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해져 가는 너를 잡아보려고 손을 뻗으면, 선은 손에서 멀어져가고 손은 선에 닿지 않고.
바람을 지나쳐 보내며 믿고 싶다고 말한다. 너무 멀리 와버렸어. 상처가 없는데 아프다.
이이체, 사라지는 포옹
나는 본문 밖의 존재야
서쪽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이 고래처럼 어두워질 때
줄거리 밖으로 튕겨져 나오고 말았지
유미애, 입체적인 눈물ㅡ종이 인류
곧 이별이겠죠 그 전에 당신을 떠날까봐요 아니 떠나지 않겠어요 입술이 차갑군요 당신 참 무서운 사람이에요
사랑할까요 사랑할래요 당신 차라리 죽어버려요 아니 제발 죽지 말아요
황병승, 그 여자의 장례식
내가 여기 있는 건 아무도 몰라요. 죽든 앓든 병신이 되든 아무도 몰라요.
지옥에서도 날 쫓아오지 못해요. 나는 여기 있지도 않은 걸요.
한강, 검은 사슴
옥상 난간을 붙들고 내려다봅니다 어느새 나는 이렇게 많은 계단을 올라온 것일까요 갈 곳이 없어서요
이영주, 유리창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혼자 잠들고 싶다. 타인과 이야기하는 것은 피곤하다.
제발 좀 혼자 내버려두라, 나를 제발 좀, 제발, 제발, 외롭게 혼자 죽도록 내버려두라.
김사과, 미나
괜찮으냐고 묻지 마. 그럴 리가 없잖아.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물어보면 나는 괜찮다고 밖에 대답할 수가 없잖아. 괜찮지 못하다는 말은 배운 적 없으니. 힘내라고 하지 마. 이미 힘을 내고 있잖아. 그러고 있는데 또 그러라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울어버리고 싶은걸.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말하지 마. 잘 되지 않았으니 이렇게 된 거잖아. 잘 되지 않았고 잘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신은 내 곁을 지켜주겠다고만 말해줘. 울고 싶으면 울라고 해줘. 슬퍼하고 속상해하고 아파하라고 해줘. 내가 위로를 구할 때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함께 있어줘. 그것으로 나는 감사해. 그 힘으로 나는 걸을 거야. 어쩌면 무엇인가 다시 시작할 수도 있을 거야.
황경신, 생각이 나서 中 괜찮을 리가 없잖아
문득 너는 없다. 지나온 강 저쪽은 언제나 절망이었으므로.
허연, 참회록
죽이고 싶은 이름들을
수첩 귀퉁이에 적어 내려가던
그 어느 날의 사악함으로
이를 악물어야지
잊지 않겠다고
내가 너를 참 좋아했었다는 것
이응준, 안부
애인이여
아직도 잠 못 드는 애인이여
이 두려운 어둠 모두 휘저어
블랙커피 마시듯 나눠 마시고
오늘 밤 나와 함께 죽을래
임영조, 사신
그대가 젖어 있는 것 같은데 비를 맞았을 것 같은데 당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너지는 노을 앞에서 온갖 구멍 틀어막고 사는 일이 얼마나 환장할 일인지
허연, 내가 나비라는 생각
머리를 감겨주고 싶었는데 흰 운동화를 사주고 싶었는데 내가 그대에게 도적이었는지 나비였는지 철 지난 그놈의 병을 앓기는 한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