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장날의 국화 축제
2019. 11. 12. 금계
내리 며칠 계속 기온이 낮게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어서 방에 콕 들어박혀 있다가 드디어 오늘은 바람이 자고 햇빛이 밝다. 옳지, 바깥바람이나 쐬어야겄다. 똑딱이 카메라 챙기고 여비 몇 푼 담고 무안 가는 버스를 탄다.
달리던 버스가 잠시 멈추는 틈을 타서 카메라를 들이댄다. 길가에 못 보던 광고판이 새로 떴다. ‘유달산의 만추’. 단풍으로 물든 유달산의 예쁜 모습이 선명하다. 며칠 안으로 나도 유달산 구경가야겄다.
무안에서 대한여객 버스로 갈아타고 함평 들어가는 길목. 벼 베어낸 그루터기로 늦가을 햇살이 호복하게 쏟아진다.
장날이라선지 함평 버스공용정류장 대합실에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많이 나와서 시골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버스정류장 바로 곁이 시장이다. 시장 입구에 기다란 튀밥 봉지를 나란히 세워놓은 트럭이 맨 먼저 눈에 띈다.
‘전통시장 임시시장 운영을 위한 차 없는 거리 운영’.
함평 전통시장은 화면 오른쪽인데 현재 공사 중이어서 임시시장을 운영하는 모양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더라고 아무 생각 없이 왔는데 졸지에 오일장 구경을 하게 되었으니 즐겁기 한량없다.
날씨도 좋겄다, 함평 군민들이 몽땅 모여드는갑다.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시장이 붐빈다.
색색으로 아롱진 이불가게.
늦가을 햇살이 쟁강쟁강 부서지는 그릇가게.
조기, 숭어, 장대가 매달린 생선가게.
주인아주머니의 눈치를 살피느라 셔터를 빨리 눌렀더니 사진이 흐리게 나왔다. 오늘 아침에 잡은 게 분명한 피라미. 한 그릇에 오천 원이란다. 사가지고 가서 튀김을 해먹거나 무 호박 넣고 얼큰하게 탕 끓여먹으면 꼭 좋겠는데 함평 길거리 쏘다니면서 들고 다닐 일이나 버스에서 비린내 풍길 일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릴 적 외갓집이 있는 시골에 가면 이맘때 꼭 남정네들이 모여 네 명씩 교대로 달라붙어 커다란 두레박으로 방죽 물을 퍼냈다. 붕어, 미꾸라지, 피라미. 집집마다 한 그릇씩 나누어주었다. 무 호박에 빨간 고추 넣고 끓인 ‘물천어’ 맛이라니....... 나는 고무함지 가득 담긴 피라미를 눈이 아프도록 노려보며 입맛을 쩝쩝 다신다.
함평읍사무소. ‘평화롭고 살기 좋은 함평’.
함평에 오면 먼저 ‘함평 천지 늙은 몸이 - ’로 시작되는 옛날 육자배기가 떠오른다. 몇 번 와보니 참말로 함평은 평화롭고 살기 좋은 시골인 것 같다. 게다가 요즘은 ‘나비 축제’로 많은 관광객까지 끌어 모으고 있다.
읍사무소 바로 옆 공원 올라가는 길 들머리에 자리 잡은 근사한 경로당.
나도 저 방구석 끝자리에 끼여 앉아 여러 노인들과 함께 시국을 걱정하거나, 아들 손자 자랑하거나, 막걸리 내기 화투라도 한 번 쳐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생업에 종사하다 은퇴한 늙은이들한테 여생은 포상휴가처럼 달콤한 것이어야 한다.
함평공원 누각에도 가을빛이 완연하다.
바로 번화가에서 몇 걸음만 올라가면 이렇게 단풍 곱게 물든 멋진 산과 공원이 있다니 함평 사람들 부럽기 짝이 없다.
공원에서 내려다본 함평천. 산자수명, 풍광명미, 이런 말들이 떠오른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채로 방치된 허술한 우체국 건물. 문득 길고 긴 사연을 적어 우체통에 집어넣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아무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돌담에 얹혀 늦가을 햇살을 되쏘는 항아리들. 이문구 씨의 소설 ‘관촌 수필’처럼, 어쩐지 고향 마을에 들어선 것처럼 포근하고 아늑하고 정겹다.
나는 아무 종교도 안 믿지만 단아하고 깔끔한 함평읍 교회에 오면 언제나 아늑하고 평안한 기분이 된다.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나로 하여금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고, 잔잔한 호숫가로 인도하여주시네.”
나는 태양교 신자다. 삼애 어린이집 미끄럼틀로 오밀조밀 쏟아지는 늦가을 정오의 눈부신 햇살을 만나면 황홀경에 빠져 눈물을 글썽인다. 오! 밝은 해님! 저한테 이런 호강을 시켜주어서 감사 또 감사하나이다. 태초에 당신이 없었더라면 어찌 삼라만상이 은총을 입었을 것이며, 어찌 제가 태어나 이런 호사를 누리겠나이까.
네거리 한가운데에 세워진 나비 축제 기념 조형물. 나비가 함평에만 날아다니는 곤충은 아니지만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 선달처럼 함평군청은 나비를 팔아서 숱한 관광객들을 꾀어냈다. 그 창의성과 사업 추진력은 높게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해가 갈수록 농촌 인구가 줄어들고 따라서 학생 수도 줄어든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거점 학교’. ‘함평학다리고등학교’는 함평고등학교와 학다리고등학교를 통합한 모양이다.
노란 감은 늦가을의 대표선수다. 지금이야 과일들이 널렸지만 예전에는 왜 그리 감도 귀했는지 모르겄다. 우리 할머니는 시렁 위 석짝에 담긴 홍시를 꼭 하나씩 어린 나만 꺼내주고 당신은 안 자셨다.
“할머니는 왜 안 먹어?”
“응, 나는 별로 먹고 싶지 않다.”
“????????”
드디어 함평 엑스포공원 입구. ‘대한민국 국향대전’. 10월 18 - 11. 3. 축제기간이 일주일 이상이나 지나서 꽃들이 조금 거무튀튀하게 변색했다. 그래도 나는 관람객이 줄어들어 조금쯤 쓸쓸한 잔치의 뒷마당을 좋아한다. 나는 남들이 너무 시어빠졌다고 눈살을 찌푸리는 묵은지도 즐겨 먹는 체질이다.
잔치가 끝난 뒷마당은 늘 허전하고 쓸쓸하고 허망하다. 인생도 70이 넘으면 잔치 끝난 뒷마당처럼 허망하고 쓸쓸하고 외롭다. 그래도 은성하고 영화로웠던 지난날을 되새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삶의 잔광을 기꺼이 즐겨야하지 않을까.
하얀 억새도 멋지고, 노란 국화도 예쁘다. 하얀 억새와 노란 국화가 어우러지니 더욱 쌈빡하고 개미가 있다.
늘씬하고 요염한 나비 아가씨가 지난봄의 화려했던 무대를 뒤로하고 무료하게 서 있다가 내가 다가가자 ‘어서 오세요’ 손을 번쩍 들며 반가이 맞아준다.
천사가 타고 다닐 법한 멋진 수레 위에도 국화 송이가 덩그러니 얹혀 있다.
죽어서 천국에 가려 하지 말라. ‘사람 사는 세상’. 사람 냄새 펄펄 나는 여기가 바로 우리들의 천국이요 낙원이요 극락이요 유토피아다. 여기가 바로 행복의 나라다.
올해 함평 국화축제의 주제는 독립문인가 보다. 그래도 조국 광복을 위해 피땀을 흘린 선열들의 은혜로 지금 우리들이 이만큼 어깨를 펴고 평안하게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싶다.
국화 분재 전시실. 전문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돌과 고목과 화분에 심어 키운 가지각색의 국화들이 볼만했다. 축제의 백미였다. 조심스레 카메라를 들이대며 한 작품 한 작품 천천히 음미했다.
분재전시실을 나오니 글로벌 푸드 코트. 여러 나라 음식 맛보기 식당. 나는 여기에서 커피 한 잔과 국화빵 다섯 개로 점심을 때웠다.
축제 기간이 지나 손님이 뜸하다고 가게 주인이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노란 국화 탑과
늘 푸른 소나무
높고 푸른 가을 하늘에 가슴이 툭 트인다.
저런 집에서 살아봤으면 좋겄다.
온실 안
온실 안에는 국화 말고도 색색의 가을꽃들이 예쁘게 피어났다.
온실 안 폭포수와 피라칸사스
국화 축제 엑스포공원에 있는 ‘근대문화 전시관’.
사진은 함평 어느 학교의 운동회 광경. 지금은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다니는 시골 학교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옛날 교실 재현. 미니어처 식인데 실물과 똑같은 크기.
요게 무슨 장면인지 모르는 사람 없겄제.
옛날 아이들한테 엿은 기쁨 그 자체였다.
목로주점 재현. 갑자기 목이 컬컬해지는 느낌.
옛날 다방 재현. 커피 200원, 쌍화차 500원. 아, 그리워라, 옛날이여.
진짜 미니어처. 옛 농촌마을의 생활상.
탈곡기와 홀태
지나가는 학생한테 부탁해서 한 장 찰칵.
식물원에서 만난 희한한 밍크 선인장. 이쯤에서 카메라 배터리가 끝났다.
바람도 자고 늦가을 햇살이 읍내 구석지구석지까지 극장 무대처럼 휘황하게 비추는 가운데 함평 구경 한 번 잘 했다. 언제 와 봐도 함평은 볼거리가 푸지고 평온하고 풍요롭고 늘그막에 꺼떡꺼떡 살고 싶은 고장이다
국화 축제만 축제가 아니다. 우리의 살아 있는 모든 날이 축제일이다.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무안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노라니 곁에 앉은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걸쭉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