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말씀의 향기♣ No3159
6월17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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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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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방송미사**
https://m.youtube.com/watch?v=LSECloVRNg8
(양종석 베다 신부님 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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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하늘에 보물을 쌓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습니다!>
거짓말 같겠지만 매일 차곡차곡, 그리고 조용히 하늘에 보화를 쌓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많은 분들이 은행 잔고 불리고, 부동산 가격 상승하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재물의 탑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데 혈안이 되어있지요.
이런 물질만능주의 세상 속에서, 틈만 나면 어려운 이웃들과 신음하는 세상과 공동선을 위해 수시로 몸과 마음과 금고를 비우는 분들은 존재 자체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표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에게 하나의 큰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마태오 복음 6장 19~20절)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는 예수님의 권고 말씀 앞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나는 쥐뿔도 없는 사람이라서 하늘에 보물을 쌓고 뭐고 할 능력이 없습니다. 뭐라도 있어야, 하늘에 보물을 쌓고 말고 할텐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보물이 반드시 현세적 재물에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보물은 여러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깊은 슬픔을 붙들고 있는 이웃들에게 다가가 그 슬픔 함께 붙들어주는 것은 아주 훌륭한 방법으로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입니다.
세상 쓸쓸히 홀로 걷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함께 길을 걸어주는 것 역시 하늘에 보물을 쌓은 좋은 방법입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과 대자연, 생태계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데 앞장서는 마음으로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한다든지, 어떻게든 단순하고 소박하며 청빈하게 살아가는 것 역시 하늘에 보물을 쌓는 길입니다.
사회 정의의 실천은 투사나 정치인들의 몫이려니 하는 생각을 떨치고 불의한 현실 앞에서 올바른 소리를 내며,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그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기꺼이 연대하고 참여하는 일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참된 노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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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동영상)
https://youtu.be/kKTBgRJKpP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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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이 독이 되는 인간: 마음의 빛이 어둠인 사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십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빛이 눈으로 나온다시며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마태 6,23)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네 안에 빛이 어둠이면”의 뜻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빛이 어둠이 될까요?
‘개는 훌륭하다’에서 보호자들을 가스라이팅하는 레트리버에게 강형욱 훈련사도 손을 물린 적이 있습니다. 리에라는 레트리버는 다른 사람들이나 산책하다 작은 강아지를 만나도 도망을 치거나 드러누워 배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겁이 많은 아이인데 가족은 다 뭅니다. 물론 물고 나서 가족 무릎에서 다시 재롱을 떱니다. 가족들은 리에가 본래 착한 개인데 어떤 상처가 있어서 그런 줄 압니다. 하지만 리에는 가족들을 가스라이팅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화분을 닦으려고 하자 순하디순한 리트리버는 으르렁대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보호자는 뒤로 물러섭니다. 화분을 언제 닦느냐는 질문에 보호자는 리에가 없을 때 닦는다고 합니다. 리에가 화내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워낙 착한 개이니까.
그러나 강 조련사는 “그거는 아이가 담배를 피우는데, ‘다 이유가 있겠지! 공부가 얼마나 어려우면!’이라고 하며 방치하는 것과 같아요”라고 따끔하게 말해줍니다.
리에는 가족들을 자기가 살짝 물 때부터 가족들이 자기를 무서워하는 것을 압니다. 사랑도 받고 싶고 지배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물면서 지배하며 애교를 부리고 사랑도 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가족들은 리에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세속-육신-마귀에서 마귀는 ‘지배욕’입니다. 지배욕이 있는데 소유욕이 없을까요? 리에는 화분을 자기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보호자가 화분을 만지려 할 때 화를 내는 것입니다. 내 것이니까 건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따라준 주인에게 다시 애교를 부립니다. 이것만 지켜주면 착한 개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강 훈련사는 이런 개에게 잘 대해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며 일부러 화를 내게 만들어 강하게 제압합니다. 이 과정에서 손을 물리게 됩니다. 하지만 억지로 눕혀놓고 입마개를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주인이 “앉아!”를 시켜봅니다. 리에는 앉지 않습니다. 자기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여기는 보호자에게 앉아서 굳이 칭찬을 들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칭찬은 높은 사람에게 들어야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앉습니다.
강 훈련사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훈련하며 절대 순종하기 전까지는 잘해주지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그런 애정이 독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음의 빛이 어둠이면’이란 ‘탐욕’을 나타냅니다. 세상은 어둠이고 하늘은 빛입니다. 마음의 빛은 내가 마음으로 바라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의 빛이 어둠일 때는 마음이 하늘의 것이 아닌 ‘생존욕구’, 곧 ‘세속-육신-마귀’를 추구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탐욕-성욕-지배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하라고 내버려 두라고 하십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그리고 먼저 참 빛을 추구하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3-34)
만약 세속-육신-마귀를 계속 빛으로 여기는 이가 있다면 그에게는 말씀과 성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태 7,6)
세속-육신-마귀를 추구하는 이들은 아직 짐승의 수준에 머물겠다는 의지를 가진 이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잘해줘 봐야 하느님까지 가스라이팅합니다. 자기가 잘해서 받는 줄 알지 보호자에게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이에게까지 당신 살과 피를 내어주셨습니다. 돈주머니를 쥐고 있었던 유다에게까지 당신 살과 피를 내어주시고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발로 밟았습니다.
예수님은 왜 그런 이에게까지 당신 자신을 낮추신 것일까요? 그가 원하였기 때문입니다. 원하는데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다 주셨으니 그의 멸망에 대해 더는 예수님께서 책임을 지실 필요가 없습니다.
어쨌건 우리는 마음의 빛이 어둠인 사람, 곧 세상 것을 추구하고 세상 것에 집착하는 사람에게 잘해주며 성당으로 이끌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세례를 받아도 모령성체를 하게 됩니다.
마음의 빛이 참 빛을 추구하는 이들을 초대합시다. 그들에겐 잘해주어도 됩니다. 그들에게 하는 칭찬은 훈련이 되고 성장의 기회가 됩니다. 하지만 다시 돈에 대한 욕구나 육욕, 그리고 지배욕이 커져 순종하지 않는다면 결핍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잘해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칭찬해주어야 할까요? 미네소타 대학에서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여학생 80명에게 남들이 자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말을 엿듣게 한 것입니다.
한 사람은 끊임없이 부정적인 말만 합니다. 한 사람은 끊임없이 긍정적인 말만 합니다. 한 사람은 부정적인 말을 하다가 긍정적인 칭찬으로 끝을 맺습니다. 마지막 사람은 긍정적인 말을 하다가 부정적인 말로 끝을 맺습니다.
이 네 명 중 사람들이 가장 호감을 느낀 사람은 누구일까요? 시종일관 칭찬만 하는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다가 마지막에 긍정적으로 칭찬해 준 사람입니다.
그러면 가장 비호감인 사람은 누구일까요? 끊임없이 부정적인 말만 한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좋은 말을 하다가 마지막에 부정적인 말을 한 사람입니다.
마지막은 그 사람에 대한 상대의 기대를 나타냅니다. 계속 좋은 말만 하거나 계속 나쁜 말만 하는 사람은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말을 하다가 긍정적인 말을 한 사람에게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줍니다.
하지만 역시 세속-육신-마귀가 자라게 하는 그런 칭찬은 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를 나를 지배하는 가스라이터로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 빛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것을 칭찬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결국 비호감이 되거나 자신이 만든 가스라이터로부터 가스라이팅 당하며 살게 됩니다.
여기 좋은 칭찬의 예가 있습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나오는 장면입니다. 강박증 환자 잭 니콜슨은 레스토랑 종업원 헬렌 헌트의 사랑을 이 한 마디 칭찬으로 얻어냅니다.
“칭찬 한 가지만 해봐요.”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는데, 얼마 전부터 약을 먹기로 했어요. 약을 먹으면 좋아질 수 있대요.”
“그게 무슨 칭찬이에요?”
“당신은 내게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
“내 생애 최고의 칭찬이에요.”
돈만 알고 오만하기 짝이 없어서 의사 말도 안 듣던 잭 니콜슨은 헬렌 헌트 때문에 겸손해지기로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탐욕-소유욕-지배욕에서 벗어나게 했다면 그것만큼 큰 칭찬이 없습니다. 또 이런 칭찬은 헬렌 헌트의 마음도 사로잡았습니다. 그녀도 돈 때문에, 그리고 교만하여서 힘들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칭찬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공부를 잘한다고, 돈을 잘 번다고, 얼굴이 예쁘다고, 머리가 좋다고 하는 칭찬은 결국 나를 가스라이팅하기 위한 계략이거나, 아니면 나를 진짜 세속-육신-마귀에 빠지게 만들어 지옥으로 보내려는 사탄의 계략일 뿐입니다. 합당한 칭찬은 마음의 빛이 어둠인 사람이 참 빛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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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복음: 마태 6,19-23: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19절) 하신다. 이것은 세상의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말씀이다. 재물은 좋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재물의 주인이 되어 잘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에 마음을 쓰고 온통 신경이 거기에 가 있게 되면 마음이 재물에 사로잡혀 어두워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우상 숭배자가 된다. 하느님보다 그 재물이 우선하고 그 재물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20절) 하신다. 여기에 나오는 하늘은 “하늘은 주님의 하늘”(시편 115,16)에 나오는 하늘이다. 우리는 지나가 버리는 것이 아닌 영원히 계속되는 것에 마음을 두고 그것을 보물로 삼아야 하므로, 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영적인 하늘이다. “첫 번째 하늘과 땅은 사라질 것”(묵시 21,1)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 사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모노바즈라는 사람은 흉년이 들었을 때 그의 모든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의 형제들은 사람들을 보내어 “그대의 조상들은 재산을 모았고 그들의 유산에 재산을 더 보태었는데, 이제 그대는 그대의 재산과 조상의 재산을 모두 흩어 버렸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조상은 땅을 위하여 재산을 모았고 나는 하늘을 위하여 보화를 모았다. 우리 조상은 사람의 손이 다스릴 수 있는 곳에 보화를 쌓았으나, 나는 사람의 손이 통치할 수 없는 곳에 보화를 쌓아 놓았다. 나의 조상들은 이 세상에 보화를 모았고 나는 장차 올 세상에 보화를 모았다.” 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물이 일시적으로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받아 우리가 관리하는 것임을 알고, 창조주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물이나 재능이나 사상 관념까지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만 나에게 허락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을 떠날 때는 이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고 가는 우리다.
예수께서는 “눈은 몸의 등불이다.”(22절) 라고 하신다. 눈은 우리의 정신을 가리킨다. 눈이 어두워지면 다른 지체들도 기능이 약해지듯이, 정신이 타락하면 우리의 삶은 악으로 가득 찰 것이다. 우리가 육신의 눈을 건강하게 지키려 하듯이 늘 건전한 정신을 가져야 한다. 분별력이 무너지면 모든 행위가 뒤죽박죽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23절) 하신다. 모든 것을 올바로 보고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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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마태 6,19-23)
이 말씀은 ‘두 가지 보물’이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늘에 쌓은 보물만 참된 보물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두 가지 보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뜻이 아니라, 보물이 아닌 것을 보물이라고 착각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입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이사 40,6-8; 1베드 1,24-25)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지 않으면 먼지처럼 허무하게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ㄴ) “당신께서 그들을 쓸어 내시면 그들은 아침잠과도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도 같습니다. 아침에 돋아났다 사라져 갑니다.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립니다."(시편 90,5-6) 허무하게 사라지는 존재는 영원한 것을 만들지 못합니다. 따라서 인간이 만든 것들은 보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인간들과 함께 허무하게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희망하는 사람이고, 그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면,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되고, 그러면 먼지처럼 허무하게 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6-17) (이 말에서 ‘지나가다.’는 ‘허무하게 사라지다.’입니다.) 신앙생활은, 허무한 것을 버리고, 영원한 것만을 추구하는 생활입니다. 그런데 만일에, 신앙인이면서도 ‘믿음 없는’ 세속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세속의 권력이나 재물이나 명예를 얻으려고 애를 쓴다면, 또 세속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산다면, 그것은 세속 사람들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미 손 안에 들어와 있는 영원한 것을 버리고 ‘먼지처럼 사라질 허무한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1베드 1,23) 우리는 새로 태어났으니 새롭게 살아야 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남은 지상 생활 동안, 더 이상 인간의 욕망을 따르지 말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1베드 4,2) “여러분이 잠시 고난을 겪고 나면, 모든 은총의 하느님께서,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당신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신 그분께서 몸소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며 든든하게 하시고 굳건히 세워 주실 것입니다.”(1베드 5,10) 예수님의 말씀에서,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는 “보물이 아닌 것들을 보물이라고 착각하지 마라.”이기도 하고, “허무하게 사라질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이기도 합니다.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는 “세속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물은 보물이 아니라, 허무하게 사라질 먼지 같은 것들이다.”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는 “영원한 생명만을 추구하여라.”입니다.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들은 영원한 것들이다.”입니다. 영원한 것들이니 그것들만이 ‘참된 보물’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 행복, 기쁨, 평화 등.)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라는 말씀은, 인간은 각자 자신의 가치관대로 사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신앙인은 세속 사람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서 다르게 사는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이 그것을 잘 나타냅니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필리 3,7-8)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신앙인들은 세속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들’로 생각하는데, 그들은 신앙인들을 ‘미친 사람들’로 생각합니다.(사도 26,24) 어느 쪽 생각이 옳은지는 하느님 나라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는 “가치관이 인생의 방향을 정한다.”입니다.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는 “올바른 가치관으로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라.”라는 권고입니다.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을 얻는 것은 헛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영원한 것들을 얻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가치관’입니다.)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버리지 않으면 멸망한다.”입니다.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는 “어둠을 빛으로 착각하지 마라.”, 즉 “보물이 아닌 것을 보물이라고 착각하지 마라.”입니다. (세속에서 누리고 싶은 것을 다 누리고 살면서, “내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생각은 착각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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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가톨릭 평화신문 미주지사)]
스마트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접이식 스마트폰이라 주머니에 넣기가 편했는데 접히는 부분에 줄이 가면서 화면이 꺼져버렸습니다. 보험을 들었기에 새로운 스마트폰을 마련할 수 있지만 일정금액을 지불해야 한다고 합니다. 구입한지 1년이 안 되었기 때문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서비스를 신청했는데 한국에서 부품이 와야 한다고 합니다. 부품이 올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기에 대리점에서 중고 스마트폰을 빌려주었습니다. 문제는 예전에 쓰던 스마트폰에서 정보를 옮겨와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존 쇼핑, 은행, 항공사, 유트브, 주차, 백신, 알람, 가계부 등등 옮겨야 할 것들이 20개가 넘었습니다. 정보를 옮기면서 생각하니 스마트폰이 제게는 보물창고였습니다. 갤러리에는 그동안 찍었던 추억의 사진들이 있습니다. 항공사로 들어가면 티켓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아마존으로 들어가면 쇼핑을 할 수 있습니다. 유트브로 들어가면 재미있고 유익한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은행으로 들어가면 송금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검색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씨알의 꿈’이라는 동영상을 듣고 있습니다. 미국의 이야기를 재미있고 쉽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검색만 하면 영어공부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성서를 들을 수 있습니다. 고전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음악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동호회도 있었습니다. 취미가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신부님과 목사님의 강론과 설교도 읽을 수 있습니다. 교리와 성경공부도 할 수 있습니다. 잘만 검색하면 인터넷은 보물창고에서 보물을 찾는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검색의 시대’에서 쓰레기를 버리기도 하고, 쓰레기를 줍는 경우도 있습니다. 게임, 도박의 세계에 빠지기도 합니다. 범죄를 모의하기도 합니다.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기도 합니다. 인터넷의 악플 때문에 정신적인 상처를 받기도 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검색의 시대에 유익한 정보를 식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아주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말씀입니다. 누구나 실천할 수 있지만 아무나 실천하지 못하는 삶이기도 합니다. 좀도 쓸지 않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고 그래서 홈쳐가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삶을 ‘산상수훈’에서 알려주셨습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욕심과 욕망의 불을 꺼버리는 것입니다. 자비를 베풀고, 옳은 일에 주리며 목마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평화를 위해서 일하고, 하느님이 영광을 위해서라면 십자가와 죽음까지도 기꺼이 감수하는 삶입니다. 우주는 넓어서 빛으로도 몇 만 년이 걸리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는 빛의 속도를 초월하는 곳입니다. 생각의 속도와 선행의 속도는 빛의 속도를 넘어 차원을 옮겨 다닐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행운이라는 보물을 찾으려고 한다면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없습니다. 행운은 성공, 재물, 명예, 권력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행복이라는 보물을 찾으려고 한다면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있습니다. 행복은 희생, 나눔, 헌신, 사랑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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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대구대교구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보물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자신을 위하여 땅 위에 쌓은 보물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을 위하여 하늘에 쌓은 보물입니다. 땅 위의 보물은 좀과 녹으로 훼손되고 도둑이 훔쳐 가기도 하는 불완전하고 순간적인 것이지만, 하늘의 보물은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이 훔쳐 가지도 못하는 완전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우리 삶 전체를 이끌어 간다는 사실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 삶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현세의 것과 하느님의 것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세상과 하느님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보물을 찾으려면 온 마음과 온 정성과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 ‘투신’해야 합니다. 하늘 나라의 비유를 전하는 마태오 복음 13장 44절에서도 밭에 숨겨진 하늘 나라의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고 전합니다.
한편 영원한 생명을 바라는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던 청년은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주님을 떠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눈은 몸의 등불이다.”라고 하시는데, 이 말씀은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우리 몸 전체를 비추고 이끈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재물과 이기적인 욕심에 빠진 탐욕스러운 눈은 우리 몸을 어둡고 병들게 하며 우리를 고립시킵니다. 반면에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형제들에 대한 애덕과 나눔으로 가득한 맑은 눈은 우리 몸을 밝고 따뜻하게 하며 주님의 생명으로 우리를 더욱 충만하게 해 줄 것입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바라며 살고 있는지, 내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내 눈은 어디를 좇고 있는지 곰곰이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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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마음 따라>
마태오 6,19-23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눈은 몸의 등불)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마음 따라>
내 마음
가는 곳에
나와 더불어 너
내 마음
닿는 곳에
나와 더불어 너
내 마음
머무는 곳에
나와 더불어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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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나의 보물 1호>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마태6,21) 하신 예수님의 의중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 '눈이 몸의 등불'이라는 말은 곧 한 사람이 제대로 살아가려면 그 안에 빛이 있어야 하고, 그 빛은 '눈'의 상태에 의존한다는 뜻"입니다.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은 관대한 사람이요, 성하지 못한 눈을 가진 사람은 질투심 많은 인색한 사람입니다. 관대한 마음을 가질 때 몸 안이 빛으로 가득 차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고, 인색한 마음을 가질 때 어둠 속에 있게 됩니다. 이기적인 보물에 집착하는 돌 같은 마음을 살 같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시길 청합니다.
나의 보물 1호는 무엇인가요? 그 보물을 이 지상의 삶이 끝났을 때 가져갈 수 있나요? 장례 행렬 뒤를 따라가는 이삿짐 트럭을 본적이 없답니다.
천상을 그리워하면서도 마음은 세상에 고정되어있는 것은 아닌지요? 보물1호가 무엇인지 중요합니다. 그것에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예수님으로 족합니까? 감히 '예'라고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예수님으로 족하다면 그분께서 남겨주신 공덕을 가져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남에게 베푼 것, 곧 사랑, 애덕, 섬김, 인내, 양선함, 다정함... 이것들이 얼마나 큰 보물인지요!
이 시간 맑은 눈을 가진 관대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감히 종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지배하고 더 많이 소유하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를 피곤하게 합니다. 서로를 섬기면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되지만 끝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심으로써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믿는 이의 삶은 당연히 예수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머리로는 아는데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 해도 꿰어야 보배인데 바보처럼 결심만 합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6,21) 하신 예수님의 의중을 살펴 부디 맑은 눈으로 주님을 닮을 수 있는 은총의 날이 되길 희망합니다. 한 점 욕심이 없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보이는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이요, 모든 것이 기쁨입니다.
주님의 눈으로, 주님의 마음으로 볼 것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의 문은 여기 삶의 자리에서 열리고 있는 만큼 인색함으로 세상에 매이지 말고 마음이늘 하늘의 보물을 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석처럼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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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님]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마태6,19.20)
오늘 복음(마태6,19-23)은 두 단락, 곧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는 단락과 '눈은 몸의 등불'이라는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보물을 땅에 쌓는 사람과 하늘에 쌓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또 몸의 등불인 눈이 맑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며칠 전 우리는 복음에서 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런 나의 구원 행위들을 여기에서 드러내지 말고 감추라고,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의 구원 행위들을 감추는 사람!'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 '지나가고 말 것에 집착하기 보다는, 영원한 것에 더 마음을 두는 사람!' 그래서 '평화가 충만한 사람!' 바로 이런 사람들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사람이요, 몸의 등불인 눈이 맑은 사람이 아닐까요?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부족함을 모르며 살면서도, 나누는 것에 인색하고, 더 소유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가득하여, 평화 안에 머물러 있지 못한 사람! 바로 이런 사람들이 보물을 땅에 쌓아두는 사람, 눈이 맑지 않은 사람이 아닐까요?
가진 것이 많지 않아, 가난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마음 안에 평화가 충만한 사람! 가난한 과부의 봉헌 정신으로 더 잘 나누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들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사람, 눈이 맑은 사람이 아닐까요?
'공수래공수거!'
며칠 전 성당 앞에 사시던 이웃 사촌이셨던 할아버지(84세)가 폐암으로, '빈손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알고 있던 한 형제님(53세)이 엇 그제 췌장암으로, 역시 '빈손으로' 돌아갔습니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나야만 하는 인생입니다. 마지막 때가 행복할 수 있도록, 웰 다잉(well dying) 할 수 있도록, 오늘도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지혜'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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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철학자 스피노자는 그의 책 ‘에티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탐욕이란 부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이자 사랑이다.”
탐욕에 절제가 자리 잡을 수가 없습니다. 또 탐욕에는 중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끊임없는 갈망으로 그곳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갈증이 생긴다고 바닷물을 마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닷물의 높은 염도로 인해서 더 갈증을 느끼고 탈수 현상이 심해지기 때문입니다. 탐욕 역시 더 큰 탐욕을 일으키면서 우리를 주님 곁에서 벗어나 더 나쁜 곳으로 이끌게 됩니다.
어떤 청년이 취직되지 않는다면서 “최저임금을 받아도 좋으니 취업만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뒤, 자신의 바람대로 드디어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경력도 없고 학벌도 좋지 않아서 최저임금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기뻤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최저임금으로 만족할까요? 부족하다는 생각에 불평불만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동차나 집을 구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전에 타던 차보다 못한 것을 사는 것이 아니고, 집은 전보다는 넓혀서 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탐욕은 늘 지금의 자리에서 계속 확장되고 있었습니다. 이는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는 사람만이 탐욕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탐욕의 유혹을 이겨내고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만족할 수 있을까요? 사실 세상의 기준을 따르면 절대로 불가능한 말입니다. 대신 주님의 기준에 집중한다면 탐욕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주님 사랑에 집중했었던 성인·성녀는 모두 세상의 것에 자유로웠습니다.
주님께서는 땅에 보물을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땅에 보물을 쌓는 사람은 계속해서 세상의 기준을 따르면서 탐욕을 내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사람은 주님 사랑만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눈은 몸의 등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눈이 맑다는 것은 단순, 정직, 솔직, 순수 등의 의미입니다. 특히 주님의 뜻만을 향하면서 주님께 눈길을 두고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맑은 눈을 통해서만 주님의 기준을 따르게 됩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보물은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입니까? 아니면 땅입니까?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도 동시에 알게 됩니다. 하늘입니까? 아니면 땅입니까?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두면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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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
-땅에 보물을 쌓지 마시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5,8)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사람들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입니다. 사실 마음의 눈만 열리며 하늘에 보물을 쌓을 기회는 널려 있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입니까? 땅에 보물을 쌓는 삶입니까? 참으로 엄중히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저에겐 20년 이상 치아를 관리해 주는 좋은 신자 치과 의사 형제가 있습니다. 1998년 치료받은 이후 지금까지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잘 받고 있습니다. 30대 중반의 나이였는데 이제 60대에 접어든 아주 한결같은 치과 의사 형제로 눈빛은 여전히 맑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써놨던 “어느 치과 의사 예찬”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이다
욕심없어
마음 또한 맑고 깨끗하다
최소한도의 의식주로 만족하는 이다
식물성이라
그 곁에선 품냄새가, 하늘 향기가 난다
시詩를 좋아하는
섬세한 감성을 지닌 이다
부드러움 중에
강인한 의지가 빛처럼 배어나오는 이다
그의 일은 하나의 예술이다
때로 쉬는 날 그는 진료 봉사를 한다
쉴 틈이 별로 없는 그다
몸으로 사는 게 아니라 정신으로 사는 이다
평상심平常心의 도道를 살기에
외로움도 그를 슬며시 비켜간다
그러니
그는 예술가이고 세속 안에 수도자이다
내 좋아하는
어느 치과의사이다”-2005.4
무려 17년 시가 말씀 묵상중 순간 떠올라 인용하니 참 신기합니다. 예나 이제나 참 한결같이 성실하고 순수한 믿음 깊은 치과의사 형제입니다. 치과 의사 중노동에 힘들거나 체력의 한계를 느끼지 않느냐는 말에 대한 답변도 잊지 못합니다.
“몸에 익숙해져서 그대로 행하는 데는 별로 문제가 없습니다.”
60대, 70대가 되어도 배밭일을 하는 신자 자매들 역시 평생 몸에 밴 일이기에 어려움없이 한다는 것입니다. 30대 중반의 자매들도 이젠 60대를 넘어섰습니다. 배밭일을 하러 아침 일찍 올 때도 묵주기도를 바치며 오는 자매들입니다. 제가 70대 중반에도 이렇게 한결같이 강론을 쓸 수 있는 것도 몸에 뱄기 때문입니다. 영성생활은 이처럼 좋은 습관임을 깨닫습니다.
말 그대로 치과 의사를 비롯해 한결같은 믿음의 자매들,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을 사는 이들입니다. 땅의 현실에 살되 마음은 하늘에 두고 사는 분들입니다. 그러기에 눈빛 또한 여전히 맑습니다. 진짜 힘인 내적 힘도, 영적 힘도 이런 하늘에 보물에 쌓는 삶에서 나옵니다. 이런 이들에게서는 풀냄새가 하늘 향기가 납니다. ‘풀냄새’ 하니 산책 때 자주 부르는 “푸른 잔디”라는 아름다운 동요가 생각납니다.
“풀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새파란 하늘가 흰구름 보면
가슴이 저절로 부풀어 올라 즐거워 즐거워 노래 불러요.
우리들 노래소리 하늘에 퍼져 흰구름 두둥실 흘러가면은
모두가 일어나 손을 흔들며 즐거워 즐거워 노래 불러요.”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을 살 때 저절로 부르게 되는, 또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을 부추기는 동요입니다. 오늘 복음은 짧지만 아주 강력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경각심을 줍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가지도 못한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오늘 이 복음을 깊이 마음에 새기고 묵상하시며 사시기 바랍니다. 참 기쁨과 행복도 하늘에 보물을 쌓을 때 선물처럼 주어집니다. 하늘 은행에 선행善行을 차곡차곡 저축해 놓는 참 지혜롭고 착한 분들입니다. 제 주변에도 이런 이타적 사랑과 봉사, 봉헌으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분들이 많습니다.
각자 삶의 자리에 지극히 충실하면서도 수도원을 물심 양면 돕는 분들 역시 하늘에 보물을 쌓는 분들입니다. 혼탁한 와중에도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은 묵묵히 소리없이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하늘에 보물을 쌓는 분들 덕택德澤입니다.
우리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습니다. 하늘 보물 있는 곳에 마음도 있습니다. 눈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마음이 맑으면 눈도 맑습니다. 그러니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이들과 땅에 보물을 쌓는 이들의 눈빛이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눈빛은 마음의 반영이요, 눈빛을 보면 어디에 보물을 쌓는지 당장 드러납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이들은 성형 수술이 필요없습니다. 전혀 외모에 신경 안써도 됩니다. 내면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은 밖으로 인품의 향기처럼 자연스럽게 스며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눈에 앞서 마음 관리가 우선입니다.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죄가 없어 마음의 순수가 아니라 끊임없는 무사한 사랑, 아가페 사랑의 실천과 함께 가는 마음의 순수요 맑은 눈빛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우리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습니까! 이런저런 영육의 병도 줄을 이을 것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이들의 육신은 저절로 영혼을 따르고, 땅에 보물을 쌓는 이들의 영혼은 저절로 육신을 따르게 되니 빛과 어둠의 삶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오늘 제1독서 열왕기 하권을 읽으며 사필귀정의 하느님 섭리를 봅니다.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의 진리를 배웁니다. 악명 높은 아합왕과 이제벨에 이어 여호람과 아탈야의 경우가 흡사합니다. 아합왕의 딸인 아탈야의 폭정이 극에 달했고 마침내 여호사다 사제의 등장으로 아탈야는 죽음을 당했고 여호아다 사제의 개혁이 시작됩니다.
무죄한 나봇을 살해 한 죄는 마침내 아합으로부터 시작되어 아탈야의 죽음으로 완전히 비극적 결과로 끝납니다. 모두가 하늘을 잊고 탐욕에 눈이 멀어 땅에 보물을 쌓은 자업자득의 결과요 하느님의 심판입니다.
여호야다 사제의 개혁이 참 신속합니다. 백성들이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있도록 질서를 바로 세우며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땅에 보물을 쌓는 삶을 상징하는 바알의 제단들과 상들을 산산조각으로 부수고 바알의 사제 마탄을 제단 앞에서 죽이고 주님의 집에 감독을 세웁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으로 시스템을 완전히 정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나라 백성이 기뻐하였고 도성은 평온해졌다 합니다. 참 기쁨과 평화는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에서 가능함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온맘과 온몸이 환한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알렐루야 복음 환호송이 복음을 요약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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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성심시녀회 김연희 마리아 수녀님]
(5분 아침묵상)
https://www.youtube.com/watch?v=-zeX7CPTi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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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 21)
우리의
마음으로
시선을 돌리는
시간이다.
가치 있는
삶으로
초대하시는
사랑의
주님이시다.
첫째로
주님께
마음을
여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삶의 새로운
시작이다.
우리의
마음이 맑으면
우리 삶의
열매도 따라
맑아진다.
올바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복음의 참된
삶이다.
마음이 깨어지면
그 어떤 것도
담을 수 없다.
마음은 물질로
결코 채워질 수
없다.
참된 사람의
도리는
하느님을 향하는
마음의 삶이다.
올바른
마음의 방향이
신앙의 참된
정체성이다.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회개의 시작이다.
우리 마음에
담아야 할
진짜 보물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마음이
있는 곳에
서로를 살리는
사랑이 있고
보물이
있는 곳에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의 보물은
마음이며
마음의 보물은
맑은 사랑이다.
복음은 마음이
향해야 할
사랑의 기쁜소식
마음의 실천이다.
일상의 실천이
참된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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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2013. 10. 24
연희동성당 류상현 스테파노
■묵상글 나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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