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非子 內儲說 上
한비자 내저설 상
魏惠王謂卜皮曰
위나라 혜왕(惠王)이
복피(卜皮)에게 물었다.
「子聞寡人之聲聞 亦何如焉?」
「그대는
과인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니
대체로
어떠하던가?」
對曰
복피가 대답했다.
「臣聞王之慈惠也。」
「소신은
대왕께서 인정이 많으시고
인자하시다는
소문을 들고 있습니다.」
王欣然喜曰:
왕은 흔쾌히
기뻐하며 말했다.
「然則功且安至?」
「그렇다면
공과는
또한
어떻게 들어나겠는가? 」
對曰:
복피가 대답했다.
「王之功至於亡。」
「대왕의 공과는
멸망을 초래할 것입니다.」
王曰:
왕이 말했다.
「慈惠,行善也,行之而亡何也?」
「자혜롭다는 것은
선행(善行)을 한 일인데
선행을 하면
망한다니 어찌되 것인가?」
卜皮對曰:
복피가 대답했다.
「夫慈者不忍,而惠者好與也。
「대체로 인자하면
참지를 못하고
은혜로운 사람은
주기를 좋아합니다.
不忍則不誅有過
好予則不待有功而賞。
참지를 못하면
과실이 있어도 벌하지 못하고
주기를 좋아하면
공을 세우도록 기다리지 못해
상을
수여하게 됩니다.
有過不罪,無功受賞
과실이 있어도
벌하지 않고
공이 없어도
상을 받게된다면
雖亡不亦可乎?」
비록
나라가 망하지는 않은다 해도
이 또한
어찌 되겠습니까?」
여기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퍼주는 정치
이것 또한
지양되어야 할 문화일 것 같다.
양혜왕에 대해서
하나 더 짚어보고 마무리 한다.
[맹자]에는 첫장편부터
양혜왕편으로 시작 된다.
혜왕은
위(魏)나라 제후(諸侯)였다.
주변 나라와
늘 전쟁을 벌이다가
결과적으로는
대량(大梁)이란 곳으로
도망을 가
아예 그곳에 정착을 해버렸다.
나라 이름도 대량의 「양」자를 따
양나라고 했다.
위나라 제후가
왕이란 이름을 찬탈했으나
위나라 제후라 하지 아니하고
양혜왕으로 호칭된다.
춘추전국시대 국가제도는
주(周)나라에만
王의 이름을 붙이고
기타 지방국가 수반(首班)에게는
王대신 后(후)를 붙이게 되어 있었다.
후(後)에 나라가 많이 늘어나다보니
후(侯)자 앞에 諸(제)자를 붙여
통상 제후(諸后)라 하고 있다.
정규 명칭은
제후(諸后)가 아니라 후(后)이다
양나라는
인정을 받지 못해
사기에는
위나라 혜왕으로 기록되고 있다.
첫댓글 感謝합니다
옛날에
단출했던 시대도
나라의 운영을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상벌의 원칙 대로
하라 했는데
오늘날도
그게 잘 아나된 것이
국가 경영인 모양입니다.
고맙습니다.
퍼주는 돈 쥐약인가 합니다.
잘못되면
쥐양보다 더할련 지도 모르지요
쥐약은
몇 마리 죽겠지만
국가 재정이 걷얼나면
서민들이 성 땅이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