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아비가 된 로버트 드 니로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아내가 죽고, 딸 둘이 있으니까. 그리고 자신들은 항상 잘 살고 잘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을 100프로 믿지 않는다.
혹시 나쁜 일이 있더라고 내가 걱정 할까봐 절대로 비밀로 할거니까.
마지막으로 아내의 무덤 앞에서 아내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부르면서 눈물을 글썽였을 때가 생각났다.
결혼생활 41년을 같이 했던 아내를 8개월 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홀아비 프랭크 굿은, 연휴 주말에 집으로 오기로 했던 아들, 딸들이 갑작스럽게 방문을 취소하자, 자신이 직접 네 아이들 집 모두를 깜짝 방문하리라 집을 나선다.
기차를 타고 뉴욕에 간 프랭크는 아들 데이비드의 집을 찾지만 데이비드가 나타나지 않자, 집 앞에 기다리다가 대문 밑으로 봉투만 밀어넣고 발걸음을 돌린다.
다음으로 찾은 것은 딸 에이미, 하지만 손자와 사위 사이의 긴장 관계만 확인한 채, 바쁜 커리어우먼인 딸을 뒤로 하고 고속버스에 오른다.
덴버에 도착한 프랭크는 아들 로버트를 찾는데, 오케스트라 지휘자라고 알고 있는 로버트는 사실 타악기 연주자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불과 몇시간 만에 다시 버스를 탄 프랭크는 마지막으로 딸 로지를 방문하기 위해 라스베가스로 향한다.
사실 프랭크는 전선 코팅을 하는 일을 평생 해 오며 화학 비닐을 너무 많이 마셔 폐가 좋지 않은 상태다.
담당 의사가 긴 여행은 무리라는 진단을 내리지만 그는 비행기만 타지 않으면 된다며 기차와 버스를 이용해 그 큰 미국 땅을 가로질러 자식을 만나는 여행을 떠난다.
갑자기 아이들을 찾아가면 깜짝 놀라며 얼마나 좋아들 할까 기대를 하지만, 어쩐지 그들의 반응은 석연치가 않다.
알게 모르게 아빠의 머무름을 불편해하며 어서 떠나기를 바라는 자녀들.
프랭크는 그들의 핑계와 거짓들, 숨김을 온전히 알아채지만 모른 척 다음, 다음, 다음으로 이동을 한다
잘나가는 광고 회사 에이미는 사실 남편과 별거중이었고,
지휘자인 줄 알았던 로버트는 타악기 연주자였다.
유럽으로 공연을 떠나야 해서 아버지와 함께할 시간이 없다며 둘러댄 것도 거짓말.
거리의 곳곳에 현지 공연 포스터가 버젓이 붙어있는 걸 아빠는 익히 알고 있다.
어린 시절 꿈을 이룬 댄서 로지는 미혼모가 되어 있었고 게다가 여자가 좋은지, 남자가 좋은 지도 모를 평범하지 않은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아빠의 기대에 부응하려 무던히도 애쓰던 데이비드는 마약에 손을 대고 만다.
이런 엄청난 사실을 알아차린 프랭크는 그 사실보다 왜 자식들이 거짓말을 하는지, 왜 아빠인 본인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더 화가 나고 서운하다.
“ 걱정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너희 중 누구든 내게 걱정 끼칠 수 있어.
”난 너희 모두의 아빠잖니. 당연한 거야.”
아빠가 자녀들을 사랑하듯, 자식들도 아빠를 무한히 사랑하는 마음에는 다름이 없다.
다만 그 방법이 달랐을 뿐.
지병을 얻을 만큼 평생 1백만 피트의 전선을 코팅해오며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애쓴 아빠는 자녀들이 본인의 재능을 맘껏 펼치며 살기를 바랐고,
그걸 모르지 않는 자녀들은 아빠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적절히 진실을 감추고 산다.
좋은 소식은 다 전하고, 나쁜 소식은 좀 덜 전할 뿐이라는 에이미의 말처럼 나름 아빠를 위한 행위가 때로는 더 상처를 주고 아프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배우고 실망스럽지 않니?”
“후회하지 않아요.
저는 후회하지 않는데 아버지는 실망스러우신 것 같네요.”
“아니 나도 실망스럽지 않다.
그저 낭비스러울 뿐이야.”
자식을 위한다는 마음이 종종 자식을 더 힘들게 하기도 한다.
아빠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아 애쓰는 아이들이 짠하면서도 사실 그 진실을 하나씩 알아챘을 때 프랭크의 마음은 얼마나 무너지고 또 무너졌을지.
부모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게 되니 사실 나는 그게 더 마음이 아팠다. 버럭 화를 낼 만도 한데 온화한 얼굴로 자녀를 향해 웃어주는 그의 속은 과연 어땠을지..
긴 여행을 끝으로 프랭크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그 무엇을 요구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죽은 아내에게 말한다.
“아이들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나도 행복하거든.’
나 역시 내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지만 사실 그 이상을 늘 바라고 있는 욕심에 괴로웠는데 제법 위로가 되었다.
당신 가족 모두 자신들의 삶을 헤쳐 나가고 있어
아이들이 이룬 것을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거야.
모두 잘 지내고 있어. 여보
Everybody’s f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