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style="text-align: justify;">  비의 비상 / 허향숙<br> <br> <br>  비의 비상은 떨어짐이다<br>  떨어져<br>  꽃을 피우는 일이다<br> <br>  변곡과 변속의 시간들<br> <br>  여인에서 아내로,<br>  엄마로, 망자의 어미로,<br>  시인으로<br>  설렘과 기쁨과 한탄과 설움과<br>  그리움의 시간들<br> <br>  날아오른 기억보다<br>  엎어진 기억이 더 많은<br> <br>  떨어져 깨지고 나서야 피는<br>  순간의 꽃<br> <br>  비는 견자처럼<br>  아래로 아래로 비상한다<br> <br> <br>  아무 곳에나 심장을 내려놓고/ 허향숙<br> <br> <br>  한 번씩 하얘질 때가 있다<br> <br>  벚꽃 잎 지는 윤중로에서<br>  이팝꽃 뽀얗게 핀 물의 정원에서 <br>  토끼풀 무성한 옥호리 골짜기에서 <br>  포말 하얗게 부서지는 겨울 채석강에서<br>  기약을 수태한 선운사 동백 숲에서<br>  불암산 초입부 찔레꽃 향기 속에서<br>  밤을 밀어내는 박명의 시간 속에서<br>  동숭동 비 오는 거리에서<br> <br>  심장을 놓고 하얘질 때가 있다<br> <br>  손바닥만 한 그늘 그리며 어린 나무<br>  바람 흔들고<br>  꽃놀이 나온 인파 속 비둘기<br>  비굴을 쪼고 있는데<br> <br>  머리 하얘지도록<br>  가슴 하얘지도록<br>  너를 울고 있는 나는<br> <br>  아무 곳에나 심장을 내려놓고<br> <br> <br>  ㅡ시집 『 오랜 미래에서 너를 만나고<span style="color: #333333;">』 천년의 시작 2024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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