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임(許恁) 간찰(簡札) 허임(許恁)은 본관이 김해이고 자(字) 경옹 (敬翁)이며 호(號)는 태초당(太初堂)으로 구미 선산 인으로 임은(林隱) 돈(暾)의 자(子)로서 32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하였고 양친상을 당하여 상례에 극진하니 향리에서 효자라 하였으며 영남사림과 함께 채번암(蔡樊巖)의 원통함을 상소하였고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주자서(朱子書), 퇴계집등외의 잡서는 보지 않았다. 또한 주선(酒)을 금하였고 동생들에게 분재(分財)를 균등히 하였으며 자손에게 훈계(訓戒)하되 상제에 검약 할지언정 풍수지리설中風水地理說]에 미혹하지 말라하고, 봉선(奉先), 접빈(接賓)의 예를 정성히 하도록 훈교하였다.문집 4권2책이 있다. 허훈과 허위는 손자이다
독립운동가 방산(舫山) 허훈(許薰1836~1907.8.23) 간찰(簡札)
1836년 4월 14일 경북 선산에서 태어 났으며 본관은 김해(김해)이고 호는 (舫山)이며 의병장 왕산(旺山)허위(許蔿)의 맏형이다.18995년 일제가 명성왕후를 시해하고 친일 성향의 김홍집(金弘集)이 단발령을 공포하자,분개하여 항일 운동에 나섰다.1895년 아우 위가 항일 운둥을 위해 의병을 일으키자 토지 3,000여 두락(斗落)을 팔아 군자금으로 제공하였다.1896년 진보(眞寶)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경북의 안동(安東),영해(寧海),영양(英陽)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고 친일 세력을 응징하는 등의 무장 항일 투쟁을 벌이다가 1907년 8월 23일 별세하였다.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1. 허훈(許薰) 1836(헌종 2)∼1907.
조선 말기의 학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순가(舜歌), 호는 방산(舫山). 경상북도 선산군 임은(林隱, 지금의 구미시 임은동)에서 출생. 아버지는 증참찬 조(祚)이다. 29세에 허전(許傳)의 집지문인(執持門人)이 되었는데, 허전은 이익(李瀷) -안정복(安鼎福) -황덕길(黃德吉)로 이어진 성호학파의 실학을 이은 인물이고 허훈은 허전의 학통을 이었다. 의병(義兵) 군수(軍帥)인 허위(許蔿)가 아우인데, 허위의 손자들은 모스크바에 진(眞), 타시켄트에 선산(善山) 등이 거주하고 있다. 허훈의 성리설에 관한 생각을 짐작할 수 있는 글은 〈심설 心說〉과 〈사칠관견 四七管見〉이며, 실학과 유관한 것은 〈염설 鹽說〉·〈포설 砲說〉·〈차설 車說〉·〈패수설 浿水說〉·〈해조설 海潮說〉 등이 있다. 그는 〈사칠관견〉과 〈심설〉에서 이이(李珥)의 성리설이 이황(李滉)의 견해와 다른 문제들을 비판하였고, 이황의 학문적 정통성을 재천명, 계승하였다.
2. 허용(許墉) 1860∼1933) 자는 숭경(崇卿), 호는 과암(果庵),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아버지는 훈(薰)이며, 허숙(許숙)의 동생이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여 앞길이 열리려는 무렵 시사가 날로 그릇됨에 벼슬길을 단념하고 벽지에 숨어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