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청망청’의 유래
1505년 10월 2일
「연산군일기」에는 ‘갑자년 이후의 하교(下敎)가 흥청·운평에 관한 일이 아니면 사람을 벌하고 죽이는 일이라, 인심이 날로 떠났다.’ 는 기록이
있다.
자신의 생모인 폐비 윤씨(성종의 부인)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생각한 연산군이 무수한 사람들을 죽이면서 벌인 복수극이 바로 ‘갑자사화’이다. 이 일이 있은 뒤 연산군의 광폭한 행동은 더욱 심해져,
사람을 죽이는 일과 마시고 노는 일에 더욱 열을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연산군 11년(1505년) 6월, 연산군은 전국 팔도에서 미녀와 튼튼한
말을 구하기 위해 지방 관리인 '채홍준사(採紅駿使)'를 파견했다. 사대부의 첩이나 양인의 아내와 딸, 노비, 창기 중에서 닥치는 대로 여자들을
징발했는데 그 수가 1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들 왕실 기생을 운평·계평·채홍·속홍·부화·흡려 따위의 호칭으로
불렀으며, 그 중에서도 재주가 뛰어나면 '운평'이라 하고, 재주 뿐 만 아니라
미모도 뛰어나면 '흥청'이라고 불렀다. 이런 이름들은 연산군이 직접 지었다.
흥청이란
‘사악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으라’ 는 뜻이며, 운평이란 ‘태평한 운수를
만났다’ 는 뜻이다. 흥청 가운데 왕과 관계를 갖지 못한 자는 ‘지과’라
하고, 관계를 가진 자는 ‘천과’라 하며, 관계를 가졌으되 흡족하지 못한 자는
‘반천과’ 등으로 이름을 붙였다.
이들은 처음에 연산군의 할아버지인 세조가 세운
원각사(현재 탑골공원)에 수용되었지만, 이들 왕실 기생들을 위해 모두 일곱 군데에 거처할 시설을 지었다.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왕실 기생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모두 백성들이 부담했으니 불평불만의 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연산군이 서울 근교로 놀러 갈 때 왕을 따르는 흥청의 수가 1천 명씩 되었고, 날마다 계속되는
파티에도 흥청과 운평이 동원되었다. 연산군은 이 수많은 기생들과 궁궐 내에서 함께 놀이를 즐기고 주연을 베풀면서 많은 상을 내리기도 했다.
이러한 까닭에 국고는 텅텅 비게 되고 나라가 망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연산의 이러한 행각으로 원래 ‘사악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으라’는 좋은 뜻을 가졌던 ‘흥청’의 뜻을 변질시켰고, ‘흥청은 나라를 망치는 망청’이라는 뜻으로 오늘날 우리가 쓰는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유래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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