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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시방의 창립멤버의 한 사람인 장종식 박사의 글 입니다. 문화 논쟁에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올립니다.
글이 길기 때문에 쉬엄 쉬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배워서 남 주나요?
서구 유럽에서 문화(culture)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대략 15세기라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에 ‘문화’라는 단어는 인간들과 관련지어 사용된 것이 아니라 ‘곡식을 재배하거나 가축을 기르는 것’을 암시하는 ‘재배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cultivate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문화’라는 단어는 '농업‘이라는 단어와 함께 농사짓는 것과 관련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16세기에 들어와서 ’문화‘라는 단어는 식물이나 동물 등을 ’사육한다‘ 라든지 ’재배한다‘는 의미와 구별하여 인간정신과 관련되어서 사용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문화‘라는 단어는 ’인간들의 고양된 정신이나 태도‘를 의미하는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16세기에 ’인간들의 고상한 정신이나 태도‘라는 의미를 지닌 ’문화‘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공동체나 민족들만 좀 더 높은 수준의 문화 혹은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고 그것을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미 16세기에 서구 백인중심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18세기에 이르면 16세기에서 보인 문화의 계급화가 좀 더 구체적으로 심화되기 시작한다. 특히 18세기 말에 등장한 낭만주의는 계몽주의의 이성중심의 한계에서 상상력을 더 중시하는 사조가 등장하면서 문화는 예술과 깊은 관련을 맺게 된다. 그 당시 영국은 자본주의의 진보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랐기 때문에 ‘근대성의 징후’ 즉 사회의 분화가 이미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크리스 젠크스 (Chris Jenks)가 언급한 것처럼 그와 같은 맥락에서 ‘문화’라는 영역이 사회로부터 분화되면서 문화에 대한 전문가들이 등장하여 주로 예술분야를 중심으로 ‘인간이 이룩한 최상의 가치’를 발전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그러한 고유한 우월성은 모든 인간들에게 그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인종들이나 계급들에게만 그러한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고 향유할 수 있는 재능이나 능력이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편견적인 인종주의나 계급주의는 레이몬드 윌리엄스 (Reymond Williams)의 주장처럼 18세기에 문화가 유럽의 부유한 계급만이 높은 수준의 세련된 문화를 열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계급적 함의’를 띠게 되었다. 따라서 18세기에 문화에 대한 이해는 주로 유럽의 엘리트들이 추구하는 예술과 관련되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문화의 계급성은 문화를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로 대별하여 주로 엘리트들이 향유하고 있는 고급문화를 일반인들에게 계몽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20세기 들어와서 문화개념은 19세기의 문화개념 보다 세분화되어 문명과 문화 사이를 구별 짖고 '문명' (civilization)은 양적이고 수단적인 차원에서 발전의 의미로 사용된 반면에 문화는 인간의 정신의 함양이라는 일종의 질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그래서 인간의 원래의 목적을 지향하는 ‘목적론적인 가치’로 규정하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20세기 들어와서 문화의 세분화는 18세기의 문화의 계급화를 극복하면서 다원적인 차원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어갔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고급문화 중심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던 문화개념은 노동계급이나 하층 중간 계급들의 소위 ‘대중문화’ (mass culture)도 문화의 범주에 포함되게 되었다.
이 같은 대중문화의 확산은 바로 영화, 텔레비전, 스포츠, 대중음악 그리고 신문 등의 대중매체들 발달과 함께 이루어졌다. 사실은 대중매체들은 상업적인 이익들을 극대화해 가는 과정에서 노동계급이나 하층 중간계급들의 구미에 맞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하면서 자연스럽게 대중들의 문화들 (cultures of the mass)을 발굴하여 다시 ‘대중화’하게 되었다. 이런 면에서 프랑크푸르트 학파인 아도르노 (Adorno) 같은 학자의 주장처럼 매체들이 농촌 총각들의 문화나 도시의 청년 문화 등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표준화 시키면서 ‘유사 대중문화’를 창조함으로써 대중매체들이나 문화산업은 문화의 다양성을 획일화 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런 획일화는 사실은 대중들을 상업의 이익을 목적으로 그들을 관리하고 통치하는 수단으로 이데올로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대중매체들이 만들어가는 ‘대중문화’는 실제로 개인의 문화적인 다양성을 거세하고 ‘유사 개인화’ (pseudo-individualization)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런 대중문화의 획일화 경향은 학자들로 하여금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간극을 다시 구별하여 ‘대중들의 문화’(popular culture) (여기서 대중문화라는 개념은 어떤 특정 계급의 문화라는 의미가 아니라 가장 많이 보편화 되어 있는 문화라는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의 대중화를 경계하게 되었다. 예컨대 1980년대 한국의 세종문화 회관에는 오페라라든지 오케스트라 외에 다른 대중음악 가수들의 공연이 허락되지 않았던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있다.
그런데 ‘문화’라는 개념이 다른 학문 특히 문화 인류학이나 사회학 등의 학문에서 좀 더 의미가 확장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민족 내에서 사람들 사이에 의미를 함께 공유하는 모든 것’을 문화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문화는 일종의 사회적 실천의 영역으로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면 언어는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 사회적 실천의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하게 만들어주는 문화의 중요한 요소이다. 언어뿐만 아니라 태극기 의례형식이나 관습의 예절 등의 상징들도 인간 개인들의 사이에 공통적인 소통을 하게 만들고 의미를 교환하게 만들어가는 사회 실천적 요소로서 문화의 한 부분이다. 이렇게 상징들이나 언어 그리고 의례 의식 등의 실천을 통해 국민들 사이에서 ‘의미의 공유’를 가능케 하고 그것은 결국 ‘우리 정체성’ (we- identity)각인하게 한다.
예를 들면 중국인 미국인 그리고 한국인이 먼 항해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3개월 동안 망망대해에서 배 한 척 보지 못하고 외로움과 고독에 지쳐있을 때 저 멀리서 미국 성조기를 나부끼면서 가다오는 배 한적을 보았을 때 중국사람 미국사람 그리고 한국 사람들의 반응이 똑 같았을까? 거의 틀림없이 미국사람은 휘날리는 성조기를 보면서 소리 지르며 울며 환호할 것이다. 그것은 미국사람에게 있어 성조기는 단지 신호등과 같은 표시 (sign)가 아니라 바로 오랜 역사적 경험 속에서 함께 고통을 감수하고 함께 기쁨을 공유해 온 ‘의미의 공유체’이기 때문인 것이다.
성조기는 미국인에게 있어서 단순한 헝겊 조각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이 이입되어 있는 살아있는 유기체의 한 면인 것이다. 따라서 성조기 앞에 미국국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릴 수 있고 그것을 근거로 살고 죽을 수 있는 구체적인 ‘삶의 실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의 ‘문화적 상징들' (symbols)이 만들어가는 ’의미의 공유‘이고 ’집단 의식의 공유‘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한국인들이 식사를 할 때 보편적으로 나이가 많으신 윗 분들이 숟가락을 들 때까지 기다리는 습관이 있다. 이것은 오랜 역사적 경험 속에서 한국인들 가슴 깊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의미의 공유‘이자 ’의미의 실천‘이다. 따라서 이것의 실천을 깬다는 것은 ’의미의 역행‘이며 한국인의 ’공통의 가치‘에 반기를 드는 이단자들이다. 따라서 이 이단자들은 ’우리‘ (we)에서 ’낮선 타자‘ (strange other)로 취급되는 것을 정당화하게 된다.
한국의 경우 중요한 행사 때 예를 들면 결혼식 때 자리를 배정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자. 친지들과 친척 가운데 중요한 분들이나 연세가 드신 분들을 위한 좌석이 이미 배치가 되거나 아니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그분들이 앉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한다. 이것이 한국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의미의 실천이다. 말하자면 이와 같은 거룩한 예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앉은 좌석을 통해 ‘힘의 역학’관계가 드러나고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예의범절로 ‘의미를 공유’하고 있다. 말하자면 한 공동체의 문화나 어떤 민족들이 공유하는 문화는 한 개인이 거슬르기 어려운 구조적인 힘에 의한 ‘집단 실천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여기서 ‘의미의 공유’로서의 문화는 자연스럽게 ‘구조주의’ (structuralism)와 만나게 된다.
구조주의는 언어학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일반화되기 시작했는데 구조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린 스위스 출신 소쉬르 (Ferdinand De Saussure)는 언어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그 하나는 ‘랑그‘ (langue)라 이름 붙여진 것인데 이것은 그 사회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파롤 (parole)'에 대한 문법과 같은 역할을 한다. 반면에 ‘파롤’은 ‘랑그’가 제공하는 문법과 사회전체가 공유하는 의미 범주 내에서 개인들의 의사를 교환하고 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일 ‘랑그’의 구조적인 공유성을 벗어난 ‘파롤’은 ‘예의에 벗어난’ 혹은 ‘나쁜 사람’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떤 공동체내에서 ‘의미를 공유’하고 그것에 따라 ‘의미를 실천’한다는 것은 결국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 내의 개인들은 결국 구조가 만들어내는 일정한 정체성과 의미를 내재화하고 그것을 재생산하면서 그것을 ‘우리들의 문화’ (Our culture)로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자 알퇴tm르(L. Althussur)는 ‘개인들의 정체성 혹은 주체성을 국가가 만들어가는 이데올로기 장치들 (정당, 학교공부, 종교 등)에 의해서 호명을 받는다’고 한 주장은 개인들의 정체성이 형성되는데 외부의 구조 즉 국가나 공동체가 생산해 내는 ‘이데올로기’나 ‘의미 생산’ (signifying production)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연세가 많은 분들이나 존경하는 분들의 이름 뒤에 ‘님’ 혹은 ‘sir' 등을 붙이게 된다. 이것은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일종의 소쉬르의 표현에 따르면 ’랑그‘ 즉 ’사회의 문법‘이다. 사람들은 이 문법을 공유하고 재생산함으로써 ’의미를 교환‘하게 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그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이 선명성을 드러내게 된다.
푸코 (Michel Foucault)에 의하면 유럽에서 18세기 이전에는 사회적인 문법이나 가치를 거부하는 자들을 본보기로 단두대 처형을 했지만 18세기에는 그들을 교도소로 보내 그 사회의 가치나 사회적 문법 등에 순응할 수 있도록 훈육하게 위해 감옥제도가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문화의 동질성내에는 자연으로부터 혹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서 생긴 문화의 동질성도 있지만 내부의 ’힘의 역학관계‘속에서 지배자들의 ’지배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위로부터 강요된 ’동질 문화‘도 내포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일본 식민주의자들의 침략전쟁에 강제로 동원된 위안부들 가운데 전쟁이 끝나고 돌아올 때 현해탄을 건너다 바다에 몸을 던져 죽은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위안부로 끌려간 것 자체가 전혀 개인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그 당시 한국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가부장적인 문화의 영향 탓이었다.
즉 어떤 이유든지 처녀가 결혼하지 않고 순결을 잃으면 안 된다는 정조관념 등 여성들이 한 남자에 종속되어 남성들 중심의 가치관에 경도된 ’사회문법‘ 혹은 ’의미의 공유‘가 총칼 앞에 몸과 정신을 송두리째 ’강간‘당한 위안부들이 ’순결의 문법‘이 사회화되어 있는 조선 땅에 다시 들어온다는 것은 곧 ’사회적 죽음‘이기 때문에 그들은 ’생물학적 죽음‘을 통해 조선사회가 만든 ’의미의 실천‘에 복무했던 것이다.
현대에 와서 집단문화의 재생산은 주로 대중 매체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때 중앙청에 모인 숫자가 100만에서 200만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2002년 세계축구 올림픽이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했는데 그 때 중앙청에 자발적으로 모인 숫자가 400만이나 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한국에 유래가 없는 이런 사건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그것은 대형 평면 텔레비전이었다. 한국사회 내부에는 다양한 시각과 차이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문화상품 그리고 기술이 어우러져 만든 대형화면은 그 평면화면 속에 가치들을 서열화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가치와 사회문법을 주조한다. 따라서 평면 텔레비전은 축구 올림픽을 통해 집단화된 한국인으로 호명하며 휘날리는 태극기 앞에서 모든 시각의 차이를 잃어버린 채 '우리는 하나‘라고 눈물을 흘리며 외쳐대는 모습은 어떤 학자의 표현처럼 ’집단의 광기‘를 연상하게 만들어갔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농촌문화라는 것이 정형화된 형태로 남아 있었다. 농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농촌이라는 여건과 농사를 생활 매개로한 독특한 농촌의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그런데 경제적인 여건의 발전과 함께 농촌의 도시화는 정형화되어 있던 기존의 농촌문화를 변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요인은 대중매체들 특히 컬러텔레비전의 대중화는 한국의 모든 지역의 독특한 문화들을 동질화된 문화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방송들이 상업적인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소위 매체들이 위로부터 발굴하여 프로그램화한 ‘대중문화’들을 미적 감각을 자극하면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수용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문화가 상품과 결합하여 일종의 ‘문화자본’을 만들어간다. 따라서 국민의 문화는 대중매체들이 프로그램화하여 전파한 문화를 자연스럽게 수용하면서 그것에 근거한 정체성 혹은 주체성의 내면화가 이뤄지게 된다.
현대 미국사회 내에 보이지 않는 백인중심 인종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이민법이나 기타 다른 인종차별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다양한 이념들에 의해서 미국 원주민들이나 다른 유색인종들을 타자화하면서 백인 중심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미국의 대표적인 가치로 동일화하게 된다. 따라서 미국인들의 정체성은 인디언들이나 흑인 그리고 유색인들을 이등 국민 혹은 이방자로 규정하면서 자연스럽게 ‘백인 중심주의’를 미국화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레인보우나 세세미 스트리트 같은 어린이들을 위한 연속극이나 영화들을 보자.
비록 여러 색깔을 지닌 아이들을 평등한 주인공들로 설정했다 하더라도 이 영화들이 남미나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에 수출되어 그 나라의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볼 때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바로 같은 유색인종의 어린이가 아니라 백인 아이들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백인들의 문화는 고급문화이고 선진문화라고 배워왔고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서 그렇게 오랫동안 학습 받아왔기 때문에 비 서구 아이들의 눈에는 백인 아이들이 우월하고 선진적인 문화를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특히 비 서구 아이들에게도 오랫동안 서구 백인들의 중심된 제국주의의 역사를 직, 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더욱 백색문화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중매체들 특히 헐리우드 영화가 만들어내는 ‘평화’나 ‘평등’ 혹은 ‘권선징악’과 같은 논리들은 사실은 보이지 않는 백인문화를 보편화 시키는 일종의 문화권력을 담지하고 있다.
헐리우드의 ‘문화자본’은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보면 ‘백인문화’의 우월성을 ‘문화 상품’들을 통해서 생성해 내고 재생산하게 된다.
1950년대에 영국 버밍엄 대학을 중심으로 리차트 호가트 (Richard Hogart)그리고 나중에 스트워트 홀 (Stuart Hall) 등 저명한 학자들을 합세하면서 형성되었던 ‘문화연구’( cultural studies)는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즉 문화연구는 문화의 계급성과 문화의 엘리트주의를 비판하면서 소위 ‘문화의 일상화’에 주목하고 있다. ‘문화의 일상화’란 문화가 예술의 심미성 같은 고상함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취양 취미 생활 습관 등과 관련된 ‘평범성’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는 일상화에서 일어나는 관계성 즉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 자본가와 노동자 정치인과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벌어진 ’힘‘의 관계 그리고 구조적인 역학관계 등이 문화의 표상 속에 깊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문화론자들이 분석한 문화주의 즉 하나의 독특한 장르로서 심미적이고 고상한 취미로서 문화와는 전혀 다른 접근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따라서 문화자본으로써 영화나 텔레비전은 단순히 심미적인 혹은 고상한 인간의 예술성의 반영이라기보다는 누군가로부터 ’권력‘을 탈취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권력을 집중시켜줄 수도 있는 즉 문화는 곧 권력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문화가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어떻게 발전해 왔고 한 국가에 있어서 국민들의 정체성이 문화와 깊은 관련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문화는 그 사회 내에서 다양한 차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만들어가는 다양한 형태의 문법과 상징들을 동원하여 하나의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국민들 사이에 ‘의미를 공유’게 만들어 가게 된다. 이러한 경험들이 축척되면 ‘한국인의 의식’되고 그리고 ‘미국인의 의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따라서 한인 이민자들이 미국에 와서 산다는 것은 결국 두 개의 문화가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두 개의 문화가 만나는 현상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2 가지 이론이 있다. 그 하나는 두 개의 문화가 마치 여러 가지 색종이들을 모아놓은 혹은 여러 가지 색깔 있는 염주 알을 한 줄에 꿰어 놓은 것처럼 문화 간의 만남을 이해하는 이론인데 이와 같은 문화이해를 나는 ‘정태적인’ 문화 이해라고 부르고자 한다.
말하자면 이 같은 문화이해는 구조-기능적인 사회이론에 기인하고 있다고 하겠다. 사회 구성원은 마치 시계의 부속품처럼 그들 사이에 큰 갈등이 없이 주어진 자기 위치나 기능에 충실한 것이 사회에 있어서 발전이고 진보라고 보는 입장이다. 문화들 간의 역할을 ‘구조 기능적’으로 이해는 정태적인 문화 이론은 각 문화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역동적 충돌’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정태적인 문화’이해를 호미 바바는 ‘문화적 다양성’ (cultural diversity)라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마치 다양한 문화들이 어떤 특정 문화가 다른 문화들을 지배하지 않고 마치 수평적인 관계에 있는 여러 색깔의 색종이들을 모아 놓은 것 같은 정태적인 상태를 말한다. 여러 색깔로 구성된 무지개는 너무 아름답다. 다양한 색깔들로 구성되어 있는 색종이의 조화는 환상적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오랫동안 갈등과 모순의 반복 속에서 형성된 문화들 간의 만남을 색종론이나 무지개 색깔론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문화의 정태적인 이해는 마치 미국 백인 문화 흑인 문화 그리고 한국의 문화 등 다양한 문화들이 모자익 무늬처럼 혹은 염주 알처럼 수평적으로 공존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논리는 이미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지배와 종속’이라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대단히 현상적인 이데올로기 논리이다.
문화와 문화가 만난다는 것은 인간들의 삶의 집단성과 만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집단들 사이에 힘의 역학관계가 존재하듯이 그 문화들 사이에는 ‘지배-피지배’관계가 작동되고 있다. 따라서 문화와 문화가 만난다는 것은 하나의 ‘충돌’을 낳게 된다. 미국의 문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앵글로 중심 미국문화 (Anglo-centered American culture) 속에 한국인들이나 다른 소수인들은 자기들의 문화를 가지고 수평적인 공존의 관계 맺음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하위문화’ (sub-culture)로 '환영받지 못한 손님‘으로 ’기생‘하는 형태로 공존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미국식 다문화 (American-styled multiculture)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문화 연구가 호미바바 (Homi Bhabha)는 이러한 형태의 문화상황을 ‘문화의 차이’ (cultural difference)라고 명명했는데 그것은 결국 문화들 사이에 위계성과 서열화를 이루면서 하위문화들은 백인 지배문화에 대해서 ‘종속’과 ‘저항’이 동시에 일어나는 일종의 ‘애매모한 관계’ (ambiguous relation)를 형성하게 된다. 말하자면 하위문화들은 한편으로는 지배문화를 선호하여 ‘종속화’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생존전략’의 일환이다. 백인들의 문화 속에서 그들의 고급문화와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화시켜 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래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그들의 삶의 스타일이나 음식 등을 모방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자기 문화들을 ‘차별화 시키는 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인 과거의 삶을 거세당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의 과거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과 동일시한다. 따라서 백인들의 지배문화를 모방하는 것을 거부하고 과거의 삶을 규정해 왔던 ‘충’, ‘효’ 혹은 ‘선비정신’ 등의 뚜렷한 ‘토착적인 문화’ (native culture)를 자신의 정체성과 일치시킨다. 따라서 이민자들이 삶의 형태가 한국에서 보다 더 ‘보수적인 경향성’을 띠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이민자들의 여건 즉 영어를 말하는 정도 직업의 차이 등에 따라서 대단히 복잡성을 띠는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두 가지 속성 즉 ‘종속’과 ‘저항’의 이중적 경향은 이민자들로 하여금 ‘분열적인 정체성’ (spilt identity)을 경험하게 된다.
첫댓글 레이먼드 윌리암스는 맑스주의적/ 페미니즘적 접근을 취했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는 문화가 그 의미를 둘러싼 경쟁과 갈등이 상존함과 동시에사회를 통합하는데에도 기여한다고도 했었지만 그는 교차하는 다수의 문화들 - 특히 계급, 인종, 성, 민족의 문화들은 전통적인 계급정치의 보조물로 간주했던 것 같습니다. 문화적 다양성이 문화적 헤게모니- 지배와 피지배- 를 은폐할려는 위장술일 수도 있지만 호주의 다문화정치에서의 예처럼 사회적 긴장완화와 통합에 의미있는 기여가 있고 또 그런 혜택을 저희가 충분히 누리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개인 혹은 집단적 생존을 위해서 대개는 문화적 동화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사실은 더 보편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프랑스에서의 부루카 금지가 지배문화의 정치행위가 분명하긴 하지만 그만큼 간격이 큰 이질성을 그 (서구)사회가 담아내기 어려운 부분도 있음을 인정해야 할 듯 합니다. 더욱이 프랑스 자국내에서의 지금과 같은 문화정치가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기에는 글쎄요 전 좀 무리가 있는 듯 합니다. 뭐 좌우지간 프랑스 입장에선 좀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욕먹기 아주 좋은 사례이긴 할 것이구요. 문화연구에 관한 책을 읽다가 좀 난해하여 중단했었는데 독파할 좋은 계기가 되었네요. 장박사님 글 정말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