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덕봉서원(8.15) 양성면에 양성향교 밑에 덕봉서원이 있다. 안성향교를 가보았으므로 양성향교 가는 것은 후일로 미루고 덕봉서원을 갔다. 안성시내에서 그리 멀지는 않았는데 가다보니 안내표시가 있고 우측에 홍살문이 보이는 것이다. 홍살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고 좌측에 농가가 있는데 개가 서, 너 마리가 계속 짓는다. 겉모양은 진도개같은데 알 수는 없는데, 낮선 사람이 오니 짓는가 보다. 들어가는 입구는 백일홍, 노란 국화 종류가 만발하였다. 입구에 오른쪽을 보니 양성중학교 옛터라고 커다란 돌에 새겨져 있다. 입구 들어가기 전에 논에 물을 대어 놓았는데 고랑이 있고 거기에 누군가 물고기 큰 놈 몇 마리를 잡아 놓았다. 가까이 가니 숨고 멀리 떨어지니 고기들이 논다. 좌측에 안내판이 있는데 내용을 읽어보니 덕봉서원은 양곡 오두인 선생의 충절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생은 공조판서와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는데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이를 반대하다 국문을 당하고 의주로 유배 도중에 파주에서 돌아가셨다고 하는 것이다. 안내판과 함께 사적비도 있었는데 사적비는 깨끗한 것으로 보아 근래에 세워진 것같았다. 외삼문 3개 문 하나 하나마다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었고 전체적으로 단청이 깨끗한 것으로 보아 근래에 다시 단청을 칠한 것처럼 보였다. 특이하게 보이는 것은 사우 외벽이 기와를 넣고 그 사이를 회벽으로 마감한 것이다. 안내내용에는 현판을 숙종이 하사하였다고 하는데 현판에 선액(宣額)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그게 그 뜻인 지는 모르겠다. 마당에도 아주 오래된 나무가 심어져 있었으며 사우 안에는 관복을 입은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사원은 언덕에 자리잡고 한 눈에도 좋은 명당으로 보였으며 사원에서 양성면의 ?은 평야가 한 눈에 보이는 자리였다. 사원 들어 가는 입구 오른쪽에는 무릇이 무성하게 자라서 지금은 쓸쓸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같았다. 나오는데 여중생 2명이 노트를 들고 거기에 오는 것이다. 사원 구경하러 왔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는 것이다. 아마도 방학숙제를 주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그 곳을 떠났다. 아래 내용은 안성시청 홈페이지에서 퍼온 것입니다.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인 충정공 오두인(吳斗寅) 선생의 덕망을 추모하기 위해 1695(숙종 21)년 창건된 서원으로, 그 해에 사액되었다. 바리봉을 뒤에 두고 앞에는 넓은 농경지를 내다보는 위치에 외삼문, 정의당, 내삼문, 사우가 일직선상에 놓여 있으며 강당인 정의당의 우측에 정문이 있고 정의당 뒷편 좌우에 동·서무가이 있다. 사우(詞宇)는 정면 3칸, 측면 1칸반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1벌의 자대석 기단 위에 원통형의 큰 초석을 놓았는데, 초석의 형상이 특이하여, 높이는 약 1척, 원통의 지름은 약 2척인데 측면이 약간 곡면을 이루고 있다. 기둥은 원형이며 둥머리에 앞면은 이익공(二翼工)을 경구하고 기둥사이는 창방을 걸고 그 위에 화반(化盤)을 올린 평범한 구성을 하고 있다. 반면 뒷면 초익공(初翼工)으로 단순히 처리되고 처마도 홑처마이다. 양 측면에는 풍판을 달았다. 벽체는 정면 되간은 개방되고 그 뒤는 빗살 4분합문을 달았으며 양측면과 뒷면은 중방이하는 기와를 3치간격으로 나란히 얹은 화방벽(火防壁)으로 하고 그 위는 회벽으로 마감하였다. 정의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민도리 팔작지붕 건물이다. 좌우 양끝 뒷편 각 1칸에 온돌방을 들이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를 깔았으며 초석은 장초석으로 하여 마루는 바닥을 높이었다. 숙종이 하사한 현판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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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금수강산 원문보기 글쓴이: 청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