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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지은이: 앙드레 코스톨라니 (옮긴이: 김재경, 펴낸이: 성의현)
출판사: 미래의 창
2001.02.10일 초판1쇄 발행, 2007.11.03. 개정판 5쇄 발행
서문
올해 2월 코스톨라니와 내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할 즈음에, 나는 이책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 서문이 추도문이 될 거라고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9월13일,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93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눈을 감았다.
이 책을 포함해 총 13권의 책을 남겼는데 이책들은 전세계적으로 각각 300만권이상 팔려 나갔다.
코스톨라니는 지난 35년 동안 수많은 대중 강연과 TV강연을 해 왔다.
그는 주식 투자의 원로였다.
그는 반드시 “나한테서 어떠한 투자의 비법도 기대하지 마십시오” 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국제적인 우량주에 해당되는 주식을 몇 종목 산 다음, 약국에 가서 수면제를 사먹고 몇 년동안 푹 자라.”
“자녀들의 교육에 투자하십시오!”, “인생을 즐기십시오!”
그가 투자할 때 심각하게 고려한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자신의 결정이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에게 투자행위는 ‘지적인 도전 행위’ 였다.
이 책은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최후의 역작이다. 1999년 초부터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이 책에 쏟았다. 파리의 집에 머물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이 작업을 끝마치고자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서문을 쓰지 못했다. 독자에게 빚을 진 셈이다.
1999년 12월 브레멘서 스테판 리쎄*
돈의 매력
1. 돈과 도덕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프란츠아시시, 마르크스, 요한 바울2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상가들은 한결같이 다음 질문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돈에 대한 욕구를 과연 도덕적으로 내세우고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돈에 대한 욕구를 비도덕적인 것이라고 말할 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정의로움을 가장한 질투가 불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욕구는 바로 경제적 진보의 동력이 될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창조력과 성실성을 투자하고 어는 정도의 위험 부담을 감수한다.
나는 돈에 대한 욕구를 토대로 형성된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옳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인간의 본성에 보다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누구도 돈에 대해 말하지 않아.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걸 생각하지.”
그들은 돈을 소유할 수 있다는 희망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을 택했던 것이다.
2. 돈: 자유 세계의 가치 척도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시간이 날 때마다 통장을 늘어놓고 잔고를 더해 본다. 또 어떤 사람은 예쁘고 비싼 물건을 얼마든지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지 않으면서 생각만한다.
그들은 돈의 효력을 느끼면서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다.
또 다른 한 친구는 돈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지갑을 어루만지면서 인생의 모든 즐거움이 수표에 응축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체험하고 한다.
다른 친구는 정산을 할 때마다 돈의 여유가 있으면 리비도가 샘 솟는다고 한다.
돈이 얼마나 있는지 계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돈은 힘과 지위를 상징한다.
돈은 육체적인 장애, 흉한 외모 등 어떤 것이라도 보상해 줄 수 있다.
돈은 그들에게 ‘명망 있는 가문’의 명예를 대치해 준다.
돈이 없으면 벌어야한다.
쇼펜하우어는 “돈은 바닷물과 같다.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더 목마르게 된다”고 했다.
몇몇은 돈을 버는 이유가 소유가 아니라 그 자체가 삶에 자극을 주기 때문이라고도 말 한다.
내가 투자를 해서 성공한다면, 단순히 돈을 벌었기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보다 올바르다는 것이 입중됐기 때문에 기쁜 것이다.
위대한 여배우 릴리 다르바가 설명하는 돈의 가치
“자, 앙드레씨, 저는 지금 아주 비싸고 매력적인 이 옷을 입고 파리 중심가로 나갈 겁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게 호감을 보이는지 보기 위해서이지요.
여자들이 치장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답니다.”
한 여자가 돈 때문에 어떤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건 돈은 성공의 표현이며, 그 여자는 바로 그 성공에 매료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백만장자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백만장자’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 부자를 의미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백만장자가 별로 큰 부자가 아닌 반면, 독일에서는 대단한 부자이다.
그리고 미국의 백만장자는 독일의 백만장자에 비해 두배 이상 부자일 것이다.
숫자만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의미가 전형 다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부자를 계속 백만장자라고 부른다.
나는 백만장자를, 자기 자본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바를 행하는데 있어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애써 일할 필요가 없으면 사장이나 고객에게 굽실거릴 필요도 없다.
자기와 맞지 않는 것에 맞추어 가며 살아야 하는 불편함 없이 달리 자신의 호사스럼움을 즐길 수 있다.
은행잔고를 만족할만큼 채운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그것은 부어도 부어도 끝이 없는 ‘밑 빠진 독’ 이다.
4.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돈은 뜨겁게 사랑하되 차갑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은 그냥 따라가서는 안되며, 오나시스가 이야기한처럼 돈에 정면으로 부딪혀야 한다.
상승하고 있는 주가를 뒤쫓아가기보다는 떨어지고 있는 주가에 정면으로 맛서야하는 주식시장에서 원칙은 더욱 유효하다.
돈에 대한 열정은 자칫 병적인 인색함이나 혹은 그 반대로 병적인 투자를 초래할 수 있다.
백만장자의 몇 배나 되는 돈을 가졌던 미국의 거부 풀게티 (Paul Getty)는 자신을 찾아온 손님이 전화를 하려고 하면 공중전화가 있는 곳으로 쫓아보낸 사람이었다.
인색한 사람은 물질적인 면에서나 정신적인 면에서나 결코 진정한 의미의 백만장자가 될 숭 없다.
백만장자라는 것은 ‘독립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수전노는 결코 독립적일 수 없다. 뭐든지 아껴야한다는 강박감에 눌려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돈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은 금지되어 있다.
낭비벽이 있는 사람도 독립적이지 않다.
그는 항상 돈을 써 없애므로 다시 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눌려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고용주난 고객, 혹은 수입의 원천이 되는 그 무엇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돈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이 두 양극단의 사이 언딘가에 있다.
그러나 돈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가지는 것만으로는 백만장자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5. 단숨에 백만장자가 되기
단기간에 부자가 되는 3가지 방법
(부유한 배우자를 만난다, 유망한 사업 아이템을 갖는다. 투자를 한다)
헝가리 천재 엔지니어였던 에르뇨 루빅 (Emo Rubik)은 20년 전에 마술 주사위를 발명해 공산권 최초의 백만장자가 되었다. 아이디어와 발명가 정신에 사업적 두뇌가 잘 결합 되어야만 백만장자가 될수 있다.
콜라 제조방법을 최초 개발한 약사는 단 돈 몇 달러에 코카콜라 창업자에게 팔아 넘겼다
6. 투자는 과학이 아닌 예술이다
나는 그동안 외환, 원자재, 현물, 선물 등 모든 유가증권에 투자했다.
나는 주가가 오른는 곳뿐만 아니라 떨어지는 곳에도 투자를 했다.
바람이 부는대로, 경제나 정치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호경기나 불경기에도,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이 있을 때에도, 가치상승이나 가치절하가 있을때에도 모든 영역에 투자를 했고 이렇게 잘 살아 남았다.
정말이지 1924년 이후로는 단 하룻밤도 주식을 생각하지 않은 밤이 없었다.
7. 나는 증권투자자였고 지금도 그렇다
언론에서는 나를 가리켜 ‘증권시장의 거목’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오랫동안의 경험을 쌓은 증권 전문가일 따름이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어제와 오늘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다.
‘투자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나는 ‘투자자’의 의미를 지성인이며, 정치와 경제를 진단하고 예측해서 그것을 토대로 수익을 창출하고자 심사숙고하는 증권거래인을 의미한다.
어떻게 투자자가 될 수 있을까?
호기심-> 재미-> 돈때문
투자는 매일매일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지적 행위이며,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필요하게 되는 정신적 체조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점점 줄고 있고 증권거래인들은 배부분 언행이 거칠고 볼썽사나운데다가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늘 갈팡질팡한다. 증권시장에서 오랫동안 카지노 노름만을 했을 따름이다.
1940년 초, 잘나가던 증거거래인이었던 나는 나치를 피해 파리에서 도망쳐 나왔다. 뉴욕 거주시 미국생활은 금방 지루해졌고 책, 음악, 극장보다 월급을 안받아도 좋으니 일자리를 찾기로 작정했다.
나는 가진돈의 이자만으로도 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골드만 삭스에 들어가기로 작정했다.
현재 1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그 회사는 예나 지금이나 월스트리트의 가장 부유한 회사 중 하나였는데 사람을 끄는 힘이 있었던 노인, 월터 삭스는 매우 친절하게 나를 맞아 주었다.
나는 히틀러를 피해 유럽에서 도망쳐 왔으며 젊은 나이에 비해 상당히 많은 자본을 가지고 있다 말하며
별도의 재정적인 지원은 필요없으며 골드막 삭스와 같은 좋은 회사에서 국제자본시장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몇일후 채용결과는 불가였다.
그들은 부유한 젊은 청년보다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야망에 찬 젊은이를 원했던 것이다.
얼마후 채용한 청년은 로버트 루빈. 이후 미국의 재무장관이 되었으며 몇십년 만에 처음으로 추경예산을 배분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았다.
증권동물원
1. 태초에 투기가 있었다
역사상 처음 투기는 이집트의 요셉이었는데 풍년에는 남아도는 곡식을 대량으로 저장했따가 흉년에 비싼 가격으로 시장에 내다 팔았다. 이미 4천년전에 과잉 생산물을 저장하여 미래의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한 계획경제의 아버지였는지, 단순히 상품을 사 놓았다가 나중에 비싸게 파는 역사상 최초의 매점매석꾼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동전으로 노름하는 것을 즐겼다.
그들을 ‘사다리의 곡예사’라는 뜻의 ‘트라페초이(Trapezoi)’라고 불렀다.
지중해 경제의 중심이었던 고대 로마 사람들의 주된 투기 대상은 곡물이었다.
당시의 유명한 변호사 키케로 박사를 초빙해 토지, 화폐, 상품등을 대상으로 한 투자에 대한 강연을 듣고 해결안을 모색하기도 하고 조언을 듣기도 했다.
키케로는 돈은 공화국의 신경이며 투기는 재산 형성의 모태라고 확언했으며 건설 프로젝트를 이용해 땅 투기를 했으며 일반적인 투자 형태였던 소작세로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투자자의 족보 중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 경은 번번이 실패하였다.
계몽주의자 볼테르는 곡물과 토지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며 투기성 짙은 외환 밀거래로 유명했다.
보마르세(18세기 프랑스의 희곡 작가), 카사노바, 발자크 역시 열정적인 증권투자자였다.
철학자였던 스피노자와 경제학자 리카르도 역시 대단한 투자자였다.
세계적인 투자자이며 오늘날 최고의 경제학자로 꼽히는 케인즈 경의 초상화엔 아래와 같이 쓰여있다.
“불로소득으로 부를 축적한 존 메이나드 케인즈 경.
그는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했던 1932년 미국 주식을 대대적으로 사들인 다음 호 경기에 이를 되팔아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는 증권투자자로 부를 축적한 얼마 안되는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투자자와 투자는 항상 있을 것이다.
투자의 역사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Homo Ludens)’로 태어나 놀면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바, 놀이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겠다.
나는 투자자를 흔히 알콜 중독자와 비교하곤 한다. 아침이면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저녁 으스름이 되면 칵테일 딱 한 잔만으로 바뀌었다가, 결국은 전날과 같은 밤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2. 투자,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투자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다음의 잠엄을 들려주고 싶다.
돈이 많은 사람은 투자할 수 있다. 돈이 조금밖에 없는 사람은 투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돈이 전혀 없는 사람은 반드시 투자해야 한다.
투자자의 첫 조건은 시작하려면 항상 어느 정도의 돈은 있어야만 한다.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아주 적은 금액으로도 얼마든지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투자는 지적 모험이지만 주식광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아무리 돈이 많은 부자라 할지라도 증권거래소에서 돈을 잃는 데는 그 한도가 없기 때문이다.
닉 리슨은 베링스 은행을 단 며칠 만에 망하게 했으며
앙드레 시트로엥은 몬테카를로의 노름판에서 자신의 자동차 회사를 통째로 날렸다.
투자자의 두 번째 물질적 조건은 시간적 제한 업이 돈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증권거래소에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노동을 한 대가로 ‘버는’ 돈과 주식투자를 통해 얻는 돈은 그 의미가 분명 다르다.
독일인들은 “돈을 번다”, 프랑스인들은 “돈을 얻는다”, 영국인들은 “돈을 수확한다”, 미국인들은 “돈을 만든다”, 헝가리인들은 “돈을 찾는다”고 말한다.
물질적 조건이 충족되어도 투자자는 또다른 준비가 필요하다.
주식 투자에 뛰어들려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정신적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주식투자를 한다고 해서 모두가 투자자는 아니다.
3. 중개인: 매상만 계산하는 사람
여기에는 주식 중개인, 시장 형성자와 브로커 모두를 포함한다.
브로커는 상담만 하고 고객의 주문은 중개인에게 넘겨준다.
이들의 관심사는 새로운 거래를 발생시키기 위해 고객을 자극하는 일이다.
중개인과 브로커는 고객들로부터 받는 수수료로 돈을 번다.
그들은 대부분 머리가 그리 명석한 편이 못 된다.
그러나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주식시장이 움직이는 것만은 틀림없다.
4. 머니매니저: 백만 달러의 지배자
증권에 몸담고 있는 두 번째 집단은 머니매니저 (펀드매니저, 자산관리사 포함)이다.
성공을 보장하는 주식, 채권, 원자재를 가려내기 위해 분석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들의 성공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5. 금융자본가: 시장의 큰손
자기 재산을 가지고 증권 거래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투자자라고 볼 수는 없다.
1백만 달러 이상,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금융자본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사업체에 깊숙이 관여하여 의결권을 확보하고 합병과 인수를 기획한다.
지분보유시 경영에 적극 개입하기도 하고, 사업체를 만들 때는 필요한 자본 조달을 위해 주식시장을 이용하기도 하며, 어떤 회사를 지재하고 싶다면 주식을 사서 그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하기도 한다.
이들의 목표는 항상 모종의 거래이며, 그 매매는 전체 주식시장을 흔들 만큼 큰 영향을 끼친다.
6. 차익거래: 이미 멸종하고 있는 거래
차익거래는 ‘공간상에서의 투자’이다.
오늘날의 투자는 ‘시간상에서의 투자’인데, 오늘 사서 나중에 비싸게 팔거나 나중에 더 싸게 사기 위해 오늘 파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반대로 ‘공간상의 투자’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같은 시점에 한 지역에서 사고 다른 지역에서 파는 것을 말한다.
이때 거래수수료보다 훨씬 많은 시세 차액을 얻는 것이 차익거래자들의 목표이다.
시간상투자자에 비해 공간상 투자자의 장점은 어떤 경우든 위험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두 지역의 증권시장 간에 상당한 차액이 있을 때에만 그는 중갱인에게 신청 주문을 하기 때문이다.
이미 이익이 얼마일지 알기 때문에 소액의 기회들을 포기하고 계속해서 시세를 관찰한다.
오늘날 이런 차익거래 투자자는 이미 거의 멸종했다.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가장 유명한 차익거래는 뉴욕 월스트리트와 시카고 상품거래소이다.
뉴욕증권거래소 시장 현황판에는 거의 매일 차익거래에 의해 형성된 프로그램 매매가 나온다.
주식 현물과 선물간에 상당한 시세차가 나타나면 컴퓨터는 자동적으로 주가지수 선물을 사거나 주식을 팔라는, 혹은 반대의 지시를 내린다.
이 지수선물 차익거래는 뉴욕 주식시장과 시카고 선물시장을 상호 연결시키는 파이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것이 1987년 10월 19일 사상 최대의 주가 폭락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7. 단기투자자: 주식시장의 사기꾼
주식시장에서 점점 더 커지는 집단은 단기투자자들이다.
그들은 투자자라는 칭호를 들을 자격이 없다. 미미한 주가 변동만을 이용하고자 한다.
위의 그림은 어느 일정한 시기의 시세 변화를 보여 준다.
단기투자자들은 X와 Y사이에서 수익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에 줄타기 고계를 해야 한다.
끊임없이 움직임속에서 정확한 순간을 포착하기는 어렵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망할 것이 틀림없다.
난 지금까지 80여 년간을 증권계에 몸담아 왔지만, 장기적으로 성공한 단기투자자를 본 적이 없다.
<헤럴드 트리뷴>지는 몇 년 전 매우 성공한 뉴욕의 외환딜러들을 인터뷰했더니 솔직하게 1시간단위가 아니라 2분마다 투자한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의 회사는 이런 게임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고 했다.
“그럼 사고 팔 때를 어떻게 결정하나?”라고 묻자
“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다른사람들이 하는대로 2분마다 한번씩 투자 놀음을 하기 위해 그 비싼 대학에서 그 어려운 공부를 했단 말인가?
독일은행의 외환관리부의 외환딜러들은 환율이 뭔지 아는냐? 는 질문에 모를것이며 별로 주요하지 않다고
중요한 것은 10분뒤에 달러가 어떻게 바뀔지 아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단기투자자들을 변호하고자 한다. 싫어하기는 하나, 그들이 주식 거래를 활성화시키는 데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단기투자자가 많을수록 시장이 커지고 유동적이며, 이 증권시장의 상승국면이나 하강국면에서 나타나는 불안정한 움직임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실린더가 많을수록 엔진은 무리 없이 잘 돌아간다.
주식을 사서 보관만 하는 장기투자자로만 시장이 이루어져 있다면 시장은 매우 비유동적일 것이다.
8. 장기투자자: 주식시장의 마라토너
몇 십 년 뒤의 노후 대책이나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남기기 위해 주식을 사 놓는다.
그들은 주식의 시세 변화에 별로 관심이 없다. 불황이 와도 주식을 줄이기 위한 시도를 하지 않는다.
장기투자자는 우량 주식에 투자하며 모든 종목과 여러 나라에 골고루 투자한다.
현재 가장 대표적인 대형 장기투자자는 미국과 영국의 연기금이다.
단기투자자는 장기적으로 항상 잃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 장기투자자는 언제 투자를 시작했든 장기적으로 이익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식은 하락하고 나면 항상 새로운 상승 기록을 세우기 때문이다.
장기투자자는 적은 액수의 돈으로 짧은 시간에 백만장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가능하다.
나는 현재 500종목 이상의 주식을 가지고 있지만 몇 년 전부터는 그 어떤 것도 팔지 않는다.
오직 추가로 살뿐이다.
난 여러분에게 장기 투자를 권하고 싶다. 장기투자는 모든 주식 거래 중 최고의 결과를 낳는 방법이다.
인간은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으로서의 본능이 숨어 있다.
80년 동안 나는 세계 외환, 유가증권, 원자재 시장의 순종투자자였다.
시황을 분석하고 결과적으로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은 사실 물질적인 보상 이상으로 내게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9. 순종투자자: 장기적인 전략가
순종(純種)투자자는 단기투자자와 장기투자자의 중간쯤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장기투자자들과는 반대로 순종투자자는 모든 뉴스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나 단기투자자들처럼 모든 뉴스에 반응하지는 않는다. 순종투자자는 X와 Y사이의 작은 흐름은 무시해 버린다. (앞 그림 참조)
순종투자자는 다양한 요소들을 염두에 두고 투자한다.
매일매일의 뉴스에 관심은 많지만 별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그는 지적인 구조와 전략을 세우고 매일 매일 일어나는 사건들과 이을 비교하고 평가해 본다.
순종투자자는 옳든 그르든 독자적인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며 단기투자자와 구분되는 차이다.
수동적인 참여자이며 시세 변동을 꾀할 수 없으며 오직 그 속에서 이익만을 얻을 따름이다.
“이 사회와 동떨어져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라고 말한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처럼 사고한다.
순종투자자는 시가 연기에 휩싸인 채 흔들의자에 앉아 세계의 소음과 동떨어져 혼자 심사숙고 한다.
그들은 신문의 행간 사이에 숨어 있는 그 무엇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투자는 부와 파산 사이를 오가는 위험한 항해이다.
훌륭한 배란 돈, 인내, 강인한 신경으로 무장한 배다.
똑똑한 항해사는 경험이 풍부하고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발자크는 『우아한 인생』에서 인간을 일하는 인간, 생각하는 인간, 아무것도 안 하는 인간으로 분류했다.
순종투자자는 생각하는 인간이다. 순종투자자는 기자와 의사와 비슷하다.
기자처럼 기록하고 비평하고 의사처럼 분석하고 진단한다.
순종투자자는 금리 정책, 재정 정책, 세계 경제 등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총체적인 상을 구상해 최종 진단을 내려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자신의 참여 방식을 결정한다.
투자는 학교에서 배울 수 없다는 것이다. 첫째도 경험이고 둘째도 경험이다.
투자자 가운데 일생에 적어도 두 번 이상 파산하지 않은 사람은 투자자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10년이상 활동한 사람이 확실히 얼마 전에 들어온 사람보다 제대로 처신할 것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투자에 있어서 손실과 수익은 분리할 수 없는 동전의 앞뒤와 같고 투자자의 일생 동안 쫓아다닌다.
성공적인 투자자는 100번중 51번 수익을 얻고 49번 손실을 본 사람이다.
주식에서 수익을 얻으면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적중했다고만 생각하고 들뜨게 된다.
거기서 무엇인가를 배울 생각은 하지 않는다.
심각한 손실을 겪고 나서야 사건의 밑바닥으로 들어가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진지하게 분석해 보게 되는 것이다.
실패에 대한 진지한 분석만이 성곡적인 투자자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난 경제학 전공자가 실물경제도 잘못 예언하는데 어떻게 증권시장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겠는가?라 강연했다. 강연장에서 경영학, 경제학전공자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이며 교수들은 씁쓸한 반응을 보였다.
경제학자들은 계산만 하고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학습내용과 현실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은 대부분 헤어나지 못하는 그들만의 코르셋에 꽉 끼여 분석과 논평을 한다.
파리 증권시장에서 두 번째로 큰 신탁회사도 경제학 전공자는 채용하지 않는다.
이유는 그들은 눈가리개를 하고 살며, 거시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괜히 아는척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투자, 무엇으로 할 것인가
1. 기회의 리스크에 대한 질문
‘증권’ 혹은 ‘투자’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증권거래서 또는 주식투자를 생각한다.
주식은 투자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어디에서든 상품 가격, 환율, 채권, 주가가 원래와 차이가 있어 차액이 발생할 수 있다면 순종투자자들은 거기에 뛰어들어 시장이 그 차액을 균등화할 시기를 기다린다.
아주 큰 기회는 자주 있는 것이 아니므로, 주식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2. 채권: 중요한 투자 대상
대다수의 사람들은 채권을 고정금리의 증권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확실하고 안정된 투자 수단으로 여긴다.
국채같은 확실한 채무자의 채권을 사서 만기가 될 때까지 기다리면 돈을 잃어버릴 위험이 없다.
그 채권은 만기에 액면 가겨으로 상환 받으며, 살 때 계산한 이자까지 확실하게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채권은 만기가 10년에서 30년인 것도 있다.
이 기간동안 장기채권의 금리는 때로 상당한 폭으로 움직인다.
1970년엔 액면가의 40%까지 떨어졌으며, 1980년대에는 두배로 상승했다.
만약 장기적인 이자변동을 염두에 두고 투자하려고 한다면 차라리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
주식시장은 채권시장의 커다란 변화에 늦어도 12개월이면 반응 하고 시세차익은 채권보다 훨씬 분명하다.
채권 투자에는 또 다른 종류가 있는데 나는 바로 이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
확실한 채무자의 채권이 아니라, 아직도 지불되지 않았고 이미 지불 대상에서 제외된 증권을 말한다.
내가 언제나 자랑스럽게 말하는 채권 투자가 바로 이 종류이다.
1989년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이 몇 번에 걸친 정상회담을 하고 두 세력간에 긴장 완화가 뚜렷해길 즈음에 나는 고르바초프가 서방 국가에 10억 달러의 채권을 발행해 줄 것을 요청하리라고 예상했다.
러시아는 원자재가 풍부한 나라이다.
석탄 보유량이 전 세계의 50%, 천연가스가 35%, 100억톤의 원유 보유국, 철과 알루미늄의 세계 최고 생산국이다. 150톤의 금 매장, 700만 캐럿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지불태도도 1급이다.
나는 소위 무가치성 채권을 취급하는 유명한 거래인에게 전화를 걸어 1822년~1910년 사이에 발행된 차르 시대의 채권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이 채권은 사실상 시장에서 거의 매매가 되지 않고 있었다.
레닌의 소비에트 정부가 1917년 차르 시대의 빚을 갚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명목가치의 0.25%~1%정도로 값이 떨어졌다. 아마 대다수의 채권은 이미 쓰레기통에 버려졌을 터였다.
첫 번째 성공의 조짐은 이미 1991년에 나타났다.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가 미테랑을 만났을 때 이미 과거의 빚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이후 차르 시대에 발행된 채권 거래가 활기를 띠었다.
한창때 명목가치 500프랑의 약12%인 60프랑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나는 약간의 수익을 기대하고 투자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 채권을 새로운 채권이나 민영화된 기업의 주식과 교환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후 몇 년이 지나 소련은 붕괴하고 고르바초프 역시 역사의 폭풍 속으로 사라졌다.
1996년에 내 생각이 들어맞을 기미기 보였다.
프랑스철학자 베르나르 르 보비에 드 퐁트넬“삶에는 모든 것이 등장한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것 역시!”
러시아는 유럽 채권시장에서 2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하고자 했다.
프랑스 정부는 먼저 차르 시대에 발행된 채권의 상환 규정을 정할 것을 요구했다.
백년 전에 산 러시아 채권을 아직도 많은 프랑스인들이 유산으로 상속받아 가지고 있었다.
1996년11월27일 러시아 국무총리는 파리에서 약 20억프랑이상의 보상을 약속해했는데 액면가 500프랑이었던 채권 가격을 300프랑으로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인들은 이자와 골드프랑을 합쳐 적어도 2만 프랑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 난 5프랑을 주고 산 채권이 6천%의 수익을 볼 수 있게 된다.
네자리 숫자의 금리로 이자를 받다니! 벌써 채권 두 개는 지불이 되었는데 받을 때마다 난 철갑상어 알과 보트카를 마셨다.
혹자는 내가 어떻게 이런 걸 예건할 수 있었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에 대답은 젊어 운전을 배울 때 선생의 “차의 보닛만 보지말고 멀리를 들고 300미터 앞을 보시오”라는 가르침을 소개하는데 멀리 보라는 이 원칙은 증권시장에서도 매우 유용했다.
최근에는 사람들은 내게 새로 출연하는 시장, 즉 이머징 마켓에 투자하느냐고 묻는다.
“예. 과거 차르 시대의 채권에요” 라고 대답하면 대다수의 투자자들이 이미 한물간 사기 행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의 얼굴을 통해 읽을 수 있다.
나는 평가절하된 국채로 또 한 번 대박을 터뜨렸에 채권에 대한 나의 믿음은 다른 것에 비해 아주 컸다.
전쟁 이후 사들인 독일의 영 채권(Young-Anleihen)이 가져다 주었다.
독일은 당시 패전국이었으며 지불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독일의 미덕과 아데나워를 믿었다.
독일 언젠가 그들의 빚을 갚을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프랑화로 발행한 영 채권을 달러나 영국 파운드 채권인 것처럼 상환했기 때문이다.
프랑화는 전쟁 때 완전히 그 가치가 하락했었다.
아데나워는 독일,프랑스의 우정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영국인에게는 우량의 파운드로, 미국인에게는 우량의 달러로 지불하면서 프랑스인에게만 불량 프랑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의 이 말은 곧 내가 투자한 액수의 140배에 달하는 이익을 의미했다.
3. 옛날에 훨씬 재미 좋았던 외환
1924년 초에 부모님은 파리로 짧은 휴가를 떠났다. 우리는 부다페스트에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파리에서 증권거래소의 중개인 죽마고우 알렉산드르에게 내가 철학과 미술사를 공부한다고 말했고 그는 파리로 보내면 한가지 투자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고 “프랑화에 투자해!”라 말했으며 파리에서 배운 증권공부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프랑화에 한 투자는 그리 좋지 않았다.
프랑화의 평가절하를 노린 투자는 프리츠 만하이머 (Pritz Mannheimer)박사와 카미오 카스틸리오니 (Camillo Castiglioni)라는 사람의 아이디어였다.
만하이머는 1918년전쟁후 라이히마르크가 완전평가절하한 것을 이용 부를 축적한 인플레이션 행운아였다.
마르크가 평가절하되고 있던 그 때 과제는 노련한 외환 관리를 통해 라이히 마르크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대상인으로 자리를 잡아 나갔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라이히 마르트는 0으로 떨어졌지만 그는 여전히 부를 향유했다. 마르크의 붕괴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무관의 제왕으로 권좌를 누렸던 그는 당시 내게 아주 특별한 영감을 주었다.
만하이머는 2차 세계대전 발발 몇주 전에 사망하였는데, 사망 이틀 후 그의 은행은 파산 신고를 했다.
또 한사람 동료 카미오 카스틸리오니는 전쟁 이후 화폐의 평가절하를 알아채고 오스트리아에서 신용으로 가격과 종목에 상관없이 증권을 마구 사들이고 나중에 평가절하된 화폐로 빚을 지불했다.
한시대를 풍미하던 빈의 전설적 인물이고 예술광이었는데 화려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다른 투자자들처럼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 프랑화 평가절하를 노리고 한 투자가 결국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실패한 프랑화 말살 계획은 외환 투자 역사에 매우 흥미로운 사건으로 남아 있는데, 프랑스에서는 이 사건을 일컬어 ‘마르느전투’ (1차대전 초기인 1914년에 있었던 마르트강 전투- 편집자 주), 혹은 ‘마르느 기적’이라고 부른다.
카스틸리오니의 동료였던 넬켄박사의 1924년 초대로 빈 방문시 알려주는 만하이머 박사가 받은 제안 소개
“프랑화 사업. 독일 마르크 완전 폭락처럼 프랑 역시 똑같은 운명을 겪을 겁니다. 프랑스는 이겼고 상당한 금 보유국이지만 경제는 바닥이오. 프랑은 오래 못 버틸테니 공동으로 1억 프랑을 공매도 합시다. 난 1억 프랑을 더 조달할 수 있으니 상환을 뒤로 미룰 수 있을 거요.” 이에 만하이먼은 동업을 결정했다.
암스테르담, 스위스, 빈등에서 다른 은행가들이 이들에 동조했다.
프랑화를 절하시키기 위한 신디케이트가 결성된 것이다.
이들은 수백만 프랑을 바젤, 아스테르담, 마드리드, 뉴욕, 런던 등에서 3~6개월 상환으로 팔아 치웠고, 동원할 수 있는 프랑화는 다 동원해서 외국인 주식(금광, 국제유가)와 달러, 파운드를 파리 증권거래소에서 살 수 있을 만큼 선물로 사 모았다.
동시에 세계 언론을 통해 프랑스 재정이 위험 수위라는 기사를 내보내게 했다.
그 결과 프랑스 여론은 두려움 속에서 외국 유가증권을 샀고, 자본이 프랑스에서 나가기를 요구했다.
이것은 다시 프랑의 시세를 압박했다. 이 모든 것은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프랑이 하학하고 비관론이 퍼지면서 이 비관론이 다시금 프랑화 매도를 부추겼다.
프랑스에 대한 경고기사는 금방퍼져나가 빈의 은행가들은 누구나 프랑화 노름에 끼어들었다.
‘놀이하는 인간’들에게 프랑화의 약세는 뜨거운 감자였으며 사람들은 그것이 뭐가 될지 모르지만 똑같이 나눠 가지고자 했다. 이 투기욕은 프랑크푸르트, 프라하, 부다페스트 등지로 번져갔다.
경제의 안정성은 흔들렸고 이 ‘확실하게’ 보장된 수익에 사람들은 몇 푼의 돈까지도 기꺼이 투자했다.
그러나 예상과달리 프랑화가 아닌 그들 화폐가 평가절하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프랑화 평가절하의 다양한 방법중 일반적인 것은 주로 선물로 프랑을 파는 것이었다.
법적으로 금지된 방법이지만 프랑화를 대상으로 한 수억대 규모의 외환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프랑스에서 생산된 것이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신용으로 사들였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한꺼번에 모든 것을 외상으로 산다는 것이었다.
원론적으로 이것은 상품 매수라고 볼 수 없으며 1970년대 달러화에 대한 투기처럼 똑같은 외환 투기였다.
이자는 높았고 또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으나 대단한 시세차익을 노린 사람들은 이에 개의치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정치가나 전문가들, 프랑스 은행조차도 프랑화 평가절하를 망연자실 바라볼 뿐이었다.
파리에서 미 달러화는 전쟁이전 1달러에 5프랑이었던 것이 10, 15프랑으로 올라갔으며 1926.3월에는 28프랑까지 올라갔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라자르 프레르 은행에 외환시장에서 프랑화의 하락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위임했다. 이 회사는 즉시 모든 시장의 매물 프랑을 전량 매수했다.
드디어 뉴욕의 JP모건 은행이 프랑스은행에 사태해결을 위해 1억달러 (오늘날 20억달러)를 빌려주자, 풍선은 터졌고 이제 그 광란은 끝이 난 것이다.
시장에선 채 1시간도 못 되어 상황이 반전되었고 전세계 금융시장은 프랑화를 사들이기 위해 아우성쳤다.
파리에서 약 28프랑이던 달러화는 1924.3.8.일에는 15프랑으로 떨어졌다. 이제 프랑화는 구제되었다.
이것은 ‘마르느의 기적’으로 금융시장에서 프랑화 말살 작전을 성공적으로 퇴치한 것이었다.
빈 사람들은 이 사건을 ‘프랑화의 파산’이라고 한다. 그들 자신의 파산이었는데도 말이다.
빈과 프라하 전체에서 파산한 자들이 울분을 토했고 암스테르담의 은행가들도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카스틸리오니였다. 그후 그의 인생은 급속도로 추락했다.
아버지도 피해를 보았으나 나를 파리로 보내 증권공부를 하게 한 덕에 큰 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었다.
파리에서 증권투자를 배운덕택에 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빈털터리가 된 부모님이 스위스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해드렸다.
위의 이야기가 과거 외환시장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날의 외환시장을 보면 마치 은행, 보험회사, 헤지펀드와 같은 대형 투자자들이 대거 참여한 카지노판 같다. 화폐의 종류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소액투자자가 선물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화폐의 종류는 아마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대형 투자자들은 수천만 명의 크고 작은 일반 투자자들과 싸워야 한다.
이제는 투자와 관련된 중요한 뉴스가 모든 사람들에게 동시에 공개된다.
모든 투자자는 환율 변동이 두 나라 화폐의 상대적인 가치 변동을 나타내기 때문에 강세와 약세가 서로 상반된 개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한편이 손해를 보면 다른 한편은 수익을 얻는다. 이는 주식과 전혀 다르다.
지난 십 년처럼 증권시장이 지속적인 강세를 보일 때 리스크를 잘 조절한 투자자는 이익을 얻을 것이다.
4. 원자재: 투기 대 투기
원자재 투자 역시 매도 포지션과 매수 포지션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한 투자자는 가격 상승을 대비해 투자하고, 다른 투자자는 하라을 예상하고 투자한다.
이것 역시 대단히 위험한 사업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선물에 투자한다.
대량의 구리, 밀을 사는데 아주 적은 금액만 있으면 된다.
왜냐하면 미래의 지불해야 할 금액의 작은 부분에 해당하는 증거금이기 때문이다.
주가지수, 외환, 채권에 대한 선물 계약도 마찬가지이다.
파는 사람은 나중에 물건을 인도, 사는 사람은 나중에 돈을 내기 때문에 선물을 ‘Future(미래)’라고 한다.
이 사업이 안고있는 위험성은 투입되는 초기자본이 비교적 적다보니 그다지 크게 인식되지 않고 있다.
상품 시세가 원하는 방향과 다르면 즉시 일정액수를 추가 부담해서 증거금을 높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포지션은 강제 해지되고 이미 들어간 돈은 하나도 건질 수 없게 된다.
지난 80여년 동안의 투자인생중 원자재 투자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당시 헝가리에서는 곡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헝가리인들의 낙천적인 성격과 맞았다.
날씨가 가장 주된 관심사여서 하늘의 빛깔, 곡식의 풍작에 장애가 되는 너무 강한 햇빛, 비등이었다.
어른이 된 나는 정말로 선물 거래가 가능한 모든 원자재에 투자했다.
원자재 투자는 위험도 알고 손실도 나름 경험 많은 사람이 하는 것이 좋다.
원자재 투자는 투자할만한 특별한 이유 (자신의 공장에 사용할 원자재)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어떤 경우든 원자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개인투자자가 원자재 투자만을 통해 행운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때때로 투자로 유인하는 상황이 생길 수는 있지만 말이다.
명심할 것은 세련된 화수로 확실한 수익을 보장한다고 말하는 ‘상품선문거래회사’의 텔레마케터에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오직 손해를 본다는 사실뿐이다!
5. 유가물: 수집가 혹은 투자자?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인플레 심리가 만연시 유가물 투자는 안정적인 투자 수단으로 각광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애써 모든 돈을 화폐 가치하락에 대비해 확실하게 보관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림, 골동품, 우표, 동전, 다이아몬드, 금 등을 사 모았다.
유가물의 가격은 형식상으론 폭등했고 이런 흐름을 제대로 읽었던 영리한 투자자들은 한몫 챙길수 있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돈을 유가물에 묶어 두었던 사람들은 20년 동안 사실상 돈을 잃은 것이 다름없기 때문에 행복하지 만은 아니었다. 금값은 1온스에 850에서 300달러도 되지 않게 되었다.
유가물은 어떠한 가치도 새로 창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이퍼인플레이션 상황이 아니면 투자가치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원자재도 마찬가지다.
주식 배당금이 아주 작지만, 주식투자에서는 수익을 재투자하면서 복리 효과를 통해 자동적으로 가치 증식이 이루어진다.
주식은 주식회사가 채권은 국가나 회사등 발행자가 돈을 운용하는 데 비해 유가물을 그렇지 않다.
그 때문에 유가물에 대해서는 투기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단지 큰 흐름을 알아내서 적절한 시기에 탑승해 이익을 얻고 적절한 시기에 내릴 줄 알아야 한다.
돈을 벌수는 있지만 가격 변동을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핵심은 항상 타이밍이다.
유가물은 이론적으로는 부를 축적할 수 있지만, 장부상으로는 부자일지언정 이익을 얻을 수는 없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고자 하는 투자자는 유가물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기 때문에 장기적인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6. 부동산: 자본이 두둑한 투자자를 위한 것
투자 자본에 의해 수익을 낳는 유일한 유가물 투자 대상은 부동산이다.
나는 스스로 살 집은 주택이든 아파트든 가능하면 사라고 권한다. 이것이 첫 번째 투자이다.
그렇게 되면 상승하는 집세와 집주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증권, 외환, 원자재등의 동산에 투자해왔다. 부동산은 이름대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크기와 설비를 갖춘 집이 뉴욕에서는 200만 달러지만 북스테후데에서는 21만 마르크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부동산 시장이 다르다해도 다른 투자 시장과 마찬가지의 법칙이 통용된다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도 호황과 불황 그리고 양방향으로의 과장국면이 있다.
부동산 투자는 일단 큰 돈이 있어야 한다. 부분적으로 돈을 빌리기도 하니 돈을 갚을 능력이 있어야 한다.
퍠쇄형인 부동산 펀드는 절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대부분 10년 혹은 그이상 기간 동안 존속한다.
부동산 투자로 제대로 돈을 벌고자 하면 어느 도시와 지역이, 그리고 어느 나라가 부동산 시장에서 크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예측해야 한다. 그래야만 평균 이상의 이익을 창출할 수가 있다.
집이나 건물, 사무실 가격은 매일 신문이나 TV에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소유자는 부동산 가격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부동산 가격은 장기적으로 보면 상승했다.
그러나 인플레율보다 더 많이 올랐다고는 볼 수 없다. 부동산에서 어떤 이익을 기대하기란 어렵다는거다.
부동산 시장은 오늘사서 내일 팔기에는 사고파는 비용이 너무 커 도박성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부동산 시장은 증권, 외환, 원자재처럼 유동적이지 않은 것이다.
적절한 가격을 낼 사람을 만나려면 몇 개월을 기댜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
돈이 풍부하고 잘 아는 사람많이 성공한다. 도날드 트럼트같은 사람은 부동산으로 부자가 되었지만, 위르게 슈나이더 같은 사람은 부동산 때문에 거지가 되고 감옥까지 가야 했다.
다른 투자처럼 여기서도 부의 축적과 파산은 아주 가까이 붙어 있다.
7. 주식: 진짜 투자라고 할 수 있는 것
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투자 대상은 역시 주식이다.
전세계에서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회사는 10만개가 넘는다.
주식시장에서는 한 분야의 상승과 하락, 경재에서의 성공, 국가의 법률 개정, 선거, 사회의 트렌드, 미래의 유행 그리고 기술적 진보 등에 투자가 이루어진다.
어떤 기업은 땅밑에서 행운을 끌어올리는가 하면 어떤 기업은 우주에서 그 기회를 찾는다.
세계 어디서든 저평가된 기업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의 억만장자 워렌 버핏은 그런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해서 부를 축적한 사람이다.
내개 가치보다 고평가된 기업을 발견해서 그 기업의 평가하락 시에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
소위 ‘턴어라운드’에 성공해 부를 축적할 수도 있다.
다른 투자대상에 비해 주식이 갖는 장점은 장기적인 상승운동에 있다. 모든기업의 해당은 아니다.
자신의 재산을 약간 분산시키고, 크고 튼튼한 기업의 주식에 투자를 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
기대처럼 상승하지 않아도 초조해하기보다는 인내를 가지고 시세가 다시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
나는 요즘 장기적인 주식 투자만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주식으로 수천 번의 갖가지 모험을 했으며 결국 살아남았다. 이제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증권거래소
증권거래소- 시장경제의 신경 체계
1. 탄생 시간
내게는 너무나 매력적인 증권거래소를 어떤 말로 묘사할 수 있을까?
La bourse, la borsa, la bolsa, die borse, Serka
(증권거래소를 가리키는 프랑스어, 이탈리어, 스페인어, 독일어, 러시아어 단어), 파리에서 밀라노, 부에노스아이레스, 프랑크푸르트 그리고 페테스부르그에 이르기까지 각 나라마다 증권거래소는 모두 여성 명사로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부, 다른 한편으로는 멸망을 의미하는 ‘악마’적 존재인가?
독설가들은 악마가 증권거래소를 만들었다고 만한다.
인간은 무(無)로부터 어떤 것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증권거래소는 현재의 월스트리트와 카페나 골목 입구, 나무 그늘 밑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현대적 의미의 증권거래소는 식민주의가 지배했던 17세기 암스테르담에서 생겨났다.
투자 대상은 인도회사의 주식이었다.
1602년 설립된 이 인도회사는 조직적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식민지 회사였다.
기업주는 네덜란드 자본가들로, 그들은 해상 무역을 제압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필요한 자본은 각자가 부담하는 소액의 투자로 충당했다. 64톤의 금이 모아졌고 해상에서의 독점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동인 지역의 많은 섬에서 절대적인 주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인도회사의 배는 항상 진귀한 향료, 섬유, 도자기 등을 가득 싣고 아스테르담항으로 돌아오곤 했으며 이웃 나라에서는 이를 보고 군침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이 무소불위의 인도회사는 점차로 커져 국가 안의 국가가 되었다. 인도의 토착 토후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인도회사는 노련하게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고 포르투칼 사람들을 교묘하게 내쫓았다.
수년동안 돈을 투자하여 회사의 지배력을 공고히 한 인도회사는 처음으로 이익을 배분했다.
이익이 높아지면서 주식 시세와 배당금이 올라갔다.
주주에게는 현금과 채권이 배당되었고, 어떤 경우에는 후추와 계피가 배분되기도 했다.
영국은 인도회사의 해상권 장악이나 부의 축적을 그저 보고만 있지 않았다.
영국의 동인도회사와 네덜란드 인도회사가 자유경쟁을 시도했고 육지와 바다, 주식시장에서 두 강대국 간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투자나는 항구의 주점이나 증권거래소 클럽에서 커피나 코코아를 마시면서 혹은 체스를 하면서 배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옛날엔 몇주 혹은 몇 달을 기다려야 겨우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1688년에는 네덜란드 인도회사가 일대 혼란을 맞았는데, 역사상 최초의 ‘주가 폭락’이었다.
이 인도회사는 당시 중요한 거래를 기대하고 있었다.
배들이 심한 파손을 입어 바타비아로 돌아갔고, 몇 척만이 네덜란드에 도착한 것이다.
싣고 온 상품은 금 35톤밖에 받지 못했다. 원래 계획은 50톤이었는데 말이다.
이정도면 크게 실패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투자 열기는 식어 있었다.
어떤 주식의 배당금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많은 투자자들이 그 주식에 몰린다.
배당금이 기대 만큼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따 콤블리 (Fait accompli : 기정 사실)가 되므로 시세는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배당금이 기대에 못 미친다면 주식은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신뢰는 사라지고 불신이 자리잡기 때문이다.
17세기 중반부터 암스테르담의 증권거래소는 활기찬 현대의 증권거래소 모습을 띄게 되었다.
이때부터 선물 혹은 옵션 거래가 형성되었다.
청산일, 교역 시세, 인수(引受)와 이연거래(移延去來), 매수 연합과 매도 신디케이트 등이 생겨났다.
암스테르담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국채 시장이었다. 선물 거래는 암스테르담에서 생겼다.
그때는 인근 찻집에서 브로커와 손님을 연결하는 중개인들이 있었고, 손님은 인근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투자 결과를 기다렸다. 온갖 뜬소문과 경고들이 퍼져 있었고 여러 가지 전략들도 이미 구상되어 있었다.
인도회사의 주식은 지속적으로 올라갔고 막강한 매수 연합 세력이 인도회사의 주식을 사서 강제로 조작하면 할수록 더더욱 상승했다.
『혼돈 속의 혼돈』이라는 철학서를 쓰고 시인이며 열정적인 투자자이기도 했던 호세 드 라 베가 (Jose de la Vega)는 이런 소란의 희생물중 하나였다.
스폐인계 유대인 망명인의 아들로 르포 형식으로 쓴 이 책에서 17세기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의 모습을 사실대로 묘사하고 있다. 모든 주식투자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호세 드 라 베가는 이미 세 번씩이나 투자에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 주제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었다.
투자자는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식투자를 통해 최소한 두 번 이상 빈털터리가 된 사람이 아니라면 투자자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
나 역시도 불행한 경험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사고를 당한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또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전장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호세 드 라 베가의 책에서 투자와 증권거래소의 메커니즘에 대해 상세히 기술했다.
환상, 짜증, 낙관론과 비관론, 놀람과 신념, 희망과 두려움, 돈 혹은 채무등은 언제나 시세를 널뛰게 만드는 장본인들이었다.
투자의 뒤편에는 항상 미덕과 약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인간이 서 있다.
어는 시대에나 증권분석가들은 시장이 점점 더 불투명해진다고 말한다. 이것은 완전히 틀린 말이다.
증권시장은 과거 어느때고 항상 불투명했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은 증권시장이 아닐 것이다.
이미 300여 년 전에 호세 드 라 베가는 증권거래소를 일컬어 ‘혼돈 속의 혼돈’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던가!
2. 자본주의의 신경 체계
악마가 증권거래소를 만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인간을 ‘생각하는 인간’으로부터 ‘놀이하는 인간’으로 개조하는 데 한 몫 했음에는 틀림없다. 자주 증권거래소를 게임장으로 만드는 것을 보면 알수 있다.
내게 증권거래소는 음악이 있는 몬테카를로이다.
기본 멜로디를 알아들을수 있는 안테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증궈거래소는 단순한 게임장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의 중추신경이며 동력이다.
공정한 배분과 투명한 가격 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
생산자와 수출업자, 수이업자들이 가격 손실의 위험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는 것도 증권거래소이다. 불행히도 요즘은 기생인들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서 그들의 주식만으로도 시세를 올리기도 하고 떨어뜨릴 수도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자본주의 최고의 동력원은 뭐니뭐니 해도 주식시장이다.
그 기초는 주식회사이며, 주식 투자는 그 윤활유이다.
투자가 없었더면 산업사회의 혁명적 변화 (기차, 자동차, 기름, 전기, 컴퓨터 그리고 현재의 인터넷)는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크고 작은 투자자들이 주머니에서 돈을 긁어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돈은 증권거래소를 매개로 여러 경제 영역에 투자되었다.
한마디로 증권거래소는 투자로 돈을 묶어 놓기도 하고, 또 만약 투자자가 돈을 필요로 하면 언제라도 투자를 동결하고 다시 현금화할 수 있는 수단이다. 결국은 자기 자본을 경제에 대 주는 셈이 된다.
경제 성장, 고용, 진보를 위해 자본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기업가는 연구나 기업 확장, 설비 투자를 위한 재원을 빚을 얻는 것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채권을 발행 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식의 형태로 기업 일부를 매각하는 것이다.
기업이 주식을 발행하면, 사업가는 이자를 낼 필요가 없으며 자본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줘야 하는 의무도 없다. 소유자들은 배당금 형식으로 수익 배분에의 참여를 요구한다.
투자한 회사가 성장한다면 그 수익은 상당히 클 수 있다. 이런 수익 기회에 대한 기대와 주식시장에서 기업평가 상승으로 인해 주가가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는 투자자를 자극하여 은행에서 주는 소액의 이자를 포기하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 것이다.
세계 경제사를 장식하고 있는 대규모 발전은 항상 위험 부담이 많은 모험이었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빨리 부자가 되고자 하는 기대감 속에서 거액의 돈을 내놓는 주식투자자들처럼 은행은 그렇지 않다.
요즘에는 증권시장을 통해서 젊은 인터넷 사업가들에게 엄청남 액수의 큰돈이 흘러들어가고 있다.
아마 은행 대출을 통해서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 병적인 황홀감에 빠진 많은 인터넷 기업의 주식 가치는 1688년 동인도회사의 경우처럼 균형을 잃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시세가 조작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주식시장이다.
3. 증권인들이 만나는 곳
주식시장은 그러나 그 이상이다.
주식시장에는 주식 관계자, 중개인, 상인, 시장 형성자, 주식 노름꾼, 장기투자자, 크고 작은 일반 투자자, 은행가, 금융자본가, 기자 등 온갖 사람들이 모여든다.
증권거래소는 증권, 외환, 상품 거래를 위한 시장이기도 하지만 뉴스, 안티 뉴스, 뜬소문, 인기 있는 투자 유형, 내부 정보 등이 모이는 곳이기도 한다.
나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동일 면적에 그렇게나 많은 수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자주 갔다.
내가 어리석은 사람들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과 정반대로 행하기 위해서 였다.
객장에서나 맡을 수 있는 소문의 냄새와 그 특유의 분위기는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시세판으로 주가를 보던 세대이다.
나는 그런 내 모습을 재미삼아 ‘쇠잔해 가는 증권시장의 마지막 모히칸’이라고 부른다.
4. 세계사의 거울
주식시장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거기서 세계사의 거울을 발견한다.
그것은 거울은 거울이지만 뒤틀려진 거울로서, 경륜 있는 투자자만이 알아채고 이해할 수 있는 거울이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즉 중동과 코소보의 전쟁,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적대 및 친분 관계, 미국 대통령과 인턴사원 사이의 애정 행각, 독일 정권 교체 및 재정장관의 사퇴, 텔레커뮤니케이션과 인터넷의 지속적 발전과 여성 패션의 변천, 폐암 연구 등이 주식시장에 반영된다.
이 모든 사건과 연결된 희망과 공포가 바로 세계사이며 이는 주식시장에 그대로 반영된다.
내일이 어떨지 투자자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오늘과 어제는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5. 경제의 온도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주식시장을 경제의 온도계라고 말하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주식시장은 현재의 상황도 다가올 미래의 결제 흐름도 보여주지 못한다.
독일은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실업률이 계속 높은 수준에 있을 때, 주식시장은 3배나 성장했다.
미국은 반대로 완전고용 시에 경제가 성장했고 주식시장 역시 붐을 이루었다.
경제는 최고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주식시장은 침체되는 경우도 있었다.
경제와 주식시장은 항상 평행으로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의 예로 쉽게 설명할 수 있겠다.
한 남자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한다. 보통 개들이 그렇듯 주인보다 앞서 달려가다가 주인을 돌아본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달려가다가 자기가 주인보다 많이 달려온 것을 보곤 다시 주인에게로 돌아간다. 그렇게 둘은 산책을 하면서 같은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
주인이 1킬로미터를 걷는 사이 개는 앞서가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약 4킬로미터를 걷게 된다.
여기서 주인은 경제이고 개는 증권시장이다.
이 예가 들어맞는다는 것은 1930~1933년 대공항 후 미국 경제가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보면 알게 된다.
경제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지만 한 걸음 혹은 두 걸음 멈추기도 하고 뒷걸음치기도 한다.
그 사이 증권시장은 100번도 더 앞으로 뒤로, 전진 혹은 후진하게 되는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경제와 증권시장은 같은 방향으로 진행되어 나간다.
그러나 때때로 그 사이 사이에 이 둘은 서로가 상반되는 방향으로 나가기도 한다.
주가를 움직이는 것들
1. 주식시장의 논리
애널리스트들은 매일매일 열심히 시세 변동을 설명한다.
주가의 상승이나 하락을 설명하는 논리는 너무도 많다.
금리가 상승하면 주가는 떨어진다. 이윤이 기대한 것보다 훨씬 크면 주가는 올라간다.
반면 기대한 것보다 훨씬 높은 이윤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가가 그 기업의 장래를 어둡게 평가한다면 주가는 떨어진다.
달러 변동이 없다는 것이 주가 상승의 원인이 되었다는 기사가 나간 바로 다음날, 같은 신문에서는 그것을 다시 주가 하락의 장본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분석은 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논리적인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나름대로의 고유한 논리가 있으며 여기에 일반투자자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럿은 아름다운 여자나 날씨처럼 변덕스럽다.
나는 독자들에게 주식시장의 변덕에 대해 항상 냉정함을 유지하고, 왜 이렇게 변덕스러운지에 대해 어떤 논리적 설명도 찾으려고 하지 말라고 제안하고 싶다.
분석가들은 아래의 경우를 들어 주가의 상승과 하락을 설명 한다.
① 주식의 공급이 수요보다 많을 경우, 주가는 떨어진다.
②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주가는 올라간다.
③ 공급과 수요가 서로 맞아떨어지는 경우 주가는 별로 움직이지 않는다.
중단기적 시각으로 보면 반드시 우량 주식이 상승하고 부실 주식이 하락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 반대의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어느 기업이 이윤을 얻을 수 있고 배당금도 지불하며 전망도 좋다고 치자. 그래도 주가가 올라가는 것은 수요와 공급을 초과할 때뿐이다.
이것이 증권시장을 지배하는 유일한 논리하고 봐야 할 것이다.
2. 공급과 수요의 원칙
내가 파리 주식시장에 처음 갔던날 노인이 내게 와서 “이봐요, 젊은이, 난 당신을 오늘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누구요?” 하고 물었다. 나는 “전 사실 여기 오늘 처음인데요, X회사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노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회사 사장이 내 친구이니, 자네에게 중요한 것을 하나 알려주리다. 자, 주변을 둘러보시오. 여기에서 중요한 건 단 한 가지뿐이라오. 주식이 바보보다 더 많은지, 아니면 바보가 주식보다 더 많은지 말이오.”
오늘날 나의 중요한 신조가 된 이말은
주가의 흐름은 무엇보다도 주식을 내놓는 매도자가 주식을 사들이는 매수자보다 더 급박함을 느끼는가 안 느끼는가에 달려 있다. 이 가르침을 나는 잊어 본 적이 없다.
모든 것은 공급과 수요에 달려 있다. 내 모든 주식투자 이론은 여기에서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이익이 좋든 나쁘든, 전쟁 중이든 평화상태든, 좌파가 권력을 잡았든 우파가 권력을 잡았든 상관없다.
돈을 가진 사람들과 증권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 의미를 두고 상황이 어떤지에 따라 투자를 할 때, 비로소 이 사건들은 시세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주식투자자는 위의 사실을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왜 때때로 주가가 비논리적으로 움직이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
1. 단조 혹은 징조?
주식시장에는 장기적으로 (대게 10여년이상) 흐름을 결정하는 주 멜로디가 있다.
투자자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진 혹은 후진 이동의 각 국면을 읽어 내고 그로부터 어떤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면, 투자자는 먼저 그 멜로디가 장조인지 혹은 단조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이런 주제음악을 결정하는 것은 다음 두가지 요소이다.
전쟁과 평화 그리고 장기적인 경제 발전.
2. 평화는 제일 중요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해서 지난 몇십 년 동안 그렇게 낙관적일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
성공하려면 수면제를 먹고 푹 잠이 들어 몇 년 동안 주식시장의 움직임을 듣거나 보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강세장이 다가오는데 바로 그 앞의 침체국면에서 손해를 보며 모든 것을 팔아야 하는 시장의 분위기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시장을 낙관적으로 보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비극적인 코소보, 걸프, 쿠르드 전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세계 평화는 보장되었다.
어디서든 화약 냄새가 나면 투자자들은 주식에 투자하려고 하지 않는다.
피신처인 나라에서 자기가 가지고 온 주식은 팔 수 없으며, 외환관리법 때문에 자기가 가져온 외국돈으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상황이 불확실할수록 투자자는 주식투자를 하지 않고, 상황이 확실할수록 주식투자는 늘어난다.
현재 주식은 확실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앞으로 10년 정도는 계속 낙관적일 것이다.
3.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제 발전
다시 개와 주인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개와 주인의 관계처럼 경제와 주식시장도 항상 평행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경제와 기업 이윤이 성장하지 않으면 주식 시세 역시 지속적으로 상승하지 않을 것이다.
개가 너무 멀리 앞서 나가 주인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는 경우는 어떤가?
개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늦더라도 개가 다시 주인에게 돌아올 것을 알고 있다.
일본의 예를 보면 20여 년 동안 주가는 경제 기초 지표와 기업 수익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갔다.
경제 지표와 기업 수익이 계속 상승하긴 했지만 너무 앞질러 가는 주가의 템포와는 보조를 맞출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1990년에 이르러 개가 너무 빨리 앞으로 나아갔음을 알아채곤 다시 주인에게 돌아오는 바람에,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시점에서 증시는 폭락하고 말았다.
주식시장은 장기적으로 경제와 분리할 수 없다. 그러니 국가경제, 세계경제를 관찰하고 분석해야한다.
과거가 아닌 미래가 더 중요하다. 도박성보다는 여러 해 동안 보유하고 있는 것이 결과가 더 좋다.
경제 성장의 추진력은 더 높은 생활수준에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기 때문에, 경제는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큰 경제 성장의 장애 요인을 돈이 없다는 것이다.
예전 집시와 악사들의 즐긴 다음 말은 경제를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다.
“돈이 없으면 음악도 없다 (Ka Geld, Ka Music).” - 돈이 없으면 경제 성장은 불가능하다.
수십 년 동안 금본위제도는 돈의 수급을 어렵게 했다.
금본위제도 시기의 세계 경제는 아주 완만하게 움직였다. 과격한 디플레이션 정책.
금본위제도가 없었다면 히틀러, 제3제국, 2차세계대전, 유대인 학살 같은 것은 역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사이 경제 위기가 완화되었던 시점에 히틀러가 이끄는 정당에 대한 지지도는 바로 내려갔다.
루에프는 자신의 논문 시리즈에서, 전통적인 금본위제도 (즉, 달러가 100% 금으로 환산되는 것)로 돌아가지 않으면 세계 경제가 무너질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의 경고대로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는 과거 어느 때보다 좋은 상태로 전개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금본위제도는 없어졌다. 있었어도 이 시대의 커다란 문제해결에 그 제도는 역부족이다.
금본위제도가 실패한 원인은 현실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한다.
화폐의 강약을 결정하는 것은 우선 한 국가의 경제력이며, 그 다음이 국가 재정의 경영이다.
비스마르크는
“금 보유고는 두 사람이 덮고 있는 이불과 같다. 두 사람 모두 이불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 한다.”
오늘날의 경제 제도에는 금본위제도가 아니라 금융시장의 지휘자, 즉 훌륭한 중앙은행이 필요하다.
삶의 목표는 오직 평화와 안락한 삶이다. 그래야 정치적 극단을 막을 수 있다.
최고의 목표는 통화 가치 안정이 아니라 정치적 안정이어야 한다.
헬무트 슈미트가 “5%의 실업보다 차라리 5%의 인플레가 낫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약간의 인플레이션은 경제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 없이 경제는 성장하지 않는다.
절대적 안정이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에너지 가격, 원자재, 식료품, 노동 시장 등은 항상 변한다.
자연의 변화에 의해 가격변동이 결정되는 경우도 많다. 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는 언제나 변동은 있다.
중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
1. 돈+심리=추세
개가 이러저리 난폭하게 달리기도 하듯이, 주식시장 역시 장기적인 경제 성장 속에서 여러번 급속히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지는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주식시장이 호황을 누린 이 시기 동안 시장은 극단적으로 출렁인다.
이러한 동요는 중기적 영향 욧소들에 의한 것으로, 그 요소들이란 다음 두 가지이다.
① 돈: 산소 혹은 차를 움직이는 기름 같은 것이다.
돈이 없으면 아무리 전망이 좋고 평화가 지속되어 경기가 좋아도 주식 거래가 성립되지 않는다.
돈이 없으면 주식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은 주식시장의 엑기스이다.
② 심리이다. 투자 심리가 부정적이어서 누구도 주식을 사고자 하지 않으면 주가는 상승하지 않는다.
돈과 심리가 긍정적이면 시세는 올라가고 부정적이면 시세는 하락한다.
한 요소가 긍정적이고 다른 요소가 부정적이면, 흐름은 중화되어 커다란 동요가 없고 재미없는 주식시장이 계속된다.
여기서 나 자신의 신념이 된 다음의 공식이 나왔다.
돈+심리=추세
요소에 따라 주가가 약간 상승하거나 약간 떨어지거나 한다.
그러다 하나가 돌변해 둘 다 긍정적, 부정적이면 시세 급등이나 시세 폭락이 나타난다.
크고 작은 투자자가 주식을 사고자 하고 또 살 수 있으면 시세는 상승한다.
금융 상황, 경제 상황이 낙관적이면 사려 하고, 주머니와 금고에 충분한 유동 자금이 있으면 강세장이다.
경제 뉴스나 기초적인 사실이 이에 반해서 떨들어대도 이 비밀은 변하지 않는다.
여론이 비관적이고, 전망이 불투명하며, 부동산이나 높은 이자의 은행 예금과 채권에 투자하느라 금고에 여유 자본이 없으면 주가는 떨어진다. 상상력과 돈이 없으면 주가는 바닥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내 생각엔 중기적 주식 거래의 경향은 돈과 상상력이라는 요소가 경제 기초지표보다 더 결정적 역할한다.
금융 순환과정에서 돈이 너무 넘치게 흐르면 예금주들이 대다수 주식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 유동 자금의 한 부분이 늦어도 9~12개월 사이에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온다.
이때 첫 번째 매수는 완전히 바닥 시장에서 시작하며, 시세는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주가가 오르면 대중은 다시 주식시장에 관심을 갖게 되어 주식을 사고, 그러면 이것이 새로운 매수자를 자극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긍정적인 논평에 힘입어 사람들 생각이 바뀌고, 서서히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간다. 주가는 또 올라간다.
돈이라는 요소가 부정적이면 투자 심리는 그로부터 9~12개월 후에는 부정적으로 변한다.
아무리 좋은 경제 소식이 많다 해도 자금이 새로 유입되지 않으면 주가는 오르지 않는다.
투자자는 기대한 만큼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금세 실망해서 주식시장에서 빠져 나오려고 한다.
이때 첫 번째 매도는 시세를 하락시키고 계속해서 매도세를 부추긴다.
시장 비평가들은 시세 하락에 대한 근거를 나름대로 찾아 악재성 소식을 전한다.
이제 시장은 분위기가 바뀌게 된다.
돈이라는 요소는 중기적 증시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때문에 투자자는 돈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2. 경기: 중기적으로는 영향이 없다.
주식시장은 경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는 온도계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말했다.
증시가 경기 변동과 반대 방향으로 전개되는 경우도 있다.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은 자본시장의 중고차와 같다.
만약 시장이 새롭게 흥미를 끄는 유가증권으로 넘치면 이미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 시세의 하락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주식의 발행이 드물어지면 증시는 자금 과잉 상태가 되어 꼭 중고차 시장처럼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후자는 불경기에 나타난다.
경제와 수요가 침체되어 있으므로 신규 투자의 수익성은 거의 보장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은 새로운 주식의 발행을 꺼리거나 미룬다.
불경기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지위와 수입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소비는 줄고 저축액은 상승한다.
저축액은 투자펀드, 펀드연계 생명보험등을 통해 증시로 간다. 주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다.
주식 배당금이 감소하고 기업 이윤이 줄어드는 가운데에도 주식시장에서는 주가가 상승해 강세장이 된다.
증시의 산소인 돈이 생기면 증시는 폭발한다.
이러한 현상은 언제나 그래 왔고 주식시장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돈, 돈, 오로지 돈! (denari, denari e poi denari!)”
마샬 트리불지오스 (Marschall Trivulzios)의 이 말은 모든 증권거래소의 정문에 새겨져야 할 것이다.
3. 인플레이션: 이것에 대항하는 싸움은 해로울 뿐이다
증권인은 악마가 성수를 싫어하듯 인플레이션을 싫어한다.
그들은 소비자 물가, 생산가, 시간당 임금, 임금비용 지수 등을 예리하게 관찰한다.
인플레이션 수치가 오르면 주식시장의 분위기가 가라앉고 시세도 떨어진다. 그래서 해롭다고 말한다.
간접적일뿐 인플레이션은 사실 주식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반대로, 원래가 유가물인 주식은 다른 유가물과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에 의해 움직인다.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2차 세계대전이후 독일처럼 은행이 취하는 조치들인 경우가 많다. 독일연방은 고금리 정책을 써서 경기를 억제하려고 하였다.
인플레이션이 경기 활성화의 자극제 일수있는데 왜 억제하려고 하느냐면 술과 담배처럼 약간 기분좋은 자극을 줄 수는 있으나 남용하면 결국 알콜 중독자나 니코틴 중독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온도의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편안하고 좋지만, 물이 너무 뜨거워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이 통제를 벗어나면 바로 위기가 온다.
호황은 기존의 생산과 서비스로는 충족될 수 없는 그 이상의 수요를 낳는다.
이때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가벼운 가격 상승이 일어난다.
동시에 산업적 수요 상승과 인위적 조절로 인해 중요한 원자재의 가격이 상승한다.
인위적 조절이란 예컨대 OPEC이 1970년대 대규모의 원유 공급을 무기로 시장에서 가격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은 현상을 의미한다. 시간이 지나면 소비자 물가를 올리고 결국 생계비 상승을 초래한다.
그러면 노조는 화폐 가치 하락만큼 임금 상승을 주장한다. 그러면 생산원가와 서비스가격을 높인다.
그러면 소비자 가격은 더 높아지고, 노조는 다시 임금을 물가 상승률에 맞춰 올려달라 요구한다.
이런식으로 임금과 가격이 자꾸자꾸 올라 인플레이션이 되는 것이다.
결국 화폐 가치가 너무 떨어져 실질이자율 (명목이자율-인플레이션율)이 마이너스가 되는 셈이다.
화폐 가치 하락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사람들은 금, 그림, 우표, 골동품등에 관심을 돌린다.
그러면 자본시장에서 돈이 빠져나가게 된다. 투자할 돈이 없어지고 대량실업과 경제위기가 오게 된다.
프랑스의 금본위제도 시기가 바로 그러했다.
투자자가 인플레이션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각 나라마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4. 디플레이션: 증권시장의 가장 큰 재해
오늘날 디플레이션은 이제 없다고 할 수 있다.
금본위제도 시대에는 중앙은행이 자국의 화폐를 보호하기 위해 디플레이션을 일부러 유도하기도 했었다.
디플레이션이 오면 화폐 가치가 상승하고 모든 원자재. 상품. 증권 가치는 하락한다.
또한 통화량이 부족하므로 자금 유동성이 거의 없다.
소비자는 내일이 되면 물가가 더 내려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무것도 사려고 하지 않는다.
기업들은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적은데다가 가격 하락이 계속되므로 투자를 꺼리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가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5. 중앙은행: 금리의 독재자들
앨런 그린스펀은 지난 몇 년 동안 세계 금융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다우존스 지수가 6000포인트를 기록했을 당시 월스트리스트의 고조된 분뒤기를 전하는 그의 말에 사람들은 기꺼이 귀를 기울였으며, 그 후로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분석하기에 바쁘다.
이후 그는 금리의 독재자라고 불리고 있는데. 이는 일면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너무 과대평가되고 있다.
그 역시 3개월후에 금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금리는 임금 상승, 원자재 가격, 소비, 생산력 향상 등 경제의 모든 요소가 반영되어 결정되는 것이다.
금리변동은 증권시장에 큰 영향을 끼친다.
중앙은행은 단기 이자가 얼마인지를 보고 시중은행이 어느 정도 이자율로 재할인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은행은 이 이자율에 은행의 마진을 더하여 고객에게 이전한다. 이자는 돈의 가격인 셈이다.
금리가 높을수록, 즉 돈을 마련하기 위한 가격이 높아질수록 대출 수요는 줄어들게 되고, 반대로 금리가 낮아질수록 대출 수요는 많아진다. 이런 방식으로 중앙은행은 통화량을 조절한다.
경제가 침체기에 있으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린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이 은행에서 대출받기가 용이해진다.
기업 경영자들은 금리가 낮은 상태에서 투자하는 것이 더 유리하므로 새로운 투자계획을 짜게 된다.
기업이 유동적인 자금이 많이 가지고 있다면 금리가 낮을수록 그 돈으로 설비에 투자하게 될 것이다.
위의 사실들은 이론적일 뿐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 기업주나 경영진 사이에는 새로운 설비 투자나 상품 개발을 해야겠다면 생각보다는 비관론이 광범위하게 퍼진다.
소비자들은 행여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져 일단 지출과 부채를 줄인다.
중앙은행에서 발행한 화폐는 직접투자나 소비로 흘러가는 대신 증권시장으로 흘러가게 되어 증권시장에서는 상승운동이 진행된다. 경제뉴스가 나빠도 이 과정은 1년 이상 진행될 수 있다.
경기가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하면 투자, 소비, 기업 이윤이 늘기 시작한다.
경제가 완만하게 성장할 때, 중앙은행은 금리를 곧바로 올리지 않고 경제 성장을 위협하지 않기 위해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 이때는 직접투자나 소비가 모든 자금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식시장으로 갈 만한 돈은 계속 남게 되어 주가는 올라가고 기업 수익도 늘어나게 된다.
이제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시세 차익을 꿈꾸고 시장은 급격한 상승곡선을 타게 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1980년대 초 유가로 인해 유발된 인플레이션을 막는 데 성공한 이후 이 균형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약간의 오르내림은 있었으나 결국 성공한 셈이다.
이것이 다우존스 지수가 1000에서 11000포인트 이상으로 뛰어오른 이유이다.
돌이켜보면 1987년 10월의 대폭락은 이러한 상승 무드 중의 중간 휴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를 몇 차례 올린 결과 과잉 투기 열기가 불붙었고, 그로 말미암아 증시는 대폭락했다. 다시 금리를 낮추고 월스트리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최고점을 기록했다.
중앙은행이 이러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으면 주가는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상승세를 유지하게 되고, 몇 년씩 계속되는 하락장 같은 것은 생기기 않는다. 이런걸 볼 때 역시 중앙은행은 독립적이어야 한다.
만약 중앙은행이 이 활황과 침체 사이의 균형을 잡지 못해 인플레이션율이 높아지면서 경제가 통제 불가능할 정로도 빨리 성장하면 (지금 미국에 이런 위험이 있다)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이러한 상황엔 엄격한 통제가 필요하며 인플레이션을 붙잡기 위해 금리를 크게 올리면 사람들의 심리, 전반적인 경제와 증권시장에도 그 영향이 미친다.
그로 인해 주식시장은 매우 부정적이고 통화량은 급속히 감소하며 증권시장으로의 자금유입은 고갈된다.
신용매수자는 상승 금융비용 때문에 주식을 팔아야하고 예금이자가 높아지니 은행으로 가는 돈이 많아진다. 좋은소식이 들려도 주식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증권의 매수, 매도를 결정할 때 기업의 결산공고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이유는 대차대조표는 포장이기 일쑤이며 공시될 때는 이미 과거의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의 결과로 초래되는 경제 위기는 다소 늦게 나타난다.
자금조달 비용이 너무 높아 기업이 투자를 멈추거나 꺼릴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다.
수요가 위축되고 중앙은행은 금리를 다시 내리게 된다.
이미 인플레이션이 만연하여 임금이 가격을 올리고 가격이 다시 임금을 올리는 상황이면 화폐 가치 하락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설 때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 이제 금리가 떨어지면 ‘언제’ 라든가 ‘그러나’라는 말은 잊고 무조건 주식시장에 뛰어 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반복되는데 1991년 말~1992년 초, 1970년대에도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1967년 초 존슨 대통령이 세금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려고 관련 법안을 의회에 상정했을 때 그는 얼마동안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통화량을 늘릴 수 있었다.
1967년 초 존슨 대통령은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내 집권 기간 동안 금리를 낮추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자 투자자들은 마치 도약판에서 뛰어내리는 다이빙 선수처럼 미친 듯이 월스트리트로 뛰어들었다.
세금 인상에 대한 법안이 의회에서 2년 이상 통과되지 않자, 강세장은 더더욱 물 밀듯한 기세로 나타났다.
6. 채권: 주식의 경쟁상대
‘돈’이라는 요소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단기 이자외에 장기 이자율도 마찬가지이다.
장기 이자율은 오블리게이션(obligation)이라고도 하는 채권의 이자를 말한다.
이 이자가 높으면 높을수록 주식과의 경재은 피할 수 없다.
모든 예금주들 그리고 큰 보험회사나 연금보험의 펀드매니저들은 주식에 투자할 것인지 채권에 투자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채권시장의 이자가 높으면 주식시장으로 반대이면 주식시장으로 들어오는 돈은 많아진다.
장기 금리는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국가나 기업의 재정 충당 요구가 크면 그들은 채권을 더 발행하고, 채권을 팔기 위해 이에 상응하는 이자를 제공해야 한다. 경제 활황기에는 이러한 현상을 종종 볼 수 있다.
투자와 다른기업의 인수를 위한 자금 확보를 위해 기업은 주식외에도 채권을 발행한다. 이때 채권발행량이 수요를 초과하면 이자를 올려야 하고 반대로 국가나 기업이 신규자본이 필요없으면 장기금리는 내려간다.
장기금리와 단기금리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단기 금리가 장기금리처럼 높다면 돈을 장기적으로 묶어 둘 이유가 없으니 사람들은 단기투자를 할것이고
반대로 기업이 보통 단기금리수준으로 장기로 돈을 빌릴 수 있다면 채권을 발행할 것이다.
그러면 채권은 공급이 늘어나게 되고, 그 결과 시세는 하락하며, 장기 금리는 다시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자기 채권의 이자가 단기 이자율보다 확실히 높다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차리리 싼 단기 이자를 내고 자금을 충당하고자 하겠지만 투자자들은 장기 채권에 몰리게 된다.
그 결과 장기 채권의 수요는 올라가는 반면 공급은 줄어들어서, 시세는 상승하고 이자는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흔히 말하는 이자 차익거래가 진행된다.
단기 이자와 장기 이자의 상관관계는 일반적으로 수요, 공급에 따라 움직이는 채권시장에서 이미 결정된다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심화되면 중앙은행이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더라도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장기 이자는 즉시 상승한다.
반대로 경기가 침체되면 금리가 내릴것이라고 기대해 채권의 이자는 떨어진다.
그래서 가끔 장기 이자는 일정 기간 동안 단기 이자율 밑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나타나는 것이다.
7. 외화: 달러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유로화가 도입되었을 때 나는 그것이 증권시장에 좋을 것인지 아니면 나쁠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 답은 항상 같다. 나도, 누구도 알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다.
외환시세는 ‘돈’이라는 요소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앙은행은 자국의 화폐 가치 안정성과 자국의 환율 변동도 관찰, 예의 주시한다. 환율파수꾼이라 부른다.
인플레이션으로 환율이 약해지면, 중앙은행은 타국화폐로 자국 화폐를 사는 방법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서 이것을 저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외환보유가 충분치 않을 경우, 자국 통화에의 투자를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금리를 올리는 수밖에 없다.
반대로 환율이 너무 높아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결국 수출 산업이 위기에 빠지려는 나라는 우선 금리를 낮춘다. 스위스와 독일이 오랫동안 이 상황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독일의 중앙은행은 항상 화폐 가치 안정만 주력하니 10만개의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곤 했다.
돈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소는 두 나라 통화 사이의 이자 차익 거래이다.
한 국가의 이자가 특히 낮고 다른 나라의 이자가 높다면, 한쪽 화폐로 돈을 빌려서 다른 나라에 예금하거나 투자함으로써 손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현상은 엔화와 달러화 사이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다.
대형 투자자와 거의 모든 헤지펀드가 싼 엔화를 빌려서 수십억 대의 달러 채권을 샀던 것이다.
누구나 1~2% 대인 엔화를 자금을 대출받아 6%인 미국 채권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날 엔화가 너무 많이 올라 환 손실이 이자 차익보다 많아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헤지펀는 보유하고 있는 미국 채권을 서둘러 팔 것이고, 채권시장은 압박을 받고 미국의 장기 이자는 순식간에 올라갈 것이다. 엔화의 강세라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돈의 흐름이 막히게 된다.
일본 경기가 나아지거나 엔화가 너무 약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본 중앙은행이 언젠가는 금리를 다시 올릴 수도 있다. 반대로 엔화 대출비용이 올라가도 투자자는 미국 채권을 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이자를 약간 올렸던 1994년 미국의 채권시장에서 경험했다.
저렴한 단기 달러 대출을 받아 억대의 채권을 매수하였는데, 연방준비위가 금리를 올리자 시장은 경악했고 달러 채권의 매매는 뚝 끊어졌다. 이로인해 헤지펀드는 몇십 억 달러의 돈을 잃었다.
투자자가 옳은 진단을 내리고 ‘돈’과 관련된 요소들이 기대한 것처럼 진행된다고 해도, 주식시장의 앞날을 제대로 예측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심리’ 역시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8. 대중의 심리
1994년 1987년의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대중의 심리다.
자금이 유동적이든 유동적이지 않든 증시가 돈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사람들의 ‘심리’에 달려 있다.
1987년은 여기저기서 삼페인이 터지는 소리를 들리던 한 해였다.
25세의 하버드 졸업생은 투자은행에 들어가기만 하면 자신이 원하는 최고급 승용차를 살 수 있었다.
1994년에는 그와 반대로 다우존스 지수가 최고점에 도달했음에도 낙관론자보다는 비관론자가 훨씬 많았다
그러면 대중의 심리적 반응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가? 대중은 일순간 180도 다른반응을 보이곤 한다.
분석은 원칙적으로 심리분석이어야하며, 또한 개인이 아닌 집단의 심리분석이어야 한다.
증권시장은 대중심리가 바로 그 자체이기 때무이다.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살마은 구스타프 르봉 (Gustave Le Bon)의 『군중 심리』를 읽기 권장한다.
1962년 발간된 『이것이 주식시장이다』라는 책에서 나는 인간의 심리란 결코 예측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독일에서 경제학과 경제심리를 공부한 미국 대학의 교수인 조카가 돌연 사망해 들을수 없었던 주식투자자들의 집단적인 혹은 개인적인 심리 반응을 측정가능하다는 것을 진진하게 고민한 결과,
개인과 집단의 깊은 심리적 동기나 일정한 상황에서의 반응은 정말 예측할 수 없지만, 개개인의 결정의 합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즉 대중심리적인 반응이 얼마나 격렬한 것인지와 대략의 시기 정도는 경험 많은 주식투자자라면 어느 정도 예감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증권심리학
1. 당신은 부화뇌동파인가, 소신파인가?
증시가 호재성 또는 악재성 뉴스에 반응하는 강도를 이해하는 것을 나는 ‘시장의 기술적 이해’라고 부른다
내게 기술적 이해는 과연 증권의 대다수가 현재 누구의 손아귀에 있는가? 이다.
크게 보아 나는 주식투자자를 부화뇌동파와 소신파, 이 두 가지로 분류한다.
소신파는 말 그대로 투자자이다. 장기적으로 승자이며 수익을 보는 것은 부화뇌동파 덕분인 경우가 많다.
증권을 가지고 노름을 하는 이들은 부화뇌동파에 속한다.
어떻게 다른가?
소신파는 프로이센의 몰트케 원수가 전쟁의 승리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한 네가지 요소. 4G를 가진다.
4G,란 돈 (Geld), 생각 (Gedanken), 인내 (Geduld), 그리고 행운 (Gluck)이다.
2. 돈
어떤 사람이 돈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재산이 많고 적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온전한 자기 돈을 가지고 있고 부채가 없을 때 돈이 있는 것이다.
1950년대 뉴욕중시가 상승국면시 나는 전기와 컴퓨터 부문을 유망 종목이라고 생각해서 관련 기업의 주식을 샀다. 그때 더 많은 수익을 얻고자 나의 한계를 넘어 신용으로 추가 매수를 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아이젠하워였는데, 전쟁 영웅외에 별로 뛰어난 바가 없었다. 월스트리트에서는 대통령이 국민들의 신임을 받고 있다믄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고 집권당이 어느 정당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유는 공화당, 민주당 모두 자본주의 철학이 확고한 당이기 때문이다.
1년 뒤 차기 대통령선거에도 아이젠하워가 재선될 거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증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1955년 아이젠하워에게 심장마비가 왔다. 다음날 주가는 10~20%까지 떨어지는 폭락을 보였다.
상황이 매우 불확실해지자 나는 증거금을 더 내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더 이상 대출을 받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보유 주식을 팔아야 했다. 물론 손해를 보고 말이다.
나 같이 신용으로 주식을 샀던 많은 동료들이 주식을 팔아야 했고, 그리하여 폭락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아이젠하워가 건강을 회복하자 증시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시세도 회복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주식은 시세가 10배나 올랐으니ㅏ 내게는 이미 버스가 떠나간 뒤였다.
유사한 경험은 1962년 2월이었는데, 나는 당시 파리의 증시에서 거래하고 있었다. 이번엔 빚은 없었다.
알제리는 당시 전쟁중이었는데,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알제리를 해방시키고자 했다.
반대여론으로 난처한 입장이었는데 4명의 장군들이 쿠테타를 일으킨 것이다. 국가 위기 사태였다.
다음날 나는 객장대신 영화인과 방송인, 언론인의 모임 장소인 셰 루이 (Chez Louis) 레스토랑으로 갔다.
메뉴판을 보던중 증권거래소의 동료가 사태를 알려주었다. 피바다란다. 증시는 폭락했다는 것이다.
“그래?”하곤 나는 별일 없는 사람처럼 점심을 즐겼다. 나는 드골의 승리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빚이 없었기 때문에 걱정을 안했고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그날 저녁, 드골은 TV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고 프랑스는 단호히 그를 따랐다.
네 명의 장군은 항복했고 주식시장은 이미 손실의 반을 회복했다.
이러한 경험으로 나는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절대 빚내서 주식 투자를 하지 말 것!
3. 생각
증시에서 지적으로 거래하는 투자자는 누구나 생각 한다. 그 생각이 옳든 그르든 그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생각하고 난 뒤 주식 거래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믿어야 한다. 충분한 생각 끝에 전략을 세웠다면 친구, 여론, 일상생활등에 흔들리지 말라.
‘몰트케 (Moltke)의 네가지 요소’에 또 하나의 요소인 ‘신념’을 추가하고 싶다.
이 ‘생각’을 때론 ‘상상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나는 차르 시대의 러시아 채권과 톡일의 채권을 이야기하면서 상상력이 투자자에게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설명했다. 나는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고 말한 아인슈타인에 절대적으로 찬성한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전쟁 기후 이탈리아는 피해가 거의 없었으며 공장도 대부분 온전하게 보존되었으나 원자재 부족으로 살 수가 없으니 미국과 협력하여 임가공 수출 조건으로 모, 면, 인조 비단등의 원료를 공급해 주었다.
이탈이라에서 가공이 끝나면 일부는 미국에 수출, 나머지는 내수시장 또는 유럽 다른국가로 수출되었다.
1946년부터 이탈리아의 섬유 산업은 전성기를 맞았고 밀라노의 증시 역시 부활의 계기를 맞았다.
그러나 섬유 산업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련되는 산업 부문에만 제한되어 나타났다.
당시 미국에는 유럽에 비해 비관적인 전망이 만연해 있었다.
밀라노 증권거래소 친구의 “지금 비싸지 않은 것은 더 이상 오를 이유가 없는 것” 뿐이라는 조언에 투자의 마음을 정리했다.
그런데 몇 주 후 취리히 신문의 작은 기사에 캘리포니아의 거대 자동차 회사인 카이저 프라쪄 (Kaiser-Frazer)가 튜린에 있는 피아트 (Fiat)와 계약을 맺었다는 내용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계약내용은 이탈리아회사가 매년 임가공의 형태로 1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한다는 것이었다.
‘섬유 산업 이후로 이런 방법이 하나의 패턴이 된 것이군. 그럼 섬유 산업 다음은 자동차라는 소리군.’
몇 분 생각한 후 나는 계획을 세웠다. 증권거래소가 문을 열자 가장 형편없는 주식을 요청했고 직원은 “이소타 프라씨니 (Isotta-Fraschini: IF)”라고 했고 이 회사가 전쟁 이전 유명한 영화배우나 갑부들이 타고 다니던 초호화 리무진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지금은 ‘재정 위기에 있는 기업’ 이라고?
나는 150리라에 주식을 샀다. 바로 떠났던 밀라노를 몇 달이 지나 돌아오니 시세가 450 이었다.
나는 주식을 더 사라고 주문했고 상상력에 근거한 나의 생각이 그렇게 빨리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 주식은 아주 특별한 경우였고 그 주식만이 급등했고 피아트를 포함한 다른주식은 변동이 없었다.
150리라의 이소타 주식은 1900리라까지 올라갔다가 1500리라로 떨어졌다.
경제재건과정에서 각 산업 부문은 일정한 순서로 투자된다.
이탈리아는 자동차 산업으로 유명한 나라였으며 계속해서 이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여기저기서 외국인 투자자들, 사업가들이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을 조사하고 활성화하기위한 계획을 검토했다. 그 중 한 그룹이 이소타를 인수하여 재조직하고 정상화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었다.
그 회사는 이후 다른 회사와 합병해서 현재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 성공투자는 내기억속 여전히 남아있다.
4. 인내
“증권거래소에서는 머리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번다.”
라고 프랑크푸르트의 어느 경험 많은 증권거래인이 말한 바 있다. 명인이다.
인내는 아마도 주식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번번히 실수를 피하게 하는 요소이다.
“투자에서 얻은 돈은 고통의 대가로 받은 돈, 즉 고통의 결과이다.”
투자의 근거가 올바른 전제에서 출발한다면 투자는 성공할 것이다
투자라는 건물의 기초가 튼튼하고 올바르면 모든 것은 시간 문제다. 대다수는 사이사이의 폭풍과 악천후를 견뎌낼 수 있는 인내와 주관이 모자란다. 시세가 떨어지면 심리적 혼란에 빠져 주식을 팔아 치운다.
5. 행운
물론 투자자에게는 운이 따라야 한다.
전쟁, 자연 재해, 정치적 혼란, 새로운 발명, 사기 등은 투자자의 판단 기초가 되었던 여러 전제조건을 흔든다. 소신파 투자자에게는 돈과 생각, 인내 외에도 행운이 필요하다.
이상 네가지 요소 (돈, 생각, 인내, 행운)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부화뇌동파 투자자가된다.
돈이 없거나 빚이 있다면 투자자는 인내하지 못하고 상황따라 포지션을 바꿀 수 밖에 없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전략을 짤 수 없다. 감정에 의해 좌지우지 하게 된다.
인내가 없으면 돈,생각 역시 별 도움이 안 된다. 생각을 실현시키기도 전에 조그만 장애에 흔들리게 된다.
행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신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대한, 인내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게 된다
기술적 이해, 즉 주식시장이 호재성, 악재성 정보에 어느 정도 반응하는가 하는 것은 한가지에 달려있다.
증권이 소신파 투자자의 수중에 있는가, 부화뇌동파 투자자의 수중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증권이 부화뇌동파 수중이면 특별히 좋은소식도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나쁜소식은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소신파 투자자들이 증권의 다수를 가지고 있으면 좋은 소식은 아주 좋은 결과를, 나쁜 소식은 별로 반응을 일으키지 못한다. 나는 전자를 ‘과매수 시장’, 후자를 ‘과매도 시장’이라고 부른다.
6. 코스톨라니의 달걀
시장이 과매수, 과매도 상태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식시장의 상승운동과 하강운동의 해부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강운동의 끝을 알아채지 못하면 상승운동의 시작을 알아낼 수가 없으며, 상승운동이 어디서 끝날 것인지를 알지 못하면 하강운동의 시작을 예측할 수가 없다.
나는 모든 투자 시장 (주식, 채권, 원자재, 보석등의 투자가 이루어지는 시장)의 장기 변동을 강세장과 약세장으로 구분한다.
강세장과 약세장은 각기 세 가지 국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조정국면
⚫적응국면 혹은 동행국면
⚫과장국면
상승운동과 하강운동의 여러 국면이 서로 교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원형으로 그려 볼 수 있다.
이 원형을 나는 ‘코스톨라니의 달걀’이라고 칭한다.
1982년에서 1987년 8월까지의 강세장과 그해 8월부터 10월까지의 약세장을 하나의 증권시장 사이클로 그려보면 다음의 그림과 같다.
1982년 원형의 가장 최저점, 즉 과장국면의 끝에서부터 시작하자, 시세는 이미 1년 이상 바닥을 기고 있었다. 당시 <비즈니스 위크>지의 표지에 ‘주식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보도 된 바 있다.
누구도 주식을 사려고 하지 않으며 금, 부동산, 유가물 등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논조였다. 이런 상황 설명이 다 틀렸다고는 할 수 없었다. 유가 급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지수는 두 자리를 오르내렸고, 사람들은 재산을 화폐절하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다. 이 설명이 완전히 옳았다고도 볼 수 없었다.
증권거래소의 절반의 진실은 이미 완전한 거짓인 것이다.
아무도 주식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는 기사에도 불구하고 월스트리트에서는 하루에 5천만 주의 주식이 거래되었다. 이 말은 누군가가 그만큼의 주식을 팔았고 또 누군가는 그 만큼의 주식을 샀다는 뜻이다.
증권거래소에서 매수와 매도는 동시에 일어난다. “아무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거나 “아무도 팔려는 사람이 없다”라는 말은 주식 논평에서 가장 어리석은 말이다.
이 불투명한 장세에서 5천만주나 사갔단 말인가? 바로 소신파 투자자들이다.
그들은 경제 상황이 아주 나쁘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그 시기에 덤핑가로 주식을 산다.
그러고 나면 이제부터 상승운동의 제1국면인 조정국면이 시작되는 것이다.
최하로 떨어진 주식 시세는 조정국면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적은 거래량 속에서 어느 정도 현실적이고 적정한 수준으로 수정된다. 이때에도 매수자는 아직 소신파 투자자들이다.
1982년 말부터 금융시장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돈이라는 요소가 긍정적으로 돌아선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편고금리정책이 성공하기 시작했으며, 금리 정책의 고삐를 늦추자 장기 금리가 내려갔다.
그 후 경제. 정치 상황은 점점 회복되었다. 미국은 월남점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벌어진 미대사관 인질극의 상처에서 점차로 벗어나고 있었고 단지 잠자고 있었으며 다시 깨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레이건은 미국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었고 미국인의 자신감을 회복시켰다.
이 시기에 시장은 제2국면인 적응국면 혹은 동행국면으로 넘어선다.
이 시기의 주가는 주변의 상황과 평행해서 조금씩 상승하며 거래량도 이에 따라 늘어난다.
1980년대 중반의 상황은 아주 긍정적이었다. 국제 유가가 떨어진 것이다. 서구 사회를 에너지 위기로 몰고 간 OPEC의 힘은 약화되었다. 인플레이션은 거의 0으로 떨어졌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폴 볼커 의장은 다시 금리를 내렸다. 법인세를 32% 낮춘 세제 개혁으로 기업이익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백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이런 좋은 소식들과 함께 주식 시세는 상승했다.
제2국면인 동행국면 시기의 매수자를 나는 ‘혼혈아’라고 부른다. 소신파,부화뇌동파를 절반씩 닮아서이다.
전통적 투자에 관심이 있고 이미 투자경험이 있으며, 시세 상승을 알아낼 판단력을 가지고 있으며 적시에 매수신청을 낼 줄 아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매수는 또다시 시세를 상승시킨다.
그러나 여기에는 시장을 자동적으로 세 번째 국면으로 넘어가게 만드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부화뇌동파 투자자들이 매수에 참여하는 시기이다.
주가는 거래량이 늘면서 시간 단위로 상승하며, 시세와 고조된 분위기가 서로를 자극해 올라간 주가가 다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고조된 분위기는 다시 주가 상승을 일으킨다. 오직 대중의 흥분만이 요소이다.
아주 열정적인 투자자였으나 런던 공황 때 재산을 몽땅 잃어버린 아이작 뉴턴 경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체 운동은 센티미터와 초 단위로 측정할 수 있으나, 정신 나간 군중이 시세를 어떻게 끌고 갈지는 정말 알 수 없다.”
1987년 초에 시장은 제3국면인 과장국면으로 들어섰다.
약 2005포인트까지 오른 주가지수와 5년 동안 이어진 매수세는 대규모의 이반 대중을 증시로 끌어들였다.
1980년~1982년 사이 주식을 바닥가격에 팔고 돈을 유가물에 투자했던 부화뇌동파 투자자들이 이제 다시 주식시장에 끼어들려고 했다. 그들은 이미 올라갈 대로 올라간 현재 유행하는 주식만 사는 것이다.
그럼 누가 이 부화뇌동하는 소심한 투자자들에게 기록적인 값으로 주식을 파는 것일까?
물론 주가가 바닥을 기고 있을 때 밀 주식을 사 놓은 소신파 투자자들이다.
과장국면은 오래 갈 수 있으며, 주식 매입 역시 돈이라는 요소가 있는 한 계속된다.
소신파 투자자의 손에 있던 주식이 모두 부화뇌동파 투자자의 손으로 넘어가면 이 국면은 끝이 난다.
부화뇌동파 투자자들은 자신들의 수중엔 더 이상 돈이 없고 신용으로 산 주식이 전부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돈은 소신파 투자자들에게 넘어가고 난 다음이다.
주식을 더 높은 가격에 사고자 하는 고객은 기다려도 나타나 주지 않는다.
돈방석에 앉은 소신파들은 살 리 없고 돈마저 부정적으로 돌아서면 파탄은 이미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투자 기관에서 일하는 머니매니저들은 1980년대 여피족의 상징인 소위 골든보이들이다.
투자은행, 펀드회사, 보험회사등은 최고의 연봉을 주고 하버드나 런던경제학교를 나온 엘리트를 데려왔다.
투자 경험이 거의 없는데 억대의 돈을 관리하는데 선물시장에 과잉 투자해 그들에겐 ‘돈’마저도 없었다.
원자재 강세장이 지나가자 그들은 뭔가 다른 것을 생각해내야 했다. 주가지수 선물거래 계약을 시작했다.
잘 알려진 주가지수는 다우존스(Dow Jones Index)로 30개 기업의 평균 주가를 나타내는 지수이다.
S&P 500 (Standard & Poo’s 500)지수는 다우존스 30개를 포함한 500대 기업의 평균 주가를 말한다.
주가지수 선물거래는 이 S&P500지수를 기준으로 선물 계약이 결정되면 투자자는 지수에 500을 곱한 계약량을 갖게 된다. 지수가 340포인트인 당시에는 17만 달러 정도였다.
체결위한 개시증거금은 총액의 5% 미만의 자기 자본 95%의 신용으로 투자하는것과 다르지 않다.
적어도 10%의 자기 자본을 납부하도록 했던 1929년보다 더 떨어진 비율이다. 거래방식은 더 효과적이다.
선물 계약을 매입했는데 시장이 후퇴하여 손실이면 브로커는 즉시 추가증거금을 요구하고 납부할 수 없으면 그의 포지션은 자동적으로 해지된다. 반대매매를 하여 거래를 끝내고 브로커는 고객을 추방한다.
이런 새로운 투자 방식은 차익거래에 새로운 활동 영역을 열어주었다.
선물거래를 위한 증거금 비율이 아주 낮았기 때문에 1987년 이 시장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녔다.
선물시장이 주도권을 쥐게 됨에 따라,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꼬리가 개를 흔드는 상황이 되었다
골든보이들은 거의 다 선물시장에 참여하여 지수선물 매수로 선물시장을 다시 위로 끌어올렸다.
엘리엇 파동 이론을 이용해 1988년에는 다우존스 지수가 3686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로버트 프레히터는 투자자들의 스타가 되었다. 그가 유명해졌다는 것은 많은 주식이 이미 부화뇌동파 투자자들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을 보여 주는 분명한 징표였다. 그가 한 짓은 인간 이성에 대한 모욕이었다.
허황된 기쁨에 들떠 부화뇌동파 투자자는 돈이라는 요소가 부정적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강세장 원동력은 전 해의 통화량 팽창덕이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된 앨런 그린스펀은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막기 위해 1987년 1월부터 여름까지 수차레 금리를 인상했다.
장기 채권의 이자율이 2% 올라갔고 8월의 다우존스 지수는 2722포인트였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졌다.
시장은 하강운동의 첫 번째 국면인 조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때는 새로운 고객이 없으므로 약간의 매도만 있어도 시세가 바로 떨어진다.
10월 중순경, 시장은 동행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미국과 독일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미국은 유럽 특히 독일과의 무역에서 엄청남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미국은 독일연방은행의 지나칠 정도의 규제가 많은 자금정책에 국내 경기 활성화를 위해 미국 상품을 유럽으로 수출 할 수 있도록 요구했다.
그 주말에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 재무장관이 독일연방은행 총재에게 금리를 더 내려 독일 시장을 활성화 안 시킨다면 달러를 더 떨어뜨리겠다고 위협하자, 시장은 하강운동의 세 번째 과장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비관주의가 시장에 팽배하였고 다시 가격을 압박해 시세는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마지막 국면의 이러한 약세장 흐름은 심리적인 전기 충격을 받고 정신을 차려서 악순환에서 빠져 나올때까지 계속되는 게 보통이다. 골든보이들에게는 마지막 요소인 ‘행운’마저 없었다.
10월 10일, 포지션의 강제해지가 시작되었고 이는 S&P500 선물 시세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강제 매도가 계속 일어나고 이는 다시 시세 하락을 일으켰다.
골든보이들은 모든 주식을 파는 대신에 간단하고 빠르며 무엇보다 비용이 덜 드는 선물 거래 계약을 파기하기로 한 것이다. 오늘날도 인기있으며 포트폴리오 보험 (Pfrtfolio Insurance)이라고 칭한다.
참 말도 안되는게 이 보험은 마치 화재로부터 집을 보호하기 위해 집을 판다는 식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턱대고 하나의 문으로 빠져나가려고만 했다.
폐장의 4시가 되자 주식시장은 다우존스 지수 508포인트 하락으로 마감되었다. 시장은 폭락한 것이다.
그렇다면 1987년 10월 19일 이 덤핑 가격에 주식을 산 사람들은 누구일까? 바로 소신파 투자자들이다.
그들은 돈도 가지고 있고 인내도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그럴 때 희생양을 찾는다. 성공하면 자기가 잘났고 실패하면 남의 탓으로 돌리기 좋아한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제3국면이 단 하루만에 진행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언제나 손해를 보는 사람은 비싸게 사고 싸게 파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낸 돈으로 산 주식을 가지고 있다면, 시세 하락에도 평안할 수 있고 또 실제로 평안하다.
1987년에 나는 매수자 입장에 있지 않았으며 현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도 편했다.
또한 당시 대규모 폭락을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이런 저런 주식을 내다 판 후였다.
1987년 10월 19일 이후 많은 증권 참배객들이 뉴욕으로 순례 여행을 왔다.
약 5만명의 골든보이들은 직장을 잃었고 그것은 건강한 정화 작업이었다. 카지노판으로 만든 벌이었다.
증권시장의 거물 로버트 프레히터는 비관론자 편에 섰고 다우존스가 1000포인트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견했고 곧바로 시장은 조정국면으로 들어섰지만 경제는 계속 성장했으며 주가가 상승하여 동행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이때 마침 증시는 소련의 붕괴, 독일의 통일 그리고 신기술 시대로의 편입이라는 호재를 만났다.
1998년에 시장은 다시 과장국면에 들어섰다. 누구든 시장에 참여하고자 했다.
특히 독일의 벤처시장 (New Market)은 거친 노름판이 되었다.
부푼 풍선을 찌를 세 가지 종류의 바늘이 나타났다. 동남아시아의 경제 위기, 심각한 상황의 러시아 재정, 과장된 투기 열풍에 대한 앨런 그린스펀의 경고 등이 다시 시세 하락을 부추겼다.
다시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이 예견되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세계 경제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자금을 풀었다. 이는 소신파 투자자들에게 시장회복의 종소리를 울렸다.
첫 번째 요소인 돈이 다시 긍정적이 되었고 시세는 빨리 회복했으며, 디플레이션은 오지 않았다.
‘코스톨라니 달걀’의 과장국면에서 말하는 ‘위로와 과장’이나 ‘아래로의 과장’도 역시 심하지 않았다.
우리는 제2국면의 끄트머리에 서있고 흥분의 기미는 아직 없다.
지금은 인플레이션과 이자율이 오를까봐 두려워한다.
7. 붐과 주가 폭락: 분리할 수 없는 쌍
1982년과 1987년 사이에 일어난 증권시장의 변동은 대표적인 사이클 순환의 예이다.
주식, 채권, 원자재, 외환, 부동산 모두 사이클은 동일한 패턴에 따라 움직인다.
상승운동 및 하강운동은 인간 심리를 반영한다.
붐과 주가 폭락은 절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쌍이어서, 하나가 없는 다른 하나의 존재는 생각할수 없다.
번성기에 붐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결국에 가서는 그것을 터뜨리는 바늘이 나타난다.
그것은 영원불변의 법칙이다.
400여 년에 이르는 주식시장의 역사는 바로 붐과 폭락의 반복 그 자체이다.
몇몇은 세계를 변화시켰고 역사에 기록되기도 했다.
8. 17세기의 튤립 투기
튤립처럼 부드럽고 예쁜 꽃이 붐과 공황의 전통적인 상징이 된 것은 아이러니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경제를 거의 뿌리째 흔들어 놓았는데, 터키에 파견된 독일 황제의 대사였던 한 귀족은 터키인들이 투르반이라고 부르는 꽃을 너무 좋아해 싫증나도록 실컷 보고 싶어했다.
귀국하며 들여온 꽃이 식물학자들에 의해 북유럽의 거친 기후에 적응하도록 만드는데 성공했다.
평범한 꽃이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변했다.
오늘날 현대 미술품 수집으로 지위를 과시하는 것처럼, 튤립은 당시 지위를 말해주는 상징이 되었다.
한 부유한 선주가 자신을 보다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찾다가 딸 결혼식에 최고급 다이아몬드가 아닌 희귀종인 튤립 뿌리를 선물하고자 했다. 중앙에 테이블을 설치하고 값비싼 델프터 접시위에 튤립 뿌리를 올려놓았고 한 항해사가 먹음직한 양파로 착각한 튤립 뿌리를 집어먹었다.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부르주아 계급은 튤립을 이용해서 사회적 지위를 올리려고 했고 이 바보같은 행동을 따라했다.
수요는 계속 증가해 자국생산만으로는 충족하기 어려웠고 8~9월엔 값이 절정에 달했다.
계산이 빠르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그 기회에 돈을 투자했다. 시장은 이제 제3국면에 도달했다.
1637년 이르러 마침내 풍선은 터져 버렸다.
대량 거래로 350가지 종류가 이미 시장에 나왔고 이제 그것은 더 이상 귀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투자자들은 튤립 인플레이션의 현실을 깨달았다.
‘무가치한 것’을 대상으로 한 비이성적인 게임이 벌어진다는 것은 경제적 붐의 끝, 다시 말해 번영기의 마지막 국면이며, 돈이 줄줄 흐르는 강세장의 제3국면을 말하는 징후이다.
강세장은 처음엔 온건하며 상승 흐름이 도를 넘어 진행되고 중간 정도의 주식을 비이성적으로 상승시키게 되고 결국엔 대량의 무가치한 주식까지도 상승운동에 포함되게 된다.
새 자본이 유입되면서 고급과 수요의 균형이 파되된다.
상승하는 시세에 눈이 먼 소액 투자자들은 계속 주식 게임에 빠져 들어 갔다.
소액 투자자의 귀에 경고는 들이지 않았으며 그들은 그저 흐름에 합류하는 데 몰두했다.
사람의 세포가 변하지 않듯, 증권거래소의 세포 조직도 변하지 않는다.
17세기든 오늘날이든, 월스트리트이든 조그만 나라의 증권거래소든 나타나는 현상은 별로 차이가 없다.
9. 프랑스를 파멸로 이끈 수학의 천재
프랑스 역시 국고가 비어가고 있던 18세기 잊지 못할 주식 대 폭락을 경험했다.
어린 루이 15세의 섭정을 맡고 있던 왕의 삼촌은, 어떻게 국고를 채울 수 있을까로 고민할 때 파리에서 은행, 무역, 통화 분야에 대단한 전문가이며 천재적으로 셈에 능했던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우(John Law)와 친한 친구가 되었고 존 로우는 왕으로부터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무제한의 권한을 위임받았으며 근대적 의미의 프랑스 최초 은행인 중앙은행을 건립했다.
이후 그는 금융자본가로 전환하여 미시시피 회사를 서립하고 루이지애나의 식민지화와 광물의 발굴 및 무역업무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 무에서 유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어떻게 국민 모두가 많은 증권을 소유하도록 할 수 있는가를 이해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서서히 투자 열기를 불러일으켰다.
미시시피 회사의 홍보책자를 통해 미국의 전원적인 풍경, 금은 광산이 지천인 산을 보여주며 개발지역으로 사람들을 유인했다. 이런 덕택에 18세기부터 은행가들의 사무실이 있는 깡포아 거리로 자본이 흘러들었다.
계속 새 주식이 발행되었고 3주 동안 시장에서는 약30만에 달하는 신주가 쏟아져 나왔는데 바로 매진되었다. 모두가 배당금보다는 20배까지 치솟을 경우의 시세 차익에만 관심이 있었다.
1719년에 기록이 갱신되었다. 주식은 명목가치의 36배에 해당하는 1만8천파운드에 도달했다.
유럽 전체가 긴장한 채 지켜보았고 학자들은 존 로우의 시스템을 두고 토론했다.
존 로우의 시스템은 연필을 들고 배당금을 계산해보거나, 혹은 정말 배당금이나 당기수익이 있을지 질문을 던져 보기만 하면 곧바로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소신파 투자자만이 계산을 해 보았다.
여기저기서 주식 매도가 시작되면서 위기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빈의 증권거래소의 금언
“한 명의 로스차일드가 강세장을 만들 수는 있어도 약세장만큼은 막을 수 없다.”
1만8천파운드 나가던 주식값은 1720년 10월에는 40파운드에 이르렀다.
6주 전만 해도 부자였던 사람들이 이젠 가난해졌다.
몽테스키외는 이 사건을 두고 “존 로우는 옷장수가 옷을 뒤집듯 온 나라를 뒤집어 놓았다”라고 말했다.
파리의 신물들은 “여기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아들이 쉬고 있으니 그는 계산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천재적인 수학 실력으로 프랑스를 파멸로 이끌었다.”
안개 낀 밤 도망가듯 파리를 떠났고 결국 1729년 베네딕트에서 굶주림과 무관심속에 쓸쓸히 죽어 갔다.
그이 시신은 100년이 지나 조카에 의해 성 모이제교회로 옮겨져 현재까지 거기에 있다.
존 로우는 거물 투자자였지 사기꾼은 아니었다. 그는 끊임없이 군주에게 돈을 대야 했고 희생양이었다.
이 사건은 국가가 중앙은행에 보증도 없이 대출을 요구하면 언제든지 발행할 수 있는, 은행권 인플레이션의 전형적인 사건이었다. 이로 프랑스에서는 50년이상 투자 및 증권에 대한 반발이 지속되었다.
10. 1929년 주식 대폭락의 본질
미 대륙의 발견이나 프랑스혁명처럼, 1929년 미국의 경제 위기는 서구 사회의 모습과 사회 구조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1929년은 일대 전환점이었다.
미국은 사실 1차 세계대전 전에는 채무국이었는데, 그 후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 덕택에 채권국으로 급부상했다. 산업생산과 소비도 끊임없이 증가했다. ‘신용(credit)’이라는 기적의 약 덕분이었다.
원자재와 증권은 계속해서 올랐다. 중산층도 서민도 모두 부자들의 투자를 흉내냈다.
시장은 계속해서 상승운동의 제3국면에 있었다.
그러나 투자의 토대를 살펴보면 실상은 연약한 다리를 가진 거인과 같은 꼴이었다.
헨리 포드 1세는 새로운 자동차 모델을 내놓았고 사람들은 밤에는 직 펠드 극장에서 여러 쇼를 즐겼다.
이 쇼의 보이지 않는 조종자들, 즉 월스트리트의 사람들 (오늘날 펀드매니저나 투자회사)은 주식시장의 위험한 상황을 군중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연막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1929년 드디어 세계사에 길이 남을 공황이 왔다. 세계 역사장 가장 큰 금융 위기로 손꼽는다.
공항은 마치 자연 재해처럼 경제 호황기에 갑자기 터졌다.
이 호황은 후버 대통령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었다.
경제학자들은 영국 은행의 할인율 상승 때문이라고, 다른이는 금리를 몇 번 올려도 월스트리트는 계속 활기찼다고 반박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런던의 포토마텐 주식의 주가 폭락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1929년 9월에 일어난 포토마텐 사건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일어난 대규모 금융 사건으로 심리적 영향은 대단했다. 단 한 번에 신뢰가 무너져 버린 것이었다.
트러스트나 지주회사의 정직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의 기업 상황을 돌이켜 보자.
모회사는 자회사를 만들고, 자회사는 모회사의 주식을 샀다. 이제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정당하든 정당하지 않든, 또는 회상에 수익이 있든 없든 주가가 오른다는 것이다.
대중의 변덕은 주가의 변덕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대중은 주가가 오를 때만 사고, 그렇게 해서 주가는 더욱 더 오른다
10월22일 드디어 공황이 왔다.
증시의 붐은 유입되는 돈과 주식 투자를 목적으로 한 자금대출로 커다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터질 날만은 기다리게 된다. 증권시장의 붐을 거치지 않은 공황은 없으며, 공황으로 끝나지 않는 붐도 없다.
10월22일, 원스트리트에서는 대규모의 매도가 이루어졌고 투자자들의 신경은 매우 예민해졌다.
10월23일, 거래는 부진했고 소수의 투자자만이 주가가 떨어진 주식을 샀다.
10월24일, 폭풍 전야의 고요가 있은 뒤 세계의 종말이 온 것처럼 공황이 왔다.
매도자들이 눈사태를 만난 것처럼 매도 주문을 냈으나 매수자는 없었다.
당시 월스트리트를 지배하던 조종자중 하나인 내셔널 시티 뱅크의 총재 찰스 미첼은 JP모건 사무실로 달려갔다. 무슨 조치든 취해야 한다고 말하는 미첼과 은행가들을 모아 회의를 하자고 대답하는 모건.
다음날 <월스트리트 저널> 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그것은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증권시장의 반응일 뿐이다. 몇 종목의 주식이 과도하게 올랐기 때문에 조정은 필수불가결하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넌센스적 발상이었다.
시장은 제1의 조정국면으로 시작해서 제2, 제3국면으로 넘어가는 것인데 그 점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뉴욕의 5대 은행가들이 회의를 위해 모건의 사무실에 모였다. 회복약인 돈을 만들어내야 했다.
1시간이 채 안 되어 나온 전략은 각 은행이 월스트리트를 재생시키기 위해 2억4천만 달러를 마련하기로 한 것이었다. 뉴욕 증권거래소의 부소장 리차드 위드니가 그 막중한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끝없는 낙관론은 다시 끝없는 비관론으로 바뀌었다.
다음날 시세는 공급 과잉으로 인해 떨어졌고, 시세 하락은 다시 매도를 촉진했다.
증권가 직원들은 고객의 예탁금 수준을 검토하느라 밤을 세웠다.
중개인들은 증거금을 올리라는 메시지와 예수금을 송금하라는 전보를 발송했지만 답장은 “모든 주식을 파시오!”라는 내용의 위임장만 들어 있었다. 시중에는 돈이 없었던 것이다.
1929년 10월 28일 증권거래소의 지하실에서 비밀 회담이 다시 열렸다.
손실은 막대했고 주식시장은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고, 경제는 뿌리째 흔들렸다
사람들은 투자금을 조금이라도 건지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호황기에는 말단 직원조차도 증권 투자를 통해 추가 수입이 가능했기 때문에 봉금 이상으로 지출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축제는 끝이났고 이제 위기는 소비자로부터 생산자에게로 넘어갔다.
가난해진 투자자는 점심 식사 대신 물 한 잔과 아스피린을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부의 상징이었던 고층 건물들이 이제 텅 비었고 자살률도 급속도로 높아졌다.
캐딜락을 타고 월스트리트를 누비던 123,884명의 투자자들은 이제 걸어서 다녀야 했다.
사회는 붕괴되었고, 어제의 백만장자가 길거리에서 사과를 팔게 되었다. 공장은 차례로 문을 닫았고, 실업자들은 힘없는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디플레이션은 미국을 더욱 더 억눌렀다.
이 어두운 시기에 루즈벨트가 1932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의 공황이 최고조에 달했을때였고 미시간 주의 은행들이 현금 인출 사태로 문을 닫았고, 이어 다른주의 47개 은행들이 문을 닫았다. (성조기의 별이 48개라 48개주밖에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라)
루즈벨트는 회의를 소집해 뉴딜 정책을 결정했고, 금융. 경제. 사회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대출 받아 투기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은행업무분리시스템을 도입했다.
은행은 증권거래와 신용업무를 동시에 다 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러나 디스플레이션 순환을 막기 위한 결정적인 조치는 다른 데 있었다.
루즈벨트는 영국이 2년 전에 파운드화를 금본위제도에서 분리시킨 것처럼 달러를 분리시키기로 결정했다.
달러화는 약40% 절하됐고, 파운드화의 평가절하로 인해 약화된 수출경쟁력을 다시 회생시킬수가 있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새로 만든 빳빳한 화폐를 배분했고, 은행 창구는 다시 열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은행에 준비금이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하자 안심하고 오히려 더 많은 돈을 저금했다.
이 위기를 잘 극복한 미국의 통치자, 루즈벨트는 미국 역사에서 영광스런 자리를 차지했다.
11. 성공 전략은 ‘남들과 반대로’ 하는 것
투자자가 성공하려면 소신파에 속해야 하고, 남들과는 반대로 행동해야 한다.
하강운동의 과장기인 제3국면에서 매수해야 하고, 매수하고 난 뒤에 가격이 더 떨어져도 동요하지 말라.
“밀 가격이 떨어질 때 밀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사람은 밀 가격이 오를 때도 역시 가지고 있지 않다.”
상승운동의 제1국면에서는 이미 최저점을 넘어섰기 때문에 계속 매수해야 한다.
제2국면에서는 수동적인 관망자로서 그 상황과 함께 움직이기만 하면 되고, 제3국면에 접어들어 활황기가 오면 이제 시장에서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증권시장을 보는 ‘기술’의 핵심은 현재 시장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아는 데 있다.
오직 오랜경험을 가진 사람만이 손가락 끝만 대 봐도 목욕물의 온도를 알 수 있다.
경험많은 투자자도 실수하고 이런 실수는 오히려 필요한 경험을 쌓게 해주며, 그 실패 덕택에 과잉매도, 과잉매수 상황을 일찌감치 느낄 수 있는 감각을 기를 수 있다.
시장이 악재에도 더 이상 하락하지 않는다면 과잉매도 상태징후이고 곧 바닥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주식은 이미 소신파 투자자의 수중에 있으며 그들은 악재에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소신파 투자자들은 미래에 대한 믿음과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신용으로 산 주식이 하나도 없으며,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인내심도 있다.
반대로 시장이 호재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과잉매수 상태이며 최고점 근처인 것이다.
주식은 부화뇌동파 투자자들의 손 안에 있으며, 그들은 좋은 소식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살 수가 없다.
이때 소신파 투자자들은 돈을 가지고 있지만 비싼 시세로는 사려고 하지 않는다.
거래량 역시 많은 것을 암시해 준다. 시세하락 시에 일정 기간 동안 많은 거래량을 보인다면, 이것은 많은 주식이 부화뇌동파의 손에서 소신파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뜻한다.
거래량이 늘어나는 가운데 주가가 계속 떨어지면, 이것은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곧 상승운동이 시작될 것임을 나타내는 징조이다.
이때 주가 폭락은 대중의 히스테리 때문이거나 주식 소유자들이 모든 주식을 매도함으로써 발행한 것이다.
이것이 하강운동의 과장기인 제3국면이며, 이때 부화뇌동파 투자자들은 우량주든 아니든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모두 내다 판다.
오랜 기간 동안 거래량이 적은 가운데 시세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경우라면 이것은 좋지 않은 징조이다.
이것은 주식이 아직도 시장 회복을 기다리는 부화뇌동파들의 손에 있다는 뜻이며, 이때 시세가 조금이라도 내려가면 두려움 속에 그하락세는 가속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량이 적은 가운데 시세가 떨어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주식이 아직도 부화뇌동파들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오늘 팔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마 내일, 일주일 후쯤에는 어느 한순간에 모두 내놓을 수 있다.
그와 반대로 주식 거래량이 많은 가운데 가격이 오른다면 이것은 아주 좋지 않은 징후이다.
거래량이 크면 클수록 증권거래소는 하강국면으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거래량이 적은 가운데 주가가 서서히 상승하고 있다면 이것은 아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주식의 대부분이 소신파의 수중에 있고 아직 부화뇌동파의 손으로 넘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이다.
시세는 계속 올라가고, 그 결과 부화뇌동파 투자자들은 다시 시장에 참여할 준비를 하며, 이제 소신파는 값이 올라간 자신의 주식을 부화뇌동파에게 넘길 준비를 하게 된다.
거래량이 많지 않은 가운데 시장이 상승하거나 하락하면 이것은 동일한 흐름이 지속될 것임을 시사하며, 거래량이 점차 늘어나면서 시장이 상승 혹은 하락하면 이것은 흐름의 반전이 멀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 비관론자들까지 낙관론자로 바뀌면 시장은 강세장, 즉 제3국면의 끝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긍정적인 현상들이 한 점으로 몰리며 시세는 현실과의 연관성을 잃어버린다.
주가는 생각 없이 그저 무심히 누르는 전화번호가 된다.
나는 유명세 덕택에 시장 분위기의 변화를 빨리 파악할 수 있다.
비행기 조종사가 투자조언을 요청하고 단골 카페의 웨이터가 다이물러나 IBM주 중 어느것을 사야 할지 묻는다면 나는 시장이 과열되어 있다면 생각한다.
반대로 모든 언론 매체가 어두운 견해를 보이고 마지막 낙관론자마저 비관론자로 바뀌면 시장은 약세장의 제3국면 즉, 하강운동의 끝에 와 있는 것이다.
이때는 호재성 소식에도 둔감하며 비관론자들의 염세론이 광범위하게 퍼지게 된다.
이때 투자자는 재빨리 매수세에 편승해야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12. 뚜렷한 주관의 소유 여부
대중매체나 전문가들이 매도하라고 할 때 경험이 적은 투자자들이 여론에 반해서 매수하기란 쉽지 않다.
투자자가 대중의 히스테리에 파묻히지 않으려면 훈련을 해야 하며 냉정하다 못해 냉소적 이어야 한다.
이것이 성공의 조건이다. 투자자는 용기도 있어야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줄도 알아야하고 현명해야한다
투자자가 대중심리로부터 벗어나 하강운동의 과장국면에서 매수했다고 하면, 그는 그 이후에 주가가 떨어져도 주식을 계속 소유할 수 있는 강한 주관을 가져야 한다.
이 고비를 넘고 시장이 다시 상승운동을 시작해도 강세장 사이사이에 하락을 경험하게 된다.
만약 이 전개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상황을 새로 검토해야 한다.
전쟁이나 중요한 정치. 경제적 또는 금융 정책의 결정, 정권 교체등 미처 헤아리지 못한 중효한 변수가 생기면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 사랑스럽고 희망 넘치던 그곳에서 당장이라도 뛰어내려야 한다.
투자자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내가 탄 배가 잘못된 배라고 생각되면 가능한 한 빨리 뛰어 내리라는 말이다.
투자자는 단단하기도 하고 유연하기도 해야 한다.
상승운동의 제3국면. 낙관주의자들이 우위를 차지하기 시작하는 초기에 서둘러 시장을 벗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초기에 시세는 급등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놓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돈이라는 요소가 여전히 유동적이면 제3국면도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다.
나무가 자라는 데 하늘이 유일한 한계라면, 나무가 하늘 방향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기간 현금흐름이 막히면, 상황이 좋아도 과감히 시장에서 나와야 한다.
낙관주의자는 언제든 심각한 비관주의자로 바뀔 수 있다
투자자는 조그만 뒷문으로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도망치듯 살그머니 시장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어디든 정보가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훈련되고 주관이 뚜렸한 투자자만 소신을 지킬 수 있다.
증권시장이라는 정글에 처음 들어오면 얽히고 설킨 나무 줄기에 어쩔수 없이 발이 걸리게 된다.
그러니 수면제와 우량주를 동시에 사서 사이사이에 울리는 천둥 번개를 의식하지 말고 몇 해 동안 푹 자라는 것이다. 잠에서 깨는 순간 기쁘고도 경이로운 순간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13. 당신은 강세장 투자자인가, 약세장 투자자인가?
지금까지는 코스톨라니의 달걀을 강세장에 투자하는 주식 투자자의 입장에서 고찰했다.
그러나 이것은 약세장에 투자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일명 곰(bear)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현재 갖고 있지는 않으나 나중에 갖게 될 주식을 오늘 특정한 가격에 판다. 내일은 주가가 더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 주식을 사지는 않는다.
이 약세장의 투자자는 아직 자신이 잡지도 않은 곰의 가죽을 파는 사냥꾼과 같다.
실수해서 곰을 놓치면 그는 다른 사냥꾼이 잡은 곰 가죽을 비싸게 사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기것이 바로 약세장 투자자의 위험이다.
이론적으로 시세가 상승한다는 믿음이 있으면 강세장에 투자를 하고 시세가 하강할 것 같으면 약세장에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기대대로 적중하는 때는 정말 드물다.
1924년 아버지 친구 알렉산드로가 있는 부다페스트는 구제불능이었다. 전쟁의 상흔과 프랑화 투기 때문에
경제는 완전히 망친 상태였다. 헝가리에는 가난과 실업의 처참한 분위기가 무겁게 깔려 있었다.
그런데 파리는 천국이었다. 미국에서 건너온 투자의 열기로 가득 찼다.
영국은 만연한 사회 문제가 해결되어가면서 활기찬 사회로 변해 갔다.
독일에서의 붐은 외국 자본에 의해 이루어졌다.
미국은 매년 2억5천만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이 돈의 유입으로 독일 증권거래소는 양식을 얻은 셈이다
또한 미국의 엔지니어와 기술자들이 독일로 건너와 공장 및 작업 방식을 미국식으로 근대화시키면서 유럽의 ‘경제 거물’ 독일을 도와주었다.
이탈리아는 무솔리니와 함께 허니문을 맞았다. 자유의 일부분을 잃는 대신 국민경제의 기초를 마련했다.
프랑스의 포앵카르는 인플레이션을 막고 환율을 안정화하는 데 성공했다.
프랑화는 3년동안 표류하다가 현실적인 가격을 되찾은 뒤 1929년에 안정되었다.
프랑스의 재건은 전성기에 도달하게 되고 변동환율제는 프랑스에서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주식과 채권이 계속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유한 시민들은 증권거래소를 나서며 늘 만족감에 손을 비벼댔다. 환율안정, 훌륭한 금융 환경으로 세계의 자본가들이 파리로 모여들었다.
나는 파리의 사치스러움과 화려함 그리고 즐거움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 나는 내게 필요한 것은 단 한가지, ‘돈’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 상당한 심리적 위기 상황에 빠졌다. 내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나는 돈을 삶의 중심에 놓았고, 오직 돈만 생각했다.
처음엔 그것은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나, 나중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나의 윤리와 가치 체계는 완전히 바뀌어 돈 이외에는 흥미를 끄는 것이 없었다.
이렇게 되면 돈에 대한 가치 평가는 올라가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의 실제 가치를 포함해 모든 것의 가치는 내려간다. 이런 태도는 전형적인 디플레이션 경제 이론으로 이끌게 된다.
나는 현금으로 치환될 수 없는 모든 가치를 경멸하였고 이는 약세장 투자자가 되기 알맞은 사고방식이다.
가치를 현금화할 수 있다는 말은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길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돈의 가치를 과대평가해 주식을 포함해 모든 상품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떨어지기만 기다렸다.
당시 내 유일한 꿈은 투기를 통해 빨리 일확천금을 버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신전’(증권거래소)을 방문했던날 여기저기 공기 중에도 돈 냄새가 풍겼다.
공중에 떠도는 돈을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성능 좋은 안테나였다.
나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이 혼돈의 세계에 대해 사실 잘 알지 못했다.
내가 모르는 주식 종목의 이름이 반귀머거리인 내 귀에 윙윙거렸고, 어떤 사람은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공중전화로 달려가고, 어떤 사람은 중요한 말인 양 귓속말을 하고 있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검은 공책 위에 열심히 숫자를 끼적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오직 나만이 최고의 정보를 가지고 있고, 고객에게는 항상 올바르게 상담을 했으며, 나만이 정확한 진단과 해결책을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사람들은 예술. 정치. 여자들 이야기는 입도 뻥긋 하지 않고 오직 돈에 관한 대화만이 있을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건강한 이성은 이 모든 것이 허세일 수도 있다고 알려 주었다.
내가 생각한 것은, 사람들이 강세장에 투자한다면 나는 그 반대로 약세장에 투자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내게는 오직 투자 대상을 선정하는 일과 약세장투자의 매커니즘을 배우는 일만 남았다.
나는 이런 생각과 감정에 기초하여 나중에 더 씨게 되살 의향으로 주식을 공매도하기 시작했다.
행운의 여신이 내 편에 서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국의 투자 열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세계적인 투자 중심지인 월스트리트는 전 세계의 모든 돈을 거의 다 끌어 모으다시피 했다. 이것은 유럽 증권시장에 매우 나쁜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투자자들은 금리가 연 7~9%정도밖에 되지 않는 유럽에는 투자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1년이 채 못 되어 3배로 늘어나는 주식을 사려고 했다.
유럽에 있던 미국돈이 빠져나갔고 나중에는 유럽의 달러 보유고를 완전히 고갈시킬 정도가 되었다.
유럽은 가장 큰 고객을 잃어버렸다. 국제적인 투기꾼들은 파운드화가 절하된 것이라는 데 돈을 걸었다.
약세장 투자자였던 나는 그때부터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증권거래소의 많은 바보들에게 복수한 것이고 내 직감이 옳았음을 입증한 셈이었다.
나는 두 배로 도을 벌었다. 왜냐하면 돈의 구매력이 상승했기 때문이었다.
인플레이션 기간 동안 돈의 가치는 떨어지지만, 디플레이션 때에는 사람들이 돈을 적게 갖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돈의 가치는 상승하는 것이다.
가장 큰 증권시장의 공황은 1930년의 쿼스트릭(Qustric) 대공황과 그 직후 데빌더(Devilder)의 붕괴였다.
이번에도 약세장 투자자들이 이겼으며 나도 그 중 하나였다! 나는 매일 저녁 계산을 하며 수익을 챙겼다.
나는 대단한 부를 얻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손해의 대가였다.
투자에 성공하자 나는 수익을 은행에 예금하지 않고 또 약세장에 투자했다.
나의 철학적 현실주의와 뛰어난 증권 감각 덕택에 나는 갑부가 되긴 하였으나 그 대신 다른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내 소원은 성취되었지만 내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너무도 슬펐다. 내친구들은 대부분 파멸했다.
나는 내가 꿈꿔 왔던 호화스러운 것을 모두 가질 수 있었다.
멋진 호텔, 레스토랑, 자동차,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을 정도로 내 지갑은 항상 두둑했다.
그러나 그것을 같이 즐길 사람이 없었다. 나는 정말 외톨이가 되었다.
그때 내게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다른사람들과 함께 행복할 수 있다면, 다른사람들이 통곡하는데 혼자 웃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증권거래소의 금언: ”약세장 투자자는 항상 남의 돈을 노리기 때문에 신이 경멸한다.“
나의 다음 번 약세장 투자는 스웨덴의 성냥 황제인 이바 크뤼거의 자살로 끝을 맺게 된다.
다른이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크뤼거 제국의 붕괴로 수익을 얻고자 투자했으며 결국 성공했다.
나는 크뤼거의 죽음에 일종의 자책감을 느꼈으며 동시에 약세장 투자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철학적, 물리적으로 나 역시 약세장 투자에서 실패하게 된 것이다.
이후에 찾아온 경제 성장을 통해 시세는 다시 상승하고 나는 내 수익의 많은 부분을 잃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돈을 옮겨 놓았기 때문에 강세장 투자로 돌아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번에는 친구들과 함께 이길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차라리 강세장에 투자하는 ‘황소’가 되고자 노력했다.
세계의 모든 증권거래소에서 황소와 곰은 도전적으로 이마를 맞대고 거칠게 싸운다.
그리고 그 싸움으로 그들의 힘은 10배 이상 커진다.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의 현판에 그려져 있는 것처럼 황소와 곰은 서로 마주보고 경쟁하는 앙숙이다.
증권거래소에서는 100명의 투자자 중 오직 5명만이 약세장 투자자이고 95명은 강세장 투자자들이다.
약세장 투자자들을 가리켜 ‘정신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찾는 사람들이다
황소와 곰은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고민과 사고 끝에 투자를 하는 사람은 매우 소수이다.
나머지 대부분의 살마들은 심리적인 기본 성향에 따라 투자한다.
약세장 투자자들은 비관론자인 경우가 많고, 강세장 투자자들은 대부분이 낙관론자이다.
낙관론자는 주머니 안에 단 두 개의 동전만 있어도 왕처럼 행세하는 사람이고, 비관론자는 금고에 돈이 가득 차 있어도 여전히 불만인 사람이다.
지난 몇 해는 다우존스 지수가 4000포인트에 달하자 그들은 폭락을 기다리며 엄청남 양의 주식을 공매도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황소가 재산을 모아들일 때 곰은 주저 앉았다.
강세장 투자자는 부실기업에 투자한 경우가 아니면 바보 멍청이라도 돈을 벌었다.
언제 증시에 들어가든 누구나 인내만 가지고 있으면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
초보자라면 무조건 강세장 투자자로 시작할 것을 권한다.
약세장 투자자는 쉽게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강세장은 두려움의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약세장의 시작을 예견하는 것은 아주 전문적인 투자자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강세장의 기회가 훨씬 많다.
주가가 많게는 1천 혹은 1만퍼센트까지 상승할 수 있으나 낙폭은 기껏해야 100%이기 때문이다.
정보의 숲
1. 정보: 투자자의 도구
나는 정보를 찾아 헤매지 않는다. 그저 발견할 뿐이다. 나는 어디를 가든지 정보를 얻는다.
도둑, 이사회, 장관들, 유흥가의 여성들에게서 정보를 얻는다.
다만 은행가와 브로커 그리고 경제학자들은 빼고. 이들은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본다.
나는 종종 그들이 말하는 것과 반대되는 태도를 취해 성공의 단맛을 본 사람이다ㅣ.
어딜 처음 가면 나의 제1 정보통은 택시 운전사이다. 나는 그들에게 얼마를 벌며, 생활비가 얼마나 들며, 물가는 얼마나 비싸며, 정치적인 견해는 어떠하며, 국제적인 사건들에 대한 반응은 어떠한지 등을 묻는다.
매일 매일 일어나는 소식은 주로 여러 가지 신문을 통해 얻는다.
투자자는 신문을 읽을 때 어디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요령을 알아내야 한다.
우선 행간의 뉴스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때대로 행간에서 내일의 시세를 결정할 소식을 읽을 수 있다.
긴 논설 끝에 달린 하나의 짧은 문장이 전체 논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일러 줄 때가 있다.
뉴스는 투자자의 도구이다.
투자자는 뉴스를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미리 예견해야 하며, 어떤 뉴스가 증권거래소에 중요하고 어떤 뉴스가 중요하지 않은지를 알아야 한다.
2. 페따 꼼쁠리 현상
증권거래소눈 종종 술주정뱅이처럼 반응한다.
좋은 소식에 울기도 하고 나쁜소식에 웃기도 한다.
나는 이런 현상을 페따 꼼쁠리(Fait accompli :기정 사실)라고 부른다.
투자는 미래에 일어날 불확실한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데. 투자라는 말 자체에 이미 그 뜻이 들어 있다.
증권거래소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반영한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공시되기 전에 주식을 사려고 한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만큼 수익이 높으면 주가는 그날부터 떨어지기 시작한다.
예견했던 일이 일어났고, 그것은 이제 ‘페따 꼼쁠리’가 된 것이다.
모두가 공시 이전에 샀기 때문에 더 이상 매수자가 나서지 않는다. 단지 기대한대로가 중요하다.
시세 변동에 있어 페따 꼼쁠 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1990년의 걸프전쟁이 잘 말해 주고 있다.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원유 감산에 대한 우려로 유가는 배럴당 20달러에서 40달러로 올라간 반면, 주가는 여러 달 동안 하락했다. 부화뇌동파 투자자들을 두려움에 속에 천천히 주식을 팔았다.
물론, 항상 그러하듯이 이 주식을 사들인 사람은 소신파 투자자들이었다.
전쟁이 터져 미국 승리에 힘입어 주가는 최고로 올랐고 유가는 50%나 떨어져 베럴당 20달러로 내려갔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히틀러가 프라하를 점령한 이후 파리 증권거래소의 주가는 계속 떨어졌다.
전쟁 발발 직전에 소수의 사람들이 지금 저가인 주식을 사면 위험부담이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전쟁이 안일어나면 주가상승, 일어나면 돈이 있든 없든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이다
그들 가운데 아주 괜찮고 똑똑한 언론이이었던 페크리가 있었다. 그는 대단한 낙관론자였다.
전쟁 이전에 그는 틈나는 대로 내게 와서 어떤 경우든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주식을 사야 한다고 말했다. 달라디어 정부는 곧 물러나게 되며, 차기 국무총리인 삐에르 라발은 단찌히에 대해 나치와 타협할 것이므로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동의하지 않았고 이미 오랫동안 파리의 증권거래소에서 약세장에 투자자로 투자해 왔다.
주가는 처음에는 완만하게, 나중에는 급락했고 이때 나는 급 수익을 얻었다.
1939년 8얼 24일 리벤트롭-몰로토 협정 이후 나는 전쟁이 곧 일어날 거라고 확신했다,.
9월6일은 협정 후 14일 정도밖에 안 되었으나 이 기간이 내게는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나는 약세장 거래를 해지한 다음 은행에서 찾은 돈을 미국 은행에 입금했다.
아버지는 ”사람들 가운데는 말은 바보처럼 하지만 영리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말을 잘하면서 바보같이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당시의 나는 후자에 속했다.
나는 바보같이 행동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운이 뒤따랐다.
전쟁이 터졌으나 증권거래소는 문을 닫지 않았고, 선물 거래 역시 계속 되었으며, 모라토리엄도 없었고 외환 통제 역시 없었다.
9월6일에 나는 마지막으로 투자수익금을 빼서 미국으로 보냈다. 이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시세는 계속해서 6개월 동안 상승했다.
프랑스 군대가 완패한 이후에야 시장은 약세로 돌아섰다.
내 친구 페크리 역시 행운의 수혜자였다. 전쟁의 예언은 어긋났지만 강세장 거래로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그는 히틀러가 폴란드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는 즈음에 매일 내게 와서 라발이 프랑스 정권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등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곧 평화가 올꺼고 오직 인내를 가지고 계속 사야한다는 것이다.
친구는 이틀후면 전쟁이 끝나고 모레면 나치가 파리를 점령할 것인데 어떤주식을 사느냐고 물었고 그와 나는 해석이 달랐다. 떨리는 가슴으로 증권거래소에서 재빨리 집에 돌아와 짐을 쌌다.
그동안 아끼던 물건, 사랑했던 친구들, 거리, 내 삶에 의미를 안겨준 모든 것들과 영영 이별인 것이다.
나는 그가 어떤 종목을 선택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실수가 기념비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가 예견한 대로 라발은 나치에 의해 점령된 프랑스의 국무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주가는 오르지 않았다.
페크리의 결정적 실수는 자신의 운명을 나치와 연결시켰다는 데에 있었다.
아버지가 옳았다.
사람들 가운데 말은 바보처럼 행동은 영리하게, 말을 잘하면서 바보같이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1939년과 마찬가지 일이 걸프전에서도, 또 그 이전에도 몇 번 일어났다.
1939년에는 행운으로, 1991년에는 경험으로 나는 페따 꼼쁠리 현상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중차대한 사건이라도 일단 터지고 나면 과거지사가 되며, 증권시장에는 더 이상 의미없는 일이다.
많은 주식투자자들은 금리상승이 곧 주가 하락을 뜻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높은 금리와 그레 따른 자금 부족 현상은 증권시장이 그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든 부정적으로 반응하든 상관없이 나타나는 냉엄한 현실이다.
3. 정보사회
17세기의 암스테르담 항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몇 주 혹은 몇 달에 걸쳐 인도회사의 배가 전해 올 소식을 기다리곤 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있다.
장기적 안목을 가진 투자자들은 이런 일상사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 정치가이며 소설가였던 에드워드 헬리어트는 문화는
”모든 것을 잊어버렸을 때 남는 것“ 이라 했다.
증권도 마찬가지로 투자자는 1년 결산, 배당금, 시세, 영업 보고, 통계등을 암기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참된 증권 거래 지식은 모든 상세한 것을 잊어버렸을 때 남는 그것이다.
이해하고 상관관계를 제대로 파악하며 그에게 맞게 행동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주요한 사건을 레이더처럼 잡아내어 그 상관성을 제대로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물론 생각해야 한다!
4. 투자 조언, 추천 종목 그리고 소문들
나는 어느 레스토랑엘 가든지 웨이터가 추천하는 메뉴는 절대 주문하지 않는다.
추천메뉴는 결국 빨리 팔아 치우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이 추천하는 종목이나 투자 조언 또한 90%가 그렇다.
그들이 해주는 조언이라는 것을 가만히 들어 보면 대부분 어떤 은행이나 신디케이트의 주식을 군중에게 떠넘기기 위해 벌이는 작전 내지 홍보에 지나지 않는다.
장밋빛 분석으로 포장해서 구전으로 퍼지게 하고 뉴스를 적당히 통제하고 주가를 조작해 비싸게 만든다.
그다음 대중에게 이미 오른 주식을 파는 것은 누워 떡 먹기다. 매수세가 커지면 천정부지로 솟아오른다.
부화뇌동파들이 모두 사고나면, 장밋빛분석이 허상이었음이 드러나게 되고 결국 파산을 면하기 어렵게된다
스스로 증권 전문가라고 칭하는 사람이 TV에 나타나 증권거래에 관한 질문에 답하면서, 자기가 조금 전에 산 주식을 사라고 종용한다. 이것은 노상 강도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초보, 일반인은 조작을 잘 모른다.
그럴싸한 소문 역시 시세를 조작하는 방법이다.
17세기 영국 은행의 총재였던 헨리 퍼네시 경은 조작의 대가였다.
그가 어떤 주식을 사기로 결정하면 하수인들은 런던 증권거래소에서 한 편의 코미디를 연출했다.
포커게임에서는 이런 것을 일컬어 ‘뻥’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금지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투자자들은 그들을 좇아 조심스럽게 주식을 팔고 시세가 하락하면 퍼네시경은 아주 헐값에 산다.
대개 추천은 추천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특별한 투자 조언’이 있다면 반대로 하라.
5. 증권거래소의 거물: 유대교 랍비에서 수학자에 이르기까지
누군가가 투자 조언이라고 호황이나 공황을 정확히 예견한다면, 그는 추앙받는 증권거래소의 거물이 된다.
대다수의 증권시장 예측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중을 이용하여 주가를 조작한다.
1980년대에 엘리엇 파동으로 유명해진 로버트 프리히터의 예는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조 그랑빌(Joe Granville)도 이런경우에 해당되는 사람이었다.
다우존스 지수가 30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예견해서 맞은 적이 있어 증권계의 거물로 떠올랐다.
독일에는 스스로 증권거래소의 거물이라고 칭하는 쿠어트 올리그 뮐러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칼럼에서 과거의 일화만 소개하지 말고 주식시장이 30일 후에 어떻게 될지 정확히 예언해 보라고 했다. 증권은 엄격한 과학이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론은 유감스럽게도 비극으로 끝이 났다. 그는 아내를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였다.
증권거래소의 거물은 주로 공황을 예연하는 자들이다.
공황에 대한 내 정의이다.
가정부가 국그릇을 식당에 들고 들어와 떨어뜨린다. 사기그릇이 떨어졌을 때 첫 번째 소란이 일어난다.
그 다음에 그릇 조각이 흩어지며 두 번째 소란이 생기고, 마지막으로 주인이 와서 가정부를 혼내며 소란이 또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공황이다. 그것도 3중 공황인 셈이다.
프랑크푸르트 딜러들이 한 번은 퓌어스의 유대인 랍비에게 주식시장에서 어떻게 해야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kaufe(사라) nicht(아니다) verkaufet!(팔아라!)“
거기에 쉼표를 붙여 보면 ”사지 말고 팔아라!“ or ”팔지 말고 사라!“가된다.
오직 이 말만이 증시와 관련해 틀리지 않는 조언일 것이다.
6. 내부정보
증권시장에서 사람들이 열망하는 정보는 내부정보이다.
투자자는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이웃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는 것과 같다.
”정보를 얻었다“는 것은 종종 ”망했다“는 뜻이다.
나는 1930년대 초에 성 모리츠에서 겨울을 보냈는데 모리츠는 부와 화려함의 상징이었다.
나는 거기서 관찰자로 생활하면서 코스모폴리탄적인 생활 방식 속에서의 내 증권 공부를 마쳤고, 오늘날까지도 유용한 삶의 체험을 얻을 수 있었다.
어느날 만하이머 박사에게 갈 잘못 온 전보내용으로 며칠 전 호텔 로비의 한쪽 구석에서 로열 더치쉘의 대표 헨리 경과 만하이머 박사가 대화하는 것을 보았었다.
당시 나는 약세장 투자자였다. 나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비관론자였으며 강세장 정보는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시장은 여전히 약세였다. 그러나 우연한 정보로 인해 로열 더치쉘 주식을 샀고 그때부터 시세는 떨어지고 결국 내가 샀던 가격의 3분의 1까지 떨어졌고, 나는 돈을 다 잃었다.
나는 그때 두 사람이 팔레스 호텔에서 이야기한 내용이 무엇인지 결코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경험으로 알수 있었던건 대단한 금융가도 별 볼일 없는 투자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주식을 살 것인가
1. 주식시장에서 주식 거래로!
1,000%, 10,000%의 거대한 수익률을 내는 것은 사실 시기가 딱 맞아떨어지는 주식을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약세장에서도 수익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잘하는 투자자는 없다.
강세장에서는 최악의 종목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조금은 벌어들일 수 있으나 약세장에서는 최고의 종목이라도 수익을 얻기가 어렵다.
우선 일반적 추세를 보고 그 다음에 주식을 선별하라.
적어도 20년 이상 투자 경험을 가진 사람만이 일반적 추세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2. 성장산업: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
주식시장이 상승 추세라고 판단하면, 투자자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주식을 찾아야 한다.
우선 어떤 산업분야가 앞으로 가장 전망이 좋은지를 알아내야 한다. 나의 원칙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어떤 분야를 선택해서 주가가 상한가로 올랐다면, 그것은 이미 이후 몇 년, 아니 몇 십 년의 성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코스톨라니의 달걀 이론은 개개의 산업 분야, 개개의 종목에도 유효하다.
한 산업 분야의 상승 및 하강도 항상 동일한 패턴에 따라 움직인다.
초기에는 새로운 기업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세워진다.
대부분 기업은 유아기를 견디지 못하고 죽거나 합병된다. 경쟁력 있는 기업만이 남게 된다.
19세기의 철도 회사, 20세기 초의 자동차 산업이 그런 예이다.
제너럴 모터스나 포드, 크라이슬러가 오늘날의 규모로 성장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자동차 회사가 손실을 보고 없어져야만 했던가?
로열 더치쉘, 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이 오늘날까지 살아남는 동안 얼마나 많은 석유 회사가 사라졌던가?
나중에는 컴퓨터 산업과 전자 산업도 마찬가지 운명을 겪었다.
인터넷 사업도 동일한 운명을 겪을 것이다.
새로운 분야는 지그재그 식으로 발달한다.
앞으로 나갔다 뒤로 물러나고, 그러면서 성장과 후퇴를 반복한다. 그러나 처음 상태로 돌아가진 않는다.
어느 단계든 후퇴 시에는 생존 능력이 없는 기업은 죽는다. 이와 평행해서 주가 역시 오르락내리락한다.
주인과 개에 관한 이야기를 기억해 보라.
투자자는 성장 산업을 대중보다 먼저 알아내야 한다.
자신이 선택한 종목이 거래소에서 일단 성장 계열군으로 인정받게 되면, 투자자는 10배, 때로는 100배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과거의 역사가 이것을 증명하지 않았는가?
3. 주식의 적정한 가격
주가가 기업의 실제 가치와 꼭 맞아떨어진 적이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주가는 항상 제 가치보다 높거나 낮았다. 주식의 예측과 판단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사람들은 각 기업의 미래와 전망에 대해 매일 매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많은 요소가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구매자의 기분, 개인문제, 지난밤 수면상태, 가족문제등의 된다.
주가수익률(per)에 대한 판단도 심리적인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
‘고’ 혹은 ‘저’평가는 수학적 공리가 아니라 상대적 판단이자 심리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4. 턴어라운드 주식: 잿더미에서 살아나온 불사조
미래의 성장 계열군을 미리 알아내고 그 중에서도 우량 기업을 잡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나 IBM이 우량 기업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으나 20년, 40년 전에도 예측했을까?
그래서 나는 턴 어라운드 주식에 투자했다.
턴어라운드 기업이라면 총체적 위기에 놓여 있어 손해를 보고 있고 곧 파산지경에 이른 기업을 말한다.
예로 1970년대 말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자동차 생산 회사인 크라이슬러가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는 이 주식을 3달러에 샀다.
브로커는 팔라고 했지만 50달러짜리 주식이 3달러로 떨어졌는데 판다는 것은 웃기는 소리였다.
기회와 리스크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전설적인 자동차 회사 경영자인 리 아이아코카는 크라이을러의 재생을 설득력있게 보여 주었다.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고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그 결과 크라이슬러의 시세는 3달러에서 폭등했고, 액면불할과 다임러와의 합병까지 계산하면 150달러에 이르고 있다.
5. 증권분석가들이 사용하는 의미 없는 단어들
많은 분석가들은 투자를 ‘투기적’ 투자와‘보수적’ 투자로 나눈다.
그러나 나는 이 구분이 피상적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투자 가치의 질이 아니라 양에 근거한 차이이기 때문이다.
분석가들은 대부분 가격이 이미 급상승한 주식을 ”보유하라“고 조언한다.
그들은 주식을 자신의 시각으로만 판단한다.
주식의 값이 싸든 비싸든 이것은 오직 기업의 기초 지표와 미래의 전망에 달려 있다.
이러한 기준에서 투자자는 가능하면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1,000% 오른 주식이라도 아직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게 있고, 80% 떨어진 주식도 사지말아야할 게 있다.
‘턴어라운드 지원자들’도 마찬가지로 파산 직전에 있는 기업이 모두 회생하는 것은 아니다.
매수자는 사기 전에 왜 이 주식이 턴어라운드 주식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크라이슬러에 투자하면서 나는 리 아이아코카를 생각했으며 그 판단은 옳았다.
그러나 브레머 불칸과 팬암에서는 그 어떤 재기의 가능성도 보지 못했으므로 사지 않았다.
6. 차트: 수익은 가능한 것이고 손실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차트의 도움으로 더 좋은 주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을 물을때 ”차트를 읽는 것은 ‘지식’이 만들어내는 것을 찾는 일이다.“라고 대답하고는 했다.
공자도 말하기를 ”과거를 알면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차트로는 어제와 오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차트는 내일까지 그릴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차트는 20개 이상의 조각들로 만들어진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조각에 불과하다.
나는 주식을 살 때 어떤 가격 수준에서 판매할지 아직 모른다.
증권시장의 경주에는 위로 달리는 말과 아래로 달리는 말, 오직 이 두 마리의 말밖에 없다.
차트를 신용하는 사람의 가장 큰 불행은 처음에 차트를 이용해 한 번 성공하면 그 후로는 맹신하게 된다.
모든 게임에는 불변의 진리가 있다. 돈을 따는 것은 운이지만 돈을 잃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고객 덕택에 브로커는 먹고 살고 부자가 되지만, 고객의 돈은 점점 줄어든다.
투자자의 기호에 맞춰 수도 없이 많은 차트 이론이 만들어진다. 나는 이런 이론을 믿지 않는다.
차트를 읽는 사람은 어떤 경우든 차트 이론에 엄격하게 충실해야지, 거기에 정치적. 경제적. 사적인 생각을 끼워 넣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세란 중요한 요소들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요소들 속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이미 반영되어 있다.
이 차트는 개별 주식과관련된 것이지 주가지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M.W 이론 및 이중상승. 이중하락 이론이다.
‘이중상승’이 의미하는 바는 마지막 최고 시세사 다음 시세에 의해 초과되는 것이다.
이 현상이 몇 번 반복되면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결론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차트가 몇 번 M을 보여주면 이것은 천장, 즉 최고에 달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때는 많은 양의 주식이 매물로 나온다.
하강시세에는 주가가 이전 최저점을 넘어서 떨어지면 이는 계속 떨어질 것이라는 신호이다.
반면 W의 형태가 반복되면 이는 주가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바닥까지 온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이때는 주식을 다 사가려는 기업이 숨어있을수도 있고 주가를 유지하려는 집단이나 대형 은행등이 특정 기업의 주식 시세를 ‘인위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증권용어로 ‘주가 관리’라고 한다.
이중상승. 이중하강 이론과 M. W이론은 오래된 차트 법칙이며 이 두 법칙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차트는 보조 수단이다.
머니매니저
1. 남의 돈으로 하는 투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돈을 전문가에게 맡겨 투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진지하지 않은 대다수 전문가들의 주 관심사는 가능한 빨리 고객의 돈을 자신의 돈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들은 고객의 돈을 수수료로 약탈하거나 아예 횡령하기도 한다.
희생양인 고객에게 상품선물 거래, 은행보증 거래, 외환 거래등에 대해 끊임없이 지껄여 팔아 먹는다.
이들은 교육을 잘 받았다. 투자는 잘 모르지만 고객을 설득하는 것만은 완벽하다.
이들 덕분에 대부분의 고갞은 마지막에 가서는 손실을 보게 된다.
진지한 머니매니저는 평균 이상의 수익률을 내는 곳에 돈을 투자하려고 한다.
성공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그들은 소신파 투자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내와 생각이 부족하다. 매달 좋은 성과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자신들이 산 주식이 별 움직임이 없으면 그들은 가진 주식을 팔아 버리고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최고 시세의 주식에 뛰어든다. 거래중독으로 마지막에는 부를 늘리기는커녕 전부를 잃는 결과를 낳기도 하는 것이다
남의 돈을 관리하는 사람(펀드매니저, 자산관리사, 투자상담가)은 깨끗하고 철저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하며, 소신파 투자자처럼 4G (돈, 생각, 인내, 행운)를 지녀야 한다.
자기 돈으로 하는 투자이든 남의 돈으로 하는 투자이든 경험은 최고의 학교이며, 이 경험을 성공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4G를 명심해야 한다.
만약 이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매일 16시간을 고객을 위해 일한다해도 소용이 없다.
몰리에르가 ”너무 많이 아는 어리석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보다 두 배 더 어리석다“라고 말했듯이.
2. 투자펀드: 다수의 장기투자자를 위한 버스
이 아이디어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60여 년 전에 듣고 대단히 놀랐었다.
내 친구인 이므레 드 베그는 미국에서 펀드 아이디어의 선구자였다.
일반, 특별, 연금펀드 등은 주식의 많은 부분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주식시장의 토대가 되고 있다.
국민경제학적으로 이것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투자펀드를 통해 소규모 예금주들도 경제 발전의 성과를 나누어 가질 수 있다.
1천마르크 이하 혹은 매달 50마르크로 주식을 살 수 있으며, 이러한 방식으로 산업 도약을 꾀하는 힘이 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아주 작은 투자로 아주 작은 자본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펀드 선택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다양한 종목을 가진 수많은 투자펀드가 있기 때문이다.
펀드는 레스토랑과 비슷하다. 음식재료보다도 주방장의 요리 기술이다.
일등급 재료를 가지고도 음식맛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최고의 요리사는 단순한 재료만 가지고도 최고의 음식을 요리해 낼 수 있다.
3. 헤지펀드: 이름만으로도 사기
헤지펀드는 그 이름만으로도 대중에 대한 이중적 사기이다.
그것은 헤지(보증)도 아니고, 펀드도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등러 금광 주식을 가지고 있는데 반대로 금을 선물로 판다면 위험을 제거한 포지션을 가지게 된다.
금값이 떨어지면 금광 주식은 약해지지만 선물시장에서는 수익을 얻는다.
반대로 금값이 오르면 광산 주식은 올라가 선물시장에서 손해 본 만큼 상쇄하게 된다. 헤지 거래이다.
그러나 헤지거래는 자기 자본의 몇 배가 넘는 돈을 걸고 오직 한 방향으로 투기를 한다.
증거금을 전부 신용으로 외환, 채권, 원자재 선물 거래에 선불금만 가지고 투기를 시작한다.
이것은 완전히 도박이다.
1993년 영국 파운드화의 평가절하에 투자해 100% 이상의 수익을 남겼다는 조지 소로스의 성공에 고무되어 헤지펀드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사람들은 헤지펀드 매니저가 돈을 벌어 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구든 헤지펀드에 투자한다고 하면 한사코 말린다.
4. 투자 컨설턴트: 그들의 기쁨은 고객의 고통이다
투자 컨설턴트라고 하면 고객과 상담하는 은행 직원들을 일컫는다.
그들은 고객에게 일반 적인 투자 전략을 조언하며 특정한 주식, 채권, 펀드 등을 추천한다.
투자 컨설턴트들은 실적을 올려야만 돈을 벌 수 있은데, 이것이 결국 고객에게는 부담이 된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고객들이 더 많이 사고팔기를 원한다.
모든 사고파는 행위에 붙는 수수료가 바로 그들의 수입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컨설턴트들은 그저 빨리 돈을 버는데에만 관심이 있다.
고객을 늘리고 장기적인 만족을 생각하며 일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유명한 노래인 ”오스카는 알지만 말하지 않아“를 내 식으로 가사를 바꿔
”컨설턴트는 말은 하지만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어“ 라고 부른다.
5. 자산관리사: 머니매니저 중의 재단사
성신한 자산관리사는 투자 컨설턴트들이 겪는 이익 갈등을 겪지 않는다.
그들 수입의 대부분은 성광에 따른 수익에 의해 결정된다.
고객이 벌면 그 역시 벌고, 고객이 잃으면 그 역시 수익이 없다.
투자의 성공에 비례해서 임금이 결정될수록 바람직한 것이다.
나는 투자에 대히 추천할 때 일률적인 방식으로 투자를 권하지 않는다.
조언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그 사람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은행은 ‘기성 투자 상품’을 판다. 이와 비교하면 자산관사는 ‘맞춤 재단사’인 셈이다.
모험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1. 손해를 보는 것도 모험의 일부이다
많은 독자들은 ”그러면 나도 그 증권 투자라는 것에 뛰어들어 행운을 한번 잡아 봐야 하지 않을까?“ 물을지 모른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투자자가 되라고 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말리기도 어렵다.
증권 거래에 대해 이해하고 어느 정도 통달하려면, 사실 수업료를 지불해야한다.
투자로 돈을 번다면 그것은 고통이 따르는 돈이라는 의미이다.
먼저 고통이 있고 나서 그 다음에 돈이 오는 것이다.
투자자들이 반드시 조심해야 할 것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잃어버린 돈을 찾고자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만약 손실을 보았으면 즉시 그것을 받아들이고 책상을 정리한 뒤 0에서 다시 시작할 각오를 해야 한다.
투자자에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증권에서 입은 손실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외과수술과 비슷하다. 뱀에게 팔을 물렸다면 독이 온몸에 퍼지기 전에 그 팔을 잘라내야 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런데도 100명 중 5명 정도만 그런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
더욱 용서받을 수 없는 실수는 손실을 더 부풀리는 것이다. 그 결과는 작은 이익과 큰 손실이다.
올바른 그리고 숙련된 투자자는 수익은 높이고 손실은 작게 끝내는 사람이다.
”작은 것에 집착하는 사람은 큰 것을 가질 가치가 없다“는 말을 명심하라.
유대인들은 ”기왕에 돼지곡ㅣ를 먹으려면 가장 기름기 많은 부위를 먹어라.“
이미 증권에 투자를 했으면 적어도 이익을 내야 한다는 말이다,.
투자는 마치 나쁜 카드로 적게 잃고 좋은 카드로 많이 벌어야 하는 포커판과 같다.
2.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인터뷰를 보면 많은 펀드매니저들은 하루 16시간씩 일한다고 한다.
그러나 전문 증권거래인들이 하는 일의 95%는 사실 시간 낭비이다.
그들은 차트를 읽고 사업보고서를 보는 데 열중한 나머지 생각할 시간이 거의 없다.
산책중, 조깅중, 자전거 타는 중, 비행기 안에서, 자동차에서, 식사중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중에도 나는 언제든지 생각 할 수 있다.
누구든 자신의 판단에 따라 독자적으로 생각하기만 한다면, 그는 일하는 시간에 상관없이 이미 90%의 동료를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3. 유명 인사의 속사정
투자에 성공했다는 것은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무엇에나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증권 거래’는 모든 사람을 자극한다.
프랑스의 리베리아에 살 때 나는 부다페스트출신의 친구 야노스를 종종 초대하곤 했다.
그는 프랑스 문학에 매우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 나는 프랑스 친구들 앞에서 내 헝가리 친구를 자랑하고 싶었으며, 공산국가에도 프랑스 문학이 얼마나 잘 알려졌는가를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러나 준비된 문학적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초대된 사람들이 내게 전기, 유가, 금값, 금 시장등에 대해 쉴틈 없이 질문을 해 대는 통에 내 친구 야노스는 말 한다미 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는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았으며, 내가 계획했던 야심 찬 프랑스 문학의 밤은 완전히 혼란으로 끝나게 되었다.
나는 유명 인사로서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었다.
그러니 여러분이 만약 예술가, 소설가, 기타 멋진 사람들을 파티에 초대하면 나를 함께 부르지 않는 것이 좋다. 나로 인해 분위기가 망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4. 증권과 사랑, 그리고 증권에 대한 사랑
일단 증권과 사랑에 빠지면 인생의 많은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 위험하기도 하다.
증권에 미친 한 사람에 대한 일화이다.
수염을 깎을 때는 ‘질레트’의 주식을, 타이프를 칠 때는 ‘레밍톤’의 주식을 목을 축이고자 할 때는 ‘코카콜라’의 주식을 생각했다. 이처럼 일상생활의 모든 물건을 두고 투자가치를 쟀다.
웃옷의 옷감인 면, 넥타이의 재료인 비단, 커피에 넣는 설탕, 그 외에도 모든 원자재가 그에게는 투자 관심거리였고, 계절의 여왕 봄(불어로 ‘쁘렝땅’)이 오면 ‘쁘렝땅’이라는 이름을 가진 파리의 백화점이었다.
어느날 증권거래소의 복도의 사다리에서 금발의 한 여성을 보고 반해 모든 투자를 정리하고 그녀를 붙잡을 생각이었지만 친구가 세기적인 히트를 칠 투자 종목으로 가죽을 추천했다.
가죽의 가격 상승은 다른 생산물과 관련이 없어. 가죽은 부차생산물이기 때문이지.
보통 원자재는 가격이 오르면 생산이 증가되지만 가죽은 그렇지 않아.
그럼 가죽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젠하워는 후르시초프를 미국으로 초대했다. 긴장완화의 진일보였다.
평화 공존과 무기감축은 이제 보장되었다. 따라서 군화와 군용 가방은 물 건너갔고, 가죽 가격은 폭락했다
그는 전 재산을 잃었다. 그렇데 세계 평화가 이 로맨스의 영웅을 벌한 것이다.
자도 깃털이 몇 개 빠졌다. 나 역시 그와 같이 반박하기 어려운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5. 10가지 권고 사항
① 매입 시기라고 생각되면 어느 업종의 주식을 매입할 것인지를 결정하라.
② 압박감에 시달리지 않도록 충분한 돈을 가지고 행동하라.
③ 모든 일이 생각과 다르게 진행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리고 반드시 인내하라.
④ 확신이 있으면, 강하고 고집스럽게 밀어붙여라.
⑤ 유연하게 행동하고, 자신의 생각이 잘못될 수 있음을 인정하라.
⑥ 완전히 새로운 상호항이 전개되면 즉시 팔아라.
⑦ 때때로 자신이 보유한 종목의 리스트를 보고 지금이라도 역시 샀을 것인지 검토하라.
⑧ 대단한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을 경우에만 사라.
⑨ 계속해서 예측할 수 없는 위험 역시 항상 염두에 두라.
⑩ 자신의 주장이 옳더라도 겸손하라.
6. 10가지 금기 사항
① 추천종목을 따르지 말며, 비밀스러운 소문에 귀 기울이지 마라.
② 파는 사람이 왜 파는지, 혹은 사는 사람이 왜 사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마라.
또한, 다른 사람들이 자기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마라.
③ 손실을 다시 회복하려고 하지 마라.
④ 지난 시세에 연연하지 마라.
⑤ 주식을 사놓은 뒤 언젠가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희망 속에 그 주식을 잊고 지내지 마라.
⑥ 시세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마라
⑦ 어디서 수익 혹은 손실이 있었는지 계속해서 계산하지 마라.
⑧ 단기 수익을 얻기 위해서 팔지 마라.
⑨ 정치적 성향, 즉 지지나 반대에 의해 심리적 영향을 받지 마라.
⑩ 이익을 보았다고 해서 교만해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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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