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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은혜의 찬양 감사를 드립니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매일 새벽 기도회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오늘 날짜를 얘기해 줍니다. 예를 들면 오늘은 2026년 10월 11일 주일입니다. 오늘 하루도 말씀과 함께 주님과 함께 동행하시는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멘트를 하고 말씀을 전합니다. 제가 이런 날짜를 세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첫째는 하루하루를 잘 살아보자는 뜻에서 날짜를 셉니다. 내 일에 대한 삶은 우리가 함부로 어떻게 단정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내일은 그저 우리의 바램과 소망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오늘 하루는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삶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하루를 잘 살아가야만 하루를 잘 마무리할 수가 있고, 하루를 잘 마무리하다 보면 내일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루를 잘 살면 일주일이 즐겁고 일주일이 즐거우면 그 한 달도 즐거운 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날을 소중하게 여기고 보내시는 것이 잘 보내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진정한 삶이라고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날짜를 셉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날짜를 셉니다. 내 하루의 삶이 중요한 이유도 있습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그런 마음의 자세도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해 주시는지에 대한 기대 기대를 가지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그냥 막 살다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가를 때로는 모를 수도 있고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를 잘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이 무엇인가를 기대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날짜를 개수하는 것입니다. 시편의 말씀에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시편 90편 12절 말씀을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아멘 우리에게 우리 날 뭘 가르치라고요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오늘 이 시인은 하나님이 주신 시간과 나를 소중하게 여김으로 해서 지혜로운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의미가 있고 굉장히 중요한 기도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도 하루하루의 삶을 하나님께 올려드리심으로 지혜로운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 나라의 기대와 소망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눌 텐데요.
오늘 읽은 말씀 중에 굉장히 두 절이 지금 마음에 와닿는 말씀이 나타납니다.
20절 말씀 한번 다시 읽도록 20절의 말씀 시작
나의 강대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도 없이 부끄러워하지 않니라고 지금도 저과 같이 늘 강자여 살이 이 내 몸에서 분수가 성대하게 되게 하여
아멘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이든지 뭐 하지 아니하고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무엇과 같이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누가 누가 그리스도가 존재하게 되게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먼저 우리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서 살아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 한 번뿐인 인생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서 살아가라고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있습니까?
저는 오늘 두 가지만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는 우리의 삶이 우리의 사역이 부끄럽지 않아야 된다라는 겁니다. 오늘 사도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가장 보배롭고 귀한 일은 바로 부끄럽지 않았다는 겁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 사역이 정말 많고 정말 힘든 일을 많이 겪었는데 그런데 그 사역이 부끄러웠다고 한다면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 앞에서도 결코 기뻐할 수 없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바울은 그 사역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왔었고, 결과적으로 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귀하게 존귀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렸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에 목사 후보생 고시와 장로 고시가 있었습니다. 제가 노예 고시부를 담당하고 있는지라 이 고시부 시험을 치르고 면접을 하는 시간에 그분들에게 제가 짧은 권면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갈렙이라는 인물을 좋아합니다. 여러분들도 갈렙 같은 인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갈렙은 마지막까지 충성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갈렙은 처음부터 그의 삶이 마지막 끝나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고백하면서 끝까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귀한 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은 주의 종들이 있습니다만 끝까지 쓰임 받지 못한 종들도 있습니다.
도중에 하차를 하거나 불미스러운 일로 목회를 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정말 끝까지 쓰임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부끄럽지 않는 부끄럽지 않는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 주변에도 훌륭한 목회자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 그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사라지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노예에서 귀한 직책을 부여받고 능력도 많이 있고 정말 열정적으로 사역을 하시다가 어느 순간엔가 어디로 가셨는지 모를 정도로 사라지는 분들도 있습니다.
왜 마지막이 아름답지 못한 것일까요?
거기엔 다 이유가 있습니다만 저는 그 한 가지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봅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는 것
여러분 목회자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가요?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목회자가 있어야 할 자리는 교회죠 교회 목사로 부름을 받은 것 아니겠습니까? 교회를 떠나서는 상상조차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지 않고 다른 곳에 있으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지를 않습니다.
여러분 가라지와 알곡의 차이를 아십니까?
쉽게 생각하면 가라지는 가라지고요. 알곡은 알곡입니다. 그래 또 다른 의미의 가라지가 있습니다. 가라지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는 것 바로 가라지입니다. 우리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난다든지 팥을 심었는데 콩이 나면 갈라집니다. 반드시 그에 합당한 합당한 열매가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합당한 열매가 맺혀야지 다른 열매가 맺히면 안 되는 것입니다. 목사는 생명을 구원하고 방황하는 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목사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생명 구하는 일에 관심이 없고 다른 곳에 관심이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지 않는 것 그것이 가라지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이 나무 뒤에 숨은 것을 보시고 아담아 니가 어디 있느냐 아담아 니가 어디 있느냐라고 찾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리는 나무 뒤로 숨는 것이 아닙니다.
왜 나무 뒤로 숨었을까요? 왜 아담이 나무 뒤로 숨었을까요?
부끄러웠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끄러웠기 때문에 나무 뒤로 숨은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주신 귀한 자리를 잘 누리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아담의 자리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담이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게 되면 부끄럽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나를 떠나면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안에서 그해야 하는 것입니다.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지 아니하고 떠나는 것 가라지입니다. 남편의 자리가 있고 아내의 자리가 있습니다. 스승의 자리가 있고 또 제자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를 떠나게 되면 안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우리 교사들이 있어야 할 장소는 우리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곳입니다. 우리 승가대원이 있어야 할 자리는 승가대회에서 찬양을 불러야 됩니다. 목사가 있어야 할 곳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교사는 교사의 자리에 있을 때, 대원은 승가대원의 자리에 있을 때, 봉사단은 봉사자의 자리에 있을 때 그 자리에 있을 때 부끄럽지 않는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전과 같이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오늘 말씀 들었처럼 전과 같이 오늘 바울의 사역에서 가장 우리가 주목 해야 될 부분은 바로 지금도 전과 같이라는 말씀이다. 바울의 많은 사역에 있어서 가장 잘한 일은 사역을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도 전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진행이 된다는 것이겠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초지일관 변함없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 사역자 결단코 흔들리지를 안 했습니다.
여러분 사역자에게 있어서 이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한결같지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굉장히 변화무쌍한 시대를 우리가 살아갑니다. 정말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한 치 앞도 바라보지 못하는 그런 약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까 세상이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지고 사람까지 달라지는 그런 어두운 시대를 살아갑니다.
이런 변화 무쌍한 세상에서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전과 같이 전과 같이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이 시대 속에서 전과 같이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믿음을 흔들려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었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믿음이 흔들리고 약해졌습니다. 코로나가 다 지나갔음에도 여전히 교회를 떠나서 방어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해서 방어하는 사람들도 있고, 교회는 섬김과 봉사의 손길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형 교회 교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들이 더 이상 봉사하기 싫어, 나는 섬기기 싫어 그냥 나는 예배만 드릴 거야. 그런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대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뭘 원하시겠습니까? 이런저런 많은 일을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니가 정말 전과 같이 할 수 있느냐 니가 정말 변함없이 할 수 있느냐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전과 같이 할 수 있는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구약 다니엘서를 보면 다니엘이 자기를 모함하고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음에도 다니엘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다니엘서 6장 10절 말씀을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왕의 우상을 지키는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시는 이밖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아멘 다니엘은 이 조서의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뭐 하던 대로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뭐 하였더라 감사하였더라. 전에 하던 대로 오늘 우리의 신앙은 결코 변질되거나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상황이 있어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전과 같이 동일하게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이 할 수 있는 믿음 그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전과 같이 할 수 있느냐? 이것이 바로 은혜를 받은 성도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이제 말씀의 끝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내가 하는 일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도 전과 같이 동일하게 지금 개석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정말 귀하고 존귀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다만 오늘 여러분들에게 당부를 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의 내 모습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내 모습이 사실은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 결코 자만하면 안 됩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이 쓰시지 않습니다. 저도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만 지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늘 언제나 생각합니다. 훗날에 부끄럽지 않은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우리가 하는 사역이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아서도 안 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사회 끝까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평가를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평가해 주시는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저 가 있지요. 그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정말 잘했다 충성된 종이라는 그런 음성을 듣는다면 그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사도 바울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부끄럽지 않고 전과 같이 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통해서 존귀하게 되는 가장 귀한 복을 받았듯이, 오늘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내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