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적 꿈꾸는, 이 시대의 울림
해마다 연말이 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리가 있다. 구세군의 빨간색 자선냄비와 거리를 울리는 종소리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 풍경은 어느새 거리 문화로 접어든 지 오래다. 추운 겨울을 보내는 어려운 이웃을 향한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면서 울리는 종소리는 우리의 이웃을 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신호로서 단순한 모금 그 이상의 영향을 준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도시 빈민과 갑작스러운 재난을 당한 1000여 명의 사람을 돕기 위해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솥을 거리에 내걸고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써 붙인 데서 유래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성탄절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을 도울 수 있는 기금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진화됐다는 얘기다.
이런 좋은 문화는 대물림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실은 가난까지도 대물림되고 있는 실정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 불평등과 빈곤이 증가했고, 외환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경제구조가 재편되면서 점차 양극화된 때문이다.
산업·수출, 기업 실적, 주가, 고용, 소득의 양극화로 이어지는 현상은 중산층이 얇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빈곤층이 늘어났으며,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자나 차상위 계층은 연금에서 배제되는 등 공적 연금의 혜택조차 못 입으면서 빈곤이 대물림됐다.
이렇듯 빈곤은 부모의 가난으로 인해 좋은 교육과 좋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이에 더 깊은 빈곤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밟게 된다. 이런 복지 사각지대 위기 가정으로 등장하는 조손가정이 오는 2035년에는 약 32만 1000가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기초생활수급은 자격 규정에 가로막혀, 생계비나 의료서비스 지원에서 배제된 조손가족이 적지 않다. 경제적 지원 정책이 있어도 조부모들은 정보 접근 능력이 떨어져 제도를 모르고 지나치기도 한다. 더군다나 장애를 가진 손자녀를 돌보는 일은 기초 지식이 없고 힘도 약한 조부모로서는 온전히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문제점들은 아이들이 성장할 때까지 장기간 지속된다는 점에서 쉽게 회복하기 힘들고 자칫 대물림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조손가족은 일명 사회적 약자들의 결합인 노인과 아동 빈곤, 정서적 괴리와 세대 갈등 등 다양한 요인이 중첩되는 복합 위험 상황에 내몰려 복지정책의 사각지대로 남게 된다.
그대로 방치하면 미래의 복지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확한 실태 조사가 선행된 뒤, 정부와 기관이 각각 시행 중인 조손가족 지원 정보를 일괄적으로 제공하는 운영기관을 통해 맞춤식 서비스를 구체화하는 지원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재임 시절부터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외된 장애인이나 빈민, 노숙자, 수감 생활을 마친 이들, 난민들과 식사하면서 대화하고 그들의 고통과 희망에 대한 얘기를 경청하는 등 나눔을 실천했다. 불의와 불평등 앞에서는 단호하게 행동하기를 호소한다.
지난해 겨울은 참으로 추웠다.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들의 겨울은 더욱 혹독하기 마련이다. 사랑의 기적은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닌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천이다. 우리 모두 그런 기적에 동참하도록 초대받았다는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