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손자 녀석과 역
사 탐방에 나서는 길은 아주 신나
는 일이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역사’를 진
지하게 묻게 된다.
아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사직공원을,
왼편으로 돌아 오르노라면 우리 겨
레의 고조선 시조(始祖)인 단군왕검
(檀君王儉)을 모신 단군성전(檀君聖殿)
이 있다.
단군성전
옷깃을,
여미고 경건한 마음으로 단군영전
에 고개 숙여 예의를 갖추고 나왔다.
조금,
올라가니 광무 2년(1898년)에 고종
의 어명으로 경희궁 북쪽에 궁술
을 연습하도록 지은 ‘黃鶴亭황학정’
이 나온다.
고종이,
국민들의 심신단련을 위해 궁술을
장려하라는 어명을 내려 궁궐 안에
황학정을 지었고, 이를 일반 백성들
에게 개방하고, 그 곳을 자주 방문하
여 직접 활쏘기를 즐겼다고 한다.
활쏘기를 바라보는 손자
1922년에,
일제가 경희궁을 헐고 다른 건물을 지으면서
황학정을 사직동 지금자리로 옮겼다.
황학정을,
활터 건물의 본보기로 현재까지도 활쏘기 행
사가 열리며 국궁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역사
적인 장소이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양궁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도 그 까닭인지 모르겠다.
正心正己정심정기.
활을 쏠 때,
“몸과 마음을 항상 바르게 하라”
마음이나,
머릿속에 잡생각이 있거나 활 자세나 몸자
세가 바르지 않으면 과녁에는 절대로 맞힐
수 없기 때문이란다.
하긴,
바둑 둘 때도 잡생각이 가득하면 좋은 내용
이 될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삼거리,
인왕산 호랑이상에서 오른편으로 꺾어져
걸어가면 ‘석굴암’ 입구에 다다른다.
계단으로,
숨이 헐레벌떡 차오르고 멎을 듯 가쁜 숨을
토해내고야 바위 사이에 지어진 아주 작은
암자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석굴암’이다.
석굴암에서,
인왕산 주변 풍광을 둘러보며 잠시 땀을 들
인다.
오늘날,
한양도성은 600년 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서 서울의 도심을 품고 있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모양은 여전히 각양각색으로.
불어오다가 그친 바람.
석굴암을,
뒤로 하고 조금 오르니 왼편으로 두 갈래의
밧줄이 놓여있다.
모험을,
즐기는 손자와 밧줄을 잡고 본격적인 유격훈
련에 돌입한다.
크기도,
생김새도 제각각 다른 돌들이 주변의 지형과
빈틈없이 맞아떨어질 찰나, 장희빈 기도처가
눈앞에 나타났다.
장희빈에,
대해선 드라마로 여러 번 방영되어
대부분 알고 있을 터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생채기 난 가슴에 따스한
위로를 얻으려면 기도하는 수밖에
없지.
나뭇잎,
하나 팔랑, 등산화 위로 내려앉는다.
카페 게시글
唯一 .....
손주와 역사탐방[33] 장희빈 기도처
唯 一
추천 0
조회 54
23.12.01 06:50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