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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시간 | 답심지 | 주소 |
07:40 | 현대백화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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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5 | 성서홈플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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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0 | 신재 주세붕 묘 |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 |
10:00 | 무기연당 | 경남 함안군 칠원읍 무기1길 33 |
11:00 | 고려동 유적 |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2길 53 |
12:00 | 무진정 | 경남 함안군 함안면 괴산4길 25 |
13:00 | 점심식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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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0 | 서산서원, 채미정 | 경남 함안군 군북면 사군로 1235 |
16:00 | 대구로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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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2次 先賢遺跡踏尋資料集 目次
5月 先賢遺跡 踏尋 日程 --------------------------------------- | 2 | ||
제 32次 先賢遺跡踏尋資料集 目次 ------------------------------- | 3 | ||
경상남도 함안군 -------------------------------------------- | 4 | ||
| 1. | 아라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함안--------------------- | 4 |
| 2. | 700년 잠에서 깨어난 아라홍련 ----------------------------- | 5 |
| 3. | 전국 유일 문화재, 함안 낙화놀이 -------------------------- | 5 |
| 4. | 무진정 --------------------------------------------------- | 6 |
| 5. | 스토리텔링의 보고 ‘무기연당’---------------------------- | 7 |
| 6. | 함안의 명물, 눈과 입이 즐거운 컬러 수박 ------------------ | 8 |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墓-------------------------------- | 8 | ||
무기연당(舞沂蓮塘) ----------------------------------------- | 9 | ||
무기연당(舞沂蓮塘)과 무진정(無盡亭)을 견주면---------------- | 10 | ||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蹟址)--------------------------------- | 11 | ||
무진정(無盡亭) --------------------------------------------- | 11 | ||
무진정(無盡亭) 소개 블로그 글 - 깊어가는 겨울 속에서 함안 무진정의 품은 따뜻하다 ----------------------- | 12 | ||
어계(漁溪) 조려(趙旅)--------------------------------------- | 14 | ||
서산서원(서산書院) ----------------------------------------- | 15 | ||
채미정(采薇亭)--------------------------------------------- | 15 | ||
박약회 대구지회 청장년위원회 답심지역 정리 ---------------- | 17 |
◆ 경남 함안군
경남 중부에 있는 함안군은 낙동강과 남강을 끼고 있다. 함안군은 경남 중심지로 교통이 편리해 인근 창원시 배후지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면적은 경남도의 3.9%를 차지하는 416.8㎢로, 1읍 9면의 행정구역이 있다. 함안은 아라가야의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간직한 고장이며, 기업하기 좋은 곳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매년 함안, 칠서태곡, 대산부목 등 대규모 일반산업단지에 입주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중소기업 경영안정자금과 우수중소기업(inno-biz) 인증획득, 품질혁신인증 심사비, 중소기업 기업이미지 통합디자인 개발, 창업기업 신규 고용인력 보조금 등 다양한 기업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그리고 수박 등 시설농업의 발달로 농공병진의 고장이라는 점이 함안의 특징이다. 함안군은 이런 장점을 살려 현재 6만7000명의 인구를 앞으로 20만 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1992년 6월6일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현충일. 경남 함안군 가야읍 해동아파트 건설공사 현장에선 굴착기 소리가 울렸다. 당시 그곳을 지나던 한 신문배달 학생도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학생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발목을 잡았고 눈길이 굴착기가 파낸 흙에 닿았다. 흙 속에 거무튀튀한 쇳조각이 보였다. 단번에 귀중한 것이라고 직감한 학생은 군청 문화재부서에 신고했고 쇠붙이는 말의 갑옷으로 판명됐다.
그 동안 그림만으로 존재하던 평안남도 쌍영총, 평양 개마총, 중국 집안 삼실총 등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있던 말 갑옷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동시에 일본에 철기문명을 전한 아라가야의 뛰어난 제철기술이 새롭게 조명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1. 아라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함안
경남 함안군은 아라가야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며 농업과 기업이 발달한 도시이다. 경남 함안군 가야읍내와 도항리 말이산고분군이 그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함안을 주축으로 한 아라가야는 뛰어난 철기와 토기 제작 및 옻칠기술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가야 문화권을 대표하는 나라다. 그들이 남긴 200곳이 넘는 전국 최대 규모의 고분군과 대규모 토기 생산유적은 찬란한 문명을 보여주고 있다. 사적 제514호로 지정된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말이산고분군에선 아라가야의 웅장함을 맛보고 아라가야의 세련된 유물을 구경할 수 있다.
함안에서는 말의 갑옷에다 용의 문양을 넣고 금박을 씌운 둥근고리칼, 아라가야를 대표하는 불꽃무늬토기, 수레바퀴토기가 있다. 또 2008년까지 전국에서 출토된 목간(木簡) 400개 중 246개가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목간의 보고라고도 불린다.
2. 700년 잠에서 깬 아라홍련
함안군 가야읍 고분길 함안박물관에는 여느 박물관과는 달리 곳곳에 연꽃이 피어있다. 700년 잠에서 깨어나 꽃을 피우는 아라홍련이다. 목간(木簡)의 보고인 함안 성산산성에서 2009년 5월 또 다른 귀중한 유물이 출토됐다. 바로 연씨 10알이다. 알 2개를 대전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보내 방사성 탄소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한 알은 650년 전, 다른 한 알은 760년 전으로 각각 밝혀져 통상 700년 전 고려시대의 연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여덟개 알을 심은 결과, 그중 3알이 싹을 틔웠고 다음해인 2010년 7월 700년 만에 처음으로 꽃을 피웠다. 아라홍련은 고려시대의 불화에서 볼 수 있는 꽃잎이 길고 색깔이 엷은 선홍색 꽃이다. 꽃잎을 오무렸다가 다시 펼칠 때마다 색깔이 점점 엷어져 나중에는 꽃잎 끝에만 진한 선홍색이 남는 것이 특징이다. 꽃잎뿌리의 새하얀 색깔이 꽃잎을 따라 점점 선홍색을 더해가는 데다 긴 꽃잎의 수수하면서도 우아한 형태가 지금의 연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전국에서 하나뿐인 고려시대 연꽃을 함안박물관에서는 시험재배지를 조성해 관리하고 있다. 내년 여름이면 준공될 연꽃 주제공원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8월 중순까지 꽃이 피는 아라홍련은 함안박물관에서 구경할 수 있다.
3. 전국 유일 문화재, 함안 낙화놀이
무진정(無盡亭)은 조삼 선생(1473~?)이 후진 양성하며 여생을 보내기 위해 자신의 호를 따서 함안면 괴산리 지금 자리에 직접 지은 정자이다. 조삼 선생은 성종 20년(1489)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해 함양·창원·대구·성주·상주의 부사와 목사를 역임한 인물이다.
무진정은 조선 초기 정자양식의 소박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진정 앞의 연못은 세 개의 섬을 갖춘 조선 초기 연못양식을 보여주는데 연못가를 빙 둘러선 아름드리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연못도 아름답지만 무진정을 더 빛나게 하는 것은 낙화놀이다. 옛날부터 괴항마을에 전해져오는 낙화놀이는 바람에 날리면서 타들어가는 불꽃을 구경하는 전통놀이이다. 낙화놀이는 참나무 숯을 곱게 빻아 심지를 넣고 한지로 감싼 실을 엮어서 만든 타래를 이용한다. 연못 가득 타래를 매단 후 불을 붙이면 바람에 날린다. 바람에 날리며 불타는 숯가루가 연못을 가득 메우고 물에 비치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해마다 사월 초파일이면 낙화놀이가 열리는데 전국에서 모여든 사진작가와 카메라작가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된 낙화놀이로 선조의 놀이문화를 일별하는 데 손색이 없다.
4. 무진정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에 있는 무진정. 연못도 아름답지만 사월 초파일 낙화놀이 장소로도 유명하다.
남강과 낙동강이 함께 만나는 함안의 너른 들픈은 예전에 모두 습지였다. 법수면 악양에는 사계절 생태가 살아있는 둑방을 이용한 관광지가 조성돼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둑을 쌓아 농사를 짓고 있으며 현재는 전국에서 가장 긴 338㎞의 둑이 있다.
자운영이 피고 갯버들이 싹을 틔우는 봄이 지나면 풍차와 솟대가 있는 둑길에 꽃양귀비가 반긴다. 여름이면 원두막에서 초록색 들판과 한가로운 강물을 바라볼 수 있다.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좋은 둑방은 해마다 5월에 ‘에코싱싱 둑방 마라투어’가 열려 자연과 호흡하는 시간을 갖는다.
악양둑방에는 남강이 동으로 흐르다 바위를 때린 후 북으로 물길을 돌리는 물굽이가 있다. 그 언덕 위에 악양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악양루가 있다. 남강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이 아름다운 데다 중국의 절경인 악양과 같이 둑방과 강물과 들판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악양루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남강을 따라가면 낙동강과 만나는 곳에 합강정사가 있다. 조선인조 때 뛰어난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던 간송당 조임도 선생(1585∼1664)이 기거하면서 학문을 수행하던 곳으로 옛날부터 이름난 시문을 모은 ‘금라전신록’을 편찬한 곳이기도 하다.
합강정으로 나있는 임도를 따라 계속 들어가면 강에서 솟아오르는 일출이 유명한 반구정이 나온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두암공 조방 선생(1557~ 1638)이 난리가 끝난 후 낙동강 옆에 세운 것이다.
5. 스토리텔링의 보고 ‘무기연당’
함안군 칠원면 무기리에 있는 무기연당(舞沂蓮塘)은 주재성의 생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연못이다. 주재성은 조선 영조 4년, 1728년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함께 난을 진압한 인물이다. 관군들은 돌아가는 길에 그의 덕을 칭송해 마을 입구에 ‘창의사적비’를 세우고 서당 앞 넓은 마당에 연못을 만들었다.
무기연당에는 스토리가 있다. 1717년 만들어진 무기연당은 처음에는 마당에 연못을 파고 고기를 기르는 곳이었다. 연못 안에 석가산(石假山)을 쌓았는데 이를 양심대(養心臺)라 했다. 그리고 담장을 쌓고 영귀문(詠歸門)이란 문을 내었다.
연못을 보면 네모나게 못을 만들고 그 안의 섬은 동그랗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양심대 아래의 돌에 백세청풍을 새겼다. 이는 오랫동안 부는 맑은 바람은 곧 영원토록 변치 않는 맑고 높은 선비가 지닌 절개를 상징하니 다시 한번 선비의 철학을 다짐한 것이다.
무기연당 안에는 풍욕루와 하환정이 있다. 풍욕루의 풍욕은 초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굴원(屈原)과 관련한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풍욕은 곧 바람에 몸을 씻는다는 것이다. 풍욕루는 이미 몸을 씻은 굴원에 비유하며 바람에 몸을 씻어 선비의 고고함을 지키겠다는 선비정신이 담겨있다. 풍욕루 아래에 탁영석 계단이 있다. 탁영(濯纓)은 갓끈을 씻는다는 뜻이다. 무기연당의 물에 갓끈을 씻겠다는 것은 곧 그 물이 맑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하환정은 후한 광무제의 죽마고우인 엄광의 고사와 관련이 있다. 엄광은 후한을 일으켜 천하를 통일한 광무제가 가장 꺼리던 인물이었다. 동문수학할 당시 학식이 그를 따르지 못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높은 이상과 두터운 덕을 지닌 엄광을 곁에 두고자 광무제는 여러 번 그를 청하지만 응하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간청하자 결국 궁궐에 들게 되었다. 궁에 들 때 문무백관이 모두 뜰 아래에 엎드려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고개도 숙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대전까지 올라가 광무제에게 ‘문숙’하고 이름을 부르며 하대했다. 신하들이 어쩔 줄 모르자 광무제가 오랜만에 친구와 회포를 풀려고 하니 모두 물러가라고 한 후 밤늦게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엄광이 광무제의 배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자고 있었다고 한다.
6. 함안의 명물, 눈과 입이 즐거운 컬러 수박
함안군은 수박으로 유명하다. 여름철 한입 베어 물면 시원함이 가신다. 함안 수박은 200년 전 경남 수박 시배지인 군북면 월촌리 노지에서 시작해 지금에까지 이른다. 함안은 지리적 남강 낙동강변 하천층적토로 기름진 토양과 겨울에 따뜻해서 최적지이다.
컬러 수박은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출하했다. 패션 수박, 흑미수박, 슈퍼골드, 노랑꿀수박 등 총 6품종이다. 5월 상순에서 7월 상순까지 산지 공동선별장을 거쳐 농협유통 등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두 달여간 선보인다.
컬러 수박 중 패션 수박은 검은색 껍질을 가진 씨 없는 수박으로 맛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노란꿀수박은 노랑호피 무늬에 5㎏ 안팎의 중과형 수박이다. 뛰어난 색감으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다고 한다.
슈퍼 골드 수박은 밀도가 높고 당도가 높은 노랑육질의 황육계 수박으로 색다른 맛을 즐기려는 소비자들의 눈을 한층 즐겁게 해준다. 이 밖에도 흑미, 스타일, 흑미플러스 등 개성 넘치는 컬러 수박 품종들도 새로운 것을 찾는 도시소비자들의 오감을 만족 시킬 만하다.
컬러 수박 선호도는 생산량 증대에도 영향을 미쳐 올해에는 총 259호 농가에서 2011년 대비 383%가 증가한 총 2367동 약 7100t의 컬러 수박을 생산하고 있다. 함안군은 매년 여름에 수박축제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남 함안군 - 역사와 문화, 관광이 어우러진 도시 (신택리지, 김정훈, 경향신문)
◆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본관 상주(尙州). 자 경유(景遊). 호 신재(愼齋)·손옹(巽翁)·남고(南皐). 시호 문민(文敏).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漆原)면 출생. 1522년(중종 17) 생원 때 별시문과(別試文科) 을과에 급제한 뒤 정자(正字)가 되고, 검열(檢閱)·부수찬(副修撰)을 역임하다 김안로(金安老)의 배척을 받고 강원도도사(江原道都事)에 좌천되었다. 1541년 풍기군수(豊基郡守)로 나가 이듬해 백운동(白雲洞:順興)에 안향(安珦)의 사당 회헌사(晦軒祠)를 세우고, 1543년 주자(朱子)의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를 본받아 사림자제들의 교육기관으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紹修書院)을 세워 서원의 시초를 이루었다. 그리고 서원을 통하여 사림을 교육하고 또한 사림의 중심기구로 삼아 향촌의 풍속을 교화하려는 목적으로, 재정을 확보하고 서원에서 유생들과 강론(講論)하는 등 열성을 보였다.
처음에는 사림의 호응을 받지 못하다가 이황의 건의로 소수서원의 사액을 받고 공인된 교육기관이 된 뒤 풍기사림의 중심기구로 자리잡았다. 그 후 이를 모방한 서원들이 각지에 건립되었다. 직제학·도승지·대사성·호조참판을 역임하고, 1551년 황해도관찰사 때 해주(海州)에 수양서원(首陽書院:文憲書院)을 세워 최충(崔冲)을 제향하였다. 재차 대사성·성균관동지사(成均館同知事)를 지내고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事)에 이르렀다.
〈도동곡(道東曲)〉 〈육현가(六賢歌)〉 〈엄연곡(儼然曲)〉 〈태평곡(太平曲)〉 등 장가(長歌)와 〈군자가(君子歌)〉 등 단가 8수가 전한다. 청백리에 녹선되고,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칠원의 덕연서원(德淵書院)에 배향되고, 백운동 서원에도 배향되었다. 저서에 《무릉잡고(武陵雜稿)》, 편서로는 《죽계지(竹溪誌)》 《동국명신언행록(東國名臣言行錄)》 《심도이훈(心圖彛訓)》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주세붕 [周世鵬] (두산백과)
◆ 무기연당(舞沂蓮塘)
경남 함안군 칠원읍 무기1길 33
주재성의 생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연못이다. 함안군 칠원읍 무기리 966번지 내 위치한 무기연당은 주재성의 생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연못이다. 주재성은 조선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함께 난을 진압한 인물이다. 관군들은 돌아가는 길에 그의 덕을 칭송하여 마을 입구에 '창의사적비(倡義事蹟碑)'를 세우고 서당 앞 넓은 마당에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고 산의 모양을 본떠 놓았다. 이후 주재성은 연못의 이름을 '국담(菊潭)'이라 하고 호를 삼았으며, 연못가의 서당에서 학문에 전념하며 유유자적하였다.
연못의 서북쪽에는 오래된 정침 한 채가 남아 있으나, 많은 부분을 고쳐서 그 가치를 잃고 말았다. 연못가에는 후대에 풍욕루(風浴樓)와 하환정(何換亭)을 지었고, 최근에 충효사(忠孝祠)를 지었다. 연못 주위에는 담장을 쌓고 일각문을 내어 영귀문(詠歸門)이라 하였다.
비교적 원래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연못으로, 정원문화(庭園文化) 연구에 좋은 자료이기도 한 이 곳은 1984년 12월 24일 중요민속자료 제208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 함안군청 – 관광안내
무기연당
◆ 무기연당과 무진정을 견주면
성산산성 내려오는 길 끝에는 무진정이 달려 있다. 이날 처음 살펴본 무기연당은 정원이고 무진정은 자연을 품은 말 그대로 정자다. 무기연당은 자기 사는 집 앞에 연못을 꾸며 놓고 누리는 형국이라면 무진정은 주변을 휘감아 흐르는 하천 물줄기로 조성한 연못을 언덕에 올라 눈에 담는 품새라 할 수 있다.
느낌을 말하자면 무기연당은 단정하게 안으로 모이는 듯하고 무진정은 활기차게 밖으로 뻗어나가는 기색이다. 또 무기연당은 인공 한가운데 조그맣게 구현한 자연이고 무진정은 넓게 트인 자연을 잘라내어 감싸안은 인공이다.
부자쌍절각과 충노대갑지비는 무진정 한쪽 귀퉁이에 있다. 아버지는 왜란을 맞아 조상을 위하여 목숨을 버렸고 아들은 호란을 당해 임금을 위하여 싸우다 목숨을 잃어서 부자쌍절이 되었다. 옆에 놓인 노비 이야기는 한결 구슬프다. 아들이 전쟁터에서 죽자 모시던 노비는 천리 먼 길을 돌아와 집안에 부고를 아뢰고는 물가 낭떠러지에 올라 스스로 몸을 던졌다. 주인을 살리지도 못했고 시신을 찾아 모시지도 못했으니 죽어 마땅하다는 이유였다. 빗돌을 세운 까닭은 단지 이를 기리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다른 의도도 거기에 깔려 있을까.
경남도민일보, [우리 고장 역사문화탐방] (12) 함안에서 발췌
◆ 고려동(高麗洞) 유적지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2길 53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킨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선생이 거처를 정한 곳이다.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580번지 내 위치한 고려동유적지는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곳이다.
이오는 이 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을 하였다. 그는 아들에게도 조선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과 자기는 죽은 뒤라도 자신의 신주(神主)를 이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그의 유언을 받든 후손들은 19대 600여 년에 이르는 동안 이 곳을 떠나지 않았고, 이에 고려동(高麗洞)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 오고 있다.
현재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비, 고려동담장, 고려종택, 고려전답, 자미단(紫薇壇), 고려전답 99,000㎡, 자미정(紫薇亭), 율간정(栗澗亭), 복정(鰒亭)등이 있다. 후손들이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벼슬길에 나아가기 보다는 자녀의 교육에 전념함으로써 학덕과 절의로 이름있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이 곳을 1983년 8월 2일 기념물 제56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 : 함안군청 – 관광안내
◆ 무진정(無盡亭)
경남 함안군 함안면 괴산4길 25
조삼선생 호를 따라 무진정이라 명명하였다. 무진정은 조삼(趙參)선생께서 후진양성과 남은 여생을 보내시기 위하여 함안면 괴산리 지금의 자리에 직접 지으신 정자로서 자신의 호를 따라 무진정(無盡亭)이라 명명하였다.
무진 조삼선생은 1473년(성종 4년)에 태어나시어 성종 20년(1489)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여 함양·창원·대구·성주·상주의 부사와 목사를 역임하시고, 내직으로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 겸 춘추관(春秋館) 편수관(編修官)을 지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의 가운데 칸에는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이다.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1976년 12월 20일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출처 : 함안군청 – 관광안내
◇ 함안여행-깊어가는 겨울 속에서 함안 무진정(無盡亭)의
품은 따뜻하다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자 사월초파일 여름밤을 뜨겁게 달굴 함안 낙화놀이와 무진정을 소개하는 관광안내도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벌써 겨울 너머 농익은 봄이 기다려집니다. 안내판을 지나 계단을 오릅니다. 마치 속세를 벗어나 신선의 세계로 접어드는 기분입니다.
계단에 올라서자 해를 품은 연못이 와락 안깁니다. 연못 안에는 콘크리트 다리로 연결된 세 개의 섬이 있습니다. 가장자리에 얼었던 얼음이 햇볕에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어디로 걸어도 넉넉한 풍광이 밀려옵니다. 겨울을 잊은 대나무가 바람에 사각사각 장단을 맞춥니다.
나무테크로 만든 산책로를 따라 연못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섭니다. 살랑살랑 햇살이 동행합니다. 연못으로 향하던 걸음은 무진정, 정자로 옮겼습니다. 정자로 향하는 주위로 배롱나무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밟힙니다. 여름이면 배롱나무와 어우러진 연못 풍경이 더욱더 싱그러울 듯합니다.
동정문(動靜門)을 지나 들어서자 햇살은 폭포처럼 쏟아집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중앙의 한 칸을 온돌방으로 꾸며놓은 팔작지붕의 무진정(無盡亭)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정자는 조선 시대 문신 무진(無盡) 조삼(趙參)이 기거했던 곳에 후손들이 그의 덕을 추모해 이곳 연못가에 정자를 건립하고 그의 호를 따서 무진정이라 했다고 합니다. ‘무진정’이라는 편액과 정기(亭記)는 주세붕 선생이 쓴 글씨라고 합니다. 현재의 건물은 1929년 4월에 중건한 것입니다.
무진정 앞에는 닭의 형상을 한 돌이 마루 올라가는 옆에 있습니다. 마루에 앉자 주위 풍경이 아늑하게 밀려옵니다. 무진정의 뒤쪽 벼랑 아래에는 함안 조씨 문중 재실인 괴산재가 있습니다.
함안 조씨 문중은 조선 시대에만 139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한 집안입니다. 더구나 세조가 조카 단종을 내쫓아 왕위를 찬탈하자 귀향한 생육신 중 한 분인 조려 선생도 있습니다.
무진 조삼 선생은 무오사화를 일으킨 유자광을 벌하자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동료들이 을사사화로 목숨을 잃자 벼슬을 버리고 귀향을 했습니다. ‘나 돌아가련다’로 시작하는 중국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떠오릅니다.
정자 곁으로 굽이굽이 담장을 넘어 하늘로 올라가는 소나무가 보입니다. 용트림하듯 하늘로 휘감아 올라가는 모양새가 당당합니다.
정자를 내려와 연못 주위를 거닙니다. 연못에 비친 나무와 영송루가 데칼코마니처럼 한 폭의 그림을 만듭니다.
연못가에는 연못을 향해 기다란 줄기를 뻗은 나무가 있어 고개를 숙이고 지났습니다. 살아가면서 고개 숙일 일이 어찌 이번뿐이겠습니까. 아마도 나무는 내게 더욱 겸손하라 일러줍니다.
긴 의자에 앉아 가져간 캔커피를 마십니다. 야외 카페에 온 듯 풍경의 넉넉한 대접을 받습니다. 사방이 고요하기 그지없습니다. 푸른 연못은 바다처럼 깊고 넓게 다가옵니다.
다시 원래 걸음을 시작했던 초입으로 향하자 부자쌍절각이 나옵니다. 부자쌍절각은 어계 조려 선생의 6세손이자 이곳 정자의 주인 무진 조삼 선생의 증손인 조준남과 그의 아들 조계선의 효와 충을 기려 세운 전각입니다. 부자쌍절각 옆에는 동북아국제전쟁(정유재란) 때 전시한 주인을 따라 죽은 노비 대갑을 기린 충노대갑지비(忠奴大甲之碑)가 서 있습니다.
연못을 한 바퀴 돌아 원래 시작했던 위치에 서자 연못 한가운데 섬인 영송루(迎送樓)로 이제 걸음을 옮겼습니다. 콘크리트 기둥을 세워 만든 육모 지붕의 정자 영송루가 왕버드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봄빛으로 물들 무렵이면 다시 찾을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깊어가는 겨울 속에서 무진정의 품은 따뜻합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습니다.
출처 : 시리즈구석구석- 에나 경남이야기
무진정(無盡亭)
◆ 어계(漁溪) 조려(趙旅)
단종을 위하여 수절한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주옹(主翁), 호는 어계(漁溪). 경상남도 함안 출신. 할아버지는 고려 공조전서(工曹典書) 조열(趙悅)이고, 아버지는 증사복시정(贈司僕寺正) 조안(趙安)이다.
1453년(단종 1) 성균관진사가 되어 당시의 사림 사이에 명망이 높았으나, 1455년 단종이 세조에게 선위(禪位)하자 성균관에 있다가 함안으로 돌아와서 서산(西山) 아래에 살았는데, 이 서산을 후세 사람들이 백이산(伯夷山)이라고 불렀다.
그는 벼슬을 하지 않고, 다만 시냇가에서 낚시질로 여생을 보냈기 때문에 스스로 어계라 칭호하였다. 1698년(숙종 24)에 노산군(魯山君)이 단종으로 추복(追復)되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703년 경상도 유생 곽억령(郭億齡) 등이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 사육신의 예에 따라 생육신인 조려도 사당을 세워 제향하도록 건의하였던바, 1706년에 그대로 시행되었다.
고향인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는 그를 비롯하여 김시습(金時習)·이맹전(李孟專)·원호(元昊)·남효온(南孝溫)·성담수(成聃壽) 등이 제향되어 있다. 1781년(정조 5)에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어계집(漁溪集)』이 남아 있다. 시호는 정절(貞節)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려 [趙旅]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서산서원(西山書院)
경남 함안군 군북면 사군로 1235
서산서원은 숙종 계미년(1703)에 경상도 유학 곽억령등이 생육신 여섯분의 제향의 위하여 창립한 서원이다. 서산서원은 숙종 계미년(1703)에 경상도 유학 곽억령(郭億齡)등이 생육신이신 이맹전(李孟專), 조려(趙旅), 원호(元昊), 김시습(金時習), 남효온(南孝溫) 등의 병향(幷享)이 사육신의 예에 따라 이루어짐이 마땅함을 국왕께 상소하여 윤허를 받고 여섯분의 제향을 위하여 창립한 서원이다.
숙종 계사년(1713)에 국가에서는 제물을 내리고 서산서원의 현판을 내렸으나, 고종 신미년(1871) 서원쳘폐령에 의해 훼철(毁撤)되었다. 그 후 조려선생의 후손들이 1984년에 사우(祠宇), 강당(講堂), 재료(齋寮), 문(門), 원장(垣墻) 등을 빠짐없이 갖추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출처 : 함안군청 – 관광안내
◆ 함안 채미정(采薇亭)
함안 원북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이다. 함안에서 진주로 가는 길목에 있는데 조선 단종 때 생육신 조려(趙旅)선생이 단종폐위에 분개함을 느끼고 조정을 떠나 이곳으로 들어와 여생을 보낸 곳이다. 채미정은 영조11년(1735년)건립하였고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54년 복원하였다. 정자 앞에는 연못을 파고 동쪽은 청풍대라는 언덕이 있는데 "문풍루,聞風樓"라는 육각정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연못이 있고 다리를 건너면 채미정이다. 채미정에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오랫동안 부는 맑은 바람"이라는 내용인것 같다. 함안의 명소 "커피와 소나무"커피숍에서 점심을 먹고 국도를 달리면서 들린 곳이 채미정인데 조선시대 정자문화를 느낄 수 있다.
[출처] 함안 채미정(采薇亭)|작성자 류 병은
채미정
박약회 대구지회 청장년위원회 답심지역 정리
차수 | 지역 | 장 소 | 일 시 |
1 | 청송․안동 | 방호정 - 후송당 - 일송정 - 송소고택 - 사양서원 - 묵계서원, 만휴정 | 2012.03.17(토) |
2 | 영양 | 사빈서원 - 백하구려 -봉감모전석탑- 서석지- 주실마을 호은종택 -석계종택 | 2012.05.19(토) |
3 | 충청도 일대 | 동춘당 고택 - 우암사적공원 - 돈암서원 - 명재고택 - 파평윤씨종학당 | 2012.06.06(수) |
4 | 상주 | 존애원 - 체화당 - 창석사당 - 옥동서원 - 소재종가 - 우복종가 | 2012.08.05(일) |
5 | 구미 | 여헌,야은 묘소 - 창랑고택 - 지주중류비 - 왕산허위선생기념관 | 2012.08.26(일) |
6 | 영천 | 지산종택 - 도잠서원 - 임고서원 - 용계서원 - 은해사 거조암 - 청제비 | 2012.11.11(일) |
7 | 청도 | 남강서원 - 용강서원 - 자계서원 - 탁영묘소 - 청도향교 - 삼족대 | 2013.01.20(일) |
8 | 현풍․의령 | 한훤고택 - 12정려각 - 망우당묘소 -이노정 - 점필재 종택 - 죽유종택 | 2013.03.17(일) |
9 | 달성 | 녹동서원 - 남지장사 - 한천서원 | 2013.04.28(일) |
10 | 안동 하회 | 화천서원 - 옥연정,부용대 - 겸암정 - 양진당 - 충효당 - 겸암묘소 | 2013.05.26(일) |
11 | 전남 강진 | 다산초당 - 백련사 - 해남 녹우당 - 옥천서원 - 김영랑 생가 - 낙안읍성 | 2013.06.06(목) |
12 | 영주․봉화 | 무섬 마을 - 금광리 인동장씨 집성촌 - 영천이씨 집성촌 - 오계서원 - 野翁亭 - 괴헌고택 -덕산고택 만취당 - 두암고택 - 천운정 | 2013.10.06(일) |
13 | 의성 일직 | 오봉종택 - 탑리 5층탑 - 氷溪서원 - 빙산사지 5층 摸塼石塔 - 晩翠堂 - 대산종택 - 정평공 손홍량 유허비 | 2014.03.23(일) |
14 | 칠곡․선산 | 사양정사 - 박곡(이원록)종택 신도비 - 여헌종택 - 쌍암고택 | 2014.05.18(일) |
15 | 여주․용인 | 명성왕후 생가 - 세종대왕 英陵 - 효종 寧陵 - 기천서원 - 구정승골 - 화서 이항로생가 - 정약용 생가 - 정몽주 묘소 -심곡서원 - 조광조 묘소 | 2014.06.06(금) |
16 | 안동 도산 | 퇴계선생 산소 - 수졸당 - 예던길 - 농암종택 - 고산정 - 만산고택 | 2014.09.28.(일) |
17 | 성주 | 한 개마을 - 세종대왕 子 胎室 - 동방사지 7층탑 - 심산기념관 | 2014.11.24.(일) |
18 | 영주․봉화 | 충효당(화산 이장발) - 띠띠물 남양홍씨 집성촌 - 충재 종택 - 바래미 開巖 종택 - 龜l鶴亭 - 유연당 - 三判書故宅 | 2015.03.29.(일) |
19 | 영덕 | 해월종택 - 예주문화회관 - 충효당 - 갈암종택 - 만괴헌 - 갈암고택 - 난고종택 - 경수당 - 무의공 종택 | 2015.05.16(토) |
20 | 경주 | 독락당․계정 -> 옥산서원 - 관가정 - 무첨당 - 서백당 - 용계정 - 입암서원 | 2015.07.26(일) |
21 | 충청 일대 | 맹씨행단 - 외암민속마을․수당 고택 - 추사고택 - 추사묘소 - 화암사 | 2015.11.22(일) |
22 | 밀양 | 혜산서원 - 오연정 - 월연정 - 금시당 - 영남루 - 밀양향교 - 예림서원 | 2016.03.27(일) |
23 | 영주 | 연복군 장말손 종택 - 성오당 이개립 고택 -귀암 황효공 종택, 귀암정 - 금계 황준량 유적(욱양서원, 금양정사, 금선정) | 2016.05.22.(일) |
24 | 문경 | 지취헌 - 고병숙 가옥 - 근암서원 - 칠봉 황시간 종택 - 내화리 3층 석탑 - 약포의 연주패옥혈 - 경송정 - 문경새재 | 2016.07.24(일) |
25 | 김천 | 율수재 - 하로서원 - 방초정 - 섬계서원 - 청암사 - 수도암 | 2016.11.27(일) |
26 | 고령․합천․산청 | 점필재 - 죽유 종택 - 대야성 함벽루 - 미연서원 - 단속사지 동서 3층 석탑, 정당매 - 남명기념관 - 덕천서원 | 2017.03.26(일) |
27 | 동해안 일대 | 해월헌 - 척주동해비 - 죽서루 - 경포대 - 선교장 | 2017.06.06(화) |
28 | 성주 | 육신사 - 가실성당 - 동방사지 7층 석탑 - 한강묘소 - 동강묘소 - 회연서원 | 2017.11.18(토) |
29 | 거창․함안 | 김숙자사당 - 일원정 - 승안사지 - 오담고택 - 남계서원 - 청계서원 - 상림 | 2018.03.24(토) |
30 | 전남 | 귀래정-포충사-경현서원-금안마을 - 나주향교 - 금성관-백호문학관 | 2018.06.06(수) |
31 | 경남 거창 | 건계정 - 사락정 - 동계종택 - 수승대 - 갈천서당 - 모리재 | 2019.03.16(토) |
32 | 경남 함안 | 주세붕 묘 – 무기연당 – 고려동 – 무진정 - 서산서원 | 2019.05.25.(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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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쩌다 보니, 답사를 다녀 온 후에 자료집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자료집 만들고 답사 조직하느라고 노고가 많습니다.
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