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세계적으로 다시 유행하는 단어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포퓰리즘이란 것이죠. 우스갯 소리로 표풀리즘이라고도 불린다고 하죠. 표를 부풀리는 행위라는 것이고 오로지 표만 의식한 행위라는 비아냥이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포퓰리즘은 라틴어인 populus(민중,대중)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일반 대중을 동원하여 권력을 획득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정치 시스템이자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형태를 일컷고 있습니다. 올해 전세계에서 무려 70개국 이상이 의미있는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이 포퓰리즘 단어가 다시 각광을 받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선거를 치르지 위해서는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유권자가운데는 부유층과 중산층 그리고 빈곤층이 두루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부유층과 빈곤층을 모두 만족시킬 정책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극과 극의 처방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중산층에 포커스를 두고 포퓰리즘은 발생합니다. 때론 부유층을 의식한 상속세와 재산세 관련 세법 개정과 빈곤층을 겨냥한 기초 지원금 인상 등이 포함됩니다. 국민들의 살림과 경제적 혜택을 주는 것이 전혀 이상하거나 나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나라의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채 무작정 표만 의식한 정책 결정은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킵니다. 독재주의 나라가 아닌 민주주의 국가에서 영구집권은 불가능합니다. 길어야 재선기간 포함해 8년을 넘지 못합니다. 특정 인물이 그야말로 표만 의식한 포플리즘을 남발했을 경우 그 다음 정권을 잡은 인물은 그 뒷감당을 하다가 임기를 소진할 경우가 허다합니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 아닌 그냥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판단한 정책결정이 얼마나 심각한 흔적을 남기는 것인가는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구상 선거가운데 가장 핵심은 뭐니 뭐니해도 미국 대선일 것입니다. 미국은 세계 경찰국가이자 명실공히 패권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세계의 정치리더라고 평가받고 있죠. 인품이 뛰어나서가 아니고 경제적 군사적 힘이 매우 강한 나라의 리더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미국의 대통령을 선출할 대선이 이제 9개월 남짓 남았습니다. 벌써 미국은 대선 후보자들의 경쟁으로 후끈거립니다. 현 대통령인 바이든과 전 대통령인 트럼프와의 재대결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82살의 바이든과 78살의 트럼프의 리턴매치가 세계의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대결을 보면서 정말 포퓰리즘의 전형을 보는 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트럼프는 오로지 백인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것 같고 바이든은 반 트럼프 정서를 파고 들기 위해 온갖 정책을 강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대외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한창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와의 전쟁이 바로 그렇습니다. 대선후보자들의 성향에 따라 정책이 왔다갔다합니다. 두사람사이의 교차점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인 상황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나 이스라엘의 총리 나타냐후도 미국 대선 승리자가 누구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대응을 하는 형국입니다. 미국 의회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립으로 우크라이나 지원은 중단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도 미국 유권자들의 생각이 그 정책판단에 근본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 대선주자들에게 근본적인 세계 평화나 인류 행복 추구 정신을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바이든은 어떻해든 재선만을 원하고 트럼프는 빼앗긴 4년을 찾아오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모습입니다.
오는 4월 총선을 치르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야 할 것 없이 포퓰리즘속에 갇혀 있는 상황입니다. 가계부채에 기업부채에 재정악화 등 경제적으로 엄청난 힘듬속에 놓여 있지만 포퓰리즘은 중단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멀리 바라보는 시각은 사라진지 오래됐습니다. 이런 상황은 비록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한국의 선거제도가 도입된 이후 이 포퓰리즘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하지만 잘 바라보아야 합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포퓰리즘은 그냥 재난입니다. 세상에 공짜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위정자들은 자신의 욕구를 눌러야 합니다. 없는 살림에 그냥 나눠주기만 하면 나라살림을 어떻게 유지하나요. 세금 덜 걷으면 가진 자들은 좋아하겠죠. 그러면 나라 곳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요. 또 선거후에 닥칠 엄청난 후유증을 어떻게 해결한 것인지 참으로 우려스럽습니다.
무모한 포퓰리즘으로 나라가 거덜난 경우를 우리는 현대사에서 많이 보아왔습니다. 한때 세계적으로 부유했던 나라들도 이 극심한 포퓰리즘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정치인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선거에만 몰입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선거에 이기고 짐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백팔십도 바뀐다고 하지요. 무슨 수를 동원하던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에 함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포퓰리즘은 막을 유일한 방법은 유권자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상황에 맞지 않는 정책제안이나 공약에 현혹되면 안됩니다. 그런 포퓰리즘의 깊은 골은 바로 유권자들 즉 국민들이 채워넣어야 합니다. 나라의 빚을 누가 갚아줄까요. 바로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몫입니다. 공짜로 받은 만큼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잘못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두눈을 똑바로 뜨고 정책과 공약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 바로 유권자들의 권리이자 의미입니다. 포퓰리즘이 만연한 정치치고 망가지고 붕괴되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2024년 1월 22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