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율기(律己)편, 제3조 제가(齊家)
오늘은 여덟 번째 꼭지 ‘음식을 사치스럽게 하는 것은 재화(財貨)를 소비하고 물자를 탕진하는 것이니 재앙을 불러들이는 길이다.’
목민심서 율기(律己) 제3조 제가 (齊家)
8. 음식을 사치스럽게 하는 것은 재화(財貨)를 소비하고 물자를 탕진하는 것이니 재앙을 불러들이는 길이다.
후한(後漢) 공분(孔奮)(주1)이 고장(姑臧)의 수령이 되었는데, 오직 늙은 어머니만은 아주 진수성찬이었고 처자들의 밥상에는 파와 겨자 뿐이었다. 어떤 사람이 공분을 조롱하기를, “기름 속에 넣어두어도 스스로 윤택할 줄 모른다.” 하였다.
조어(趙峿)(주2)가 합천 군수(陜川郡守)가 되어 청렴한 절조가 비길 데가 없었다. 군수로 있을 적에 아들과 사위, 노비(奴婢)들이 왕래하는 경우에는 모두 자기 양식을 가지고 왔다. 또 그 고을에 은어(銀魚)가 났는데, 여름철에 고기가 썩게 되더라도 처자들에게는 먹지 못하게 하였다.
후당(後唐) 때 유찬(劉贊)(주3)의 아버지 유빈(劉玭)이 현령이 되었고, 유찬은 그때 비로소 입학하였는데, 청포(靑布) 저고리와 바지를 입혔고, 식사 때마다 자기는 고기반찬을 먹으면서 유찬에게는 따로 나물 반찬을 차려 상 아래에서 먹게 하면서, “육식은 임금이 주신 녹이다. 너도 먹고 싶거든 부지런히 공부하여 국록을 받도록 하여라. 내가 먹는 육식은 네가 먹어서는 안 된다.”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유찬은 힘써 공부하여 진사(進士)에 급제하였다.
호수안(胡壽安)(주4)이 영락(永樂)(주5) 연간에 신번지현(新繁知縣)이 되었는데, 벼슬살이할 적에 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 아들 자휘(自徽)가 문안드리기 위해 와서 한 달 동안 묵으면서 닭 2마리를 삶아 먹었다. 호수안이 노하기를, “음식을 밝히는 사람은 사람들이 천하게 여긴다. 나는 벼슬살이한 지 20여 년이 되도록 항상 사치함을 경계하고 있으나 오히려 끝을 잘 맺지 못할까 걱정하는데, 네가 이처럼 먹기를 좋아하니 내게 누(累)가 되지 않겠느냐.” 하였다.
[역주]
[주-D001] 공분(孔奮) :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 때 사람으로 자는 백어(伯魚)이다. 고장장(姑臧長)을 거쳐 무도 태수(武都太守)에 이르렀는데, 청렴하고 공평하였다. 《後漢書 卷31 孔奮列傳》
[주-D002] 조어(趙峿) : 조선 문신. 세종 때 사람으로 벼슬은 합천 군수(陜川郡守)ㆍ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을 지냈다.
[주-D003] 유찬(劉贊) : 후당(後唐) 사람으로 벼슬은 어사중승(御史中丞)ㆍ형부시랑(刑部侍郞)을 지냈다. 《舊五代史 卷68》 《唐書 卷44 劉贊列傳》 《新五代史 卷28 唐臣傳 劉贊》
[주-D004] 호수안(胡壽安) : 명(明)나라 성조(成祖) 때 사람으로 신번지현(新繁知縣)으로 있을 때 몸소 채소를 심어 먹었다. 그래서 채지현(菜知縣)이라 불렀다.
[주-D005] 영락(永樂) : 명 성조(明成祖)의 연호이다. 1403~1424.
飮食之侈。財之所糜。物之所殄。招災之術也。
後漢孔奮守姑臧。唯老母。極珍膳。妻子飯食葱芥。或嘲奮曰。置脂膏中。不能自潤。
趙峿爲陜川郡守。淸節無比。嘗在郡。子壻奴婢往來者。皆賫私粮。又郡產銀口魚。夏月雖至腐敗。不許妻子嘗之。
後唐劉贊父玭。爲縣令。贊始就學。衣以靑布衫襦。每食則自肉食。別以蔬食。食贊牀下曰。肉食。君之祿也。爾欲之則勤學以得祿。吾食非爾之食也。由是。贊力學擧進士。
胡壽安永樂中任新繁。在官。未嘗食肉。其子自徽來省。居一月。烹二雞。胡怒曰。飮食之人。則人賤之矣。吾官二十餘年。嘗以奢侈爲戒。猶恐不能令終。爾好大嚼如此。不爲吾累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