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장의 말씀은 재차 바벨론이 섬기고 있던 우상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밝히면서 바벨론 자체의 임박한 몰락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절에 나오는 벨이나 느보는 바벨론의 수호신들입니다. 이 신들의 모습은 매우 웅장하고 거대하기 때문에 볼 때에 위압감을 느꼈습니다. 이스라엘도 이 신상들을 보면서 그 위용에 압도되어 이 신들이 이스라엘을 파멸로 몰아갔다고 생각했고 바벨론에게 강함을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바벨론에 큰 영향을 주던 이 벨과 느보가 엎드러지고 구부러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신들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신들이 자기 발로 움직이지 못해서 짐승과 가축에게 실렸습니다. 그리고 그 무게 때문에 그것을 떠메고 다니던 짐승들에게 큰 짐이 되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것들은 구부러졌고 엎드러져 그 짐을 구하여 내지도 못했습니다. 어떻게 한 나라의 대표적인 신, 이 우상들이 하나의 짐짝과 같이 취급을 받습니까?
재미있는 것은 이 우상이 경배를 받기 위해 인간의 힘을 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하물며 부르짖고 기도한다 해도 고난에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것을 좋다고 합니다.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지혜가 없습니다. 지각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신들과 여호와 하나님을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3~4절에 의하면 주님은 도리어 우리를 품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안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의 인생에 백발이 나는 그 노년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안으시고 품으셔서 구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결단의 말씀을 봅시다. 10절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결국엔 고레스를 통하여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레스의 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구원자를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 주시고 기어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역사를 다 이루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