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오는 이유/김자연
별들이
밤새
깜빡
깜빡
까만 밤을
다
먹어버렸어.
<시 읽기> 아침이 오는 이유/김자연
오랜 시간 시를 공부했지만 아직도 나는 동시童詩를 잘 모른다. 타 장르에 비해 동시에 접근할 기회가 너무 적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쓴다. 동시에 대한 내 소견이 빈약하다 못해 산자락에서 털어온 쥐밤 닷 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쓴다. 먹을 게 없어서 가을이 싫었던 어린 날을 어디에 걸어 놓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동시 한 편이 뿜어내는 숨결에 내 육신이 감겼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번득임과 운율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존재의 새 형상을 포착한다는 시의 이론을 시원하게 벗어버린 동시 한 편. 갈색으로 바뀐 풀섶 안쪽에 어려 이슬처럼 반짝이는 것만을 따로 떼어서 동시라고 명명하지 않았을 언어의 촉수가 단아하다.
이 동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시인의 목소리가 된 것 같다. 아니 내가 동시 한 벌을 입고 시간의 바깥에서 지구를 품고 있는 것 같다. ‘별’과 ‘까만’ 등의 초등학교 1학년도 모를 리 없는 시어와 눈에 익은 형식으로 중년의 피곤한 숨소리를 고르게 펴 주다니.
이오덕 선생이 “어른이 어린애인 척하고 쓴 것이 아닌, 어린이의 눈과 마음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어린이에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동시에 대해 적은 부분이 있는데, 김자연의 동시를 읽으니 선생의 말에 공감이 된다.
시와 동시의 경계가 무색해지는 신선한 충격을 모셔 들이듯 어젯밤 나는 “동시 한 잔”을 쭈욱 들이켰다. 문명사회가 붙여준 이름표들을 죄다 떼버리고 내 마음 속 어딘가에서 반짝일 「아침이 오는 이유」를 아무에게나 들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맙다. 까만 밤을 먹어 버린 별의 혼이여, 인간의 뜻과 관계없는 오랜 숨결이여!
―이병초, 『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 형설출판사, 2021.
첫댓글 밤이 오는 이유
햇살이 낮동안 내내 하얀 빛을 야금야금 다 먹어버렸어.
패러디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