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는 줄어들고, 수입농산물의 홍수 속에 국내산 농산물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먹거리 안전’과 생산 농민도, 소비자도 웃을 수 있는 공동체를 위한 장기 연재기고, 1부에 이어 2부를 시작한다.
나는 앞의 글들에서 한국을 먹거리 위험사회로 규정했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먹거리 관련 병리적 현상으로서 먹거리 위험의 증가, 먹거리 양극화 확대, 식량자급률의 급락, 먹거리 가격불안 증가 등을 설명했다.
그런데 이러한 병폐들이 한국 사회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별로 먹거리 위기의 양상이 다양하기는 하지만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본다면 공통적으로 이러한 병리적 현상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푸드의 확산으로 위험한 먹거리가 넘쳐나고, 소득수준에 따라 먹거리의 양극화가 건강의 불평등을 확대시키고 있다. 과거 공급과잉 상태에 있던 식량수급이 지금은 만성적인 공급부족 상태로 바뀌었고, 식량공급의 부족은 식량과 먹거리 가격을 전반적으로 폭등시켜 왔다.
지난 2011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굶주림을 피해 남부에서 이주해온 한 아이가 영양실조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뉴시스
굶주리는 세계, 넘쳐나는 위험한 먹거리
에너지 및 환경문제와 함께 식량·먹거리 위기는 21세기 지구촌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현안문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지구촌의 식량·먹거리 위기를 짧게 요약하면 ‘굶주리는 세계, 위험한 먹거리’로 정리할 수 있다.
지구촌 식량위기는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한다. 흔히 말하는 선진국일수록 식량자급률이 높기 때문에 빈곤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식량위기로 인한 고통이 적다. 혹은 일본, 한국 등과 같이 식량자급률이 극히 낮더라도 돈이 있어서 식량을 수입할 수 있는 나라들은 식량을 수입할 돈마저 부족한 가난한 나라에 비해 그래도 상황이 괜찮은 편이다.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부족해서 필요한 식량을 충분하게 구매할 수 없고, 그나마 돈이 조금 있을 경우에도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 보다는 위험한 글로벌푸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가장 심각한 고통을 받는 것은 극빈층에 해당하는 기아인구이다. 이들은 자신의 생명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식량조차도 구하지 못해 기아와 죽음의 위협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지구촌 기아인구의 문제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최근에 와서 기아인구가 더 늘어나고 있는 사실에서 우리는 식량과 기아문제의 훨씬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UN/FAO)에 의하면 1990년대 초반 전 세계 기아인구는 약 8억 5천만명이었으나 2010년 현재 기아인구는 약 10억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농산물 자유무역을 전 세계로 확장시킨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기아인구는 줄어든 것이 아니라 더욱 늘어났다. 농산물의 자유무역이 이루어지면 식량과 먹거리의 가격은 낮아지고 생산은 늘어나기 때문에 지구촌 기아문제를 감소시킬 것이라던 자본의 주장과는 달리 현실은 정반대의 비참한 결과로 나타났다. 농산물 자유무역을 주장한 사람들이 전 세계를 상대로 혹세무민(惑世誣民)에 해당하는 거짓말을 하면서 한편의 거대한 사기극을 벌인 것이다.
유혈폭동과 막대한 이윤을 동시에 가져온 식량위기
극빈층에 해당하는 기아인구의 증가가 가장 심각하지만 공급부족과 가격폭등으로 인해 서민층의 전반적인 식량·먹거리 위기도 더욱 심각해졌다. 2011년 초에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한 젊은이의 죽음으로부터 촉발된 민중봉기는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로 확산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당시 북아프리카 상황을 심층 취재한 파이낸셜타임즈(FT)의 보도에 의하면 북아프리카 민중봉기의 배경에는 식량위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북아프리카 민중봉기의 밑바탕에는 '빵과 일자리'를 요구하는 민중들의 광범위한 불만이 무능한 독재정권을 몰아내는 정치투쟁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농산물의 자유무역이 전 세계로 확장된 이후 식량 부족은 더욱 극심해졌고, 세계 식량 가격은 유래 없는 폭등 현상이 장기화되었다. 농산물 자유무역이라는 거대한 사기극 때문에 지구촌 곳곳에서 서민층의 고통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식량위기로 인한 고통은 때때로 지구촌 곳곳에서 유혈폭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지난 2007/08년 식량 수출국들의 수출통제 조치와 국제 투기자본들의 식량투기로 식량가격이 치솟았을 때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약 37개 나라에서 식량을 요구하는 민중들이 공권력과 유혈충돌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도 이들 나라에서는 정부가 운영하는 식량 창고를 중무장한 군인과 경찰이 지키고 있는 장면들이 보도되기도 한다.
지난해 남수단 종글레이 지역에서 부족 충돌이 격화되면서 거처를 떠나 세계식량계획(WFP) 센터를 찾은 주민들이 12일(현지시간) 피보르에서 구호식품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뉴시스
이처럼 식량과 먹거리 위기로 인해 지구촌은 점차 굶주리는 세계로 변하고 있지만 누구는 막대한 돈을 벌이고 있다. 대다수의 인류는 식량과 먹거리로 인한 고통이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아주 극소수의 자본은 막대한 이윤을 거두고 있다. 이들 자본에게는 굶주리는 세계가 마치 황금알을 낳는 엘도라도와 같은 상황이다. 지난 2008년 4월 30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내 곡물메이저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의 최고경영자인 패트리셔 워어츠가 “취약한 곡물시장으로 인해 사상 유례없는 기회를 맞았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당시 이 회사는 분기당 순익이 42%나 증가했고, 특히 곡물의 저장-운송-거래 분야의 순익은 무려 7배나 급증한 상황이었다. 최고경영자조차 너무나 놀라운 순익 증가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던 것이다. 비록 완곡하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당시 이 발언은 식량위기와 가격폭등을 대하는 곡물메이저 혹은 초국적 자본의 일반적 시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구촌 인류의 절대 다수는 식량과 먹거리가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지만 이들 자본에게 식량은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욕망의 도구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해 농산물 자유무역을 세계적으로 확장하고, 전 세계에 걸쳐 글로벌푸드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성공한 초국적 자본에게 식량과 먹거리의 위기상황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황금알을 보장해 주는 사상 유래 없는 기회인 것이다. 이들에게 굶주리는 세계는 더 많은 권력과 이윤을 가져다주는 엘도라도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