰과 함께 수색에 동참했으나
발견치 못하고 있던 중, 둘째 아들과 삼촌이 최종 모습을 나타낸 그 곳에서 바닷가쪽으로 숲을 뚫고 들어가
바윗돌이 뽀족뽀족하게 나 있는 곳까지 들어갔더니 바위틈에 홍선장이 떨어져 있더라고 함. 아들과 삼촌이 확인하니 이미 사망한 상태였음.
육상으로의 운구가 어려워 수색차 나와 있던 해경에 연락하여 해경 두며이 헤엄쳐 상륙하고 들것에 실어
해경함정으로 옮긴후 하리항으로 가서 육상 119로 해동병원을 거쳐 광안리 좋은강안병원으로 이송하게 됐음.
사인은 경찰에서 갈비뼈가 부러져 폐와 심장을 찔렸고 머리 뒤도 함몰되었다고 함. 술을 마신후 높은 바위에서 추락한 것으로 보임.
5일장이라 동기생들은 어제 대부분 문상을 하였고, 오늘은 점심때 6~7명이 다녀갔다.
예전에는 상문을 가면 문상객이나 상주가 곡을 하였다. 상주는 상복을 입고 작대기를 짚었다. 남자는 곡을 "어이어이~"를 반복하였고 야자들은
"아이고 아이고~"를 반복했다. 세도가 있는 집에서는 '곡'을 전문으로 하는 '곡녀'를 사서 대신 곡을 하게 하였다고 한다.
부모는 삼년상을 차렸고 매일 살아있는 사람처럼 빈소에 상을 차렸다. 또 뫼등 옆에 움막을 짓고 3년동안 그곳에서 뫼를 지켜야 했다.
현대에 와서 복잡한 장례절차나 복장 등이 많이 간소화 된 것이다.
5육도 방파제앞 산자락 끝 바위쯤에서 추락한 것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