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폴리틱스>
- 프란스 드 발 (바다출판사, 2004)
사회생활의 원리
- 개체를 알아보는 능력은 위계서열을 비교적 용이하게 만들고, 불확정성을 제거함으로써 누구든 잘 확립된 구조 속에서 자기 위치가 어디쯤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만약 집단이 커진다면 그러한 시스템은 붕괴되고 말 것.
- 삼각관계의 인식도 연합에 바탕을 둔 서열 구조의 전제 조건이다. 삼각관계의 인식이란 자신 이외의 다른 개체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그 자신이 다른 개체들의 조합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사회적 환경에 존재하는 여러 관계들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능력은 대단한 것이다. 3차원적인 집단생활의 초보적 형태는 많은 조류와 포유류에서 발견되지만 영장류는 이 점에서 독보적. 화해, 떼어놓기, 간섭, 고자질, 연합 등은 삼각관계를 인식할 수 없다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
- 어미가 없을 때 두 새끼 관의 관계를 기본 서열, 어미가 있을 때를 의존 서열.
- 서열을 결정짓는 원리는 성별에 따라 다르다. 수놈 사이에서는 연합이 우열을 결정. 수놈은 암놈에 비해 우위에 있는 것은 주로 육체적 우월성에 기인. 한편, 암놈끼리의 서열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보다 성격과 나이다. 암놈들끼리의 충돌은 아주 드문 편이고 그 결과도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러한 충돌이 서열 결정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 침팬지의 2가지 과시 행동. 하나는 귀청이 찢어질 정도이고, 다른 하나는 조용하다. 첫 번째 유형의 과시 행동을 할 때는 상체를 흔들다가 ‘후우후우’하는 소리를 점점 크게 낸다. 그런 다음 경쟁자에게 돌진하고, 땅을 구르며, 마지막에는 큰 소리를 지른다. 이 소리에 동반되는 깊고 리드미컬한 들숨 날숨으로 인해 이런 행동을 ‘헐떡 과시’(ventilating display)라고 부른다. 우열 다투는 과정에서 이런 종류의 과시 행위는 특히 도전자 쪽에서 보이는 특징적인 행동이다. 일단 불안정한 시기가 끝나고 경쟁자가 굴복하면 도전자는 다른 형태의 과시 행위로 전환된다. 그것은 양 입술을 꽉 다문 채 숨을 참는 것이다. 이때 공기의 압력으로 가슴이 넓어지고 양쪽 볼이 부풀어오르는데, 이것을 ‘우쭐 과시’(inflated display)라 부른다. 헐떡 과시가 도발적이며 야심찬 행위라면, 우쭐 과시는 승자의 자신감을 나타내는 수단이다.
- 사람들은 종종 자기가 한 행동의 목적을 나중에 발견할 때가 있다. 사춘기 시절에 우리는 부모에게 반항하고 도전한다. 한참 뒤에야 우리는 그런 행동이 독립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동기를 분명히 의식하고서 부모와 갈등을 벌인 것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정체도 분명치 않은 무의식적 동기였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남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원하고 그걸 위한 전술도 개발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목표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 인간은 말하는 영장류이지만 행동은 침팬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말다툼, 도발적인 언어폭력, 항의와 간섭, 화해의 언사 등 여러 형태로 언어를 활용하지만, 침팬지는 그것들을 언어가 아닌 형태로 표현하는 것뿐이다.
- 동물행동학자들 중에 어떤 이들은 동물들에게 공감이라는 감정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장류 동물들이 협력 관계를 자주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은 그런 거리낌이 없다. 실험 심리학자 닉 험프리는, 사회적 동물의 이기성은 다른 용어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공감이라고 부르는 것에 의해 전형적으로 완화된다. 이때 공감이란 상대를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상대의 목표를 어느 정도 자신의 목표로 인정하는 성향을 말한다.
- 협력은 반드시 공감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특히 어린 수놈들이 사회적 지위에 대한 경쟁을 벌일 때는 더욱더 그렇다. 반면 암놈들이나 새끼들은 공감에 치우친 개입을 보여준다. 집단 전체로 보면 75%에 달한다. 그들은 싸움이 벌어지면 대개 친척이나 사이좋은 친구들의 편을 든다.
-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는 침팬지의 성차에 대한 입장을 수정해갔다. 처음에는 암수의 행동 차이를 본성의 측면에서 보았지만 지금은 그 차이를 암수의 사회적 목표 차이에 근거해서 보려고 한다.
- 암놈 침팬지는 경쟁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먹이가 사방팔방에 흩어져 있는 야생에서 충분한 음식을 얻으려면 이들은 숲 여기지기로 흩어져 다녀야 한다. 또한 암놈들은 자식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관심이 많다.
- 반면 수놈들의 경우 안정은 그들이 1인자 지위에 있을 때만 좋은 것. 수놈들은 위계적으로 꽉 짜여진 집단을 조직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상승시키려는 성향을 진화시켰다.
- 인류학자들의 원시부족 연구에서도, 추장은 통제적 역할에 필적하는 경제적 역할을 수행한다. 추장은 주면서 받는 것이다. 추장은 부유하지만 부족 사람들을 착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대한 축제를 베풀고 가난한 자를 돕는다. 그가 받은 선물이나 물자를 공동체로 되돌리는 것이다. 모든 것을 독점하려는 추장은 위험에 빠지기 마련이다.
- 호혜성의 징후는 침팬지의 행동에 잘 나타난다. 연합, 불간섭 동맹, 성적 흥정, 화해의 강요가 그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호혜성이 긍정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로도 일어난다는 것이다. 상대편에 합류했던 암놈들을 개별적으로 응징하던 니키의 습관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니키는 부정적 행동을 또 다른 부정적 행동으로 되갚았던 것이다.
- 나는 각 개체가 다른 개체들의 싸움에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지를 비교해봄으로써 연합의 양면적 특성을 통계적으로 연구했다. 안정기에는 그 같은 개입이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에서 모두 대칭적이다. 침팬지 집단생활은 권력, 섹스, 애정, 지지, 편협, 적대감이 교환되는 시장과 같다. 그리고 이런 교환은 다음 2가지 기본 원칙에 따라 이뤄진단. 선은 선을 불러온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정치의 기원
- 우리 연구 결과가 모든 침팬지 집단에 다 들어맞는다고 할 수는 없을 것. 사회생활을 지배하는 여러 규칙들은 부분적으로 집단의 생활조건과 역사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 모든 공동체는 자기만의 사회적 전통을 발전시킨다. 하지만 그 같은 다양한 변이는 해당 종의 중심에 특징적인 어떤 기본적인 틀을 두고 이루어진다.
1) 공식화 : 서열은 공식적으로 승인되어야 한다.
2) 영향력 : 개체의 영향력은 반드시 그 개체의 공식 서열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3) 연합 : 다툼에 개입하는 것은 친구나 친지를 돕기 위해서, 혹은 권력상승을 위해서이다.
4) 균형 : 라이벌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놈들은 강한 사회적 연대를 형성한다.
5) 안정 : 암놈들 사이의 관계는 수놈들에 비해 덜 계층적이며 훨씬 안정적이다.
6) 교환 : 침팬지들은 선물이나 재화보다 사회적 호의를 교환한다. 그들의 지원은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리더에게 집중되고, 이 리더는 이런 기득권을 사용하여 사회적 안전을 제공한다.
7) 술수 : 침팬지는 영민한 모사꾼.
8) 합리적 전략 : 지배 전략을 미리 기획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9) 특권
- 우리의 정치적 활동은 인간과 가까운 친척과 공유하는 진화적 유산의 일부처럼 여겨진다. 아넴에서 연구를 통해 정치의 기원이 인류의 역사보다 더 오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