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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불교권 국가에서 불교가 정치, 경제, 문화, 종교적으로 실제로 그 나라 국민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 실제로 불교의 신앙목적은 실천입니다. 어떤 절대자의 힘에 의하여 신앙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는 자기 자신의 수행과 실천에 의하여 붓다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철저한 자기 자신의 수행을 통해 진리 즉 해탈의 길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불교는 神이 없는 종교인 동시에 범신론(凡神論) 입니다. 불교는 인간의 윤리문제를 깊이 다루고 있어 윤리적인 사상이 지배한다고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중생을 죽이지 말고, 주지 않은 것을 훔치지 말고, 음행하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고, 술을 팔지 말고, 허물을 말하지 말고,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비방하지 말라. 제 것을 아끼려고 남을 욕하지 말라. 성내지 말고 참회를 잘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불교의 교리 사상을 보면 삶의 영역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불교는 실천적이면서 윤리적이어서 국가 지도자나 국민들에게 정신적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한국과 중국의 북방불교와 소위 ‘소승불교’라 불리는 남방불교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에 따른 선교전략에도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 아시아 특히 소승불교 지역은 대만은 불교 인구가 70%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87%이상, 태국은 94%의 불교 인구가 있습니다. 이들 지역에 대한 선교 전략은 북방지역과는 다른 전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전략적 구상은 지역과 기후, 정치, 경제, 문화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불교는 공통적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부처는 자기를 의지하고, 스스로 진리를 깨닫고, 명상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데 열중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뿐 아니라 불교는 자기 스스로 하라. 의지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전략적 사고를 다양하게 전환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남방불교나 소승불교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언제 절에 갑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그에 대한 답을 주는 사람이라면 전도의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입니다. 이들에게는 불교의 형상도 좋고, 부처도 좋고, 어떤 종류의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불교 신자이지만 이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선교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불교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정령숭배적인 사람, 정치적으로 불교를 믿는 사람, 명목상의 신자, 올바른 진리를 발견하고자 최선을 다해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전도는 예수는 당신이 섬기는 부처보다 더 능력이 많다고(?) 전하는 적극적 전략입니다. 이들이 예수를 믿기 전에는 집안에 불상이 있지만 영접하고 나면 불상을 버리거나 태울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습니다.
또 다른 효율적인 전략은 이들이 믿고 있는 종교, 문화, 풍습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저들이 그 종교의 상징 불상에게 머리 숙이는 것, 아무런 답변을 얻지 못하는 우상 앞에 향불과 과일을 바치는 것, 헛된 것에 마음과 정신을 빼앗기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접근해야 합니다. 그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북방 지역의 불교는 대승적 차원에서 韓國語나 中國語를 통해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남방불교 지역에서는 산스크리트語나 아니면 그 지역의 언어를 통해 접근하면 더 좋습니다. 언어는 복음전도의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접촉점을 찾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로 접근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또한 그 지역민에게 기독교의 사랑을 충분히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최상의 봉사, 최고의 사랑은 지역민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은 어느 지역이나 필요하지만 불교인들의 세계관 깊숙이 파고들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남방 불교인들에게는 불교의 교훈법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석가모니는 그의 교훈을 많은 비유와 예화를 들어 이해를 도우면서 듣는 자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남방불교 지역은 농경문화가 더 많기에 그들에게 가장 쉽고 간결한 교훈식 방법으로 복음을 소개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때로는 불교권에서는 능력전도가 필요합니다. 불교가 살아 숨쉬는 지역에는 다양한 神像과 神들과 靈들을 믿는 汎神論的, 多神論的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불교인들 가운데 질병의 치유와 축복을 사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의 기본적 욕구 충족을 채워주기 위해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쫒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능력을 행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불교지역 선교 전략가들은 철저한 성령의 인도함으로 능력을 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Q. 불교문화권에서 특징 속에서 복음이 뿌리 내리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사역 도중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 불교 문화권은 유교와 같이 가족적 유대가 아주 강합니다. 태국이나 인근 소승불교 지역에서 불교인이 기독교인으로 개종한다는 것은 가족과의 이별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가족 공동체 즉 가족 내에서 장남의 권위는 매우 강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선교하기 위해서는 교회와 신자들의 사회적 존경과 신뢰성을 높이 것이 급선무라 할 수 있습니다. 보통 불교권의 사람들의 생각에는 기독교인으로 살면 가난하고 사회적 명성이 그리 높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점을 극복하는 길은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부유함과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불교지역에서 복음전도자의 淸淨性과 신뢰성, 통전성이 요구됩니다. 불교권에서 종교를 가진 사람은 친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을 감안하면 선교사도 친절하고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자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불교는 세상, 자신의 영원함 부정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선교사가 사치스럽거나 호화롭게 사는 것은 그들이 道를 닦는 것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이들 지역에서 생활하는 선교사는 청빈(淸貧)하고 때로는 절제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 즉 복음전도의 방해 요소가 무엇인가를 질문하셨는데 불교권 사회와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어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통찰하지 못한 것이 장애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불교권의 종교적 신념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종교적 권위에 대한 상호 충돌되는 입장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교 지역의 사람들이 종교의식에 참가하지 않는 것은 국가의 권위에 대한 도전적인 행위로 보는 것입니다(태국의 경우). 종교적 관계는 특정한 형태의 권위에 대한 헌신과 복종을 항상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교도들은 승려를 권위적인 존재로 받아들입니다. 셋째는 선교 국가의 지도자의 최소한 부분의 찬성을 얻지 못할 때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불교권의 복음을 전하려는 언어가 되지 않을 때입니다. 넷째는 그들이 갖고 있는 세계관을 뛰어 넘지 못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다섯째, 불교지역이라 해도 그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민족주의적 전통신앙이 장애일 수 있습니다. 여섯째, 앞에서 언급했지만, 불교문화도 중요하지만 그들 안에 지배하고 있는 조상숭배로 인한 것입니다(베트남). 베트남은 표면적으로 불교가 지배적입니다. 대승불교가 70-80%이며, 소승불교는 20%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들 안에 잠재되어 있는 샤마니즘과 조상숭배는 기독교복음전도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베트남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나는 불교인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하여 부모님께 물어보아야 합니다”라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베트남에서 복음전도의 장애요인은 조상에 대한 신뢰가 너무 커서 어렵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또 하나는 베트남의 정치적 즉 이데올로기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의 정신사는 불교이지만 사회적 배경에는 공산주의 지배를 받고 있어 장애 요인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들 지역에서 복음전도는 소승불교보다는 대승불교가 복음전도에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이유는 대승불교는 대중적이고, 소승불교는 자신이 도를 깨달아 부처가 된다는 사고가 타종교를 수용하는데 장애요인이 됩니다. 한마디로 수용적 측면에서 더 폐쇄적이라고 보면 됩니다.
Q. 선교사님의 사역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를 부탁드립니다.
A. 이 부분에 대한 답변도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다 소개하기보다는 하나만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우선 2001년경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태국의 치앙콩에서 좀 떨어진 산지족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물론 이 지역은 전통적인 신앙과 불교가 혼합된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은 불교사원이나 의식보다는 전통 신앙적 의식이 더 가까운지도 모릅니다. 그곳에서 제가 사역하는 동안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이 기본적인 세계관이나 가치관은 불교적입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들어가 복음을 전하길 시작했고,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단기팀과 함께 “창세기에서부터 예수의 부활까지”라는 무언극을 보여주고 영접을 시작했습니다.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기도도 해주고요. 특별한 기도를 받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 결과 35명이 예수를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제 평생에 이렇게 희열을 느끼는 것은 처음입니다. 저는 예수의 사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라고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마을에는 교회를 세워달라며 어느 한 사람은 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곳에 교회를 세웠고, 지금은 현지인 목회자가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이 사건도 아주 의미가 있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주의 날개아래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Q. 많은 서구의 사람들이 정신적 공허함을 느끼고, 그 대안으로 동양사상으로 눈을 돌리며 현재 불교는 굉장히 각광받고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종교 중 하나입니다. 서구 기독교의 어떠한 모습이 서구인들로 하여금 교회를 등지고 불교에 열광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모습이 선교지에서 어떠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시는지?
A: 네, 아주 현실적인 질문입니다. 이 부분은 선교지나 선교학 분야에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입니다. 우리는 흔히 서양에는 기독교의 토양아래 발전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물론 기독교적이지만 1400년 동안 이슬람과의 집요한 분쟁도 있었습니다. 또한 역사적으로는 산업화와 실용주의 문화가 서구사회를 지배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에는 서양인들이 동양 종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서양인의 동양 종교에 대한 관심은 여러 상황이 있겠지만 한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서양과 동양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는 것입니다. 동양 즉 인도나 태국 문화권을 접하기가 매우 용이하다는 것입니다. 인도나 태국은 다종교, 다원화된 문화가 있는 곳입니다. 이곳을 관광하면서 동양 종교를 접하는 가운데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동양종교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명상을 통한 자기 성찰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런 요소들이 서구인들의 정신적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것으로 알고 각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셋째는 불교적인 명상 즉 동양 종교는 인터넷을 비롯한 매스미디어를 통하여 가르침을 통하여 가장 국제화된 양상으로 번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포스트모던 시대의 명상은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게 하는 통로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유럽으로 이주하는 아시안들의 정체성이 큰 영향이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달라이 라마의 성스러운 삶 즉 언어와 생활이 실용주의로 젖어 있는 서구인들의 가치체계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불교가 갖고 있는 서구인들의 탐욕을 비평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서구인들이 고민하고 있는 삶의 대안을 제시하여 주었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서구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등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과학문명 입니다. 우주탄생과 생명체의 탄생의 발견입니다. 단적인 예로 지구탄생이 약45억년전에 탄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약 5천년 밖에 되지않습니다. 이젠 창조설을 과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내부적인 문제로 교회의 타락과 권위주의적 태도라고 봅니다. 성직자들의 타락과 권위는 너무나 먼 당신처럼 거리가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기독교 신학이 실천적 이성이나 합리적, 다원주의적인 이론에 깊숙이 관여함으로 기독교 본질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한마디로 서구인들이 기독교에 대한 실증이 곧 동양 종교인 불교에 열광하게 된 요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서방에서의 불교에 대한 관심은 인과응보, 열반, 윤회, 달라이 라마, 만다라와 부처는 21세기에 사는 우리들과 심지어 기독교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도 한 요인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적극적인 홍보, 미디어를 통한 관심고조 등이 그렇습니다. 아무튼 불교는 현 지구촌에 큰 영향을 계속 급속도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서양에서 불교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2000년 1월Civilization이라는 잡지에서는 “서구문화에서 불교는 그 내부로 들어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헐리우드에 의해 이런 흐름은 계속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와 관련된 사람들의 정체성은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서구에서 불교의 사원들은 아시아에서처럼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프랑스와 독일, 영국 등에 번지고 있습니다. 아무튼 다양한 모자이크와 같은 불교의 수용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대중의 종교로 대중화하는데 역할을 잘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른 신앙체계와 혼합된 불교의 개념은 토속불교로 태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로 인해 불교 인구는 세계적으로 이슬람과 맞먹는 15-17억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생각해야 될 부분입니다. 왜 서구에서 교회를 등지고 불교에 열광하게 되었는가 입니다. 여기서 핵심적인 분야를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불교의 성장은 토속 불교의 대중화의 흐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2001년 11월 호주 시드니에서의 불교 전시회에서 주안점은 불교가 단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있음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불교측에서는 주장합니다. 현재 호주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는 불교라고 할 정도입니다.
둘째, 불교의 성장은 불교 선교사들의 노력에 기인된 것입니다. 2001년 미얀마 양곤에서 새로운 소승불교 선교훈련 대학이 개교하였습니다. 이미 다양한 지역의 국제 학생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2000년 7월 방콕 포스트지에 의하면, 200명의 산족들이 태국 공공복지국과 불교도들의 지원을 받아 승려가 되는 의식을 행한 기사가 있습니다. 또한 몇 년 전에 태국의 한 여성은 스리랑카의 지원을 받아 승려가 되었는데 이것은 새로운 경향이 될 수 도 있습니다.
세 번째, 불교의 성장은 거대하고, 화려하고 웅장한 사원들과 건축미와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무슬림 국가인 말레이시아에 가장 큰 불상이 세워졌습니다. 이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절입니다. 아프카니스탄의 고대 불상이 텔레반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근처의 무슬림 국가인 타지키스탄에 열반하는 불상이 다시 복구되었습니다. 2002년 중국 남부의 운남성에는 거대한 불교종합관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최근 불교국가인 미얀마의 고대 도시 파간에 있는 5,000여개의 불상 중 2,000여개의 불상이 새롭게 다듬어 졌습니다. 2001년 8월 아시아를 제외하고는 가장 큰 사원이 미국의 로키산맥 근처에 세워졌습니다. 이 사찰은 유명한 티벳불교의 명상 승려가 주도하였는데 그는 서방 지역 종교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불교확장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또 그는 전 세계적으로 250곳의 명상센터를 네트워크 할 정도로 성장하였습니다.
넷째, 지난 45년 동안 또 하나의(네 번째) 괄목할만한 불교 팽창 운동은 인디아의 4 곳의 주와 관련된 것입니다. 네 주에 있는 하류층(low-caste) 700만 명이 집단적으로 불교로 개종하였습니다. 지금도 계속 개종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큰 대규모의 집단개종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불교가 중국에서 부흥하고 있다는 것인데, 많은 젊은이들과 전문직업종사자들이 전 중국에 걸쳐 절을 방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목할만한 불교의 부흥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하나의 새로운 영적 파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태국의 오영철 선교사와 알렉스미스박사는 깊은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알렉스미스박사는 “우려되는 교회의 모습”이라는 글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불교의 성장은 전통적인 불교유산에 의해 통제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교회에 대한 우려들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첫째는 교회 지도자들이 왜 많은 교회가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효과적으로 사역하지 못하고 있는가? 또한 그들의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하자 그 답을 아시아종교들의 새로운 영적인 흐름에서 찾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더 나아가서 일부 기독교인들은 스스로를 “JESUS BUDDHISTS"라고 부르고 심지어 일부 신학교에서는 세미나까지 개최하였는데 이러한 혼합주의양상은 전통적인 교회속에서 긴장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런 혼합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혼동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타종교와의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것입니다. 교회가 불교와의 대화가 가능하며 또 불교사회에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복음전파와 관련하여 예배 때 사용이 가능한가라 질문입니다.
지금까지 서구기독교가 힘을 발산하지 못하고 불교가 오히려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깊어 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면 불교가 국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불교는 서양세계까지 소개되어 다양한 사회의 한 모자이크 조각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 불교는 여전히 아시아 지역에서 중심 세력을 이루고 있습니다. 21세기 들어 불교는 점점 더 세계의 중요한 종교가 되었습니다.
왜, 불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다원화된 사회에서의 명상불교 실제입니다. 그 핵심은 세속화된 세계관에서 비신화적인 명상불교는 유럽에서 중심 계몽의 모습으로 역할을 통한 확장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신화적인 요소의 대승불교보다는 소승불교에 중심이 모아집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신지학적인 학자들이 불교의 뉴에이지적인 형태로서의 불교를 선호하는데서 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뉴에이지적인 명상불교는 서구의 모든 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서구사회에서 기독교의 미지근한 영향력은 다양한 문제점들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우려의 모습인가를 발견하고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서구인들의 세계관에 새로운 영적 능력을 경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 개발과 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Q. 불교문화권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A: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불교 지역의 사람들은 불교의 시설과 내부적으로 불교의식이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둘째, 마을마다 차이는 있지만 누가 마을에 불교를 전래했는가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카렌족 가운데 똠은 마을 스스로 만든 규율을 정해 지키고 있습니다. 이 마을에 최초로 쿠루바 웅사가 방문하면서 불교가 전래되었는데 그로부터 지금까지 불교적인 마을의 특징이 있다. 이 마을은 쿠루바 옹사의 가르침을 따라 정해진 규율은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동물을 죽이지 말 것, 둘째, 노름하지 말 것. 셋째, 거짓말하지 말 것. 넷째, 도둑질하지 말 것. 다섯째, 술이나 마약을 하지 말 것 등입니다. 위의 내용은 불교의 가르침과 관련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어디를 가든지 보이는 닭, 돼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육식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불교의 절기에 따라 종교의식을 지키고 있습니다. 보름달이 되면 오전은 절에서 오후는 짜이 반에서 종교의식을 통한 예불을 합니다.
넷째, 불교지역의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종교 생활로 시작하고 종교생활로 마무리합니다. 종교생활의 출발은 집에서 시작합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집안에 있는 조그만 불상에 예불의식을 합니다. 그날 먹을 식사를 중심으로 예물을 준비하고 불상앞에 바칩니다. 그리고 주문을 외웁니다. 부처상은 숭배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능력과 안녕에 대한 요청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다섯째, 아침마다 불교의 승려들이 시주를 위해 지역을 돕니다. 이때 불교인들은 승려들에 대하여 보시를 합니다. 이는 불교 공동체를 의미하고 불교를 중심하여 모든 일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섯째, 지역과 국가 또는 종족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태국의 경우는 육식도 합니다. 태국인의 90%가 불교도이지만 육류인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섭취하는 것은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지역에서는 금욕주의적 채식생활을 합니다. 불교 지역에서 금욕주의적으로 생활하는 것은 단순히 채식, 육식이라는 문화보다는 공동체의 운명과 관련된 믿음 때문입니다.
일곱째, 절 중심의 삶입니다. 절 중심의 삶은 이들이 누구인가를 다시 확인하고 후손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이 됩니다.
여덟째, 국가의 지도자를 부처와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현재의 왕에 대하여 미륵불로 이해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아홉째, 불교지역내의 종족간에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종교 민족주의입니다.
위의 내용은 불교권 사람들의 삶의 특징입니다. 불교인들의 삶의 저변에는 불교의식과 세계관, 불교지도자의 카리스마가 막강한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Q. 불교권에서 선교사가 사역하기 위해 특히 문화적 상황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A: 불교권의 상황에서 선교사가 사역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들은 타종교에 대한 인식이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릴적부터 믿어 왔던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자존감이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둘째, 종교로서 불교에 대한 부족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내가 불교인으로 당신들이 하는 일만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종교로서 인간의 생사화복에 대한 선명한 답을 주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불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는 나쁜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의 종교라고 봅니다.
셋째, 그들의 영적 대결이라는 차원에서 접촉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들이 믿는 불교의 영적 역할을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당신이 믿는 종교는 마귀적인 것이다라는 표현은 삼가야 합니다. 이유는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불교인들을 향한 접촉은 문화적 상황에서 그들의 입장에서 깊은 이해와 조망을 해야 합니다.
넷째, 현재 불교권에서 사역하는 교회, 선교단체를 방문하여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랜 경험을 가진 그들과 대화한다는 것은 또 다른 전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Q. 불교권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훈련 중인 예비 선교사들에게 조언을 주신다면,
A: 먼저 불교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범불교권을 바라본다면 불교 인구는 15억-17억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장 복음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불교권입니다. 최근에 기독교인들이 불교권으로 접촉하는 것보다 불교권이 서양으로 전파해 들어가는 것이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는 달라이 라마의 영향과 동양 종교의 선호 즉 명상과 기훈련 등에 대한 이미지가 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한국 선교사로서 불교 지역을 선교하는 것은 큰 자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불교권에서 이미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을 어떻게 양육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활동하도록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실제로 불교권 선교사 후보자라면 불교권에서 자신이 실제적인 사역을 하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셋째, 불교권을 지망하는 선교사라면 선교 대상으로 하는 불교 즉 소승불교, 대승불교, 라마불교, 특히 서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명상불교 등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해야 합니다.
넷째, 사실, 불교권 선교는 영적인 능력 즉 불교권 지도자보다 높은 청정성과 영적인 교감, 권위, 능력을 삶속에서 소유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선교사 자신의 높은 영적체험련으로 말씀 묵상과 기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Q. 끝으로 불교권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가장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대목부터 알아 봅시다.
1,불교인들은 유대민족의 건국신화, 여호아라는 서양 유대神이 지구를 창조했다는 이 말에 매우 거부 반응을 일으킴니다. 각 민족 마다 건국 신화가 있다. 韓國은 단군님이 신단수로 내려와서 건국 했다는 신화. 中國은 복희씨가 건국신화, 日本은 천조대신....각 나라마다 민족마다 건국 신화가 있다는 것으로 본다.
2,地球의 歷史가 겨우 5000년도 채 안된다는 창조설에 심한 거부감를 느낀다.
3,아무리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여호아 서양 神 안 믿으면 지옥간다. "여호아라는 서양 神 믿어야 구원 받는다"에 대해서도 심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 예를들어 세종대왕, 이순신... 지옥 갔단 말이냐?
4,"우리 한국의 조상들은 서양 神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다 지옥 갔다는 말이냐?" 이런 말이 바로 튀어 나온다. "우리 한국의 조상은 검은 머리에 납작한 코다" 그런대 왜 뽀족코 노랑머리를 우리조상이라고 우기느냐? 이런 말이 바로 튀어나온다.
5,불교인들에게 전도한다며 "예수천국 불신지옥" 피켓을 들고 다니며 불교인들을 은연중 협박하고 독설을 퍼부어대는 모습에 아에 등을 돌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불교인들이 기독교을 왜 싫어 하는가?> 에서 복사. 참고사항으로 올림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글을통해 현대불교가 세계적강세를 나타내는 현주소를 잘 보았네요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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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성불하세요_()_.
감사합니다.성불하십시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잠시 머물면서 즐갑하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고,행복하소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