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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F4U 콜세어 전투기
"F4U는 빠르고 중무장에 방어력도 높아 격추하기 힘든 훌륭한 비행기였다. F4U가 가장 좋은 전투기였다고 생각한다."
- 미군의 전투기중 어느것이 가장 강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일본 제국군 측의 답변
Vought F4U Corsair,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전쟁에서 활약을 한 미국의 단발 프로펠러 함재기로써 콜세어(Corsair)라고 한다. 속도, 화력, 기동성등이 고루 우수한 기종으로서 특히 고속성능이 뛰어났던 콜세어는 주로 미 해군 항공대와 미 해병 항공대에서 운용했으며 파일럿들에게는 주로 호그(Hog = 수퇘지)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콜세어는 독특한 형상과 특성을 가진 기종으로서 이로 인한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인하여 'U-버드', '올드 벤트 윙', '굽은 날개의 소위 제거자', '오키나와의 천사', '마리아나의 연인', '죽음의 휘파람' 등의 다양한 별명으로 불렸다.
1942년부터 1952년까지 모두 16개 모델, 1만 2,500대 이상이 생산된 콜세어는 1957년까지 미 해군 항공대와 미 해병 항공대의 주요 야간전투기 및 전폭기로 활동하였다.
개발을 맡은 '보우트(Vought)'사(社)는 1938년에 V-166A와 V-166B라는 두개의 원형기를 미해군에 제시하였는데 V-166A은 와일드캣이나 버팔로에도 쓰인 기존의 R-1830엔진을 장비한 기종이었고 V-166B는 신형 R-2800엔진을 장비한 기종이었다. 해군은 비교 검토후 V-166B를 채택하였고 이후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어 1940년 5월에 시제기인 XF4U-1의 첫비행을 하게 된다.
콜세어의 최대 특징은 전체적으로는 저익기에 가깝지만 익근은 중익기의 형상을 띄며 하각으로 시작해 상각으로 끝나는 독특한 형상의 역갈매기형 주익(inverted gull wing)이다.
이런 주익은 랜딩기어의 길이를 줄이기 위해 채택된 디자인으로, 그 근본적인 원인은 콜세어의 거대한 프로펠러에 있었다. 함재기이면서 중량이 10,000 파운드를 넘긴 콜세어는 강도를 높일 필요성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착함시 집중되는 하중을 부담해야 하는 랜딩기어가 특히 그러했다. 문제는 랜딩기어가 튼튼하기 위해서는 짧고 굵게 만들 필요성이 있음에도 콜세어의 프로펠러의 직경이 13피트 4인치에 달해서 일반적인 형상의 주익에다 랜딩기어를 짧게 했다가는 프로펠러가 바닥을 긁을 판이었고, 랜딩기어를 연장하자니 요구강도 충족을 위해 너무 크고 무거워져 성능의 이점을 상실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결국 상기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항력을 줄이기 위해 랜딩기어를 날개의 꺾이는 부분에 설치해서 길이를 줄일 수 있는 역갈매기 형상이 채택되었다.
역갈매기 형상의 주익은 중익기와 저익기의 장점을 조합할 수 있으며, 날개의 실제 길이대비 더 넓은 익면적을 갖출 수 있는데다 간섭항력이 적고 필렛이 필요없다는 장점이 있으며, 와류를 억제하고 공기의 흐름을 안쪽으로 모아주는 효과가 더해지는 이점이 있는데, 최신의 대형 민항기 날개 끝에 윙렛이 달리는 것과도 비슷한 효과를 가져온다. 얼핏 생각해보면 날개가 직선형태가 아닌 경우 혹시나 항공역학적으로 부정적인 효과가 있지는 않을까 우려도 되었으나 실제로는 시제기인 XF4U-1에서는 빠른 속도를 확보하면서도 공력적으로도 별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고 오히려 비행성능을 더욱 강화시켜서 이후 개발은 이 XF4U-1을 토대로 진행되었다.
보조익은 골조와 표면 모두 목재로 제작되었고 표면에는 방수를 위한 직물커버가 씌워졌다. 목재합판으로 이루어진 표면은 뻣뻣하면서도 매끄러운 특성을 가져 종래의 목재 골조에 천을 씌운 구조에 비해 항공역학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피격실험에서도 전금속제 보조익과 비교시 바람직하지 않은 돌기를 남겨두지 않는다는 이점을 드러내어 금속보다 우선하여 채택되었다.
완성된 보조익은 스틱포스가 낮고 효과가 우수한 특성을 나타내었으며 특히 고속에서의 성능이 뛰어났는데 이는 재래식 보조익과는 달리 고속에서의 성능저하가 없었기 때문이다. XF4U-1시절부터 참가한 오리지날 테스트 파일럿중 하나였던 Boone T. Guyton에 의하면 고속에서의 전투기동시엔 초당 180도가 넘는 횡전이 가능했다고 한다. 또한 왼쪽 보조익의 뒷전 중앙에 트림탭을 설치하여 비행중 보조익의 트림이 가능하도록 했다.
플랩은 NACA 슬롯티드 플랩이 채택되었는데 문제는 이를 역갈매기익에 어떻게 설치하느냐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날개와 달리 굽어진 부분에 플랩을 위치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다. 결국 플랩을 내측, 중앙, 외측 3개의 섹션으로 분할하고 각 섹션 사이에 전개시의 갭을 매우기 위한 패널이 설치되어 성능의 저하가 없도록 하는 방식이 채택되었다.
외측섹션이 천으로 씌워진 것을 제외하면 전금속으로 제작되었으며 동작방식은 유압식이었다. 여기에 속도에 따라 플랩의 전개각이 자동으로 조절되는 오토매틱 블로우-업 시스템과 과부하시 플랩을 보호하는 오토매틱 릴리프 시스템을 적용하여 운용이 쉽도록 하였으며 메뉴얼 조작시에는 0도부터 50도까지 10도씩 5단계로 조절이 가능했다.
조작이 용이하고 효과가 뛰어난 플랩으로 인하여 콜세어는 플랩전개시 실속속도가 낮고 선회반경이 좁은 기종이 될 수 있었으며 보통 20도 이하의 전개각이 전투플랩으로, 50도의 풀플랩이 단거리 이/착륙에 사용되었다. 이러한 콜세어의 플랩은 후에 노획한 제로센과의 선회비교에 전투플랩을 전개한 F4U-1D가 150노트까지 제로센의 선회에 따라붙는 능력을 보여주면서 그 우수성을 증명하게 된다.
참고로 그 뛰어나다는 전투플랩을 가진 BF109 조차 조종사가 직접 매뉴얼로 플랩을 조작해야하는데 콜세어는 복잡한 플랩조작을 자동으로 조절해준다.
상기한 대로 콜세어는 랜딩기어는 그 강도가 대단하여 다이브 브레이크로도 사용이 가능했는데 이는 기어 자체를 다이브 브레이크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튼튼한 메인 기어에 기대는 형식으로 전면에 다이브 브레이크 페어링을 위치시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메인기어가 튼튼해도 테일기어등의 다른 전개면들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랜딩기어로 사용할 경우는 370km/h 정도의 속도제한이 있었으며 다이브 브레이크로로 사용할 경우에는 메인기어만 전개하도록 레버를 조작해주어야 했다.
다이브 브레이크로 사용할 경우의 속도 제한은 730km/h 정도였다.
동체는 R-2800을 탑재하면서 최대한 낮은 항력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타이트한 설계가 적용되었다. 골조와 표면 모두 전금속으로 제작되었으며 당시 주류이던 볼트용접 대신 스팟용접을 사용하는등의 신기술을 동원하여 최대한 낮은 표면항력을 확보했다.
덕분에 항력면에서 불리한 R-2800 엔진을 채택한 기종임에도 영양력 항력계수(Zero-Lift Drag Coefficient)가 0.177에 불과하여 같은 엔진을 채택한 동세대 기종들에 비교하여 동일 고도, 동일 출력에서 가장 빠른 기종이 될 수 있었다.
콜세어의 장갑은 엔진부터 조종석까지 이어지는 동체 상부를 커버하는 장갑판과 파일럿의 후두부 상방을 커버하는 캐노피의 방탄판으로 인하여 공중전 도중 후상방에서의 편차사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구성되으며 시트의 등받이, 깔개등도 방탄판을 사용하여 전/후방의 공격에서 파일럿을 보호했다.
초기 생산형에서는 콕핏 패널이나 동체내의 오일 탱크등에도 방탄판이 존재하였으나 후기형으로 오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콜세어의 엔진은 초기 시제기 시절에는 '프랫&휘트니'사가 개발한 R-2800 더블 와스프 계열 공랭식 성형엔진의 프로토타입으로 분당 회전수 2600에서 1800마력의 출력을 낼 수 있는 XR-2800-2를 장착했으나 후기 시제기에는 1850마력을 낼 수 있게된 XR-2800-4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콜세어는 R-2800 엔진을 장착하고 비행한 첫번째 기체로서 서로의 개발에 있어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2단 2속 슈퍼차저와 밴딕스 스툼버그 카뷰레이터가 탑재된 콜세어의 R-2800 엔진은 중력이나 관성, 냉각현상등에 영향받지 않고 높은 고도에서도 강력한 출력을 제공하는 우수한 엔진으로 여기에 배기가스로 추가적인 추력을 얻을 수 있었다.
양 주익 익근부 리딩엣지에 존재하는 에어 인테이크 안쪽에는 내측의 동체 연결부에 슈퍼챠저를 위한 인테이크 덕트와 인터쿨러가, 외측에는 오일쿨러가 위치하고 있는데 같은 R-2800 계열기인 썬더볼트나 헬켓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장단점이 있다.
장점
- 넓은 용적을 확보할 수 있어 냉각 효율이 좋다.
- 엔진열의 영향이 덜하여 냉각 효율을 유지하는데 좋다.
- 프로펠러 후류를 양쪽으로 받고 냉각에 활용할 수 있어 불리한 환경에 영향을 적게 받는다.
단점
- 정면에서의 피탄에 약하다. 오일쿨러가 엔진 뒤에 위치한 헬켓과 썬더볼트는 정면에서의 공격을 엔진이 막아주며 엔진과 조종석 장갑의 도움으로 정면이 아닌 공격에도 제한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지만 콜세어는 정면에서 날아오는 총알은 작은 구경이라도 위협적이다. 일단 오일쿨러가 피탄되어 오일이 새기 시작하면 귀환하거나 불시착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방식의 냉각 시스템은 피탄에 약하긴 하지만 냉각 효율만큼은 뛰어나 밀리터리 파워로 상승시 헬켓이 14도의 오일-인 과열을 기록할때 콜세어는 과열에서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완성된 콜세어의 시제기인 XF4U-1은 1940년 5월 29일 첫 비행에 성공하고 관계자들 앞에서 최고속도 652 km/h (405 mph)를 기록함으로서 육군항공대의 XP-38이 가지고 있던 기록을 깨고 단발전투기 및 해군기로서는 최초로 400 mph의 벽을 허물며 공냉식 엔진에 대한 편견을 없애버렸다.
당시의 기체는 최대 상승력 2660 ft/min, 최대 작전고도 35,200 ft, 최대 급강하 속도 890km/h를 기록했으며 무장은 양 주익에 장착된 50구경 기관총 2정과 엔진 카울링의 30구경 기관총 2정이었다.
뛰어난 성능에 만족한 미 해군이 1941년 6월 F4U-1 584대를 발주하면서 양산에 들어갔다. 양산형은 2000마력의 R-2800-8 엔진을 장비하고 카울링에 있던 기관총을 폐지하였으며 대신 양 주익에 총 4정의 .50cal 기관총을 추가하여 총 6정의 .50cal 기관총을 장비, 당시로서는 대단한 화력을 갖추게 되었다. 조종석 앞쪽에는 자동방루식 연료탱크가 신설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조종석의 위치가 뒤쪽으로 밀려나게 되어 이착륙시의 전방시야가 불량하게 되었다. 캐노피는 새장같이 촘촘한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일명 버드케이지 캐노피가 채택되었는데 강도면에선 유리한 구조였으나 프레임이 시야를 방해하고 콕핏시트의 위치도 낮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시야가 좋지 못했다.
조종석 앞에 위치한 자동방루식 연료탱크에는 총 237갤런의 연료를 탑재할 수 있었고 양 주익 내부에는 각각 62갤런씩 총 124갤런의 연료를 추가로 탑재할 수 있는 연료탱크가 있었다. 익내에 존재하는 연료탱크는 자동방루기능이 탑재되어 있지 않아 보조연료탱크로서 사용되었는데 긴급시에는 분사가 가능하도록 하여 피탄에 의한 위험을 줄이도록 했다.
이 초기형의 F4U-1들은 콜세어를 수령한 최초의 해군 비행대인 VF-12의 착함 훈련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 드러내어 항모운용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 연장된 기수로 인해 이착륙 자세에서의 전방시야가 나빠 이착함 난이도가 높고 사고위험이 크다.
- 덱에 닿는 순간 테일이 튕겨오르거나 좌우로 흔들린다.
- 착륙속도에서 왼쪽 날개가 갑작스런 스톨에 빠진다.
결국 F4U-1은 생산량의 거의 전부가 해병대에 제공되었고 보우트사는 개량에 매진하게 된다.
그리하여 총 생산량중 600여대에 불과한 버드케이지 캐노피 F4U-1도 개량사항에 따라 초기형과 후기형으로 나뉘게 되는데 대표적인 변경점은 크게 다음과 같다.
1. 캐노피 전방에 엔진에서 새어나온 오일이 튀어 시야를 방해하므로 카울링 플랩 위쪽의 패널을 고정식으로 변경.
첫 실전의 주인공은 과달카날의 핸더슨 비행장에 전개한 VMF-124였는데 기체에 대한 이해 부족과 아직 선회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전투사상, 당시 비교적 뛰어났던 일본기 파일럿들의 숙련도등의 문제가 겹친 결과 43년 2월 14일날 치뤄진 데뷔전에서 기록적인 대패를 당하고 만다.
그러나 해병파일럿들은 이후 빠르게 콜세어에 적응하여 4월에 케네스 A 월쉬 중위가 첫 콜세어 에이스가 된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전과를 올리기 시작했고 43년 말에 전장에 등장한 헬켓과 투톱체제를 이루며 일본군을 밀어붙였다.
"남태평양에서 날마다 계속된 싸움으로 콜세어는 일본 제로의 모든 모델보다 확실히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 체스터 니미츠
참고로 이 시기의 초기 양산형들은 콕핏 설계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는데 비상용 유압으로 랜딩기어를 긴급전개하는 레버가 그것이었다. 조종중 무심코 건드리기 쉬운 장소에 위치한데다 한번 전개하면 기어를 다시 올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전투중 실수로 건드려 내려버리면 끝장이었다. 테스트 파일럿의 증언에 따르면 이로 인한 희생으로 화가나 직접 따지러 온 조종사들을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VMF-224 소속 F4U-1A, 해병전투기라는 특수한 환경은 해변의 백사장과 야자수가 어울리는 전투기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후기형 새장캐노피 콜세어는 백미러 위치를 높여 후방시야의 향상을 도모했으나 근본적인 시야불량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콕핏시트의 위치와 캐노피의 형상이 가장 큰 문제였다.
결국 대대적인 개량으로 콕핏시트의 위치가 변경되고 프레임이 적은 벌브형 캐노피와 신형 건사이트 반사경이 설치된다. 결과, 콜세어는 확트인 전방 시야를 가지게 되었으며 거기에 더해 캐노피 프레임 상부와 양측면에 총3개의 백미러가 설치되어 우수한 후방감시력도 가지게 되었다.
VF-17 Jolly Roger의 최고 에이스인 아이라 캡포드기. 신형 캐노피, 높아진 시점, 신형 리플렉터 건사이트, 상부와 측면의 백미러를 확인할 수 있다.
기존과는 구분되는 형상을 가지게 된 이 신형 콜세어들은 후기형 새장캐노피 기체들과 함께 태평양 각지에서 일본기들을 몰아붙이며 대단한 전과를 올리게 된다. 이중에는 VMF-214 일명 검은양 비행대나 VF-17 졸리 로져스 등이 특히 유명하다. 또한 이들이 사용한 콜세어들은 비행성능을 높이기 위해 어래스팅 후크를 제거한 상태였기 때문에 성능면에서 약간의 향상이 있었으며 이 후의 콜세어들도 지상작전시에는 후크를 제거하는 경우가 많았다.
"콜세어는 적과 아군의 기존 기종들을 모든 면에서 능가한다."
- 로버트 프레이저
개량은 그 후에도 계속되어 구형의 13피트 4인치 직경의 6525A-21, 혹은 6443A-21 프로펠러깃을 F6F에 쓰이는 주걱(Paddle) 모양의 13피트 1인치 직경의 6501A-0 프로펠러깃으로 교체하여 성능의 향상을 이끌어냈고 43년 말부터 생산된 후기생산분에 이르러서는 물분사기를 장비한 최대 출력 2250마력의 R-2800-8W 엔진을 갖추게 되어 여기에 6501A-0 프로펠러깃으로 업그레이드까지 마친 F4U-1A는 최종적으로 피크고도에서 693km/h에 달하는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또 항모 운용능력을 획득하기 위한 개량의 일환으로 후기생산분부터는 오른쪽 날개의 리딩 엣지에 6인치 정도의 크기를 가진 스포일러를 설치하여 완만한 스톨특성을 확보했고 테일휠을 길이가 연장된 새로운 타입으로 변경, 러더조작과 직접 연동되도록 수정하여 착륙순간 기체가 튕겨 오르거나 좌우로 흔들리는 문제를 해결했다.
새장캐노피 콜세어부터 F4U-1A에 이르는 시기까지 콜세어는 해병항공대의 주력전투기로서 육상에서 운용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콜세어는 특징적인 3-tone 도장과 함께 함재기임에도 해변의 백사장과 야자수가 어울리는 독특한 기체로 남게되었다.
F4U-1C는 F4U-1A에 M2 20mm 기관포를 장착한 기종으로 200대만 한정생산되었는데 첫 시제기는 43년 등장했으나 실전 투입은 1945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실전 배치된 기종들은 시기상 F4U-1A보다는 F4U-1D에 무장을 환장한 기종으로 실전에서는 고고도에서 기관포가 얼어붙는 문제점이 지적되어 새로운 오일을 사용하고 개량된 히터등을 설치하는 개수가 이루어졌다.
사용한 비행대로는 VMF-311과 VF-85이 유명한데 이중 VMF-311은 71:0이라는 무지막지한 공중전 교환비를 자랑한다.
"F4U-1D는 일본의 최신 기체들보다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랭크 및 조지와의 성능차는 크지 않지만 적극적인 공격으로 승리하기에 충분하다."
- 로저 핸드릭
44년에 등장한 F4U-1D는 극초기형까지는 F4U-1A 후기형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이내 캐노피 상부에 남아있던 프레임과 방루처리가 되어있지 않아 사용이 기피되던 익내연료탱크를 제거하고 R-2800-8W 엔진과 6501A-0 프로펠러 깃을 기본적으로 탑재한채 양산되었다.
F4U-1D는 등장 시기상 이미 일본의 항공세력이 헬켓에게 박살난지 오래였기 때문에 주로 전폭기로서의 활약이 많다.
지상공격능력과 항속거리의 향상을 위해 양 주익 안쪽에는 각각 최대 1600파운드의 탑재량을 가진 스터브 파일런이 추가되었으며 양주익 외측에는 HVAR로켓 8발을 장착할 수 있는 로켓랙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추가된 파일런과 랙들로 인해 무게와 항력이 늘어났음에도 F4U-1A 후기형과 같은 엔진을 사용한 결과 F4U-1A 후기형에 비해 비행성능은 약간 낮아졌다.
F4U-1D부터는 완전한 항모운용능력을 획득하여 44년 말부터 항모부대에 본격적으로 배치되기 시작했다.
새장캐노피를 가진 초기형 콜세어에 AN/APS-4 레이더를 설치한 야간전투기 형식으로 배기관등의 추가 개량이 이루어진 기종이다.
항모에서 작전한 최초의 야간전투기이자 최초로 미항모에서 정식 운용된 콜세어이기도 한데 44년 1월부터 44년 7월까지 CV-6 엔터프라이즈에서 작전했던 VF(N)-101소속 F4U-2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최종적으론 5기의 확정격추와 다수의 비확정격추를 기록하며 한대도 잃지 않았다.
F4U-2로 개수된 F4U-1은 총 34대로 32대는 공장에서 2대는 VMF(N)-532에서 이루어졌다.
"적의 기체는 F4U-4에 의해 압도당했다. F4U-4는 적기의 머리위를 봉쇄하며 우월한 스피드를 드러냈다."
- 1945년 6월 21일 VMF-223의 항공기 활동 보고서, 당시 쇼키로 추정한 하야테와의 교전후.
엔진을 새롭게 재설계된 C시리즈 R-2800인 R-2800-18W로 교체하고 프로펠러날도 4엽으로 늘린 기종. 기수가 살짝 연장되고 카울링 아래에 흡입구가 추가되어 기수형상이 변경되었다.
45년 말에 생산된 1000번째 기체부터는 엔진이 R-2800-42W로 교체되어 성능이 더욱 향상되었다.
또 F4U-4 후기 생산분 부터는 캐노피의 형상이 변경되고 캐노피 후상방의 방탄판이 사라져 시야가 개선되었다.
F4U-4B형은 본래 영국군을 위한 것이었으나 전쟁이 끝나 취소됨에 따라 미해군이 접수해 M3 20mm 기관포 4문을 장착한채 사용했고 한국전쟁에서도 맹활약한다. 최초로 미그 15를 격추한 프롭기가 바로 이 F4U-4B형이다. 한때 F4U-4C라 불렸던 기종도 미군의 서류상으론 F4U-4B이다.
F4U-4B/C 부터는 R-2800-42W 엔진이 기본이 되며 로켓만 장착이 가능했던 주익 외측의 랙들이 100~200파운드 폭탄도 장비가능한 새로운 타입으로 변경된다.
45년 겨울에 프로토타입이 첫 등장한 본격적인 전후형 기체.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훈과 베테랑들의 의견 등이 반영된 최종형이다.
엔진을 E시리즈 R-2800인 R-2800-32W로 교체하여 기수가 더욱 연장되었고 이에 맞추어 흡입구도 추가되어 카울링아래 양쪽에 흡입구를 가진 형상이 되었다.
주익 외측의 패널이 전금속으로 바뀌고 라디에이터 컨트롤, 슈퍼 차저 컨트롤등이 자동화 되었으며 모든 조종면에 스프링탭이 설치되어 프로펠러 전투기로서는 궁극에 달한 고속 기동성을 가지게 되었다.
내무 무장과 연료를 만재한 상태로 최고속도는 해수면에서 643 km/h, 2만 7천 피트에서 756 km/h 에 달했으며 해수면 상승력이 4850 ft/min에 이르고 2만 피트까지 4.7분만에 상승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전쟁에서는 해병항공대에 한정 배치되어 활약했다.
고정무장은 M3 20mm 기관포 4정으로 F4U-4B와 같았다.
F4U-5의 순수 공격기버전. 본래 F4U-6 으로 개발되다 취소된 것을 한국전에서 콜세어가 보여준 지상공격능력에 주목하여 개발이 재개되었다.
주요 부분과 약점에 장갑이 추가되고 파일런이 증설되어 무장탑재량이 향상되었으나 증가한 중량에 비해 엔진은 과급기가 간략화된 F4U-4의 것을 사용하여 비행성능이 크게 저하되었다.
이론상의 최대 탑재량은 주익 외측에 500lbs 폭탄 10발 + 주익 내측에 2000lbs 폭탄 2발, 센터라인에 2000lbs 폭탄 1발로 최대 11000lbs에 이르는 기체였으나 실용 탑재량은 8200lbs 로 제한되었다.
주로 일본기를 상대하며 전폭기로서의 역량이 요구되는 태평양 전선의 특성상 F4U-4에 비해 큰 이점이 없다고 판단되어 개발은 취소, 테스트배드가 되었던 실험기들은 개조전으로 원상복구 되었다.
하지만 전체적은 성능은 F4U-4는 물론이고 저고도를 제외하면 F4U-5조차 능가했는데, 44년 말에 이루어진 테스트에서는 3000마력에 달하는 최대출력을 가지고 해수면에서 623km/h, 27500피트에서 784km/h의 속도와 해수면 상승력 4850ft/min, 2만피트까지 4.5분을 기록하는등 뛰어난 성능을 과시하였다.
터보챠저를 가진 만큼 고고도 성능이 특히 뛰어났는데 지표로부터 12km 상공에서 노멀 파워로 731km/h의 고속 순항이 가능했다.
이후 생산 및 개발은 굿이어사에게 넘겨져 후술할 FG-3이 된다.
R-4360계열의 첫 양산형으로서 R-2800계열의 R-2800-8에 해당하는 3,000마력의 R-4360-4 엔진을 탑재하였다. 노멀 파워로 2,650 마력, 밀리터리 파워로는 3,000마력을 낼 수 있었으며 물분사기를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60"hg 매니폴드압에선 3375마력까지 동원, 최종적으론 3650마력을 예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