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쉬운 성경 이사야 7장 10 - 25절
10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이 모든 일이 일어날 표적을 구하여라. 저 깊은 죽음의 세계에서 저 높은 하늘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구하여라.'
12 아하스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표적을 구하지 않겠습니다.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습니다.'
13 이사야가 말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아하스여, 잘 들으십시오. 왕은 백성의 참을성을 시험하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이제는 하나님의 인내심까지 시험하십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몸소 표적을 주실 것입니다. 보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인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15 그 아이가 옳지 않은 것을 거절하고 올바른 것을 선택할 줄 알 때까지, 그는 버터와 꿀을 먹을 것입니다.
16 왕은 지금 에브라임과 아람 왕들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줄 알기 전에 에브라임 땅과 아람 땅은 황무지가 될 것입니다.
17 여호와께서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의 백성에게 저주를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한 일들은 에브라임이 유다로부터 갈라져 나간 이후로 겪어보지 못한 일들일 것입니다. 주께서 앗시리아 왕을 보내셔서 왕을 치게 하실 것입니다.
18 그날에 여호와께서 신호를 보내시어 이집트 강 끝에 있는 파리 떼를 부르시고, 또 앗시리아 땅의 벌 떼를 부르실 것입니다.
19 그들이 와서 골짜기와 바위틈과 가시나무덤불과 샘물 곁에 진을 칠 것입니다.
20 그날에 여호와께서 면도칼과 같은 앗시리아를 이용해 유다를 심판하고, 유다의 머리털과 다리털을 밀고, 수염까지 밀어 버리실 것입니다.
21 그날에 비록 한 사람이 어린 암소 한 마리와 양 두 마리밖에 키우지 못해도
22 그것들이 내는 젖은 넉넉하여 버터를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땅에 남아 있는 모든 사람들은 버터와 꿀을 먹을 것입니다.
23 은 천 세겔의 가치가 있는 포도나무 천 그루가 들어설 수 있는 모든 장소도 그날이 되면, 찔레와 가시나무로 뒤덮일 것입니다.
24 그 땅이 모두 찔레와 가시나무 밭이 되어 야생동물이 들끓는 사냥터가 될 것입니다.
25 그러나 사람들이 괭이로 땅을 갈아야 하는 산지에서는 잡초와 가시나무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곳에서는 다만 사람들이 소 떼를 풀어놓고, 양 떼들이 밟고 다닐 것입니다.'
<묵 상>
본문은 아하스 왕의 불신과 그로 인한 심판을 경고합니다. 그러면서도 임마누엘의 징조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주시는 구원의 약속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인간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임을 드러냅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통해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고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3. 하나님의 징조 - 임마누엘의 예언(10-16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이 모든 일이 일어날 표적을 구하여라. 저 깊은 죽음의 세계에서 저 높은 하늘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구하여라.' 아하스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표적을 구하지 않겠습니다.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습니다.'"(11-12절)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자신을 위해서 한 표적을 구하라고 요청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그에게 확신을 주시고자 하는 의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의 믿음을 키워 주시기 위하여 이 같은 제안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표적을 구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시험치 않겠다고 답합니다. 이는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거절입니다. 그는 믿기를 원치 않았으며, 또한 자신이 믿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떤 것도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그의 정책을 확정하였습니다. 그 정책을 추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무엇이든 그에게 자신의 정책을 바꾸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두려워했습니다. 그가 얻고 싶은 도움은 하나님이 아닌 앗시리아의 도움이었습니다. 아하스는 자신의 완고함과 하나님께 대한 그의 반역의 정신을 드러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도우며, 지도하시겠다고 제안하셨지만, 그는 하나님 대신에 그 도움을 앗시리아에 의존하기로 선택했습니다. 아하스는 하나님과는 어떤 일도 함께하지 않기로 결심했음을 명백히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몸소 표적을 주실 것입니다. 보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인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14절) 아하스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로부터 그에게 한 표적이 주어질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표적은 그가 선택한 표적이 아닌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표적이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다가올 위기의 때에도 여전히 자신들의 신실함을 유지하며 살아갈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실 것임을 보증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같은 표적으로 주어진 말씀을 통하여 사람들은 다가올 앗시리아의 침공 시에 남은 무리가 구원받게 될 것임을 생각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예언으로 해석됩니다(마 1:23절). 이 예언은 아하스 당시에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임마누엘의 표적을 통해 유다에게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백성을 인도하고, 보호하시며, 복 주시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하실 것임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 아이가 태어나고 젖을 뗄 때쯤, 유다를 위협하던 두 나라,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산헤립이 유다 땅을 쳐서 그 나라를 멸하려고 왔을 때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는 임마누엘과 관련된 이사야의 말에서 확신과 용기의 근원을 찾아냈습니다. 히스기야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용기를 북돋우어 주기 위한 자신의 기별에서 그들에게 '우리와 함께하시는 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는 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왕하 32:7).
4. 남유다의 심판과 구원의 약속(17-25절)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표적을 주신 후, 유다 왕국이 겪을 심판에 대해 경고합니다. 하나님은 아하스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앗시리아에게 도움을 청하려 한 것에 대해 징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의 백성에게 저주를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한 일들은 에브라임이 유다로부터 갈라져 나간 이후로 겪어보지 못한 일들일 것입니다. 주께서 앗시리아 왕을 보내셔서 왕을 치게 하실 것입니다."(17절) '앗시리아'라는 이름의 등장과 함께 그들이 침공하는 날 남유다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극심한 고난을 겪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이사야는 왕과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여 노력했지만 그들은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앗시리아가 그 땅을 침공하도록 허락하실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하스가 의지하려던 앗시리아가 결국 유다를 치게 될 것임을 경고합니다.
18절부터 25절까지는 앗시리아의 공격으로 인하여 유다의 황폐화가 묘사됩니다.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게 될 상황과 환경의 파괴를 말해줍니다. 젖과 꿀만 먹고 살 정도로 땅이 황폐해지며, 포도원이 가시덤불로 변하고, 풍요롭던 농토가 황무지가 될 것을 예언합니다. 한때는 평화롭고 비옥했던 농장이 황무한 땅으로 변해 버린 것은 그 주인들과 관리들이 다 포로로 잡혀가서 다시는 그들의 고향 땅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함께 전합니다. 아하스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결과로 유다 왕국은 앗시리아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궁극적으로 남은 자를 통해 구원을 이루어가실 것임을 예고합니다.
<오늘의 기도>
임마누엘의 아버지 하나님! 나를 예배의 도구로 사용해 주시고,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더욱 견고하게 하옵소서. 모든 곳에 계신 주님을 향하여 부르신 곳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불경건이 떠나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온함과 평강을 부르신 곳에서 누리게 하옵소서. 어쩔 수 없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저하고, 타협해 버렸던 불신앙을 용서하옵소서. 뜨거움이 아닌 미지근해지고, 차가워져 버린 내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옵소서.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흔들림 없는 믿음, 요동함이 없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