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환 명시감상
그 여자의 바다
김명숙
바다가 길을 내어 놓는다.
포구를 떠나간 사내가 돌아오지 않자
바다를 통째로 마시겠다던 그녀
사내를 기다리다 썰물이 되어 나섰다.
바다 끝자락까지 가면 사내가 있을 것 같아
질퍽한 갯벌의 사타구니도 마다하고
수평선을 향해 내닫는다.
바다만 바라보다 섬이 되고팠던 여자
그 사내에게만 치마를 벗고 싶었던 여자,
덕지덕지 바위에 붙어 있는 따개비 같은 상처가
그녀 안에서 구획을 넓혔다.
뚝심 좋은 사내가 미끼를 던져도
아랫입술 질끈 깨물며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던 날들이
그녀 앞에 쌓여갔다. 깻단에서 깨 쏟아지듯
섬을 떠난 그녀
어부가 된 남자의 바다가 된다.
--김명숙 시집, {그 여자의 바다}에서
일찍이 노자는 그의 {도덕경}에서 이렇게 역설한 바가 있다. “상등의 인사는 도를 들으면 힘써서 그것을 실천하고, 중등의 인사는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하고, 하등의 인사가 도를 들으면 그것을 크게 조롱한다. 하등의 인사가 조롱하지 않는 도는 도가 아니다.”
진정한 도(시)의 길은 없지만, 그러나 그 도에 이르는 길은 수천 개도 넘는다. 김명숙 시인의 [그 여자의 바다]는 더없이 순수하고 거룩한 사랑을 통하여 ‘도의 철학’을 완성한 시이며, “어부가 된 그 남자의 바다가” 됨으로서 만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길은 없지만, “포구를 떠나간 사내가 돌아오지 않자” “바다가 길을 내어 놓는다.” “바다를 통째로 마시겠다던 그녀”는 그 “사내를 기다리다 썰물이 되어” 나섰고, “바다 끝자락까지 가면 사내가 있을 것 같아/ 질퍽한 갯벌의 사타구니도 마다하고/수평선을 향해 내닫는다.” “바다만 바라보다 섬이 되고팠던 여자/ 그 사내에게만 치마를 벗고 싶었던 여자”는 그 남자에 대한 그 여자의 더없이 순수하고 거룩한 사랑을 뜻하고, “뚝심 좋은 사내가 미끼를 던져도/ 아랫입술 질끈 깨물며/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던 날들이/ 그녀 앞에 쌓여갔다. 깻단에서 깨 쏟아지듯”이라는 시구는 그토록 어렵고 힘든 치욕과 인고의 세월을 뜻한다.
뚝심 좋은 사내들의 유혹은 더없이 달콤하고, ‘도의 길’은 “덕지덕지 바위에 붙어 있는 따개비 같은 상처”처럼 더없이 멀고 험난하다. 하루바삐 자기 짝을 찾고 싶어하는 육체는 뚝심 좋은 사내들의 미끼를 덥석 물고 싶어하지만, ‘도의 길’, 즉, 참된 사랑의 길을 가고 싶은 그녀의 정신은 “아랫입술 질끈 깨물며/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는다. 성욕은 육욕과 자연의 길이고, 참된 사랑은 정신과 ‘도의 길’이다. 도의 길은 목표가 있는 길이고, 그 목표를 위하여 그 어떤 가시밭길도 마다하지 않을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시가 씌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의 길’을 헌신짝처럼 내다버리며, “뚝심 좋은 사내들의 미끼를” 덥석 물어버리지만, 그러나 그녀는 만인들의 반대방향에서 그것을 거절한다. 또한, 그녀는 “바다만 바라보다 섬이 되고팠던” 망부석의 한계를 깨닫고, 그 섬을 떠나 “어부가 된 남자의 바다가 된다.” “어부가 된 남자의 바다가” 됨으로서 참된 사랑을 이룩한 여자는 ‘도의 철학’을 완성한 여자이고, “바다만 바라보다 섬이 되고팠던” 여자는 망부석의 한계를 깨닫지 못한 여자이고, 뚝심 좋은 사내들의 미끼를 덥석 물은 여자는 더없이 순수하고 거룩한 사랑을 마음껏 조롱하는 이 세상의 어중이 떠중이들에 지나지 않는다.
참된 사랑의 길은 멀고 험하고,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칠 때만이 김명숙 시인의 [그 여자의 바다]는 완성된다. [그 여자의 바다]는 시의 극치이자 도의 길이고, 예술품 자체가 된 그 여자의 바다라고 할 수가 있다. 그 여자를 떠난 어부를 기다리다 못해 그 남자의 바다가 됨으로서 만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하늘을 감동시킨 것이다. 시(도)를 알면 용감해지고, 용감해진 자는 온몸으로, 온몸으로 시를 쓴다.
우리 시인들은 더럽고 때묻은 길을 멀리하고, 기다림으로 지친 망부석(섬)이 되지 말고, 오직 그 사내가 마음껏 살 수 있는 바다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참된 사랑의 연인이자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김명숙 시인의 ‘도의 철학’, 즉, [그 여자의 바다]의 시적 승리이기도 한 것이다.
첫댓글 반경환 선생님! 감사합니다. 시 쓸 힘이 납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
더욱더 좋은 시 많이 쓰시기를
김명숙 시인님,
반갑습니다. 시인께서 '바다를 통째로 마시겠다던 그녀'시겠지요. 저는 이제 막 시를 습작하는, 이순을 넘긴 사람인데 선생님의 시에 감동을 먹었습니다. 좋은 시 감사합니다. 결국 바다가 되어 사랑을 성취하신 선생님의 시작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해조음님! 댓글 달아주시어 고맙습니다. '그 여자의 바다' 는 제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쓴 시입니다. 고향이 전남 고흥인지라 바다를 지척에 두고 살았지요. 40중반에 홀로 되신 어머니께서는 5남매와 할머니까지, 6명의 가장 노릇을 하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