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오전 일찍 건강보험공단을 찾았다. 언젠가 가족들에겐 문자로 보냈으나 아직껏 실천하지 못했던 '내 뜻대로 곱게 죽게 놔두세요'라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연명의료란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수혈, 체외생명유지설, 혈압상승제 투여 등의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이다.
공단의 상담장소에는 간부급 직원인지, 외부요원인지 인생을 알만한 60대로 여겨지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신분증을 내밀었더니, 100세 건강이 어떻고 하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거추장스럽다는 듯 그의 말을 잘랐다.
"100세는...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 지는데, 죽을 사람은 빨리들 죽어야 하지요. 연명치료에 대한 내용은 잘 알고 있으니 접수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럼 잘 아시는 것 같으니 설명 안드리고 처리하겠습니다."
"(Call~) 그런데 증명서는 언제쯤 받을 수 있나요?"
"한달쯤 걸릴겁니다."
"감사합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곳을 나와 공원으로 향했다. 내가 정말 그러한 내용들을 알기는 하는걸까? 받은 팜프렛을 펼쳐들었다.
'연명의료결정제도'란...살아오며 많이 접했던 글귀라 개별항목들만 읽어 보아도 이해가 갔다.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백수에게 휴식이란 개념은?), 공원의 환경을 관리하던 공공근로꾼 남녀가 나의 곁에 자리 잡는다.
남자는 80초반으로 보였다. 심심하던차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하루 몇시간씩 하세요?"
"세시간 해요. 일주일 10시간, 돈땜에 그런 것은 아니고..."
지자체마다 틀리지만, 대략적인 65세이상 노인공공근로는 임금 27,000원, 간식비 5,000원에 4대보험 의무가입이라고 하였다.
"그러세요. 뭐든 하는게 건강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저도 부탁을 해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어요."
"아무나 못해요."
경쟁이니 그럴테지. 그런데 아무나...나는 그분이 말하는 '아무나'란 말이 생활정도와 나이인지, 아니면 믿을만한 배경을 말함인지 그의 다음 말들로 인해 잠시 혼란이 일어났다.
그분도 제대로 말동무를 만난 듯 이야기 주머니를 털어놓았다. 그 재미없는 지역정치꾼이나 자신이 아는 고위 공직자 이야기.(그래서 공공근로 자격을...)
이어서 살아왔던 추억들, 우리들의 이야기는 어느듯 월남전까지 전개되었다.
그분도 1960년대 1년간 배트남전에 참전하였다고 말했다. 2차베트남전쟁은 1955년부터 1975년까지 계속되었고, 우리나라는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육군인 맹호, 청룡의 해병대를 파병하였었다.
놀려면 혼자 놀지 일꾼 붙들고 시간을 왜 뺏느냐?고.
사는게 참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누군가는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살아남은 자는 하루라도 더 오래 살기위하여 노구의 몸을 이끌고 발버둥을 쳐댄다.
어느 연령대를 기준함인지 모르겠지만, 사전연명의료의향을 신청한 사람이 10%쯤 된다고 한다.
그 숫자도 점차 늘어난다고 하니, 자신이 개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순간 더욱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자고) 그래도 사는척은 해야겠다.
오후엔 작은 산을 오려려다 길을 잘못들어 인접한 산 두개를 탔다. 가파른 산길에 한낮의 높은 기온 이러다 죽는게 아닌지...그래서 오전에 사전연명의료 포기 신청한겨?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