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안동교구 설정 40주년 맞아
□ 천주교 안동교구(http://www.acatholic.or.kr, 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한국 103위 순교성인 대축일인 9월 20일(일) 오전 10시 안동체육관에서 교구 설정 40주년 기념 행사를 개최한다. 안동교구는 경북 안동․영주․상주․문경시, 영양․봉화․의성군 등 경북 북부지역을 관할하는 한국 천주교 농촌사목의 중심지다.
□ 이날 행사는 올해 1월 1일부터 교구 전역을 순회했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상을 모시고 안동교구 신자들이 묵주기도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경북 문경 출신 순교자인 하느님의 종 박상근 마티아(1837~1867년) 순교 사극 공연, 안동교구 40년 발자취를 집대성한 영상물 상영이 예정돼 있다. 감사 미사는 현 교구장 권혁주 주교와 초대 교구장 두봉 주교, 교구 사제단이 공동 집전한다. 축하식에서는 교구 정착에 이바지한 두봉 주교와 파리외방전교회의 노고에 감사하는 뜻으로 권혁주 주교가 파리외방전교회 총장 장 바티스트 에차렌(J. B. Etcharren) 신부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와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축사를 할 예정이다.
□ 현재 안동교구 신자 수는 관할지역 총인구 752,428명 중 46,364명(<2008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이다. 본당은 36개, 공소는 72개이며, 주교 2명, 신부 78명 등 80명의 성직자가 사목하고 있다. 1969년 설정 당시 규모는 본당 18개, 성직자 20명(주교 1명, 외국인 신부 17명, 한국인 신부 2명)이었다.
◎ 기쁘고 떳떳하게 살아온 40년
□ 안동교구는 1969년 대구교구에서 분리 설정됐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 경북지역 교세가 늘어나자 당시 대구교구장 서정길 대주교는 경북 북부지방을 전담할 새 교구 설립을 추진했다. 1969년 5월 29일 교황 바오로 6세는 안동교구 설정과 함께 당시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 두봉 레나도(Rene Dupont) 신부를 초대 교구장 주교로 임명했다.
□ 초창기의 안동교구는 농촌 특성상 경제적․문화적으로 척박한 상황이었고, 유교적 뿌리가 깊어 선교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두봉 주교는 사제들에게 가난의 영성을 강조했고 많은 외국 교회에 도움을 청하는 한편 본당 간 유대 강화에 힘썼다. 지역사회의 요구에도 귀를 기울여 1970년 한국 최초의 전문대학인 상지전문학교(현 가톨릭상지대학)를, 1973년에는 가톨릭문화회관(안동시 동부동 소재)과 영주 다미안의원을 설립했다.
□ 안동교구의 농민사목은 교회 울타리를 넘어 한국 농민운동을 성숙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일찍이 농민 권익보호와 농촌 살리기에 앞장섰던 안동교구는 교구청 사목국에 농민사목부를 설치하고 공소를 중심으로 농민 교육 확산에 힘썼고, 1978년 가톨릭 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가 창립됐다. 1979년에는 영양 불량감자종자 피해보상운동과 ‘오원춘 사건’으로 농민회원들이 연행되고 두봉 주교가 자진출국 명령을 받았다가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추방 명령 철회와 연행자 석방으로 일단락된 적도 있었다. 1990년대 들어 전국 가톨릭 농민회 지향이 생명농업으로 전환된 이후에는 도농 직거래 운동과 하느님의 창조질서 보전에 힘쓰고 있다.
□ 1990년 제2대 교구장에 착좌한 박석희 주교(2000년 선종)는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교회를 목표로 재임기간에 19개 사회복지기관을 설립하고 신앙의 뿌리찾기 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한국 최초의 수덕자(세례 받지 않은 상태에서 천주교 교리를 실천한 사람) 농은 홍유한 선생의 흔적 발굴과 묘소 조성, 피정의 집 건립은 교회사적 성과와 더불어 교구민들의 영적 성숙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가난의 영성을 토대로 다져진 교구 전통은 2001년 제3대 교구장 권혁주 주교 착좌와 함께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가난의 영성을 실천하고자, 안동교구는 2003년 복음화특별위원회 구성을 시작으로 발전적 사목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권혁주 주교는 2009년 사목교서를 통해 “지역교회의 핵인 본당이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주민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동네의 샘’이 되도록 노력하자”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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