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9일
옷차림
옷의 종류보다 태도이다. 옷차림을 수행으로 삼는다는 것은 외형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행동에 마음을 담는 것이다. 옷의 선택에서 잘 보이느냐가 아니고 어울리느냐 오늘의 일정과 몸 상태 마음의 무게에 따라서 선택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적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다.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는 삶의 활력을 차단한다. - 도울 선생님 강의 중에서 -
아침에 일어나면 책상 위에 있는 작은 거울에 잠에서 갓 깨어난 얼굴을 비추면서 “잘 잤어? 예쁘다”라고 아침 인사를 한다. 활짝 웃는 모습이 언제나 사랑스럽다. 컨디션이 나쁠 때는 곧 괜찮아진다고 다독이면서 응원한다.
거울을 자주 보는 편이다. 아침에 세수하고서 기초화장을 할 때 스탠드 거울과 손거울을 번갈아 보면서 화장한다. 이른 아침에 친구가 전화해서 내가 거울 앞에 있다고 하면 ‘어디 나가?’라고 물었다. ‘나는 외출할 일 없으면 안 씻는다.’ 하면서 크게 웃었다. 친구도 세수는 하지만 화장까지는 안 한다고 했다. 매일 색조 화장까지는 하지 않지만, 가끔은 기분 전환 겸 화장하는 것도 익힐 겸 유튜버로 배운 것을 실습한다.
아기를 키울 때는 아가 때문에 옷을 입는 데 신경을 썼다. 색깔도 다양하게 입고 옷도 되도록 면 소재로 입었다. 아이들이 다 커서는 이제 예쁘게 입고 있어야지 하면서 옷장의 옷을 매일 갈아입은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예쁘게 입고서 마네킹처럼 있다면 괜찮은데 내가 직접 살림을 다하니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가스불 앞에서는 실크 옷이 가당하지도 않고 청소 다 하고 설거지 다 하고 난 뒤에 잠시 그 시간을 위해서 옷을 갈아입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다. 주말부부로 사니까 퇴근 시간이라고 섹시하게 입을 일도 없었다. 패딩 조끼를 입고서 가스불 앞에서 조리하다가 웃을 망가뜨린 뒤로는 옷걸이에 모셔두었다.
생각한 끝에 편안하고 깨끗한 옷을 아침마다 바꿔서 입는다. 아들만 있는 탓에 옷을 함부로 입지는 않는다. 잠옷만 입고서 돌아다닌 적도 없다. 처음에는 민소매도 입지 못해서 늘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이제는 민소매 정도는 입는다.
성격 탓도 있지만, 옷을 좋아한다. 나를 가꾸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고등학교 때 엄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교복이 주름치마에 세일러복이었다. 저녁에 치마를 이부자리에 깔아놓고 잤다. 실내화도 치약을 발라서 언제나 백옥처럼 하얗게 신었다. 구두도 언제나 구두약으로 닦아서 광을 냈다.
친한 친구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잤는데 친구가 교복을 벗지 않고 잤다. 구겨진다고 내 옷을 준다고 해도 귀찮다고 그냥 앉아서 공부하면서 밤을 새웠다. 아침을 먹는데 친구의 교복이 구겨진 것을 보면서 엄마가 얼른 다림질해 주었다. 밤새 친구는 자다 졸다 하면서 교복이 구겨진 것이다, ‘우리 딸내미는 교복에 신경만 안 써도 외모에 신경만 안 써도 서울대학교에 갈 거야’ 하셨다. 친구는 정말 서울대학교에 갔다. 서울대학교에 간 친구를 만나러 서울대학교를 찾아간 적은 있다. 교복을 매일 빨고 다리고 치맛주름 잡는다고 시간을 보낸 까닭인가?
나이가 들면서 옷에 관해서 관심이 줄어든 것은 맞다. 외출이 줄어드니 옷을 살 일도 줄었다. 집에 있는 옷도 많은데 더는 사지 말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설픈 중년이라 했던가? 나이는 예전의 중년 나이인데 지금은 환갑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뒤에서 보면 아가씨라는 말이 맞다. 다들 관리도 잘하고 건강해서 일찍 결혼 한 친구는 아들과 쇼핑하면 남자 친구로 본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옷을 어디에 기준을 두고 입어야 할지 생각이 많아진다. 20대 딸의 옷을 입고 나오는 친구도 있다. 너무 나이를 의식한 상견례 옷차림으로 나오는 친구도 있다.
강의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냥 외모에 치중하는 삶이 아니라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고 어울리는 옷차림을 생각한다. 거리에서나 역에서 기차에서 옷을 잘 챙겨서 입은 남자를 보면 괜히 설렌다. 나도 모르는 사람에게 설렘을 줄 수 있는 멋진 여자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