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재 휴게소
김 나 영(김 지 영)
전화를 거는 손가락에 작은 떨림이 전해져 왔다. 서울에 사는 언니가 향우회 모임에 갔다가 내 친구라며 연락처를 주기에 받아 왔다고 전해준 전화번호다. 삼십년 만에 찾은 친구의 목소리를 잔뜩 기대하며 번호를 눌렀다. 차라리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면서 설레는 마음을 차분하게 식히고 있었다. 한참을 지나 낯설고도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애써서 흥분되는 목소리 음을 조절하면서 내 소개를 했다. 기억을 더듬는 중이었던지 잠시 지나서야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동안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짚어 가느라 중간 중간 침묵이 흐르곤 했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친구의 기억은 별로 없었지만 그 친구는 나에 대해 꽤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오히려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충동질을 해 대는 것이다. 일주일 후에 수안보에 연수를 들어가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그 곳으로 와 달라는 부탁을 어렵사리 꺼냈다. 사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어서 친구를 만나게 되면 뭔가 얻을 수 있을 거라 내심 기대를 하면서 흔쾌하게 승낙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기다리던 일주일이 지난 오후 네 시가 넘은 시간에 친구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수안보에서 충주 방향으로 10km 지점에 있는 00재 휴게소로 오라는 거였다. 산 속이라 끊어졌다 이어졌다 반복하는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였기에 문자로 보내 달라 했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 곳에 가보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나섰다. 괴산을 들어서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날은 어두워져 가고 있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사조리조트를 지나는 지점에 도착했을 때 친구에게 거의 다 왔으니 그 곳 이름을 제대로 알려 달라 했지만 때 마침 끊어진 전화는 응답이 없다. 내리던 눈은 어느새 진눈개비로 바뀌어 있었다. 자동차 체인도 준비하지 않아 불안한 마음은 더해갔다. 앞은 보이지 않을 정도의 눈길이라 등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수안보를 출발해 충주까지 갔지만 00재 휴게소는 없었다. 친구의 전화는 불통이 되었다. 전화를 수 십 통은 했던 것 같다. 문자도 남겨 보았지만 답이 없다. 지나는 길에 주유소를 들러 물어 봐도 고개만 흔들 뿐 모르겠다고 하니 참으로 난감했다. 수안보에 되돌아갔을 때는 벌써 밤 아홉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진눈개비 속을 헤치며 눈길을 세 시간째 돌았다. 결국은 파출소에 들러 물어봐도 그런 이름을 들어 본적이 없다 하니 더 이상 찾아 헤맨다는 것은 시간 낭비일 것이다.
뭔가 잘 못되어도 한참을 잘 못되었다는 것이 그제야 실감이 났다. 귀신에게 홀린 기분이었다. 삼 십 년 만에 친구를 만나겠다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무작정 찾아온 내가 어처구니없게만 느껴졌다. 나야 그렇다 치고 근처에 까지 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 친구가 걱정 할 것을 생각하면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거기다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더 걱정이 되었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이 수북하게 쌓여가는 것이 참으로 야속했다.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이 밤에 되돌아가야 하는지 수안보에서 하루 밤을 묵어야 하는지 결정을 해야 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의 밤이 눈길을 되짚어 가야하는 것 보다 두려웠다. 리조트 고갯길을 자정이 되어 가는 시간에 넘는 다는 것은 무리였다. 핸들을 잡고 있는 손의 떨림을 기도로써 안정시키려 했다. 온 몸의 신경을 집중해서 아무 사고 없이 집에 까지만 돌아올 수 있게 되기를 수 백 번은 되 뇌였으니 말이다. 아마도 이제껏 살면서 그리도 간절하게 기도를 해 본 것도 처음일 것이다. 수안보에서 충주까지 이십여 분이면 족한 것을 한 시간이 족히 걸렸다. 충주로 우회하는 길을 택한 것은 다행이었다. 시내에는 눈이 내리면서 녹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세상 같았다. 어디 그 뿐인가. 충주를 벗어나 청주로 향하는 길은 언제 눈이 왔나 싶을 정도로 말짱한 날씨였다. 헤매고 다닌 여덟 시간이 꿈 인양 하늘에 별이 총총한 맑은 밤이었지만 긴장했던 탓으로 몸살은 피할 수 없었다.
이틀이 지난 뒤에야 그 친구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통화하고 난 뒤에 핸드폰을 연못에 빠뜨렸단다. 그 바람에 연락 두절이 되었고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해 연락을 하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했다는 것이다. 그 날 겪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미안하다며 수안보에서 충주 가는 길목이 아니고 월악산 자락인 만수계곡으로 들어서야만 그 휴게소가 있더라는 것이었다. 닷 돈재. 그 이름만 제대로 알았어도 그날의 힘든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야속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친구의 실수에 뭐라 할 수도 없으니 내 잘못을 탓해야 했다. 친구를 만난다는 설렘과 호기심에 무리수를 두었다. 어린 시절 잃어버린 기억을 친구를 통해 찾으려 했던 것이 무슨 소용인가. 추억은 추억일 뿐 흘러간 것은 그대로 두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현재의 삶에 충실하게 살다보면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금 현실이 추억이 되고 잊어지는 날이 올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일 터이다. 그렇게 나이 사십의 겨울을 넘으면서 또 하나의 닷 돈재 추억을 새겨 두었다. 핸드폰의 편리함이 가끔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만든다. 그 일이 있은 이후로 그 친구도 나 역시도 전화기에만 의지 하지 않고 만약의 경우를 위해 수첩에 연락처를 적어두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첫댓글 친구를 만나려는 마음이 앞서 고생을 많이 했군요. 닷돈 재라는 재 이름도 처음들어보네요.
그렇지요저도 그랬답니다.알고 나서는 너무 허탈해서
닷돈재의 추억을 느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맞아요, 만일에 대비해 수첩에 전화번호를 적어 놓아야 하는데 편리함에 길들여져 다음에 올 다른 대책은 우리가 모두 무방비 상태입니다.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고 늘 행복하소서.
자꾸만 깜박깜박 합니다.고맙습니다.
^^ 눈 밭길 밤에 다돗재 휴게소까지 갔더라면 더 낭패 볼뻔했습니다...ㅎㅎ 현장감 있게, 그리고 선생님의 불안, 다급, 긴장된 마음이 고스란하게 감상했습니다...^^*
그러게요.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마음에 깊은 숨을 들이 시게 된답니다.고맙습니다.
한때 눈밭에서 친구와 술레잡기를 하며 고생한 그리움이 지나고 나니 훌륭한 글로 태어났네요...닷돈재의 추억 잘읽고 갑니다..건강하고 행복하셔유....
감사합니다.
선생님 특별한 경험을 하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열정이 있었던것 같은데..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없네요.
찾아주는 친구가 그리워서 달려가는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 글에서 읽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찬바람이 불어오니 생각이 나네요.
나도 그런적이 있었다우~ 엄마에게 충주들려 친정(수룡)에 밤8시쯤 도착 할것라고 해놓고 질러가는 산길을 택해 확신하며 가다보니 그 길이 아니네. 돌려서 와야지 하고 삼거리길을 찾다보니 계속 산으로 갈수밖에...산속으로 올라 갈수록 눈이 녹질않아 주변은 껌껌 길은 하얗고 6살딸은 "엄마 나 여기 차에서 안잘꺼야~" 시간은 보니 밤10시 다행이 돌려나올수있는 세모진길에 있기에 감사, 도착할시간에 내가 안오니깐 친정 엄마와 남편은 난리가 났지뭐야 그때 핸드폰도 없었는데...더군다나 나는 길치인데... 초보운전으로 지금 생각하면 아찔햐
여하튼 선생님께서는 화제거리를 몰고 다니시네요.두손들게끔 하시는 선생님.화이팅
저도 얼마전에 친구둘이 수다떨다 삼거리에서 엉뚱한길로 걸어가서 귀신에 홀렸다 왔네요. 앞이 안보이는 안개가 원인이었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안개길을 가노라면 어쩐지 다른 세계가 있을것 같아요.두렵기도 하고요.
수북히 쌓여가는 캄캄한 눈길에서 무지 두려웠겠어요. 지나고 나면 모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다가오네요. 잘 감상 했습니다.
지금은 추억이고요.그 당시엔 공포였지요.고맙습니다.
살다보면 그런 난감에 처할때가 많치요.그래도 그친구에게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 했다는게 다행이네요. 감상 잘 했습니다
그러게요.이 깊어가는 가을에 친구 생각이 많이 나네요.
김선생 글을 읽고보니 나도 그런 황당한 일을 당한 적이 있어 웃음이 납니다. 감상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