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회달력제조업체로 가장 큰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기독교문화관련 사업에서 선두주자로 나선 진흥문화사의 박경진(朴璟鎭) 장로님이 있습니다. 그는 '나의 믿음은 오직 감사' 라는 간증집 책을 썼습니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시골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한쪽 눈의 장애를 안고 태어난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이소년이 아픈 게 뭔지, 세상사는 설움이 뭔지 누구보다 잘 압니다. "한쪽 눈에 장애를 입고 태어나 부끄러움과 수치심, 열등감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성장했습니다.
열여섯 살까지 호적에도 없는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집에서도 조차 관심과 기대를 두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그의 존재를 알아줬겠습니까?" 그는 평생 머슴으로 살아온 아버지로부터 '주제넘지 마라, 네 분수에 맞게 살아라' 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눈 지그덩이 병신이라고 자신을 놀려대며 조롱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일로 마음 깊이 상처를 안고 있던 어느 날, 그의 눈에 8.25때 공산군을 피해 내려 온 피난민들의 예배드리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무엇인가가 큰 희망으로 다가왔고 그렇게 그들을 따라 예배에 참석하던 것이 예수님을 믿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어머니를 교회로 인도했고 어머니를 통해 집안 모두가 기독교 가정이 되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는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 이라는 말씀이 바로 나를 위한 말씀이라고 믿고 결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믿고 결국 장애를 극복했고 가난과의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태어난 처지를 생각한다면 분수에 넘치는 복을 받았다고 간증하고 "예수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감사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출판과 미술 선교로 기독교 문화 발전에 기여해 온 박 장로는 진흥장학재단을 설립하고 후학 양성에 나서겠다고 각오합니다.
박 장로는 진흥을 ‘크리스천 하우스’라고 부른다. 그리고 진흥의 사훈에 깊이 배어있다. “책임은 내가 지고, 명예는 상사에게, 공은 부하에게” 30년을 오직 하나의 푯대를 향해 달려가며 기독교인들이 모이는 곳, 또한 기독교 문화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박 장로가 꿈꾸는 진흥이다. “한국교회가 짧은 시간 안에 세계를 놀라게 할 만큼 양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초기 기독교 정착 당시에 희생당한 순교자들의 공이 컸기 때문이죠” 이런 그의 말을 통해 엿볼 수 있듯 현재 박 장로는 기독교 순교자들을 기리는 봉사에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바쁜 시간을 지내며 인생의 황혼기를 불사르고 있다.
그리고 박 장로는 국내외 선교사는 물론, 열악한 기독교 문화사역자들에게도 후원하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게 달력 무료로 보내기를 시작으로 조금씩 기업이윤을 사회에 돌려주는 이웃과 나누며 사는 삶을 실천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해외에 입양아 모국초청행사를 매년 실시해 그동안 초정한 해외입양아들만 해도 200여명에 이릅니다. 그리고 중국선교를 하는데 탈북자들을 돕는 일에 나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