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마가, 누가 이 3 복음서는 태초 안에 계시는 그 말씀(호 로고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셔서 어떻게 일 하시는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행동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3일 만에 다시 사신 후에 복음의 말씀을 듣고, 그를 주로
영접하고 영생을 얻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사실을 미리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요3:16절의 말씀은 육신으로 오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 영으로서 임마누엘 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독생자라고 하면 육신으로 오신 예수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육신으로 오신 예수는 자신의 집으로는
영접할 수 있겠지만 심령 안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예수를 사람 안으로 어떻게 영접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인자이신 예수를 믿느냐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믿느냐 묻는 겁니다.
광야에서 모세의 지팡이에 놋 뱀을 달아 불 뱀에 물린 자들이
그것을 쳐다보기만 하면 다 나았듯이(민21장)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지금 계시록을 증거한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정말 웃기는 일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대로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는가”(요3:12)
지금 땅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므로 영생을 얻어 거듭난 자로
성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하는 일에 대해서는 모르면서 하늘에서
일어나는 사실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예수는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성령과 함께 그리스도로 오셔서 우리의 구주가
되시므로 죄의 삯을 받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은사를 받습니다(롬6:23)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으로 세상과 육신에서 구원을 받아
신령한 몸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그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 언약이 우리 안에 이루어져 주의 영으로 죄와 사망과 육신에서 자유를 얻어
그의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는 구원의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고후3:17-18)
이는 장차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이 땅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를 모르고 하늘에서 일어난 일만 알려고 하니 영생도 천국도 혼인잔치도
다 공중에 둥둥 떠 있으므로 결국 땅에서는 예수를 믿고 거기에 들어가자는
자신들의 열심만 있어 도무지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의 자유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독생자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라는 뜻 외에 유일하다 독특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whoever believes in him)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믿으므로 영생을 얻습니다. 이 영생은 지금 현재 얻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난 자 곧 거듭난 사람은 이미 그 분 안에 옮겨진 상태에서 독생자를
믿어 영생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 안에 있으면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겁니다(요일5:12) 아담 안에 죽었던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바로 첫째부활입니다. 그러면 둘째 사망인
불 못은 관광도 갈 일이 없어집니다. 이 첫째부활은 재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현재 부활이 없고 현재 천국이 없는 사람들에게 당신
현재 상태로 죽으면 불 못이라고 경고를 해 줍니다.
아담 안에서 자동으로 전이가 된 사망과 음부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으로 이기지 않고서 무슨 재주로 주와 함께 시온산에 설 수 있습니까?
무슨 지파니 쪽 파니 양파니 하면서 기름 바른 뱀장어처럼 말하지만
그들은 구원이 뭔지 어떻게 하면 시온산에 서게 되는지를 그 길을 모릅디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요3:17-18)
누구를 믿느냐 바로 독생자의 이름을 믿는다는 말씀에 주의해야 합니다.
‘호 로고스’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은 예수라는 이름 하나만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이름이란 그 존재 자체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란 이름 하나만으로
말씀이신 그 분의 존재를 다 표현 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안에는
그 분의 갖가지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빛, 생명, 독생자, 부활, 생수,
생명의 떡, 선한 목자, 진리, 포도나무, 등등으로 그 이름이 표현이 됩니다.
여호와께서 나는 나다(I am who I am)라고 밝히신 것처럼(출3:14)
나는 나다(에고 에이미)라고 하신 모든 말씀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요3:19절에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 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하십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나중에 받는다고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믿는 자와 안 믿는 자가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는 것과 같이
이미 영생을 얻은 자와 불로 태울 자가 갈라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심판이란 뜻의 원어의 의미는 갈라진다(크리노)는 뜻입니다.
요한복음이 다른 복음서와 내용이 다른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생명을 얻는 사건이 바로 일어나고 있는 점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고백은 했지만 그 분을 영접했다는 사실은 없습니다.
구약의 구원은 그림자인 율법과 성전을 통해 “아 저기 실제이신 메시아
그리스도가 오시는구나 곧 오시겠구나”하고 믿으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에는 “아, 이분이 구약을 통해 약속하신
그 메시아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하고 믿으면 구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성령으로 오셔서 만민을 그 분의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시려
하는 이 날에는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말씀을 통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칼빈이 예수 그리스도가 안에 계시지 않으면
그 분이 하신 사역의 효력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구속의
효력이 나타나서 죄와 상관이 없는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성령이 역사합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는 영생도 얻지 못한
사람이 하늘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리스도의 계시인 계시록을 본다고요?
그리스도를 모르고 예수만 아는 사람이 계시록을 말하는 우스운 꼴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실례를 보면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좇아내고 병을 낫게 하는 권세를 나누어줘서 사역을 보내셨습니다(마10장, 눅10장)
그러나 지금은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하십니다(마28:20)
그러므로 지금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권세를 구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구하면 그 분의 권세도 나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주님이 우리와 하나가 되시므로 주님께서
나를 믿는 자는 나보다 더 큰일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12)
그래서 마28장18-20절에서 제자들에게 대 사명(great commission)을
주시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주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이신 예수로 죽으시고 3일 후에
다시 살아나시고 승천하신 후에 진리의 성령을 보내시므로 그 말씀
곧 새 언약의 약속의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주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거듭 말씀하신 그 유언(요14-16)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부름을 받아 그리스도를 주로 믿으므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고 또 온 세상에 보냄을 받은 사명을 받은 겁니다.
다시 한 번 요한복음이 말씀하는 그리스도께서 나와 하나 되게 하신 사실을
영접한다(받아들인다)는 이 비밀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상기하길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인자로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을 뿐 아니라 다시 사셨고,
이제 진리의 성령으로 그 분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또한 그 분 안에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영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접하는 자, 주님의 이름을 믿는 자인 것입니다(요1:12)
그래서 요3:19절은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나
빛 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인간적인 빛만 고집하고 참 빛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니
그 자체가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만큼 빛이 중요합니다.
생명의 요소에 필수적인 것이 바로 빛입니다.
달빛도 빛은 빛이지만 생명의 역사는 없죠. 인간의 지식도
사람들에게 빛과 같은 역할을 하지만 달빛과 같이 생명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빛은 그리스도를 보게 하고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도록 합니다.
빛이 없는 캄캄한 곳에서는 눈이 소용없듯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아는 빛을 비추지 않으시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눈이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들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럼 거듭난 증거는 무엇인가요?
바로 요한복음 3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뒤집어 보면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그를 알고 생명을 얻었고(요3:36) 그 안에서
영생하는 생명의 양식을 내가 먹고 있으면 거듭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다시 사는 것이 내가 한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사심에 의해 나도 주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았듯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 스스로 물에 들어갔다 다시 나와 죄에서 죽고
다시 살아 성령 안에 들어가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한 몸이 되어
한 영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이룩하신 대속의 은총에 의해
우리는 그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 영생을 얻은 자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듭나서 하늘에 속한 시민권자로 발견이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