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 랭글러는 어떤 모델이든 탈 때마다 '이 차는 언젠가 갖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랭글러는 성능이 뛰어나거나 편의장비가 풍부한 일반적인 자동차 평가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차다. 대표적으로 커다란 오프로드 타이어를 장착해 승차감도 나쁘고 풍절음이나 하부소음 등 복합적으로 차체를 울려 시끄럽다. 아울러 오프로드 전용 타이어는 노면을 심하게 타 조향이 버거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운전대를 잡는 모든 순간이 즐겁다. 그게 바로 랭글러의 매력이다.
시승 모델은 지프 랭글러 루비콘 2도어다. 2007년 3세대 모델이 출시된 이후 지난해 11년 만에 4세대를 출시했다. 지프의 오리지널 모델로 불리는 MB 윌리스와 닮아있다. 전장을 누비기 위해 개발된 모델로 화려함보다는 기능에 충실했다. 윌리스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모델이 바로 랭글러 루비콘 2도어다. 짧은 전장과 오버행으로 4도어 모델보다 험로 탈출에 용이한 디자인을 갖췄다. 외관 디자인의 완성도 역시 4도어보다 2도어가 한 수 위다.
지프의 디자인 헤리티지가 차체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동그란 헤드램프와 7개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라디에이터 그릴, 사다리꼴 모양의 휠하우스와 앞뒤로 도출된 검정색 플라스틱 범퍼까지 도시보다는 자연이 어울리는 전통적인 오프로드 디자인이다. 이런 전통을 고수하면서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했다. 동그란 헤드램프 안에는 LED가 자리잡았다. 그 옆으로 LED 주간주행등도 심었다. 안개등과 리어 램프까지 꼼꼼하게 LED로 마무리했다. 이 외에는 디테일을 다듬어 기존 모델 오너가 아니면 알아보기 힘들 사소한 변화다.
랭글러는 ‘전통적 디자인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린다. 이전 모델을 바로 옆에 두고 봐도 극적인 변화는 없다.
지프의 이런 고유한 유전자와 강인한 오프로드 성능으로 팬층 또한 두텁다. 지프를 타면 뭔가 달라보인다라는 주변 인식도 크게 작용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재미난 조사가 나왔다.
4000만 명 이상의 회원을 가진 글로벌 데이트 사이트 ‘Zoosk’는 1500만 개 이상의 온라인 데이트 프로필을 성별로 분석해 이성에게 가장 많은 메시지를 받은 사람을 가려냈다. 이 가운데 ‘지프’를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한 경우 메시지 수가 243%까지 증가해 가장 많은 효과를 얻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패라리, 람보르기니 등 초호화 슈퍼카를 프로필에 등록한 사람의 인기가 높을 것 같지만, 의외로 가장 많은 메시지를 받은 차량은 ‘지프’였다는 것이다.
랭글러 실내는 외관과 달리 변화의 폭이 크다. 기존 랭글러의 DNA는 그대로 유지하고 최신 장비를 곳곳에 적용했다. 모든 변화 중 가장 환영할만한 요소는 8.4인치 크기의 센터 디스플레이다.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와 같은 스마트폰 커넥팅 시스템을 마련한 것은 물론 터치감이나 반응속도 역시 만족스럽다. 특히 오프로드에서 유용하게 사용 할 수 있는 오프로드 전용 창을 따로 마련해 다양한 정보를 운전자에게 제공한다. 화질 좋은 후방카메라가 적용된 점도 칭찬할 부분이다. 편의장비도 요목조목 챙겼다. 1열을 위한 열선시트는 물론 열선 스티어링휠도 마련했다. 통풍시트가 없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도어 모델답게 2+2 구조의 4인승으로 구성됐다. 2열에 탑승하기 위해선 1열 시트를 앞으로 젖혀야 한다. 이를 위해 1열 시트 상단에 레버를 마련했다. 레버를 당기면 폴딩과 슬라이드를 한 번에 해결 할 수 있다. 빠르게 2열에 탑승 할 수 있는 나름의 편의장비인 셈이다. 2열 공간은 성인 남성이 탑승하기에 무릎공간이나 헤드룸 공간의 부족함은 없다. 다만 2열에 승객이 탑승하면 트렁크 공간은 사실상 없어진다. 더군다나 2열 시트가 분할 폴딩을 지원하지 않아 활용도는 더욱 떨어진다. 2도어 모델을 구입한다면 2열을 사용하는 것보단 폴딩하고 캠핑이나 레저 장비를 싣고 다니는 것이 랭글러 2도어를 활용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랭글러 루비콘 2도어 모델에는 기존 3.6L V6 가솔린 엔진 대신 2.0L 가솔린 터보가 올라간다. 8단 자동변속기와 조화를 이뤄 최고출력 272마력, 최대토크 40.8kg.m를 발휘한다. 가속감이 예상보다 경쾌하다. 출력의 부족함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오프로드를 대비한 전용 타이어를 장착, 온로드 주행에서의 이질감을 피할 수 없다. 노면 상태가 조금만 좋지 않아도 차체는 좌우로 요동친다. 스티어링 역시 유격이 있는 편이다. 이전 모델 대비 하체의 움직임이 한결 나긋해져 도심 주행에 한 발 다가선 느낌이다. 코너를 깊게 파고드는 다이나믹한 운전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짧은 휠베이스 덕분에 차체가 돌아나가는 느낌이 신선하다. 조금은 부드러운 브레이크 세팅은 한 템포 빠르게 브레이크에 발을 올려야 한다. 8.7km/L의 복합연비는 2.0L 가솔린 터보 엔진이 맞나 싶을 만큼 아쉬운 수치다. 에어로다이내믹 디자인과 거리가 먼 각진 차량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랭글러의 다소 허술해 보이는 세팅은 오프로드 주행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센터페시아 하단에는 차동기어 잠금 장치와 스웨이바를 분리할 수 있는 버튼을 마련했다. 또 기어노브 옆으로 구동 방식을 바꿀 수 있는 별도의 기어봉을 마련했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야성을 자극한다. 기계식 4륜 구동으로 다소 고전적이지만 최신 AWD보다 오프로드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또한 2도어 모델은 4도어 모델 대비 전장이 짧아 바위나 돌길 같은 험로에서 주파력이 뛰어나다. 깊은 웅덩이나 큰 바위를 마주해도 거뜬히 넘어 갈 수 있다. 진정한 오프로드 마니아라면 4도어보단 2도어 모델 쪽이 더 낫다.
랭글러 루비콘은 매 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꾼이다. 빠르게 질주하지 않아도 된다. 손 쉽게 열 수 있는 1열 천장을 떼어내고 유유자적 달리면 된다.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 듯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최신 장비로 무장한 SUV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감성이다. 단 이전 모델보다 다소 비싸진 5540만원의 가격표는 구매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거친 오프로드를 갈 일이 없다면 이보다 저렴한 4640만원의 랭글러 스포츠 2도어 모델을 선택하는 것도 괜찮은 대안이다. 대신 2열 소프트탑이라 시끄러움을 감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