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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 심리치료적 이해
박성현*
목 차
Ⅰ. 도입
Ⅱ. 심리치료와 명상 - 유사점과 차이점
Ⅲ. 명상의 메카니즘 - 이론별 접근
1. 행동주의적 접근
2. 인지치료적 접근
3. 정신분석적 접근
Ⅳ. 명상의 심리치료에의 적용
Ⅴ. 결어
Ⅰ. 도입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8월 4일치 ‘명상의 과학’을 주제로 한 표지 기사에서 명상은 문화적 차원 못지않게 심신 의학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동양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명상이 몸과 마음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의학적, 심리학적 사실이 알려지면서 명상 붐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1천 만 명 이상의 성인들이 명상을 생활화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사회의 엘리트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직업인들 사이에 심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뛰어난 기법으로 받아 들여 지고 있다.
현대 서구사회에서 명상은 신비주의적인 종교수행으로서가 아니라 심신의 고통을 치유하는 실제적인 방법으로 환영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학계나 심리학계에서 과학적 연구대상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현재까지의 심리치료이론에 새로운 패러다임과 자양분을 제공해주고 있다. 1960년대 주로 정신분석가들과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에 의해 심리치료와 관련된 인간의 궁극적 행복과 건강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전통적 심리치료의 한계를 인식하고 동양적 정신문화에 숨겨진 치유적 비밀을 탐사하고자 1969년 자기초월심리학 잡지(The journal of Transpersonal Psychology)가 발간되었다. 동양의 수행법이 가지고 있는 치유력에 대한 인식이 점점 증가하면서 1976년도 <뉴스위크>지는 현재 심리학 분야의 4가지 주요세력으로 정신분석, 인본주의, 그리고 제4세력으로 자기초월심리학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자기초월심리학의 발전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심리치료 교과서들 중의 하나인 현대심리치료(Current Psychotherapies) 제6판에 12개의 주요 심리치료이론들 중 하나로 동양심리치료(Asian Psychotherapies)가 소개될 만큼 많은 관심과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자기초월심리학은 서양과 동양의 정신문화를 통합해보려는 이론적 시도와 함께, 실제 심리치료 장면에서 동양의 수행법을 응용한 기법들을 적용하는 단계까지 발전해 오고 있다. 명상은 자기초월심리학에서 연구하는 가장 중요한 정신수행방법들 중의 하나로서 그것의 심리치료적 효과와 심리치료적 메카니즘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연구성과가 축적된 상태이다.
서양에서 명상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연구는 1960년대 하버드 의대 행동의학과의 허버트 벤슨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이후 이완훈련으로 유명한 하버드 의대 정신과의 그레그 제이콥 슨(1938)과 같은 저명한 연구자를 배출하였고, 위스콘신 대학의 리처드 데이비드슨과 메사추세츠 의과대학의 존 카밧진(1990) 등은 명상훈련을 활용한 스트레스 클리닉을 운영하며 수 많은 임상결과와 연구결과들을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과학적 연구의 결과 명상이 스트레스 관련 질병을 개선할 뿐 아니라 심장병, 암 등과 같은 만성적, 난치성 질병의 고통을 예방하고 완화하며, 약물중독이나 우울증, 과잉행동, 주의력 결핍증 등과 같은 심리적 불균형 상태를 회복시키고, 자기-비난의 감소, 긴장-불안 감소, 다양한 정서 경험의 증가, 자기-정체감 증대 등 긍정적인 심리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止法의 일종인 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수행된 경험적 연구들(Davidson, Goleman, &Schwartz, 1976; Goleman, &Schwartz, 1976; Schwartz, Davidson, &Goleman, 1978)에 따르면, 명상수행이 불안을 감소시키고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증가시켰으며 대체로 정신건강을 개선시켰다.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연구된 명상의 심리치료적 메카니즘에 관한 동서양의 이론들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그것이 실제 심리상담과 치료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심리치료적 메카니즘이란 명상이 갖는 다양한 심리치료적 효과들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대상으로 하는 명상수행방법은 초기불교 수행법이라고 일컬어지는 止觀수행에 한정될 것이다. 대상에 집중함으로써 모든 망념을 멈추게 하여 산란한 마음을 고요하게 안정시키는 止法(samatha)은 집중명상(concentration meditation)으로 불리워지며,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고 알아차림으로써 존재의 실상을 체득하는 지혜를 얻는 수행법인 觀法(vipassana)은 통찰명상(insight meditation 또는 mindfulness meditation)으로 번역되어 사용되어지고 있다 (Konfield, 1992).
명상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은 행동주의, 정신분석, 인지치료이론 등 다양한 이론별로 시도되고 있다. 명상의 과정에 대한 심리학적 용어가 정립되지 않은 까닭에 각기 자신의 이론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통해 명상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도 명상의 메카니즘을 다룬 논문들을 각 이론적 접근별로 구분하여 정리하고자 하였다. 불교심리학적 기반하에 체계적으로 명상심리치료 이론을 기술하는 것은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Ⅱ. 심리치료와 명상 - 유사점과 차이점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이며 동시에 명상가인 Jack Engler(1986)는 자신이 병원에서 정신병이나 성격장애로 시달리는 정신과 환자들을 치료할 때는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하며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자기감(a sense of self)을 발달시키도록 돕는 반면, 명상센타에서 위빠사나 명상을 가르칠 때는 ‘자기’라는 영속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도록 돕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심리치료와 불교적 관점간의 대척점은 ‘자기’에 대한 대립적 입장인 것 같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가장 깊은 정신병리적 문제는... 자기감의 결핍이다. 가장 심각한 임상적 증후군들 -유아적 자폐증, 공생적 혹은 기능적 정신병, 경계선 상태-은 응집력 있고 통합된 자기 혹은 자기 개념 확립의 실패, 정지, 혹은 퇴행이다. 심각성의 수준은 다양하지만 이들 모두가 자기의 장애들을 나타내는데, 즉 실재하고 응집적이고 혹은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문제를 나타낸다. 반면에, 불교적 관점에서 가장 깊은 정신병리적 문제는 자기의 존재에 관한 것이다. 불교적 진단에 따르면, 고통의 가장 깊은 원천은 자기를 보존하려는 시도인데, 이것은 무익하고 자기-패배적인 시도이다. 가장 심각한 정신병리는 아집, 즉 개인 존재에 대한 집착이다 (Engler, 1984).
그는 명상과 심리치료가 추구하는 목표가 인간발달의 전체 스펙트럼에서 차지하는 발달적 맥락이 서로 다르며 결국 無我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有我를 획득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명상 수행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자아가 요구되며, 이러한 잘 통합된 자아는 경험을 소화해서 조직화하고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반으로 명상에서 요구되는 순간 순간의 경험들에 대한 집중과 관찰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정신분석가인 Epstein(1995)은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는 자유연상이나 전이의 해석을 통해 개인의 부적응적인 대인관계패턴이나 심리적 장애가 자신의 초기 경험과 어떻게 관련되어있는가를 통찰함으로써 개인의 역사를 재구성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정신분석가와의 관계, 치료자의 분석적 태도의 힘을 통해 혼란된 자기의 재통합을 목표로 하는 반면, 불교명상은 자기감과 직면하여 그것의 비 실재함을 깨닫는 경험을 통해 모든 고통의 출발점인자기가 소멸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며 그것은 개인 스스로의 내성적 집중과 관찰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Rubin(1996)은 정신분석과 명상을 광각렌즈와 줌렌즈로 비유하여 설명한다. 명상은 매 순간의 주의 깊고 상세한 관찰로서, 비선택적이고 비판단적으로 그것이 무엇이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알아차리면서 주의를 기울이고자 한다. 이러한 종류의 미세하고 줌 렌즈적인 주의를 통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사고, 감정, 지각, 기억 그리고 감각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에 주목한다. 광각렌즈를 가지고 현상에 접근해가는 정신분석의 경우에는 되풀이되는 자기 이미지와 대상 이미지의 역사, 그리고 이와 관련된 정서들과 마음의 성향에 의해 형성된 단일화된 성격의 연속성과 견고성을 발견한다. 이에 따라 정신분석은 성격의 실체적이고 영속적인 역사적 측면을 강조하는 반면, 불교명상은 매 순간 변화하고 새롭게 형성되는 마음의 본질적인 비실체성을 강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권석만(1997)은 심리상담과 명상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첫째, 명상과 심리상담은 모두 인간의 삶 속에서 겪는 고통과 그 극복을 출발점이자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불교는 인간의 보편적 고통에서 출발하는 반면, 심리상담은 인간의 특수한 고통, 즉 심리장애에서 출발한다. 불교는 三法印의 하나인 一切皆苦라는 용어에서 보여지듯이 모든 인간이 경험하는 보편적인 고통의 극복을 목표로 하는 반면, 심리상담은 비정상성, 주관적 고통, 사회적 부적응, 성격적 불건강성 등의 기준에서 정의된 심리적 장애, 즉 특수한 고통의 극복을 목표로 한다. 이런 점에서 심리상담은 불교명상에 비해 극복해야 할 삶의 문제가 훨씬 제한 적이며 그 대상 역시 협소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불교수행과 심리상담은 고통의 원인을 내면적 요인, 특히 인식의 문제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즉,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그에 대한 집착을 고통의 원인으로 본다. 그러나 불교수행에서는 인간의 보편적 인식 모두를 망념으로 보는 반면 심리상담에서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특수한 인식내용을 부적응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불교수행은 모든 인간이 생존과 인식의 바탕으로 삼는 기본적이고 심층적인 사고양식을 잘못된 망념으로 보는 반면, 심리상담에서는 부적응자들이 소유하는 비현실적으로 편향된 특유한 사고방식만을 심리장애의 원인으로 본다. 셋째, 불교수행과 심리상담은 외부환경의 변화보다는 내면적 변화를 통해 고통을 극복하는 접근법이다. 이를 위해 양자는 주의를 내면으로 향하게 하여 느낌과 정서, 사고내용 및 욕구등을 관찰하게 하고 이러한 인식과정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내향적 또는 내관적 방법을 사용한다.
이런 점에서 불교적 수행과 인지치료에서는 메타 인지적인 노력이 개입된다. 그러나 불교는 물질의 존재와 자기의 존재까지도 회의하고 반성하는 노력인 반면, 심리상담은 부적응적인 사고과정에 대한 반성노력이다. 불교는 모든 인식내용이 공한 것이어서 이에 집착하지 않게 하는 인식의 해체작업인 반면, 심리상담은 현실성, 논리성, 유용성 등에 근거한 합리적 사고과정으로 변화시키는 인식의 대체작업이다. 넷째, 불교와 심리상담은 고통의 극복을 목표로 하지만, 불교는 고통의 절멸을 지향하는 반면, 심리상담은 고통의 완화를 지향한다. 불교는 해탈과 초월을 추구하는 반면, 심리상담은 적응과 성숙을 추구한다. 불교는 고통 전반으로부터의 일체의 해방이 목표라면 심리상담은 생활속의 부적응을 초래하는 심리장애의 극복을 목표로 한다. 이런 점에서 불교수행은 고통과 장애를 포함한 포괄적인 인간문제에 대한 보다 철저하고 심원한 탐구적 이론체계이자 실천적 수행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불교명상과 심리상담이 추구하는 방법과 목표는 매우 유사하면서 동시에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불교명상은 안정, 통합, 겸손, 자기인식과 같은 일반적인 심리치료목표를 증진시킨다는 점에서 심리치료와 유사하지만, 전통적인 심리치료로는 도달되지 않는 자기-이해의 지평을 넘어서는 존재의 근본적인 상태에 대한 지혜를 얻는 지점에까지 다다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불교적 관점에 따르면, 자기는 착각이며, 우리의 지각적 불안정 때문에 나타나는 왜곡된 현상이다. 자기의 실재성에 대한 믿음은 사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왜곡된 견해일 뿐 아니라 보다 깊고 심오한 실재(reality)에 대한 경험을 방해하며 이에 따라 보다 큰 만족의 체험을 방해하고 오히려 고통을 유발한다(Nozick, 1989).
불교는 현실을 초월하는 출세간의 심리치료인 반면, 심리상담은 현실을 인정하면서 적응과 성숙을 저해하는 장애를 다루는 세간의 고통극복책이라고 할 수 있다(인경스님과의 대화).
Ⅲ. 명상의 메카니즘 - 이론별 접근
1. 행동주의적 접근
행동주의적 접근은 인간본성을 행동의 자극-반응 모형에 기초한 환경결정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행동주의의 이론적 기반은 학습이론으로서 고전적 조건형성과 조작적 조건형성의 원리를 임상적으로 적용하는 심리치료기법이다. 고전적 조건형성은 생리적인 무조건적 반응(침)이 무조건적 자극(음식)과 연합된 조건적 자극(종소리)에 의해 형성될 수 있다는 실험적 결과를 바탕으로 이를 응용하여 체계적 둔감법과 같은 치료기법을 발전시켰다. 조작적 조건형성은 결과를 산출하기 위해 환경을 조작하는 행위들을 강조하는데, 특정 행동이 이끌어 낸 환경변화들이 강화적이면-즉 유기체에게 어떤 보상을 제공하거나 혐오자극을 제거하면- 그 행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증대된다. 반대로 환경변화가 강화를 낳지 못하거나 처벌을 이끌어내면 그 행동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줄어든다. 조작적 조건형성의 원리를 이용하여 강화적인 환경적 요소들을 규명하고 통제함으로써 행동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목표이다. 이러한 치료기법으로는 행동수정이나 토큰 이코노미 등을 들 수 있다.
현대 행동치료는 과학적 방법의 원리와 절차에 근거하며, 행동지향적 접근을 하는 다양한 기법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완훈련, 노출법, 자기표현훈련 등이 대표적인 치료기법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제이콥슨(1938)이 개발한 이완훈련은 점진적이고 체계적인 이완절차를 제시하고 있다. 내담자들은 근육을 수축하고 이완하는 행동을 번갈아 하면서 긴장을 푸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깊고 규칙적으로 호흡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즐거운 사고나 심상을 일으키는 반복 훈련을 통해 내담자들은 이완을 습관화하고 수의적으로 이완상태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명상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생리적 메카니즘으로서 가장 잘 확립된 치료변인은 ‘생리적이완상태’ 혹은 ‘신진대사 기능저하 상태(hypo-metabolic state)’이다. 생리적 메카니즘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Banquet, 1973; Kasamatsu, Okana &Tanaka, 1957; Kras, 1977; Wallace, 1970, Wallace &Benson, 1972, 김기석, 1978)가 이루어졌다. 명상 과정 동안 명상자의 신체 내에서는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는데, 여기에는 심장 박동수 감소, 산소소비량 감소, 혈압강하, 호흡률 하락, 피부저항력 증가, 알파파 활동의 규칙성과 진폭의 증가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생리적 변화는 수면이나 최면상태의 변화와 구분되는 것으로서 명상수행은 근본적으로 깊은 생리적 이완 상태와 더불어 매우 뚜렷한 각성상태를 이끌었다. 명상에서 유도된 이완 상태는 스트레스 관리, 중독물질 사용 감소, 과도긴장의 감소 그리고 심리치료에 보조적 도움을 주는 등의 임상적 효과를 매개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깊은 생리적 이완 상태와 높은 각성상태는 삼매의 상태에서 명상수행자들이 경험하는 寂寂惺惺 의 상태를 기술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생리적 상태는 주의의 집중능력과 주의의 통제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신체적 기반이 된다. 강렬한 외부자극, 강한 정서와 연결된 사고, 발산되지 못한 감정에 주의가 끌려가며, 이렇게 끌려가는 주의를 의지에 의해 통제할 수 없는 상태는 심리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명상수행은 원치 않는 부적절한 대상에게서 주의를 빼앗기지 않고 원하는 대상에 의식을 집중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주의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김 정호, 1994). 이러한 주의통제능력은 인간의 심리적 능력을 조절하기 위해 필수적이고 중요한 능력이며, 심리치료에서 요구되는 내성(introspection)능력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Goleman(1971)은 명상의 심리치료적 메카니즘을 전반적인 ‘탈민감화(desensitization)과정’으로 설명한다. 그는 행동주의적 심리치료의 대표적 방법인 체계적 둔감화와 유사한 과정이 명상에서 발생한다고 가정했다. 체계적 둔감화는 내담자들이 불안을 감소시키는 방법으로써 불안을 일으키는 상황들에 노출시키는 노출 기법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치료자는 내담자에게 조건형성되어 불안을 야기하는 구체적 환경을 파악하고 세가지 단계로 나누어진 체계적 둔감법을 적용한다(Moris, 1986). 1) 이완훈련 2) 불안위계표 작성 3) 체계적 둔감법 실시. 이완훈련단계에서 치료자는 내담자에게 근육이완을 가르치고 다음으로 내담자에게 확인된 불안을 일으키는 자극들의 서열 목록표를 만든다. 둔감법은 내담자가 완전히 이완된 상태에서 불안 정도가 약한 것에서 강한 순서로 불안자극 상황을 상상하게 한다. 가장 불안 정도가 높은 상황을 상상하면서도 내담자가 이완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면 치료는 종료된다.
명상수행자는 사마타 수행을 통해 이완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학습하게 되고, 이완상태에서 불안을 야기하는 다양한 사고들을 주시하는 것(위빠사나 수행)을 또한 학습하게 된다. 이완상태와 불안은 양립할 수 없으므로 상호금지(reciprocal inhibition)작용이 일어나며 이에 따라 불안을 일으켰던 사고나 상황을 통제할 수 있게 됨으로써 불안자극에 대한 탈민감화 가 일어난다고 본 것이다. 이와 유사한 메카니즘으로 제안된 ‘탈스트레스(unstressing) 과정’은 명상수행 중 억압되었던 고통스런 자료들(불안이나 공포 정서를 동반하는)이 표면화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 과정에서 긴장-방출이 일어나며 따라서 명상 후 심리적 안녕감을 얻게된다고 가정된다(Glueck &Stroebel, 1975). Carpenter(1977)는 명상에서 세 가지 치료적 과정이 수행된다고 보았는데, 반복적인 자기-패배적 행동 및 사고 패턴에 대한 통찰, 고통스런 사고들의 탈민감화, 그리고 중추 신경계의 조건화 등이다.
이밖에 행동주의적 용어로 기술되는 명상의 메카니즘으로는 ‘자극 통제’ ‘자기-지시’ ‘비평가적 자기관찰’ ‘사고 정지 혹은 사고 통제’ ‘자극 습관화’ 등이 있다(Shapiro &Zifferblat, 1976). ‘자극 습관화’는 명상수행 중 관찰되는 특정한 자극들이 반복됨으로써 자극 습관화를 이끌게 되고, 특정한 자극에 연합되어 일어나는 자동적이고 부정적인 사고작용이 줄어들게 됨으로써 ‘사고를 정지하거나 통제’할 수 있게 됨으로써 관련된 정서적 장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고 가정한다.
2. 인지치료적 접근
인지치료이론은 심리장애의 원인을 인간의 인지구조와 인지과정상의 오류에 기인한다고 보는 접근 방법이다(Beck, Rush, Shaw, &Emery, 1979). 인지치료의 기본적인 가정은 다음과 같다. 1) 인간의 감정과 행동은 객관적 현실보다는 개인의 주관적 현실에 의해 결정되며, 이러한 주관적 현실은 사고와 심상 등의 인지내용에 반영된다. 2) 인간의 심리적 고통이나 정신병리는 이러한 인지내용이 현실을 부정적으로 왜곡하는데 기인한다. 3) 왜곡된 인지내용은 심리치료적 개입을 통해 내담자가 의식할 수 있으며 교정될 수 있다. 따라서 인지치료의 과정은 내담자가 세상을 어떻게 인지적으로 파악하는지를 이해하고, 왜곡된 인지과정이 자신의 정서적, 행동적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탐색하며, 이러한 부적응적인 인지내용을 현실적이고 유용한 내용으로 변화시키도록 개입하는 것이다. Beck은 인간에게는 외부자극에 의해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유발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의식되지 않는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s)가 발생하며, 이러한 자동적 사고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인지적 오류(cognitive error) 즉 외부자극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범해지는 왜곡이 개입된다고 보았다. 인지적 오류에는 흑백논리, 과잉일반화, 선택적 추상화, 개인화 등 매우 다양한 오류가 있다. 따라서 자동적 사고를 포착하고 그 내용의 현실성을 검토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인지치료의 과제가 된다.
Deikman(1966)은 충동과 욕망에 의해 그리고 자기와 나머지 세계가 분리되었다는 환상들에 의해 지배된 습관적 형태의 자동적 지각, 인지, 행동 양식이 ‘탈자동화 deautomatization'되는 과정이 명상 중에 일어나며, 이에 따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게되는 지각상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제안했다. 과거에 의식되지 않은 채 자신의 삶을 움직여 왔던 심리적 기제의 자동성과 습관성을 약화시키는 탈자동화의 효과가 초래됨으로써 과거에 지니고 있던 욕망, 감정, 신념, 습관으로부터의 집착과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와 지게된다는 것이다. 자동적인 인지 과정이 제지되고 대신 지각이 그 자리를 대치하게 되는데 Deikman은 이 과정을 ’적극적인 인지적 양식 (active intellectual style)‘이 ’수용적인 지각적 양식(receptive perceptual mode)‘으로 변화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명상은 반복적이고 자동적이었던 인지, 행동 패턴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우며, 이러한 탈자동화의 결과가 자신의 정서적, 행동적 문제에 대한 깨달음을 이끈다고 생각했다.
Deikman(1971)은 또한 ‘양면적인 의식(bimodal consciousness)'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는데, 인간의 의식은 ’적극적 양식‘과 '수용적 양식’으로 구성된다. 적극적 양식은 개인적인 목표의 성취를 향해 지향된 추구의 상태로서 상대적으로 언어적, 행동적이며 골-근육 체계가 관여된다. 수용적 양식은 내적으로 지향된 내성적이고 반성적인 태도로서 지각적 수용과 관련되며 비-행동적 수준에서 작용한다. 적극적 양식은 ‘경험에 대해 싸우거나 회피하는(fight and flight)' 태도이다. 적극적 양식은 부정적인 정서를 일으키는 자극에 대해 그러한 자극을 제거하려고 하거나 회피하는 태도를 말한다. 대부분의 심리적 장애를 갖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식의 왜곡으로부터 기인하는 부정적 자극이나 경험에 대해 회피하거나 투쟁하려고 함으로써 자신의 문제들을 오히려 지속시키거나 악화시킨다. 공포증 환자들은 특정대상에 대해 자신이 위해될 것이라는 자동적 사고에 의해 두려운 감정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을 회피하게 되며, 과잉행동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에게 분노를 일으킨다고 지각하는 대상을 제압하기 위해 분노를 행동화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게된다. 수용적 양식은 ‘경험이 흘러가도록 허용하는(letting-go)' 태도이다. 명상은 비판단적이고 비선택적으로 마음에서 경험되는 모든 사고, 감정, 느낌, 심상들을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관찰하도록 함으로써 수용적 양식을 증진시킨다.
Maupin(1969) 또한 명상이 ’자각과 결합된 깊은 수용성‘을 생산한다고 기술했다. 명상동안 일어나는 모든 경험에 대해 수용적이고 비-집착적 태도를 발전시킴으로서 ’수용적인 집중‘이 고양되는데 이것은 모든 형태의 명상 수행에서 발생되는 공통적 과정으로 생각했다.
Shapiro(1976)는 명상과정 동안 명상자는 인식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았던 사고들이 필터로 작용함으로써 실재에 대한 지각을 왜곡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며, 따라서 통제되지 않은 사고, 분석 및 지적인 작용은 정신의 장에서 일어나는 단지 하나의 정신작용일 뿐임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는 사고로부터 떨어져 사고를 바라보고, 수용하며, 흘러가게 두는 과정을 '상위 인지(meta-cognition)'의 기능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나는 나의 사고가 아니며, 사고는 단지 어떠한 조건에 의해 형성된 정신현상으로 자각하는 과정을 말한다. 불교의 연기설에서 말하는 法有無我 즉 오온의 연기적 현상(생각 혹은 사고)만 존재할 뿐, 실체적 혹은 형이상학적 주체(나)는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Smith(1986)는 명상의 세 가지 기제로서 ‘주의집중(focusing)’, ‘있는 그대로 두기(letting be)’ 그리고 ‘수용성(receptivity)을 제안했다. 주의집중은 상당한 시간동안 제한된 자극에 주의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며, 있는 그대로 두기는 불필요한 목표 지향적이며 분석적인 사고 활동들을 멈추는 능력이다. 수용성은 불확실하고, 낯설며 모순적인 심리적 경험들을 인내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자발성이다. 이 세 가지 기제는 수동적 반응이 아니라 자신과 세계를 현재-중심적 방식으로 경험하려는 적극적인 양식이다.
3. 정신분석적 접근
프로이드에 의해 고안된 정신분석의 두 가지 기본가정은 정신결정론과 무의식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결정론이란 인간의 행동은 비합리적인 힘, 무의식적인 동기, 초기 유아기의 주요한 심리성적 단계에서 억압되거나 좌절된 본능적 충동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무의식적 과정이란 심리적 장애에는 의식 수준에서 쉽게 인식되지 않는 무의식적 과정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성격구조가 쾌락원칙에 의해 지배를 받는 생물학적 구성요소인 원초아(id)와 현실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심리적 구성요인인 자아(ego), 그리고 도덕적 원리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적 구성요소인 초자아(superego)로 구성된다고 보았다(정신의 구조적 이론). 그는 또한 인간의 의식은 전체 마음 중의 얇은 표면에 불과하며 마음의 대부분은 빙산의 본체와 같이 의식표면 아래에서 기능하는 무의식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정신의 지형학적 이론을 제시했다. 무의식에는 인간의 모든 경험, 기억, 억압된 욕구와 정서들이 저장되어 있다. 원초아는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지만 현실적 상황에 맞추어 욕구를 조절하려는 자아와 이상과 완벽을 추구하려는 초자아의 힘에 의해 억제되며, 이러한 세 가지 성격 요인들의 갈등으로부터 인간은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불안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인 자아방어기제가 작용하게 되는데, 방어기제에는 억압, 부인, 반동형성, 투사, 치환, 합리화 등이 있다.
모든 신경증적 증상이나 부적응적 행동의 근원에는 무의식적 과정들이 작용하고 있으므로, 정신분석의 기본 목표는 무의식의 기능을 이해함으로써 이것을 의식화하는 것이다. 무의식적 동기를 의식화함으로써 무의식적 행동이 의지적인 선택으로 바뀔 수 있게 된다. 프로이드는 무의식에 접근하기 위해 내담자의 무의식적 욕구, 소망, 갈등의 상징적 표상인 꿈, 내담자의 자유연상으로부터 도출된 자료,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보이는 전이현상, 증상의 상징적 의미 등을 활용하고, 치료자의 강력한 분석적 태도를 통해 이를 적절하게 해석함으로써 무의식의 내용과 무의식적 과정을 의식화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대부분의 초기 정신분석 이론가들은 명상(주로 사마타 수행)을 보다 유아적인 정신 기능으로의 ‘유도된 퇴행’의 방식으로 간주했다. Freud(1930)는 명상 상태에서 경험하게 되는 “신비경험(oceanic feeling)"을 ”제한 없는 자기애적 상태로의 복귀“ 혹은 ”유아적 무력감의 부활“을 추구하는 ”제한 없고“ ”경계가 없는“ 우주와 합일되는 자아-감으로 분석했다.
정신분석의 심리성적 발달이론에 따르면 유아는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등의 발달단계를 거치게 된다. 상위 단계에서 요구되는 욕구의 조절, 공격성의 통제와 같은 사회화 과정에서 지나친 부모의 통제가 가해지게 될 때,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유아는 그 전 단계의 만족을 주던 방식으로 퇴행하게 된다. 배변 조절과정에서 야단을 맞은 아이가 손가락을 빤다거나 젖병에 담긴 우유를 다시 찾게 되는 것은 구강기 단계로의 퇴행이라고 할 수 있다. 유아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세상으로 나와 잠시동안은 어머니와 자신의 존재가 구분되지 않는 공생적 일체감속에 존재하게 되는데 이때 유아가 경험하는 것은 자신이 요구하는 무엇이든지 즉각 만족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프로이드는 유아적인 자기애적 상태라고 불렀다. 프로이드는 삼매의 경지에서 경험하는 절정경험 혹은 우주(어머니)와 하나가 되는 경험을 정신적 퇴행을 통해 유아적 만족감을 되찾으려는 시도로 해석한 것이다.
정신분석가인 Alexander(1931)는 사마타 수행을 ‘외부세계로부터 리비도 에너지를 완전히 철수시키는 인공적인 정신분열적 퇴행’으로 묘사했다. 삶의 본능적 에너지인 리비도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모든 본능적 활동에 쓰여진다. 정상적인 성장을 하는 유아는 점차 리비도 에너지를 자신의 내부로부터 사회적 관계와 사회적 대상으로 옮기고 자아의 적절한 조절을 통해 사회적으로 승인되는 방식으로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그 또한 명상을 자기 내부에서 모든 것이 충족되던 유아기의 쾌락추구방식으로 리비도를 철수하는 퇴행적 방법으로 오해한 것이다.
Jung(1958)은 명상을 꿈과 유사하게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로 기술했으며, Fromm(1977) 또한 명상을 퇴행과정으로 해석했으나 그것이 수의적 조건 하에서 발생하므로 병리적 퇴행이라기 보다는 자아의 기능으로서 적응적 퇴행이라고 보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Fromm(1977)은 ‘자아-활동성(Ego-activity)과 ’자아-수용성(Ego-receptivity)‘의 개념을 명상을 이해하기 위해 적용했는데 자아-활동성은 개념화, 주의 집중 그리고 이차과정 인지 양식으로 특징지워 지는 의식적인 과정인 반면, 자아-수용성은 일차과정 인지 양식으로서 언어발달 이전 유아기의 전형적 양식이며 논리적 개념이 아니라 풍부한 심상과 초점화 되지 않은 자유롭게 부유하는 주의와 환상들로 구성되는 무의식적인 과정으로 보았다. 명상수행 동안 의식적 사고과정은 제지되는 데 반해 자아-수용적인 무의식적 자료들은 활성화된다. 프롬은 초기의 집중명상에서는 비-일상적으로 큰 자아-활동성이 요구되지만, 점차 명상이 숙련될 수록 자아-수용성이 주요하게 된다고 믿었다. 진보된 명상수준에서는 모든 인지적 과정이 감소되며, 인지적 과정의 내용보다는 마음의 무의식적인 작용과정 자체에 초점을 둔다고 보았다. 이러한 진보된 명상수준에서는 자신의 무의식적 동기와 욕망, 그리고 무의식내에 억압된 정서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지배했던 무의식적 기능에 대한 통찰이 발생하게 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Washburn(1978)은 명상수행이 주의 과정(attention process)의 의도적 조작을 통해 보통의 주의 상태에서는 알아차릴 수 없는 무의식적인 정신적 현상에 대한 자각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해석했다.
Engler(1984)는 명상수행에서는 인간의 자동적 행동경향성으로 가정하는 쾌락원칙이 생득적이고, 자발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정신분석의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다. 정신분석에서는 정서가 두 가지 기본 구성요소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1) 쾌락평가 : 체험되는 무엇이든 그것의 쾌락가에 의해 쾌, 불쾌, 중립으로 평가된다. 2) 쾌락충동 : 쾌락평가에 따라 즉각적으로 이어지는 행동 경향성(felt action tendency), 즉, 쾌에는 접근하고 불쾌에는 회피하려는 반응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연쇄반응은 모든 경험의 순간마다 발생하며 쾌락 평가에 대한 반응성이 바로 모든 정서들의 뿌리가 된다. 그러나 명상에서는 자동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연쇄가 의지적 행위이며 원칙적으로 자기-조절에 의거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Engler는 불교 명상의 핵심적 기제를 평정한 마음상태에서 공평하게 모든 순간을 관찰하고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의 계발을 통해 쾌락과 불쾌의 경험과 이에 반응하려는 경향성의 연쇄를 '단절(unlinking)'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또한, Engler는 명상이 자신이 어떻게 세상을 구성하거나 표상하는가를 관찰할 수 있게 함으로서, 영속하고 불변하는 독립적 실체로서의 자기는 실재하지 않음을 검증하는 경험을 제공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무상성, 무아성에 대한 통찰은 서양의 발달적 관점에서 보면 정상상태에서 초월상태를 향한 메카니즘이며, 병리적 상태에서 정상을 추구하는 단계에서는 안정적인 자아감의 확립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고 본다.
Epstein(1987)은 프로이드 이래 명상에 대한 논의가 사마타 수행에만 제한되고, 이마저도 유아적인 대상과의 융합추구라는 제한된 관점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하면서, 관법 혹은 통찰(mindfulness) 명상에 대해 분석하였다. 집중명상이 안정감과 존재론적 안전감을 제공하는 반면 통찰명상은 매 순간의 의식에 대한 철저하고 집요한 관찰을 촉진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세밀한 수준의 지각에 의해 모든 경험의 비-영구적 본성에 대한 지혜를 제공하는 방법이다. 통찰명상은 순간순간의 경험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관찰자아의 능력을 강화함으로써 자아의 치료적 분리를 촉진하며, 알아차림의 발달은 ‘실제의 점점 더 복잡한 수준의 분화와 객관화’과정에 응집력을 유지하도록 하는 자아의 종합능력의 발달과 상응하게 된다. 통찰명상은 심리내적 ‘내용’에 대한 분석보다는 심리내적 ‘과정’에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서양 심리치료와 매우 다르다. 강조되는 것은 사고의 비합리성 여부가 아니라 사고의 비실체성, 그것의 순간성 그리고 명상자가 생각의 행위자라고 동일시하는 양식에 대한 검증이다. 이러한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과정 이야말로 불교명상의 독특한 심리치료기제라고 본다. 통찰명상의 목표는 자아의 거부나 부인이 아니라, 알아차림의 배양을 통해 발달된, 자아의 종합능력의 힘을 통하여 ‘행위자로서의 자기-표상’에 대해 명확히 조명하는 것이다. 필요하고 유용한 개념인 자기감을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로서의 자기-표상을 단지 하나의 표상으로서, 즉 고유적 존재가 없는 이미지 또는 환영으로서 확인하는 것이 목표이다. 핵심은 자기를 하나의 고정된 실체로서가 아니라 그것이 실제 존재하는 방식인 현상적이며 표상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Ⅳ. 명상의 심리치료에의 적용
서양의 심리치료 이론과 불교 명상의 공통된 관심사는 인간의 심리적 고통의 완화 또는 소멸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의 신비주의적 수행법이 서구 심리학에 소개된 20C 초반이래, 불교 명상은 크게 두 가지 접근 방법을 통해 연구되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서양 심리치료이론의 구성개념을 중심으로 하여 불교 명상을 기술하고 설명하려는 시도로서 정신분석 이론가들이 지법수행의 과정을 자신들의 용어인 ‘퇴행’이란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그 한 예이다. 두 번째 접근법은 소위 과학적 방법론에 의한 접근으로 명상의 구성요소들을 측정 가능한 조작적 개념으로 정의하고 그 특정적 효과를 검증해 보려는 시도로서, 명상 체계를 하나의 심리치료기법으로 활용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행동주의와 인지치료적 접근에서 주로 사용하는 접근방법이다. 명상이 도움이 되는 수행자 성격 특성이나, 명상의 다양한 조작적 메카니즘 -예를 들면, 이완반응 또는 탈자동화 과정- 의 효과 연구 등이 이러한 접근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접근법이 명상과정 및 효과에 대한 이론적 기술과 설명에 관심을 가졌다면, 두 번째 접근법은 명상을 하나의 심리치료 기법으로서 실용적으로 적용하는데 더 큰 강조가 두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 접근 방법 모두 서구의 심리치료 이론 및 실제에 새로운 자극 또는 자양분으로서 명상을 활용하고자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가 명상의 심리치료적 기제에 관심을 갖게된 이유는 명상이 매우 실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서양 심리치료와 비교하여 명상이 가진 독특한 장점으로는 첫째, 명상은 상담자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며 둘째, 명상이 기법적으로 손쉽게 응용되어 심리치료 실제에 활용될 수 있으면서도, 효과가 뛰어난 심리치료 방법일 수 있다는 점이고, 셋째, 명상은 인간내부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게 하는 방법이라는 점 등이다.
Rubin(1996)은 프로이드가 정신분석의 3가지 기본원칙의 하나로 제시한 분석가의 태도인 고르게 퍼져있는 주의(evenly suspended attention)에 대해 논하면서 그가 고르게 퍼져있는 주의를 내담자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적정한 마음의 상태로서 정의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배양해야 할 지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프로이드는 내담자의 꿈이나 환상, 자유연상을 들을 때 분석가는 자신의 비판기능을 중지하고 편견 없고 치우치지 않는 태도로 내담자의 이야기에 경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를 위한 규칙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그는 주의를 기울이는 그의 능력으로부터 모든 의식적인 영향력을 중지하고 자신을 ‘무의식적인 기억’에 완전히 내주어야 한다.” “어떤 것을 기억해야 할지 걱정하지 말고 단순히 들어야 한다.”
내담자를 치료하고자 하는 욕망, 내담자의 말에 대한 즉각적인 결론, 내담자의 고통의 원인에 대해 통찰하려는 욕구를 보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Epstein, 1995). 명상수행을 통해 배양되는 것은 일어나는 모든 현상 자체에 주의를 집중하고 자신의 반응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 好-不好에 근거한 자동적 행동 경향성으로부터 편견없고 비판단적인 자각을 유지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명상은 비 일상적인 정도의 자기-인식능력을 배양하고, 있는 그대로의 마음의 상태를 자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상담자의 가장 중요한 능력인 경청하는 태도를 훈련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Deatherage(1975)는 위빠사나 명상을 심리치료에 활용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관법의 주요한 기법인 호흡관찰과 집중요소를 깨뜨리는 방해요소에 대한 이름 붙이기를 활용하여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였다. 전남편의 변태적인 성적 요구에 대한 생각이 우울증과 불안을 촉발시켰던 23세의 이혼녀는 이러한 과거 회상적인 사고를 면밀하게 관찰하는 훈련을 받았고 그 생각이 날 때 마다 “기억한다, 기억한다”라고 이름 붙이는 훈련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고가 줄어들지는 알았지만 이 내담자가 그러한 생각에 의해 영향 받는 방식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이름 붙이기 과정은 이러한 자동적인 사고와 우울 및 불안반응의 연쇄를 깨뜨리도록 도와주었고 그 결과 그러한 증상들은 사라졌다. 내담자는 자신의 관찰하는 자아를 활용하여 자신의 고통스런 생각으로부터 거리를 유지 할 수 있었고 이름 붙이기 작업을 통해 생각과 자신을 동일시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정서적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와 질 수 있었다.
Walsh(2000)는 정신적으로 소진된 25세의 남학생 상담사례를 보여준다. 그는 불면증과 신경쇠약 그리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는 매우 야심차고 매우 열심히 일하며 여러 개의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똑똑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느꼈고 어떤 일에도 즐거움을 가질 수 없었다. 명상 심리치료를 받기로 결정하고 명상을 가르친 다음 상담회기에 그는 매우 좌절된 채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호흡에 잘 집중할 수 없었고 긴장을 풀기 어려우며 주의집중이 흐트러질 때마다 스스로를 자책했다고 보고했다. 명상수행에서 드러난 그의 태도는 강렬하게 성취 지향적인 방식이었고, 이러한 성취가 좌절될 때마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Walsh는 내담자의 이러한 태도가 내담자를 힘들게 하고 좌절하게 함을 지적했고, 비 판단적인 자세로 자신의 명상에서의 실패경험을 수용하도록 도왔다. 내담자는 자신이 실생활에서도 부정적인 스트레스 경험에 대해 대처해왔던 자기-처벌적 양식을 자각하게 되고 이를 통해 고통스런 증상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윤호균(1999)은 불교의 연기론을 근거로 불교적 상담모형을 제시하였다. 그는 개인의 현실이 구성되는 과정을 연기론에 입각하여 개념화하고, 이 구성과정에서 공상이 개입하여 가공적 현실이 구성되며 이로부터 정서적 장애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그의 이론을 요약하면, 개인에 의해 경험되는 현상적 경험(受, 愛, 取)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경험, 관념, 지식 그리고 기억에 의해 형성된 변별평가체계(無明, 行)에 의해 왜곡되게 된다. 변별 평가 체계에는 자기에 대한 개념, 자신의 바람과 두려움이 깊이 내재되어 현실인식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있는 그대로의 지각을 방해하는 공상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공상에 따라 사물의 존재하는 실재의 모양(識, 觸)은 왜곡되어 가상현실을 구성하게 되고 이러한 결과 고통(有)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담자는 내담자들의 주관적 경험이 있는 그대로 드러날 수 있는 상담환경을 만들어 그들의 경험세계가 어떤 공상들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함께 탐색하고 이해한다. 그리고 그들의 경험세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스스로 부질없는 공상을 개입시켜 문제를 만들고 그에 집착해왔음을 자각함으로써 문제로부터 벗어나도록 돕게 된다.
이러한 상담사례와 불교적 상담이론모형의 시도는 명상이 어떻게 심리치료의 실제에 활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호흡관찰을 통한 주의집중 능력의 배양, 이름 붙이기를 통한 고통스런 생각들로 부터의 거리두기, 생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탈동일시, 명상수행을 통한 자기 패배적 행동의 자각,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내는 공상의 발견, 이러한 것들은 매우 효과적인 심리치료기법으로 실제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Ⅴ. 결어
불교명상은 수 천년 동안 수행자들의 치열한 내관을 통해 경험적으로 확립된 심리치료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 심리치료이론은 명상의 과정으로부터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명상은 불확실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삶의 경험에 대해 투쟁하거나 도피하는 방식이 아니라, 경험을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중심까지 도달하여 하나가 됨으로써 결국 고통의 무상함과 실체 없음을 체험하게 하는 수행방법이다(인경스님과의 대화). 명상은 내담자의 심리내용보다는 심리과정에 더 초점을 두게된다. 왜곡되거나 비합리적인 심리내용의 분석과 교정을 통해 심리적 고통을 해결하려하기 보다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추적함으로써 그것의 비영속적 특성을 자각하고, 심리적 고통을 이루는 과정에 대한 직접적이고 수용적인 체험을 통해 경험에 대한 대응양식의 변화를 추구한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고통스런 감정의 중심에 진입할 수 있도록 이해와 공감을 통해 인도하며, 그 동안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에 대해 취해 왔었던 대응양식(목표추구적, 도피적, 투쟁적, 분석적)을 통찰하도록 돕는다. 내담자는 지금-여기에서 일어나는 경험들(고통스럽든 즐겁든)과 하나가 되면서 동시에 알아차리는 마음가짐을 배우게 된다. 경험에 휩쓸리지도 않고, 경험으로부터 도망가지도 않는 알아차림의 상태를 유지하며, 고통과 동반된 사고와 정서의 중심에 도달하게 된다. 불확실하고 모호하며 혼란스런 정서적 고통을 경험하게 되지만, 고통의 중심에는 실상 어떠한 영속하는 실체도 없음을 통찰하게 됨으로써, 마침내, 내담자는 고통을 만들어 낸 사고와 정서의 폭류를 건널 수 있게 된다. 결국, 고통을 만들어 낸 것은 자신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자기라는 개념에 묶임으로서 순수한 경험을 고통으로 왜곡시키고 과잉 반응했음을 자각하게 된다.
명상의 실제적 활용과 더불어 명상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이론적 접근 또한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서구 명상연구 접근법의 문제는 서양 심리학 이론의 틀에 기준하여 명상을 해석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서양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바탕으로 성립된 불교명상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 진면목이 축소되거나 심지어는 왜곡되는 경우조차 있어 온 것이 사실이다. 최근 자기-초월심리학이 등장하면서 명상에 대한 논의들은 명상 수련 경험을 가진 이론가들에 의해 보다 정확하게 이해되어지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대부분이 비교심리학적 수준에서 서구 이론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명상 연구의 접근법은 불교심리학(넓게는 동양심리학)에 기반한 명상연구라고 생각한다. 2500년의 역사를 가진 명상 수행은 고유한 자신의 세계관, 인간관, 인식론, 발달론, 치료이론을 배경으로 성립된 독특한 심리치료 양식이다. 명상의 치료적 메카니즘이 불교 심리학적인 성격이론, 동기론, 병인론 등의 맥락에서 기술되고 설명되었을 때 비로소 온전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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