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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HIS IS TOTAL WAR 원문보기 글쓴이: 젤레돈
이글은 오늘 애니타운 클라나드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클겟인들 역사 교육차원에서 올렸는데 아직 반응 볼려면 시간이 지나야할듯 하네요 12시 이후에 올려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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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한번 감자님이 훈족과 고구려와 동일 민족이라는 글을 퍼오시고 이에 대해 노빗타님께서 현 국사 교과서는 우리나라 역사를 축소해서 다룬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훈족과 고구려와 동류라고 말하는 그 독일의 다큐멘터리는 조금만 들여다 보면 역사적 약점을 쉽게 찾아볼 수 없습니다. 딱 보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써 갈겼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사실 저 훈족과 고구려와 같은 민족이라는 설은 원래는 흉노족과 신라인이 같은 민족이라는 설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런 주장이 나온 이유는 신라와 흉노 사람들이 같은 형식의 무덤인 적석목곽분(국사 책에는 돌무지 덧널무덤이라 나오죠)을 쓰는데 당시 고구려와 백제의 무덤과는 상이했거든요 게다가 일부 문화적 흔적에서 흉노족과 비슷한게 나오니 이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았죠
하지만 실상 고고학적 발견에서 같은 민족이라 주장했던 이 설은 오히려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보면 더 신빙성이 없습니다. 대체적으로 시기 차이가 심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대부분의 문화적 유산들과 그 양식 등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오히려 가끔씩 나타나는 비슷한면은 오히려 북방민족과의 교류로 인해서 생긴 것이라고 보는게 더 옳을 정도입니다.
만약 단순하게 일부 고고학 유물에서 비슷하다는 이유로 신라가 흉노 문화라면 토기와 같은 일상 용품의 경우에는 오히려 중국의 영향을 받은 와질토기와 경질토기가 최근까지만해도 경상도에서만 나왔으니 신라와 가야는 중국인들이 세운 국가라고 봐야겠죠(헌데 무서운건 실제로 중국애들 중에 이런 주장을 한 놈들이 있습니다 ㅎㄷㄷ)
(와질토기의 용어에 대해서는 최근 여러 이의를 제기하고 있지만 아직도 쓰고 있는 것 같고 딱히 대체할 용어도 없습니다. 경질토기의 경우는 확실하게 중국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경상도에서만 나타났던 이 토기들은 최근들어 충청도 지역에도 출토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주로 발견되는 곳은 경상도입니다.)
이외에도 예전에 토탈워 카페에서 이에 대한 반박 논리들이 많이 올라왔는데 그 글은 나중에 찾을 수 있으면 올리겠습니다.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과연 국사 교과서가 한민족의 역사를 축소-왜곡시켰냐는 것과 환빠들 말대로 우리 고대 역사는 진짜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냐는 겁니다.
실제로 이전에 료온님이 북한의 고구려 영토 지도를 올렸을 때도 그런 류의 반응을 보였던 클겟인들이 많았고(대부분 고등학생으로 생각되는)저 또한 옛날에 환빠(환단고기 빠돌이)였을 때 그런 생각을 가졌죠
하지만 어느 정도 역사에 대해 공부해보면서 느낀 것은 한가지 확실해지더군요...일단 국사 교과서가 어느 정도 왜곡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그 왜곡은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접근해서 약간 과장시킨 것이지요 ㅡ.ㅡ;;;
첫번째 예로 들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청동기의 역사를 BC10세기 즉 기원전 900년으로 표기하는 것과 고조선이 초기부터 국가였는지입니다. 뭐 정확히는 이 사실조차도 맨 끝에 있는 연표에서 언급하고 본문에는 제대로 언급 안해서 잘못하면 BC 2333년전 고조선 건국 때부터 청동기 시대인줄 아는 사람도 많지만 사실 BC10세기를 청동기 시대라는 것도 약간 무리가 있습니다.
일단 이 얘기를 하려면 석기-청동기-철기의 구분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사실 옛날에도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구를 통해 시대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 헤시오도스는 그의 서사시 [일과 나날]에서 인류의 과거를 다섯 단계로 나눳었는데 '불멸인들과 금의 시대' '은의 시대' '청동의 시대' '영웅들의 시대' '철과 극심 비탄의 시대'와 같이 말 그대로 시적으로 나눠놨죠
하지만 당연하게 근대적인 고고학에서 이런 분류는 사용할 수가 없었지만 한가지 인정해야 할 것은 확실히 인간이 쓰던 도구의 재료를 가지고 나누려고 했다는 시도입니다.(게다가 금은 인류가 최초로 쓴 금속일 가능성이 높죠)
이 시를 덴마크 코펜하겐 박물관 학예사 크리스티얀 톰센은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분은 발굴 및 전시 예정 유물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은 시대에 따라 인류의 도구의 주재료는 바뀐다는 거였죠 이에 착안하여 톰센은 인류의 역사를 도구의 재료에 따라 분류하는 삼시대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고고학과 역사학에서 인류 역사를 석기-청동기-철기로 나누게 됩니다. 그 이후 여러 유물들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면서 석기는 구석기와 신석기로 나뉘고(유럽의 경우는 구석기-중석기-신석기)이 분류법이 자리잡게 되죠
하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까지 고고학 발굴이 넓어지면서 이 방식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단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경우 철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문명권이었습니다.(아프리카는 북아프리카 제외)그리고 아시아의 경우도 문제가 많았는데
일단 한국과 일본만해도 이 시대구분의 제대로 된 적용이 어려웠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의 경우에는 미국처럼 자기 나름대로 시대 구분을 하여 구석기 시대 이후부터는 죠몽-야요이-고분 시대 등으로 구분하고 있죠 즉 사용한 도구의 이름과는 연관성이 떨어지는 독자적인 명칭을 붙이고 있죠
하지만 한국은 서양 고고학에서 만들어진 기준을 그대로 사용하여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중석기의 경우는 한국에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허나 여기에는 문제가 있는데 특히 청동기 시대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서양에서 청동기 시대는 청동기를 도구로서 아주 많이 사용하는 시대를 가르키죠 이는 무기와 문화도구 등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문화적 용도는 커녕 무기로서도 청동기는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청동기 시대로 구분되는 주거지 군락에서도 발굴을 하면 대부분 나오는 것은 일부 간석기정도이죠 심지어는 고조선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말하고 있는 지석묘(고인돌)의 경우에도 처참할 지경입니다. 대부분이 간석기로 만들어진 칼이며 동검은 아주 소수에 불과합니다. 더 나아가서 이 동검조차 재활용의 흔적이 보이고 이 시대 발굴을 해보면 거푸집도 제대로 발견 안외는데 이는 제작조차 못했다는 얘기까지 될 수도 있습니다.(괜히 초기철기 시대에 나온 세형동검이 한국식 동검이라고 하는게 아닙니다.)
즉 나오는 유물의 양을 보면 사실 청동기 시대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양이며 서양 기준으로는 청동기라 부르기 힙듭니다.(실상 이를 유럽에서는 청석기 또는 금석혼용기라고 부르거나 아예 신석기로 보기도 합니다.)더 나아가서 고조선의 대표적 무덤이라는 지석묘의 부장품을 보면 오히려 고조선이 국가라는 것을 부정하게 만드는 증거로도 보여지고도 있죠
특히 인류 사회 발전 단계도 복잡해서 도구 말고도 미국의 인류학자 엘만 서비스의 사회 분류도를 많이 쓰는데 인간 사회를 이동성 수렵채집집단-분절사회-군장사회-국가로 분류했는데 이 분류에 의하면 고조선은 국가가 아닌 군장사회입니다.(영어로는 치프덤 Chiefdom)
엘만 서비스의 군장사회의 특징은 사회조직은 세습 지도자하의 친족 토대계서 또는 고위 전사집단이고 경제조직은 중앙 기구의 축재와 재분배, 공예 전문화 일부 달성하고 있죠 그리고 가장 큰 예로 종교 조직에서 종교적 직무를 맡은 세습 군장과 대규모 기념물(영국의 스톤헨지가 그 예로 많이 들어지는데 우리나라의 고인돌도 그 예중 하나입니다)을 들 수 있습니다.
(국가 단계는 영어로 스테이트 State라 불리며 사회조직은 왕, 황제하의 계급 토대 위계와 군대 경제조직은 중앙집중화된 관료 조직, 공납토대 경제, 징세, 법이 있고 취락유형은 도시,읍,변경 방어시설, 도로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며 건조물로는 궁전,신전과 여타 공공시설물 등이 다양하게 나타나죠)
오히려 진정한 청동기 시대라고 볼 수 있는 시기는 BC4세기의 초기철기 시대때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당시부터 청동기가 상당히 많이 제작되며 다양하게 나오죠 게다가 이 시기쯤 되면 고조선의 무덤 양식이 적석묘 형식으로 바뀌는데 이때 나오는 부장품들을 보면 고조선이 중국 정도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국가로서 자리잡게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두번째로 과연 우리나라 고대 역사는 과연 중국보다 우월하며 흔히 주장하듯이 홍산 문명이 한민족의 문화권에 들어올 수 있느냐 입니다
흔히 환빠들이 주장하는 환국은 1만년전 부터 국가를 세우고 배달제국은 거의 기원전 4~5천년 전에 나라를 세우고 중국을 지배했다고 하죠...
헌데 말입니다. 왜 중국 신석기 시기의 토기와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토기는 왜이리 차이가 큰걸까요??
북중국의 대표적인 신석기 중기 문화인 양사오 문화의 토기
양사오 문화 토기 중에는 훗날 한자와 비슷하게 생긴 문양도 나오고 있습니다. 환빠식의 주장이라면 우리나라 토기에 저런게 나오면 바로 한자의 기원을 우리라고 주장하겠죠 하지만 중국에서조차도 이것을 한자의 기원이라 보지도 않습니다. 일명 문자의 특징인 분절성과 대표성 등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거 우리나라 신석기 대표 토기인 빗살무늬 토기(물론 빗살무늬 토기보다 더 오래된 덧무늬 토기도 존재하며 이외에 찍은 무늬토기, 태선문토기, 겹입술토기 등 다양합니다)와는 전혀 다른 퀄리티를 보여주는 것은 제 눈이 썩어서 그런 걸까요?? 어떻게 된게 중심 문명지인 환국의 만주와 한반도보다 중원지역이 훨씬 발전해 보이는 군요
또 다른 북중국의 대표적 신석기 중기의 다원커우 문화도 아무리봐도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와는 전혀 다른 기형을 보이고 있군요
심지어 석기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이건 골기 즉 뼈제품입니다...
이건 최근에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우리 역사를 빼앗는다면서 그 문명중 하나로 들고 있는 홍산문명의 토기
자 과연 무엇이 우리와 비슷할까요??
이건 여신묘라는 신전 유적에서 나온 여신 두상...이런 유물과 유적이 우리나라에서 나왔나요?? 전 청동기 시대에도 제대로 된 신전유적 나왔는지도 모르겠던데??
홍산문명의 옥기 우리나라 고조선 관련 유물 중에 옥기가 나오던가??아니면 신석기 시대 유물에서는??
사실 환바들 주장처럼 홍산문명을 중국의 문화로 넣기에 무리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이들의 문명은 상당히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며 문화 양식조차 중국의 중심 신석기 문화인 양사오 문화와 다원커우와는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신석기와는 넘사벽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죠
물론 단순히 화려하게 보인다는 이유로 그 문명이 발달했다고 할 수는 없죠 실제로 그 예로 일본의 죠몽토기를 보면
물론 죠몽토기가 다 이런건 아니지만 이런 우월한 퀄리티를 발휘하는 작품이 최소한 한국의 신석기 토기보다는 많습니다. 게다가 죠몽토기의 등장시기는 BP 1만년(BP는 1950년을 원년으로 함 즉 BC 8000년 경)전에 토기가 등장합니다. 이는 세계 기준으로 무려 구석기 시대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입니다.
(다만 최근 10년 동안의 발굴조사 결과 아무르 유역에서 죠몽토기와 비슷한 시기의 토기들이 출토되었고 남중국 유역에서도 이보다 더 오래된 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오래된 토기가 나오지 않았고 다만 강원도 오산리에서 아직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BC6000년 이전에 나왔을 거라고 보는 갈색 민무늬 토기편이 발견되긴 했습니다.
참고로 말하면 죠몽 토기는 우리나라의 토기 제작기술과는 상이합니다. 물론 당시 일본과의 교류로 인해 남해안 지역에서 죠몽 토기가 일부 발견되긴 합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토기 기술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야요이 시대때부터 입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아직 농경이 시작되지 않았고(한국도 신석기 시대에 제대로 농경이 자리잡은 증거는 사실상 없으며 농경이 주라고 하기도 힘든건 마찬가지다. 물론 최근 소로리 볍씨의 경우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순화벼로 구석기시대부터 농경을 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에 대한 고고학계의 비판은 상당하다.)전반적인 발전 단계에서 중국과 비교하기도 뭣하였죠 즉 토기 퀄리티만으로 당시 죠몽 문화가 한국 신석기보다 앞섰다고 하기는 무리죠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런 기형과 기법의 차이는 두 문명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는 중국 토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즉 흔히 환빠들이 말하는 우리가 지배했다는 중국과 우리의 문화는 확실하게 다르고 이는 환빠들의 주장을 부정하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홍산문명은 ㅡ.ㅡ;;;
그리고 배달국은 중국을 영향권에 두고 지배하며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드립하며 심지어 은나라는 동이족의 나라라고 주장하는데...
중국 최초의 국가 하나라일 가능성이 무진장 높은 얼리터우 문화(기원전 2000~1600년)의 청동기입니다. 이 청동기에는 도철문 일명 탐욕스런 도깨비 무늬가 새겨져 있고 뤠어라는 학자는 이를 5단계로 구분했습니다. 그 단계의 기준은 문양이 점점 선->면으로 그리고 평면->입체로 가는 형식이죠 위 사진은 뤠어1,2
뤠어 2,3
뤠어 3,4
뤠어 4,5
그런데 어째 더 발달한 중심국가에서는 이런 퀄리티는 커녕 이 시대에 청동기가 발견조차 되지 않죠?? 분명 배달국은 만주와 한반도가 중심이었으니 한반도에도 이런 류의 청동기가 나와야할텐데??한국의 청동기는 기원전 10세기죠 ㅋㅋㅋ
자랑스런 우리민족 동이족의 국가인 상(흔히 은나라라고 부르는)의 토기 기원전 1600년경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 토기에 이런게 있던가??
상의 청동기 도끼 이건 부호라는 왕비의 무덤에서 발견된 것이며 용도는 순장자들의 목을 치는 용도입니다 ㅎㄷㄷ
좀 더 시내가 내려가서 주나라 시기에 발견되는 주나라는 아니고 삼성퇴 지역에서 나오는 청동기 이 문명은 당시 중국 주력 문명인 주와는 다른 유형의 청동기가 조금씩 나옵니다. 헌데 위대한 고조선보다 야만인인 주나라와 그 곁다리 사회에서 어재 고조선보다 훨씬 퀄리티 높은 청동기가 쏟아져 나올까요??
삼성퇴 유적에서 나온 인명상 청동기
신간 유적의 청동 도끼로 주나라와는 다른 문화임 물론 삼성퇴와 신간도 주나라와 교류해서인지 비슷한 청동기는 많습니다. 위의 도끼 용도는 순장자의 목을 자르는 용도로 그 용도에 걸맞게 생겼군요 ㅎㄷㄷ 참고로 순장자 중에는 여자아이들이 꼭 있더군요 ㅠ.ㅠ;;
이건 중국 최대 혼란기중 하나인 춘추-전국시대 증후을이라는 어느 제후의 무덤에서 나오는 청동기 어찌된게 야만인 문명의 청동기 퀄리티가 훨씬 높은 듯 하네요 ㅡ.ㅡ;;;
뭐 여기까지 잘 참아주고 읽고 사진을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도무지 우리의 신석기-청동기 문화 시기에 등장했다는 환국과 배달국이 중국을 지배했다는 것을 알 수가 없죠 오히려 퀄리티와 시기 마저도 중국에게 뒤지는 위엄까지 보여주고 있을 지경입니다 ㅋㅋㅋ
그런데 이런 증거들을 내놔도 이놈의 환빠들은 모두 조작이다. 중국이 고대부터 우리의 유물-유적을 파괴한 것 때문이라고 드립치고 앉아있습죠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이 시기 유물이 나오는 상황인데 ㅋㅋㅋ
이글은 오늘 네이버 애니타운 클라나드 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한 게시판 사람이 훈족과 고구려는 같은 민족이라는 글을 퍼오고 올려서 그에 대한 반박을 쓰고서 이곳 게시판 사람들에게 환빠의 억지에 대해 쉽게(?)설명하기 위해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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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런 환빠들의 역사 왜곡은 유치하고 치졸하죠 차라리 일본의 내선일체와 2차 대전 당시 폴란드 침공의 명분을 준 주거지 고고학 창시자(이 사람 이름 까먹었음 데헷~~)정도의 퀄리티를 보이면 모르겠는데 이건 그냥 뭐...
그런데 진짜 문제는 현재 우리 역사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실제로 제대로된건 관심조차 없는 한국인들 대부분은 이렇게 환빠들이 주장하는 우리 민족의 위대성에 하악하악 해대면서 우리 민족 만만세를 부르며 자위하고 앉아있고 더 나아가서는 이를 강요하고 있음 ㅋㅋㅋ
실제로 이 덕분에 중국과 관계가 최근들어 더 나빠지고 있으며 더 나아가 외국인 앞에서도 포교했다가 더 망신살만 당하고 있죠 ㅋㅋㅋ(외국애들도 자국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애들 많긴한데 문제는 이런 내용 포교할 때 관심 조금이라도 있는 애들은 그 증거의 타당성을 요구합니다 ㅋㅋㅋ)진짜 엉뚱한데서만 민족주의가 발휘되고 있는 현 한국의 실태입죠
아니 정확히 말해서 복잡한 것은 귀찮으니까 그냥 쉽게 자위할 수 있는 부분에서 만족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환빠들이 주장하는 것은 마음을 울렁이게 하고 재밌거든요 그래서 국사 따위는 잘못된거라 믿기 싶고요
물론 국사가 어느 정도 잘못되긴 했죠 일단 이 교과서도 상당히 민족주의적이니까요 ㅋㅋㅋ 그런데 문제는 이보다 더 증거도 없는 역사를 주장하고 앉아있고 실제로 이런 역사 내용이 군대 정신교육에서도 나올 정도이니 그나마 고고학도인 제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