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 곳 지족동을 알리며 (2018년 11월 16일 손 좋다는 날 하루 전 날 새벽에)
이사전날. 용산동이란 이곳에 둥지를 튼 지 햇수로 꼭 8년만이다. 지금 사는 곳은 근무처가 코앞으로 동네이름이 테크노밸리라는 이름을 갖는 장래가 촉망된다 싶은 아파트였는데 당시는 미분양상태로 분양가보다 1억 이상을 에누리하여 나는 과감히 입주를 했었다. 하지만 이 집과 나는 운 때가 맞지는 않았던 것도 같다. 직장에서는 큰 이변이 있었고 몸도 크게 아팠다. 아파트 가격도 예상대로 따라주지 않았으며 작은 세대수에 관리비만 엄청났다. 이제 겨우 털고 반석 천 밑으로 이사를 간다.
그곳은 과연 어떨까. 이번 이사는 예전과는 전혀 다르다. 늘 평수를 늘여 이사를 하곤 했는데 평수를 줄여가는 것도 색 다르지만 무엇보다도 어찌 살 것인가의 심사숙고 끝에 택한 곳이라는 데 방점이 있다. 이문을 고려치 않은 선택, 아내는 볼멘 표정이지만 지은 지 4년 정도의 초년 생 아파트로 내 수명을 생각해 최종 의탁할 곳으로 점찍어 간다고 하면 맞는 말이다. 엄마 때문 기실 퇴직을 하면 안양으로 돌아가야 하나 망설이기도 했었다. 엄마는 내가 택한 반석 행을 무척 못마땅해 하지만 암만 생각해도 내가 안양으로 가봐야 마땅히 할 일도 없고 친구들도 뿔뿔이 흩어져 설 땅이 어중중한 것이 사실이다. 한 때 안양문화원장이라도 할 수 없겠나 하는 희망을 품었는데 내 처지를 모르는 과한 상상이었다.
아무튼 용산동은 이제 굿바이다. 왜 사느냐란 본능적 깊은 암운이 드리우기도 했던 나로선 참으로 애석한 동네다 싶지만 막상 떠나려니 아쉽기만 하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시련 속에서 영근다. 이곳은 내게 바로 그런 여운을 남긴 곳이었다. 나로선 두 번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검찰청을 찾았던 곳도 이곳이었고 두문불출하고 도를 닦듯 귀양 가듯 엄청 많은 글을 쓰고 책을 읽었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그때는 조촐한 갑천이 내 친구이고 스승이었다.
그렇지만 아픔에 우수로만 장식되지만은 않는다. 직장이 가까워 나의 온열치료 찜질방도 그렇고 내 병치레를 도맡아 점심 때 부르르 달려 나와 영양식을 먹고 다니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아들 혼사도 이곳에서 이루어졌고 내 병의 졸업도 이곳에서 맞이한 선물이었다. 흡사 과유불급에서 탈출을 도모한 곳이라고 할까. 이제는 어찌 살 것이냐의 숙제를 안고 반석행이다. 평수를 줄여 가려니 버리는 짐이 엄청 많다. 무릇 내 나이가 비움과 느림을 알아두어야 할 때가 아닌가. 어제 밤 까지 버리고 또 비웠다.
오늘 새벽 마지막으로 마음을 비우자 하며 책상에 앉았다. 비우고 비우다 법정의 무소유가 된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고 공즉시색에 색즉시공도 따를 법 하고.....생각하자면 우리의 감정 속에는 늘 호불호(好不好)가 있다. 좋은 일이 나쁜 일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 좋은 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듯이 좋은 일에는 나쁜 일이 따라 붙는 경우가 많으며,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이 있듯이 나쁜 일이 도리어 좋은 일을 몰고 오기도 한다. 세상사가 이러하니 좋은 일이 있다하여 희희낙락(喜喜樂樂)할 것도 없고, 나쁜 일이 있다하여 절망(絶望)할 까닭도 없다. 여름이 오면 여름을 받아들이고, 겨울이 오면 겨울을 받아들이면 그만이 아닌가?
내가 용산동에서 제일 많이 생각한 것은 바로 이 단출한 자연의 진리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왜 그럴까. 현실을 사는 오늘을 철저히 도외시하거나 무시하기 때문은 아닐까. 한 때는 내가 분명 그러했다. 행복이 불행의 반대말 같지만, 고와 낙이 한 덩어리인 것처럼 행복 또한 불행과 한 몸이라, 불행을 이기면 행복이 될 것이나 행복에 집착하면 그 집착이 곧 불행이 된다싶다. 그런 점에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 이 반대말로 다다익선을 흔히 말하지만 만족할 줄 알면 늘 즐겁다는 의미에서 대척하여 지족자상락(知足者常樂)이 제격이다 싶다.
좀 부족함이 넘침보다 나쁜 것이 아니며, 풍족함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큰 불행을 불러들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 배고픔이 허기를 만들지만 허기만한 미각(味覺)도 없고, 미식(美食)과 과식(過食)이 오히려 만병(萬病)의 원인이라. 오늘을 살며 스스로 만족하고 즐거워하면 그만이 아닐까 싶다. 지족자상락(知足者常樂), 안분자상락(安分者常樂). 좋은 의미로 이 말을 새기며 드디어 내일 이사를 간다. 끝으로 여러분들에게 내가 이사 갈 곳을 알린다. 대전 유성구 지족동 1093번지 한화 꿈에 그린 2단지 아파트 206동 803호 .....우측은 우산 봉, 좌측은 대전 국립묘지, 한 가운데로는 반석 천이 흐르는 이곳, 바로 지족자상락이 펼쳐질 이곳은 지족동이다....
첫댓글 이주 준비에 분주하겠습니다. 10년 전만해도 이사라는 말이 낯설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사하고는 이별을 했답니다. 손꼽아보니 다섯손가락도 모자라네요. 저도 대전 갑천변에 작은 아피트가 한 채 마련해 놓고 가끔 들렸었는데 지금은 꼭 필요한 분들이 대신 살고 있지요. 뵌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음악과 함께 잘 읽었습니다.
사람은 60부터 철이 들어 황금기를 누린다고 했는데 적기에 이사를 하십니다.
산수 수려한 지족동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단꿈을 꾸시면서 知足者常樂하시기 빕니다~~
열심히 살아낸 용산동을 떠나시는군요. 지족동에서는 복된 일만 기다리기를 빕니다. 조성원 선생님,다시 뵈니 참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