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달비장수
전 병 순
지지리도 가난한 마을이었다. 추암산 기슭으로 양지 바른 골짜기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모두 해서 초옥만 열두 가호, 두세 집을 제하고는 한결같이 지난가을에도 이엉을 새로 엮지 못한 듯 늙은 느타리버섯처럼 축 처지고 주름 잡힌 지붕의 처마 끝으로 썩은 샛물이 흘러 괴어 마당들은 노상 청태 낀 듯 한 겹 입혀지고 있었다.
거북이 등처럼 금이 간 흙벽에 이 빠진 평상마루하며, 죽석이면 최상급인 안방들엔 부황기 아니면, 회충 지닌 얼굴들처럼 누렇게 뜬 늙은이나 아낙네 어린이들만이 간혹 날고구마나 배추 뿌리를 깎아먹으며 웅숭그리고들 있었다.
9·28 수복 때, 입산 도주하는 인민군 유격대들이 마을의 장정들을 모조리 끌고 가버려서 유난히 홀어미가 많다는 이 추안부락이다.
할 일도 없고 먹을 것도 적은 한겨울의 오후가 게으르고 나른한 오수에 묻힌 이 부락 위를 흘러가고 있었다.
한나절을 마을만 나가 있던 월평댁이 돌아오더니 인적기 없는 듯한 며느리 방의 문짝을 향해 언제나처럼 또 그렇게만 물었다.
“아가 낮밥 어쨌냐?”
“이따가 아주 저녁으로 일찌감치 지어 먹지라우. 어머니는 어쩌겠는가요?”
방문부터 열고 내다보며 하는 며느리의 대답도 항용 그랬다.
“난 순금이네 집에서 김칫국밥 끓임 것 두어 술 얻어먹 었다만…… 허긴 해도 짧고 헝께 그럼 조금 이따 일찌감치 저녁이나 시작할래?”
방으로 올라선 월평댁은
“거 순금이 어매 말이다. 달비(다리)* 장사가 수지맞는갑서야. 이번에도 별의별 것 다아 사왔더라.”
은밀한 이야기나 되는 듯 며느리의 얼굴빛을 살피며 말하고 반짇고리를 윗목으로 밀어붙이며 앉는다.
“무엇무엇 사왔읍디여?”
또 시작이구나 생각하면서도 그런 내색은 없이 며느리는 시어머니께 대접으로 묻는다.
“이번에는 노랑냄비를 또 층층으로 사왔어야. 찬합도 지금은 아루미(알루마이트)로들 나오더라잉? 송학에 목단이 그려진 짝으로 네 개가 포개져서 냄비하고 나란히 선반 위에 포갬포갬 얹혀진 것이 참 보기 좋더라.”
“그것만 사왔읍디여?”
“또 뿔공기 두 죽하고, 은은 아닌디 은같이 생긴 주전자에다 그리고 말이다, 시어머니 털속치마를 사왔어야.”
털속치마 이야기를 할 때 월평 댁은 어쩐지 더 소리를 낮춰, 흉이라도 보는 듯 입을 삐쭉인 것이다.
“그 머리카락 장사가 괜찮은 것이요잉?”
“글쎄마다. 괜찮은갑서야. 한 파수씩 다녀올 때마다 방 안이 달라져가야. 올가을에는 논도 둬 마지기 살까 한다더라. 순금이네뿐 아니라 옥섭이 어매랑 명옥이 성님이랑 모두 그만큼씩은 벌어가지고 왔는갑더라.”
하고 월평 댁은 잠깐 사이를 두었다. 이어 한결 더 정답고 조심스레
“아가아이. 너도 이번에는 한번 따라가보고 오란 말이다. 나락(벼) 한 섬 값 고개 너머 주막집에서라도 장리로 얻어다줄게 말이다” 했다.
“어머니 저는 가기 싫단 말이요.”
몇 번 말해야 알아줄까 싶은 며느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어쩐다냐. 한 번만 따라가봐서 못하겠으면 말려무나. 아이야 생각해봐라. 너하고 나하고 단둘이서 할 일도 없고 헌데, 허구헌 날을 요렇게 맞보고만 있으면 뭐 헐 것이냐 한 푼이라도 벌 수만 있으면 벌어써야제. 내가 너같이 젊고 몸만 성허면 당장에라도 따라나서고 싶더라야.”
“강원도가 여기서 얼맨디라우. 길도 모르고 말도 다르단디 어딜 가서 누구더러 머리카락 짤라 팔으라고 할 것이요.”
똑같은 말 하긴, 이제 싫증도 나는구나 하면서도 며느리는 한결같이 다소곳 대답한다.
“아따 그렁께 너 혼자 가라간디.”
“어머니, 저는 이대루 살아도 괜찮해라우. 지가 제대해올 때까지만 참으면 될 것인디요 뭐. 점심 같은 건 안 먹어도 해 짧응께 괜찮고, 냄비나 찬합이나 뿔공기 같은 것은 차차 장만하지라우 뭐. 어머니 털속치마는……”
“아니다 아니여, 내가 무슨 털속치마 생각나서 한 말이 아니라, 니가 이렇게 지지리도 가난한 집으로 싱집와서 고생하는 꼴이 딱해서 하는 말이제. 애기 없고, 젊을 때 그런 살림이라도 장만해두면 안 좋으냐.”
며느리는 도무지 내키지 않았지만, 몇 달을 두고 계속되는 시어머니의 은근한 성화에 이제는 할 일 없고 먹을 것도 없으면서 맞보고만 앉아서라든가, 애기 없고 젊을 때 어쩌구 하는 말을 되새겨보는 동안 어쩐지 시어머니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하여 그만 함께 나서보기로 결심 했던 것이다.
“그래야제 그럼. 지금 세상은 옛날하고는 다른께 말이다.”
월평댁은 당장 며느리를 데리고 순금이네 집으로 갔다.
“몬저 내가 말 안하던가. 우리 며느리도 한사코 가보고 싶당께 좀 데리고 가보소. 영리하고 낫낫헝께 잘할 것이네.”
“워따 월평 아짐 (아주머니)도. 시집온 지 일 년도 안된 외아들 며느리를 어디로 내돌릴라고 그러시요.”
“내돌린다고 마소. 저도 지 살림 생각해서 젊고 홀몸일 때 어쩌든지 벌어가지고 이것저것 세간 그릇들도 장만하고 돈도 좀 만져보고 싶단디 시엄씨라도 그것조차 말려서야 되겄던가.”
“아짐 달비장수라고 말이 좋제, 아무나 다아 할 수 있는 줄 아시요? 강원도가 어디라고 낯설고 물설고 말조차 다른 타관에 가서 말이요.”
“아따 자네들이 가는 일, 우리 며느리라고 못할 것 뭣인가. 그런 탁 말고 데려만 가봐주소.”
“아짐 달비도 지금은 시세 없어라우. 우리나라 사람들은 머리칼 속에다 돼지 털을 섞어서 판다고 요새는 인도 것을 더 알아준답디다. 머리칼 값이 똥값인디라우.”
때마침 어제 쑨 호박죽이 남았거든 얻어먹자고 옥섭이 어머니와 명옥이 올케가 모여들었다.
“배운 것 없고, 밑천도 없는 우리 같은 여자들이 타관에 가 돈 벌어온다는 것이 오죽할랍디여. 죽도 사도 못해서 내 몸 버려가며 그 고생들을 하고 다니제.”
월평댁은 이 욕심쟁이 여편네들 보소, 자기들만 재미 보겠다고 한사코 어렵다고만 하네 싶었지만 내색 없이 받았다.
“자네들도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마소. 젊은 삭신 고생 좀 하면 어쩐당가.”
“아짐도 아무 속 모릉께 그러시요. 오죽하면 우리도 일 년에 한두 번씩은 열을 내고 그렇게 드러누워버리지 않음디여.”
“아따, 고생 좀 했대서 몸 망쳤다고들 생각할 것도 없네. 우리 야아를 한 번만 데리고 가봐주소. 귀찮다 하지 말고. 자네들만 믿네 워이.”
새댁도 그녀들도 그렇게 되어 아무 말도 더 못하고 동행이 된 것이다.
가도 가도 막막한 길은 강원도 산골이었다. 기차라곤 난생처음 타본 새댁이 하룻밤 끼여 잔, 개천 위의 판잣집은 거기가 서울이라 했고, 이튿날 첫새벽에 또 버스를 타서 반나절을 달려와 내린 곳이 바로 강원도라는데 금방 일행을 내려준 버스의 차장이 오우라잇 하고 차가 먼지를 풍기며 떠나버리자 새댁은 그녀들을 뒤따라 신작로를 걸어가다가 새삼 사방을 휘돌아보고 추암산보다 더 험하고 막막한 고장이 세상에 또 있었구나 싶어 놀라운 기분이 되었다.
집이라곤 오다가다 십 리나 오 리 길에 하나씩 있을까 말까 한데
“이러니 머리칼을 어디 가서 살 것이요?” 하자
“저 산 너머 가보소. 전기불이 휘언하고 사람들도 얼매나 많이 산다고. 그렇지만 그 근방은 대개 탄광하고 큰 공장들이 많아서 홀애비들도 많고, 돈들도 흔해서 여자들도 벌써 파마들을 해버리고 긴 머리칼은 없어. 산골 외딴집들이나 찾아다녀야 진짜 옛날의 달비 같은 긴 꼭지가 나오제.”
하는 순금이 어머니의 설명에 이어 옥섭이 어머니가 심란한 듯 말한다.
“벌써 해도 곧 저물어간디 (가는데) 우리 모두 이렇게만 몰려다닐 것이 아니라 일찌감치 각기 잠잘 주인집이나 정해 들고 내일 아침에 다시 나와 만나서 다녀보도록 하면 어떤가. 저녁이 다 되었지 않은 가베.”
“해는 아직 저기 있지만 새댁은 초행길이고 헝께 그럼 새댁 먼저 재워줄 집이나 구해줄까.”
“성님들이랑 모두 같이들 가시지 않을라간디라우.”
“아따 이 사람아, 어디에 우리 넷을 한꺼번에 재워줄 집이 있다던가. 새댁도 속없는 소리 마소. 따로따로라도 좋응께 우선 앵기는 대로 떨어져 자고 내일 아침에 한 이십 원쯤 내놓고 밥이나 한 술 얻어먹은 다음 모두 이 다릿목으로 나와 만나세. 새댁은 오늘 밤에 어찔 것인가. 누 집으로 대줄까? 어이 옥섭이 어매.”
“거기 곰배팔이 할매네 집으로 대주면 어쩌겄는가.”
“참 거기가 좋겠네. 그런디 방이 둘이라든가 그 집도?”
“골방이 하나 있었제. 뒤쪽으로 문이 따로 난 골방이 있어. 처음에 강원도 와서 나도 그 집에 들지 않았던가베. 자네가 대줘서 말이여.”
“그랬던가?”
그랬던가라니 , 오로지 자네 덕이네 모두.”
“고맙다고 하소.”
“워이 고맙네. 고맙고말고. 누가 안 고맙다던가. 안 그러면 어디 가서 우리가 오천 원이나 만 원 뭉치 돈을 만져나 볼 것인가.”
다릿목 주막집에서 싸가지고 온 국수 다발을 삶아달래서 나눠 먹고 일행은 먼저 강 건너 곰배팔이 할머니네 집으로 새댁을 데려다주고 떠나버렸다.
“새댁은 올해 몇 살이나 되오?”
“열아홉 살이라우.”
“저런, 아직 어린앤데. 서방님을 어떡허구?”
“작년 여름, 군대에 들어갔응께 내명년이면 제대해 올 것이요.”
“쯧쯧, 그동안을 못 살아서 이 고생길을 나섰구려.”
“고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디 머리칼을 글쎄 어디 가서 살 것인지 막연하구만이라우. 처음길이 되어놔서.”
“처음길이라…… 막연하고 참 두렵기도 하겠지. 허지만 기왕에 나선 길이니까 만사 잊어버리고 오늘 밤만이라도 편히 자도록 해봐요. 나는 이 방에서 언제나 혼자 자는 버릇이 들어 누구하고 같이는 못자는 성미니까.”
“고맙습니다. 그런디 할머니는 왜 앉무도 없으신가요.”
“있지. 아들딸 모두 있었지만 지금은 다 재 짝들하고 따로 나가 사니까. 영 감은 스물아홉에 죽어버렸고.”
골방에 요때기와 베개를 넣어줘서 새댁은 바깥쪽으로 난 문의 문고리가 잘 잠가졌는가 확인한 다음, 맨방바닥에 눠, 그것을 덮고 웅숭그린 채 이내 곤한 잠에 묻혀버렸던 것이다.
얼마나 잤을까. 찬바람이 들면서 선뜩한 느낌 이 스쳐 새댁은 문득 잠이 깨어 눈을 떴다.
“앗.”
바깥쪽으로 난 문이 활짝 열려 있고, 그 문턱 위로 새까만 그림자가 장승처럼 우뚝 버티고 서 있지 않은가.
새댁은 엉겁결에 도둑이야ㅡ 하고 한번 잠겨드는 목소리를 지른 다음 요때기를 뒤집어써버렸다. 그러자 문턱 위의 그림자는 문짝을 가만히 눌러 닫아주고 사라진 듯 그만 잠잠해져버린 것이다.
위아래 턱이 맞히도록 오들오들 떨기만 하던 새댁은 얼마큼 후, 정신을 가다듬어 빠끔히 요때기를 들춰, 방문이 닫겨진 것을 확인하자 그만 큰방 사잇문을 후닥닥 열고 뛰어들어갔다.
노파의 등 뒤로 새우처럼 오그리고 딱 붙어 숨 가쁘게 할머니 할머니 도둑 도둑이 들어왔어라우 하자 노파는 잠이 덜 깬 소리로 뭐라구? 도둑이 와? 우리 집에 홈쳐 갈 게 뭐가 있다구? 하며 일어나 호롱불을 켰다.
“잘못 본 것 아냐 새댁이? 허깨비나 본 거지 도둑은 무슨 도둑?”
“아니어라우 할머니. 내 눈으로 똑똑히 봤넌디라우.”
자세한 상황을 들은 노파는 또 물었다.
“언제 그랬단 말야?”
“금방 아까 말이요.”
“시커면 그림자가? 분명히 사람이었어?”
“예. 얼굴도 시커먼 것으로 가렸던 것 같어라우.”
“응? 얼굴을? 시커먼 걸루다 가려? 그럼, 그럼, 식칼은 들지 않았어?”
“모르지라우. 들었는지도.”
“아이구 저런! 그럼 큰일 났는데!”
노파는 간이 덜컥 내려앉을 것 같은 투로 누가 엿듣는 사람이라도 있어 그러는 듯 소리를 죽여, 큰일 났다고만 계속 뇌며 벌벌 떠는 시늉으로 도리어 새댁의 팔을 붙들고 다가앉는다.
“왜라우? 왜 그러시요?”
너무 심상치 않도록 놀라는 노파를 보고 새댁이 묻자 또 금방 등 뒤에 엿듣는 사람이라도 있는 듯, 방 안을 한번 둘러본 다음 어깨를 웅크리며 또 한 번
“아이구 큰일 났단 말야.”
한다. 새댁도 따라 어느새 사지가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 강도가 이번에는 우리 집으로 들어왔는가본데, 이 일을 어떻게!”
“그 강도라니라우.”
“한 달쯤 전에 저 산 너머 외딴 과부네 집에 식칼 들고 얼굴 가린 강도가 들어가, 있는 돈하고 식량을 모조리 내놔라 해서 다 내주었는데, 마지막엔 그 과부한테 덤벼들었다는 십오 년간 수절한 몸 그렇게는 망칠 수 없으니 차라리 죽여달라 하고, 끝내 거역하자 그렇다면 이 칼 받아라 하고 가슴팍에 칼을 쿡 찌르니까 피가 튀어 천장에 가 닿았고 까무라치는 엄마 소리에 놀라 아이들이 우니까 아이들마저 차례대로 다아 죽여버린 사건이 있었는데 그 강도를 여태 잡지 못했단 말야. 얼굴을 가리고 왔다면 틀림 없이 그놈인데 이를 어쩐담.”
수군수군 일러주는 노파의 이야기에 더욱 놀라던 새댁은 문득 의문이 나 물었다.
“식구가 다아 죽었으면 과부가 그렇게 해서 죽었는지 당하고 죽었는지 어떻게들 알았을 거라우?”
“아 그건 말야.”
노파는 잠시 막힌 듯하다 얼마큼 후 이었다.
“그건 그 강도가 열흘 후에 또 딴 과부집에 들어가서 말하고 갔기 때문에 소문난 거지.”
“과부집만 노리는 강돈갑소잉?”
“그러니 큰일 나지 않았나. 새댁이 왜 와서 자게 되어 우리 집을 젊은 홀어미가 있는 집으로 안 모양이니 이를 어쩐담. 문고리는 왜 잠그지도 않고 잤었나.”
“분명히 문고리는 잠갔넌디라우.”
“그럼 손 넣어서 따버리고 온 거지. 가만히 문을 눌러 닫아주고 나갔다는 게 아마 틀림없이 새댁의 놀람이 가라앉는 것을 기다렸다가 다시 들어올 양으로 집 근처 어디에 지금도 숨어 있겠는데.”
노파는 더욱 소리를 죽여 새댁의 무릎 앞으로 다가앉더니 얼마큼 후, 겁 낸 표정을 조금 누그러뜨려 새댁을 말똥히 쳐다보았다.
“별수 없지 이렇게 되면. 죽느니보다는 나을 테니 혹시 그놈이 다시 들어오면 달라는 대로 뭐든지 가진 것을 다아 내줘버릴 수밖에.”
“가진 것이라고는 나락 한 섬 값에서 차비로 축난, 돈 몇 푼 있을 뿐인디 뭣을 줄 것이요. 괜히 제가 오늘 밤 자러 들어와서 할머니한테 피해를 끼치는구만이라우. 식량이랑 싹 긁어가버리면 어쩔 거라우 할머니.”
“돈이나 식량만 달라고 하면 백번이라도 다행이지. 다행이잖구. 그런데 그 강도는 으레 과부들한테 수절도 빼앗아갔다니까 새댁한테도 그렇게 나오면 어떡하나. 어떡헐 테야? 에이구. 군인 나간 신랑을 가진 몸이라면서 뭐 하러 와서 쯧쯧, 그래도 죽는 것보다야 낫지. 굶어죽거나 맞아 죽거나 하는 거보다는 말야. 아암 낫고말고. 새댁만 죽는 게 아니라 나까지 죽어야 할 테니까.”
“아이고아이고 할머니, 저는 그러면 어쩔 것이요.
“별수 있나. 죽기 싫으면 아무 소리 말고 내줘야지. 그게 그렇게 목숨보다 더 귀한 건 아닐 테니 말야.”
새 댁은 금방 눈앞이 캄캄해져가고 머리가 아찔해지는 것 같았다.
“오매 오매 할머니. 제 신세는 어찌되란 말이요.”
울먹이며 매달리는 새댁을 노파는 이제 어른답게 타이르고 있었다.
“새댁, 걱정한다고 잘될 일도 아니고 흉운이 끼면 아무리 피할래도 액이 닥쳐오는 법이니 마음 가라앉히고 어서 저 방으로 가, 문고리나 단단히 잠그고 자도록 해봐요. 다행이 그놈이 다시 안 들어오면 좋겠지만 혹 새벽녘에라도 또 문고리를 따고 들어와 오구하면 뭐든지 내줘버리란 말야. 알겠지? 무슨 말인가. 오늘 밤을 무사히 넘겨 새댁 살고 나 살고 할래면 말야. 피한다고 피해질 일이 아니니까.”
무릎을 붙들고 다가앉아 떨어지지 않는 새댁의 손을 잡아떼고 일어선 노파는, 골방 사잇문을 열어놓고 조금 세게
“어서!”
하는 바람에 새댁은 하는 수 없이 골방으로 들어가 창호지가 찢어진 문고리를 다시 걸고 요때기를 둘러써, 새우처럼 오그리고 귓바퀴만 바싹 세우고 있었다.
희뿌옇게 동이 트자 골방 안으로 아침의 밝음은 스며들었다. 흐트러진 머리칼과 옷매무시를 고치고, 죽었다가 살아난 여자처럼 무겁게 몸뚱이를 일으켜, 문고리가 끌러진 채 닫겨 있는 문짝께로 희멀건 눈길을 보낸 새댁은 왈칵 솟구치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문지를 듯 얼굴을 싸 감추다가 그대로 베개 위에 엎드려 허리를 비틀며 울었다.
구렁이가 지나간 듯한 제 몸뚱아리가 새삼 징그러운 것만 같고, 어떻게 무슨 얼굴을 치켜들고, 밖으로 나가 해님 아래서 세 성님들을 보고, 집에 돌아가 시어머니를 보며, 남편을 대할 것인가. 모든 이 세상이 한꺼번에 소리를 내며 무너져버렸으면 싶기도 했다.
울다가 생각하면 새삼스레 원망스러운 건, 늙은 시어머니였다. 가기 싫다고 그렇게도 마다하는 며느리를 기어이 돈 벌어오라고 밀어내더니……욕심꾸러기 시어머니만을 생각하면 며느리 몸 망쳐져서 꼴좋겠다 싸지 싸 싶지만 망쳐진 몸은 제 것이지 시어머니의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을 수도 없고, 어떻든 날이 새었으니 정신 차려서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차분히 생각해볼 일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문득 베개맡에 놓인 돈이 눈에 띄었다.
“?”
강도놈이 빠뜨리고 간 것일까. 그새 그동안에도 어떻게 날쌔게 내 몸을 뒤져 돈을 꺼냈다가 흘리고 간 것일까 하고 얼른 주워 올린 새댁은 한쪽 손으로 제 속옷 속주머니에 옷핀으로 감아둔 돈뭉치를 만져보았다. 이상하다. 돈도 그대로 있는데? 그것을 꺼내어 세어본 새댁은 끝까지 다 세기도 전에 고개를 한 번 꼬고는 세기를 그만두고, 다시 베개맡에 놓인 돈을 침 발라 세어보았다. 백 원짜리는 꼭 스무장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한 채 새댁은
“잘 잤수? 새댁. 간밤에 그놈은 다시 오지 않고 말았지? 천만다행한 일이야. 찬은 없어도 밥이나 좀 뜨고 나가봐야지. 어서 일루 건너와요.”
문도 열지 않고 제 방에 앉은 채 그렇게 부른 노인의 소리를 계기로 새댁은 얼른 그 돈을 속주머니에 함께 넣고 핀으로 잠가버린 것이다.
다리 옆의 주막에는 벌써 세 형님들이 나와서 새댁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꾸 위아래를 훑어들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새댁은 이쪽의 시무룩한 기분 탓이려니 했다.
“가세. 인제 달비를 사러 가야제.”
우두커니 앉아만 있는 새댁에게 순금이 어머니가 말을 걸었다. 새댁은 말없이 부스스 따라 일어났다. 아무 곳에도 인가 하나 보이지 않는 신작로를 네 아낙네들은 나란히 말없이 걸어오고 있었다. 얼마큼 가다 이번에는 옥섭이 어머니가 불쑥 물頸다.
“자네들 어째. 간밤에 달비 좀 팔았는가?” '
“후후, 성님은이라우?”
“나? 나는 으백 원 벌었네.”
“헤에 이 그것 쬐금?”
“자네는 얼마 벌었는가 그럼.”
“나는 단번에 천삼백 원 벌었소.”
셋 중에서는 젊은 명옥이네 올케가 자랑스레 말했다.
‘성님들은 자기네들끼리만 밤에 더 어울려 다니면서 달비를 샀던 모양이제? 그런디 벌써 왜 벌었다고 할까? 많이 남겨먹을 수 있도록 싸게 사들인 모양이 제?’
“자네는 얼마나치 벌었는가?”
“나? 나는 외상으로만 천 원 벌었어.”
‘외상? 무슨 외상을?’
순금이 어머니가 대답하는 말은 더욱 새댁에게는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새댁은 한 푼어치도 달비를 못 샀는가?”
못 샀느냐고 물으니까 이번에는 이해가 간다.
“밤에 무슨 달비를 어디 가서 산다우.”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새댁의 말이 끝나자 세 형님들이 허리를 꺾으며 아하하하 웃어젖힌다. 왜 웃는지도 알 수 없고 함께 웃을 기분도 되지 않은 새댁이 멀쑥한 얼굴로 그러한 그들을 보자, 그 눈은 마치 흘기는 듯 비치었는지 웃음들이 조금은 잠잠해졌다.
그리고 세 아낙들의 화제는 새댁이 전혀 알 수도 없는 범위로 번져나가면서 키들키들 웃고들 한다. 그러나 그것도 새댁은 전부터 어울려 다니는 형님들이 전전부터 이어오던 이야기의 뒤이려니 생각하고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옥섭이 어머니가 명옥이네 올케 한테
“첫째는 병 무서워서도 아무한테나 못 간다네. 깨끗한 사람들끼리만 다닌께 누가 지나가도 상관없고 자기들도 처자를 데려올 사정도 못된당께 그동안 보는 재미로는 우리도 괜찮제 어째. 함부로 여기저기 드낙거리다가 병이나 오르면 자기 여편네한테도 못 가고 병 고치느라고 돈이 얼마나 들 것인가. 오백 원 천 원도 싸제 싸.”
할 때 새댁의 가슴에는 문득 뜻하지 않은 의문이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새댁은 설마 했다. 얼마큼 후 명옥이네 올케가 아무도 거리낌없이 불쑥
“그런디 말이요, 성님. 나 또 지난달부터 경도*가 뜨요 잉.”
하고 그 말 받아 순금이 어머니가
“아이고, 자네 또 돈 들일 일 생겼구만. 그렁께 내가 뭐라던가 약을 사 먹으라고 그렇게 말해도 안 듣더니. 젊은 삭신이라고 함부로 생각했다간 얼마 안 가서 자네도 우리같이 되네잉. 봄가을로 한 해에 두 차례씩 그놈의 것 긁어내다 볼일 못 보는 것 아닌가. 사람 몸 병신 되고 말이여.”
“성님, 그 약 이름이 뭣이라고 했소.”
“아나보라라고 안하던가. 약방에 가면 어디서든지 다 판단마세 쯧쯧.”
“들을 것 같지 않습디다 얘 성님.”
“잘 듣는단 마세.”'
했을 때 새댁은 그만 까무라쳐 뒤로 자빠질 뻔했다.
“갈 테면 자네 혼자 길 물어서 가소그랴.”
새댁이 아무리 폭언까지 하며 졸라도 세 형님들은 막무가내로 자기네들 볼일만 보고 다녔다.
“자네도 뭐 그렇게 분해할 것도 없겄네. 단번에 이천 원 두고 갔다면 그 남자 괜찮은디. 앞으로 단골로 잡아두소.”
“뭣이 어쩌고 어째라우? 성님이 사람이요? 나 참 기가 맥혀 죽겠네.”
“뭐 그래. 자네 입만 덮어두면 누가 안당가. 죽 떠먹은 자리고 한강에 배 지나간 자린디 서방이 돌아와도 걱정할 것 없네.”
옥섭이 어머니하고 처음에는 그 정도로 오고 가던 말이 점점 더 잦아지자 마침내는 욕설까지 따라 나오게 되었다.
“아이고매 저 싸남 좀 보소. 월평댁도 며느리 얌전하다고 늘 자랑이더니 고양이 가죽 뒤집어쓰고 있었구만. 고만두소 고만둬.”
갈× 같은 년들이 달비장수라고 머리칼 사 날라다 팔아서 뿔공기 사고 시엄씨 털속치마 사오는 줄 알았더니 알고 본께 ×장사 하고 다녔구만. 흥! 타관 가서 돈 벌어다 늙은 시부모 모시고 어린 자식들 멕여 살려? 열녀문 효부비를 세워줘야 해? 세상에 참 별별일도 다 있구만. 아나 효부 아나 열녀. 나 참 더러워 죽겠네. 세상 사람들 내 말 좀 들어보시요.
새댁의 입에서는 마치 미친 여자 혼자 씨부렁대듯 욕설과 원망과 어처구니없어해하는 말들이 줄줄이 잇달아 나왔다. 마침내 그중에서는 가장 성미가 괄괄한 데다 유난히 새댁의 간밤 일에 관심이 깊어 말을 걸곤 하던 옥섭이 어머니의 비위를 건드려버린 것이다.
“요것이 주둥아릴 놀리게 가만 놔둥께 겁없이 덤비네 워이. 그렇게 그 노릇이 더러우면 니 서방하고는 어떻게 하냐 이년아. 소문나도 우리는 무서울 것 없단 말이다. 서방 있으면서 온 네년 신세가 큰일이제 우린 어차피 홀엄씽게 걱정 없어야. 아무렇게 살아도 자식새끼 시엄씨 굶어 죽이지만 않으면 저승에 가 만나더라도 서방놈들한테 큰소리한단 말이여. 그 입 벌어지면 네년 신세가 더 걱정이제. 알아서 해라 이년아. 남의 서방 맛봐서 후제*라도 생각나면 어찔래. 새끼나 안 실었는가 걱정해라 이년아.”
“옥섭이 어매 고만두소 고만둬. 저는 서방 있는 몸이라 안 분하겄는가. 시엄씨가 죽일 놈의 망구지.”
“그렁께 우리가 애당초에 뭐라 했간디. 새 댁은 안된다고 안했어.”
마침내 일행은 귀로에 올랐다. 속이 푹푹 썩으면서도 별수 없이 세 성님들을 따라다닌 새댁은 그녀들이 든 그 수상한 주인집의 식구들이 자는 안방에서 끼여 자며 견디곤 했다.
예정대로 보름 만에 추암리로 돌아가기 위해 서울로 나온 일행은 모두 합해야 한 근도 안되는 머리칼을 먼젓번에 자고 간 판잣집 주인이 값을 쳐주는 대로 넘겨줘버리고 청량리 시장엘 가서 선물들을 샀다.
“자네도 하나 사소 새댁. 그 돈 쓰고 남은 것도 있제 왜. 서방님 내의 든지 시어머니 고무신이든지 . 여기가 도방집이라 제일 싸다네.”
역시 옥섭이 어머니가 가장 마음이 깊다.
“안 사라우 나는. 그 더러운 돈으로 뭣을 산다우.”
“사소 사. 그러는 것 아니네.”
제마다 보따리 하나씩을 이고 동네 어귀로 들어선 일행은 먼저 월평댁이나 보고 가자고 새댁네 집으로 함께 갔다.
“월평아짐.”
사립문 안에 들어서며 부르는 순금이 어머니의 소리를 듣고 양손을 벌려 뛰어나온 월평댁은 맨 뒤에 시무룩한 얼굴로 입을 내밀고 들어오는 며느리 먼저 보았다.
“아가 어쨌냐. 고생 했제?”
며느리는 더욱 입이 나오며 말이 없다. 월평댁의 시선이 이어 네 보따리들로 옮겨졌다. 새댁의 눈이 그 시어머니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후휴―”
세 아낙네는 이 빠진 평상마루에 보따리를 내려놓고 말없이 한숨을 쉬었다.
"아이갸. 너만 왜 이렇게 작다냐 보따리가. 돈으로 묶어왔구나? 벌이가 안되 던?”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누르고 누르려던 새댁의 울화가 터져버린 것이다. 대룽거리고 들어온 냄비 보따리를 시어머니의 무릎 앞으로 내동댕일 쳤다.
“옜소. 며느리 팔아 사들인 노랑냄비 천년만년 얹어놓고 쳐다보면서 잘들 사쇼. 나는 인제 이 집을 나가야 할 몸잉께.”
이어 아이고오를 찾으며 할 말 못할 말 입에서 나오는 대로 또 씨부렁이며 미친 사람같이 된 며느리를 보고 월평댁의 눈과 입이 한없이 크게 벌어져갔다. 어느새 세 아낙네는 슬슬 제집으로들 꺼져버리고.
읍내 새 장터에 초하루장이 서는 날 월평댁은 며느리가 고스란히 한 푼도 축내지 않고 도로 내놓은 벼 한 섬 값을 쥐고 장으로 갔다.
보리가 날 때까지 동대 먹자고 아끼던 쌀을 탁 털어 빚어 넣은 술이 내일이면 마치 알맞도록 괴어오르는 것을 보고 나왔다. 아직도 입이 한 치쯤 나와가지고, 도무지 묻는 말에 대답도 잘 안해주는 며느리를 빌다시피 일으켜 세워, 소쿠리에 건져놓은 떡쌀을 순금이 어매랑 옥섭이 어매랑 명옥이 성님이 곧 올 테니까 함께 찧어놓으라고 신신당부하고 나왔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급해 어서어서 장을 봐가지고 들어 가봐야겠다.
돼지다리며 당면이며 파, 고구마, 밀가루, 참기름, 과일 등등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사가야지, 장날만 지나면 내일은 아무데 가서도 살 수 없으니까 정신 차려 사야 한다고 월평댁은 늙어서 물커진* 눈을 자꾸 깜박이며 장바닥을 누비고 다녔다. 앞집 복돌이가 지고 따라다니는 지게 위에는 자꾸 짐이 불어만 가고.
“이것만 가지면 모두 노놔 먹 겄지야?”
영문도 모르는 복돌이에게 월평댁은 밑도 끝도 없는 말을 걸곤 하였다. 추암부락 열두 가호의 남녀노소를 통틀어 불러다 잔치를 벌이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월평댁의 머리에서 짜내진 지혜는 아니었다. 그날 새댁이 앞뒤 가리지 않고 씨부렁 댄 말이 삽시간에 마을 안에 퍼져 머리 싸매고 눠버린 월평댁네 고부를 위문하러 온 동네 어른들의 중지였던 것이다.
“아들 귀에만 안 들어가면 되지 않소. 우리가 모두 입 덮어줄 텡께 그 대신 술이나 한턱 톡톡히 내보시요.”
월평댁은 그날부터 살아 발딱 일어난 것이다.
‘허지만 이제는 동네 사람들보다 며느리가 더 걱정이란 말이여. 암만 해도 저렇게 불고만 있는 꼴이 가아가 휴가 맡아 오면 말해버리지 않을는지 모르겠어. 그런 일을 숨겨놓고 평생 어찌 산다우 하던 소리가 걱정인디.’
월평댁은 그러나 걱정은 나중에 하고 우선 장 볼 것이나 빠뜨리지 말고 다 사가지고 가야 한다고 자꾸 눈을 껌벅거리며 여기저길 들여다보는 것이다.
『현대문학』 148호(1967. 4) ; 『강원도 달비장수』 (창작과비평사 1977)
전 병 순
전병순(田炳淳)은 1929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다. 숙명 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광주사범학교 둥에서 십 여 년간 교편을 잡았다. 1960년 『여원』 신인상에 「뉘누리」가 당선되고, 여순사건을 다룬 장편 『절망 뒤에 오는 것』 이 1961년 『한국일보』 장편공모에 입선하여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강원도 달비장수」 『또 하나의 고독』 『안개부인』 『독신녀』 등이 있다. 2005년 타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