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회의 관계를 생각해야 되죠
서울고 총동창회 뉴스레터 제7호(2017. 8. 9)
이상림(26회 - 62세) 공간그룹
대표/한국건축가협회 명예회장
건축가는 건축주로서의 관점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관점을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번(제7호) 차례는 건축계 편이다. 2005년 자랑스런 서울인상을 받은 이상림 공간그룹 대표이다.
참석자는
전원 서건회 멤버. 이날 디너를 한 식당 진수사는 최일범(51회) 동문이 셰프로 있다.
최 동문은 가업을 물려받았다. 이상림 동문은 “내가 이 집의 영업부장”이라고 조크를 했다.
▲ 왼쪽부터 원종호(37회), 김경일(43회), 이상림(26회), 이병구(39회), 최유철(45회) 동문
진행·정리 : 이필재(29회, 편집인)/· 일 시 : 2017. 5. 29. 저녁 7시 /· 장 소 : 역삼동 진수사
이상림 동문은 “남의 돈으로 작품을 만들면서 작가로서의 나의 욕심이 앞서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는 한편 건축과
사회의 관계라는 화두도 내려놓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법을 지키는 것, 법 테두리 안에서 일하는 거야
기본이죠. 건축 설계를 하다 보면 건축주가 법을 우회해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는 요구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 우리 선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얘기해요. 알고도 위법한
행위를 할 순 없죠.”
+ 건축가로 사시면서 뭐가 가장 좋으셨습니까?
“나름대로 성공한 분들을 만나 보면 다수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건축 일을 해 보고 싶다고 합니다. 그럴 때 ‘내가 좋은 일,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하고 있구나’ 하고 새삼 확인을 하죠. 더욱이 그 일을 남의 돈으로
이 나이까지 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좋은 거죠.”
+ 한 사람의 건축가로 언제 보람을 느끼시나요?
“후배들이 저 때문에 이 길을 택했다고 할 때 나름의 책임감과 더불어 뿌듯한 보람을 느끼죠. 물론 그러다 포기 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의
아들도 건축을 합니다.”
이번 디너 타임 패널 중 막내로 과거 이상림 동문 밑에서
일한 최유철 동문은 이 동문에 대해 “한국 건축설계사의 산 증인으로 국내 유수의 건설사들에 앞서 해외 시장을
개척, 앙골라·알제리·카자흐스탄에서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공간’ 잡지의 대표를 맡아 세계의 건축 석학 및 유명 건축가들과 교류했다”고 말했다.
+ 우리나라 건축가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건축가를 대접하는 사회가 문화적으로 성숙한 사회입니다. 건축가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보면 그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를 가늠해 볼 수 있죠. 공간그룹을 설립한 고 김수근 선생은 학창 시절 저에게 건축가의 길을 알려 준 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저명한 건축가였던 이분도 국가적인 행사 때 단상에 못 올라갔어요.”
건축가가 대접받아야 성숙한
사회
+ 세계적인 건축가가 아직은 없기 때문 아닌가요?
“선진국은 국가가 전략적으로 건축가를 키웁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당시 일본 정부는 스페인에 돈을 줘 건축을 하게 했는데 이때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아라타
이소자키를 설계자로 추천합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는데 문화를 이식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이
건축가를 보내는 거예요. 그럼 건설 기술 등 산업까지 동반 진출하게 되죠. 아쉽게도
한국은 차관을 주면서도 이런 쪽은 약해요.”
+ 건축가로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은 뭡니까?
“상법상 법인은 이익을 창출하는 게 목적입니다. 그런데
설계사무소는 이익을 창출하는 동시에 좋은 작품을 남기고 싶어 하죠. 100원에
계약을 하면 20원을 남겨야 하는데 120원어치의 일을 하는
식이에요. 이런 일이 거듭되면 누적적자로 결국 회사가 망할 수밖에 없어요. 세계적으로도 빚을 남기고 죽은 유명 건축가가 꽤 있습니다.
건축이라는 세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라고도 할 수 있죠.” 그는 이 밖에도 우리나라는 설계비가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20년
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인데 그 동안 일의 양은 2.5배로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그는 스스로 자신과 설계사무소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설계사무소를 회사라기보다 디자인 오피스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문예지 공간을 만들고 학생 건축상을 줬으며 판화전을 통해 작가 양성에 힘쓴 ‘공간’ 태생이라는 사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은 뭔가요?
“장가 간 거예요. 집사람을 처음 만난 날 언젠가
이 여자에게 프로포즈를 하리라 하고 마음먹었죠.”
+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주시고 싶나요?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알고 싶은 것도 여전히 많아요.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고, 후배들에게도 공부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물론
좋아하는 것도 즐겨야죠. 기왕이면 즐거운 인생을 살아야죠.”
+ 건축계 후배들에게 직업적으로는 어떤 조언을 해 주시고 싶나요?
“건축사는 여유 있는 직업은 아니지만 돈 문제에 초연했으면 합니다. 돈 욕심을 절제할 수 있다면 건축은 인생에서 가장 재미난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동문은 서울중학교 출신 마지막 세대다. 무시험으로 서울고에 진학했다. 그는 고교 시절 체육 시간이면 갖은 핑계를 대 밖에 나가 놀았다고 했다. 수학여행 땐 여수로 혼자 여행을 갔다. 한 달 용돈을 타는 날이
마침 수학여행 날이었다고 한다. 수학여행비에
등록금도 내는 날이라 주머니가 두둑했다고 했다.
“나중에 친구들 수학여행 사진을 보고 나도 갔으면 좋았겠다 싶었지만 후회하지 않기로 했어요. 나는 더 재미있게 놀았거든요.”
+ 자녀들에게도 그런 자유를 누리도록 허용하셨나요?
“아들·딸 각각 하나인데 자기들을
아빠가 방치했다고 그럽니다. 지켜보기는 했지만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 좌우명이 무엇입니까?
“어떤 결정을 내리든 후회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려면
설령 결과가 잘못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결정을 해야 되죠. 굴곡은
있을지언정 장기적으로 그 길이 맞는 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마음을 비우고 결과에 대해 집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 4차 산업혁명이 건축 분야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건축 설계는 필요로 하는 인력을 조달하기 힘들 만큼 일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설계는 기계가 하기 어려운 창의적인 일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더 콘텐츠를 축적해야 합니다. 작가는 극한의 세계까지 자신을
밀어붙여야 합니다.”
+ 한국엔 건축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건축상
(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받은 건축가가 아직 없습니다. 이렇듯
한국의 건축가가 인정받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국부와 관계가 있습니다. 단적으로 중국은 엄청난
부국이죠. 국민성과도 관계가 있는 거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이 잘되는 꼴을 잘 못 봐요. 상대적으로 한국사람이 그 정도가 더 심하다는 거예요. 이래저래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