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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봉 북릉을 내리면서 바라본 용문산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미당 서정주, 「동천(冬天)」
▶ 산행일시 : 2017년 1월 27일(금, 음력으로 섣달그믐), 맑음, 미세먼지
▶ 산행인원 : 2명(악수, 두루)
▶ 산행거리 : 도상 12.2km
▶ 산행시간 : 8시간 50분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용문 가는 버스를 타고, 용문에서 택시 타고 연수리로 감
▶ 올 때 : 용문사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타고 용문에 와서, 전철 탐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28 - 동서울터미널 출발(06시 15분발 버스가 지연 출발하였음)
07 : 28 - 용문터미널
07 : 52 - 연수리 연안교 앞, 산행시작
08 : 15 - 능선 진입
09 : 46 - 형제우물 갈림길
10 : 00 - 백운봉 남릉
10 : 25 - 백운봉(白雲峰, 941.2m)
11 : 03 - ┫자 갈림길 안부, 구름재
11 : 40 - 868.0m봉
12 : 12 ~ 12 : 28 - 901m봉, 점심
12 : 47 - △967.0m봉(함왕봉)
13 : 10 - 장군봉(1,055.5m)
13 : 30 - 1,150.0m봉
14 : 11 - 용문산(龍門山, 가섭봉 迦葉峰, 1,157.0m)
15 : 18 - ┫자 갈림길, 왼쪽이 마당바위 가는 길, 왼쪽으로 감
16 : 14 - 용문사
16 : 42 - 버스정류장, 산행종료
1. 두루 님, 뒤는 용문산
2. 맨 뒤는 백운봉, 용문산 서봉 격인 1,150.0m봉에서
▶ 백운봉(白雲峰, 941.2m)
나도 용문산과 그 주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두루 님은 나보다 한
수 위다. 대뜸 백운봉을 연수리에서 오르고 내친 김에 손맛도 볼 겸 용문봉을 넘어 하산하자
고 한다. 둘이라면 어디를 못 가랴.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다. 동서울터미널은 새벽부터
북새통이다. 06시 15분발 용문 가는 첫차는 터미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06시 28분에 출발
한다.
미명의 새벽, 성에 쓸어 내다보는 차창 밖 한강은 으스름한 물안개가 드리웠다. 고요하다.
양평 들렸다가 용문으로 간다. 도로에 눈이 쌓여 있어 서행한다. 이곳에는 오늘 새벽에야
눈이 왔다고 한다. 용문. 터미널 안은 히터 틀어 훈훈하다. 아예 스패츠 매고 산행복장 다듬
는다. 연수리 가는 버스는 멀었다. 터미널을 나와 50m쯤 떨어진 택시부로 가서 손님 기다리
고 있는 택시 탄다.
연수리 연안교. 택시에 내려 바라보는 백운봉, 그 연릉, 용문산, 용문봉이 장쾌하다. 거기에
는 눈꽃이 만발하였다. 이따금 바람이 부는지 눈보라가 구름처럼 인다. 마음이 급해진다.
어서 가자. 치고 오를 왼쪽 사면을 기웃거리며 수도골 백운암 쪽 도로를 따라간다. 그중 만만
하게 보이는 설사면을 잡목 뚫어 기어오른다. 질기디 질긴 칡덩굴과 한바탕 된통 싱갱이를
벌인다.
고라니일 게다. 눈길을 러셀했다. 그 러셀 따른다. 낙엽송 숲 사면 잠깐 올라 능선이다. 대기
가 차지만 충분이 예열하였다. 겉옷 벗고 홀가분한 차림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용문산 연봉
에 이는 눈보라를 바라보며 스스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오르막에 고라니는 옆 골짜기로 내려
가고, 아무도 가지 않은 적막한 눈길을 간다.
눈은 발목을 덮는다. 숫눈이라 오르막은 되게 미끄럽다. 가도 가도 외길이다. 529m봉 넘고
설벽을 오른다. 붙잡을 만한 잡목과 참나무는 그 사이가 너무 뜸하다. 암벽 볼더링 한다.
한 걸음 오르려다 두 걸음을 물러나기도 한다. 땀난다. 이때는 칼바람이 얼굴 들어 일부러 맞
는 미풍이었다. 설벽의 연속이다. 트래버스 할 때는 오금이 저린다.
커다란 바위가 나오고 길이 막혔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양쪽 사면이 다 가파르다. 혹시 형
제우물 가는 길을 지나쳤을까? 잡목에 기대어 두루 님이 오기를 기다린다. 두루 님이 머뭇거
리지 않고 안내한다. 오른쪽 사면을 돌아간다. 수직절벽에 어렴풋한 테라스로 난 길이다. 짧
은 슬랩인데 손잡을 곳과 발 디딜 곳이 마땅하지 않다. 눈 쓸어 한 발 한 발 디딜 곳을 마련하
여 오른다.
어렵사리 바위를 돌아 넘고 형제우물 가는 길과 만난다. 오른쪽 사면을 약간 돌면 형제우물
이다. 우리는 백운봉을 오르기 위해 왼쪽 사면으로 간다. 가파른 산굽이 몇 번 살금살금 돌고
백운봉 오르는 주등로다 눈꽃이 만발하였다. 오르막길. 데크계단과 철계단이 번갈아 나온다.
산상화원 원로를 걷는다. 원경은 미세먼지로 뿌옇게 가렸지만 눈앞의 설경은 눈부시다.
뒤에 두고 가는 눈꽃이 아쉽고, 저 모퉁이 돌면 어떤 경치가 펼쳐질까 조급히 궁금하다. 계
단. 오르는 한 계단 한 계단이 경점이다. 걸음걸음 뒤돌아보고 올려다보고 둘러본다. 그리고
백운봉. 또 다른 설경의 세계가 펼쳐진다. 바람 한 점 없이 따스하여 오래 머문다. 다산 정약
용 선생의 「용문산 백운봉에 오르다(登龍門白雲峯)」의 감흥을 느껴본다.
언뜻 봉우리 정상을 오르고 나니 翩然到上頭
기분은 상쾌하다만 숨이 아직 거칠구나 意叶氣尙粗
신기하기는 용문에 오른 것 같고 神奇若登龍
두렵기는 범을 탄 것 같아라 懍栗如騎虎
3. 아침에 산행 시작할 때 바라본 용문산, 눈보라가 일고 있다
4. 용문산 정상 주변
5. 용문산
6. 백운봉 옆구리
7. 형제우물 오가는 설사면 길, 두루 님
8. 눈꽃
9. 눈꽃, 백운봉 오르는 길
10. 백운봉 오르는 길에서. 추읍산이 환영처럼 흐릿하게 보인다.
11. 백운봉 오르는 길에서
12. 백운봉 오르는 길에서, 오른쪽은 693.1m봉
13. 693.1m봉
14. 백운봉 오르는 길
15. 백운봉 오르는 길에서
16. 멀리는 양평벌의 마스코트인 추읍산
17. 백운봉 정상
▶ 용문산(龍門山, 가섭봉 迦葉峰, 1,157.0m)
백운봉 북릉. 아무도 가지 않았다. 눈 쌓인 철계단을 내린다. 예전의 일이다. 이곳에 철계단
이 설치되지 않았을 때는 사뭇 짜릿하고 재미났던 암릉이었다. 오늘은 발걸음이 심심하다.
눈꽃 터널을 내린다. 나뭇가지 건들면 꽃보라가 우수수 날린다. 오른쪽으로 형제우물, 연수
리 가는 갈림길을 지나고 바닥 친 안부는 구름재다. ┫자 갈림길. 왼쪽은 사나사로 간다.
눈길이 조용하다.
암릉이 나온다. 왼쪽 암사면을 달달 긴다. 슬랩이 살짝 얼었다. 고지가 바로 저기지만 오르기
가 어렵다. 더 못 가고 뒤로 돌아간다. 눈이 없을 때는 아무렇지 않은 길이었는데 오늘은 험
로로 변했다. 오른쪽 설사면이 오르기 수월하다. 긴 한 피치 오르면 868.0m봉이다. 백운봉의
뒷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전망대다. 백운봉은 눈꽃으로 둘러싸였다. 반공을 차지한 거대
한 눈꽃송이다.
봉봉을 넘기가 쉽지 않다. 여기저기 더듬어보고 오르곤 한다. 근 한 달 동안 산에 가지 않았
더니 확실히 티가 난다. 오르막에서는 양쪽 허벅지에 경련이 일고 뻐근하다. 파주 탄현공장
에서 그간 하루 종일 선 채로 일하여 어느 정도 다리에 힘이 붙었으려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
니다. 마음은 눈길을 막 줄달음하고 싶지만 다리가 가위에 눌린 듯 움직여주지 않는다.
함왕산성(咸王山城) 허물어진 성곽을 지나고 901m봉이다. 양광 쬐며 휴식할 겸사하여 점심
밥 먹는다. 두루 님은 아까 먹은 약과 한 조각(나도 먹었다)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나는 뜨거
운 보리국을 보온밥통에 담아왔다. 국에 밥을 말아 훌훌 넘긴다. 탁주 한 병을 나 혼자서 비
운다. 쉴 때마다 한 잔씩 마신다. 혼자 마시니 맛이 당최 덜하다.
△967.0m봉. 함왕봉이라고 한다. 전설에는 산성 밖 계곡 아래의 함공혈(咸公穴) 혹은 함왕
굴(咸王窟)이라 부르는 바위굴에서 삼한 시대의 함씨대왕 주악(周顎)이 태어나 성을 쌓고
웅거하였다가 멸망하였고, 그 자손들은 본관을 양근(楊根)으로 하였다 한다. 양근 함씨인 고
려 태조 때의 공신 함규(咸規)가 본향을 이곳으로 한 것과 관계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다시 순백의 화려한 눈꽃 화원이다. 바람이 이곳은 들리지 않았다. 완만한 원로를 진득하니
올라 장군봉이다. 잠시 휴식하며 가쁜 숨 고른다. 장군봉에서 오른쪽 지능선 길 2.1km를 내
리면 상원사다. 고개 숙이고 자세 한껏 낮춰 눈꽃 터널을 지난다. 기침소리에 눈꽃 떨어질라
얼른 입 막는다. 오른쪽 사면 돌아 용문산 가는 길을 지나치고 내쳐 1,150.0m봉 오른다.
키 큰 나무숲 사계청소한 군부대 철조망 가까이 다가간다. 두루 님이 이대로 능선 따라 용문
산 정상을 갈 수 있는지 궁금해 한다. 어느 해 추석날 더산 님과 시도했다가 식겁했다. 철조
망 따라 빽빽한 잡목 숲을 뚫었다. 철조망에 양손 손가락을 끼우고 암벽을 오르내리기도 했
다. 200m쯤 갔을까, 도저히 더는 못 가고 남사면을 치고 내려 주등로에 들었다.
조망이 아주 좋다. 납작 엎드린 대부산, 소구니산, 유명산이며, 그 뒤 중미산, 봉긋한 백운봉,
양평벌의 마스코트인 추읍산, 추읍산은 미세먼지로 가려 흐릿하다. 온 길 뒤돌아 용문산 가
는 주등로에 든다. 뒤따라오던 등산객 2명이 우리가 1,150.0m봉을 올라 조망을 즐기는 사이
에 앞서갔다. 산굽이 하나 돌자 그들이 스테인리스 컵을 젓가락으로 소리 나게 두드리며 허
겁지겁 뒤돌아온다.
어쩐 일이냐고 묻자 이 길이 용문산 가는 길이 맞느냐며, 멧돼지가 다니는 길인 것 같아 뒤돌
아간다고 한다. 방금 송아지만한 멧돼지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안심하시라. 내 앞
장서리다. 그 컵 좀 그만 두드리고 나를 따라 오시라 안내한다. 운 좋게 길 아는 어르신을 만
났다며 고마워한다. 언중 어르신이란 말이 귀에 거슬린다.
18. 상고대 너머 용문산
19. 백운봉 남릉
20. 백운봉 남릉
21. 오른쪽 아래가 지나온 능선
22. 용문산
23. 눈꽃으로 둘러싸인 백운봉
24. 백운봉
25. 백운봉 북사면
26. 백운봉 서릉
27. 왼쪽 멀리는 중원산
28. 용문산
29. 장군봉 가는 길
산행 시작할 때 연안교에서 만년설로 보이던 용문산 눈꽃은 바람 불어 다 졌다. 골짜기는 너
덜이다. 너덜에서는 길이 애매하다. 그런 골짜기를 여러 차례 지난다. 1.5km 돌고 돌아 용문
사에서 오는 주등로와 만나고 데크계단을 한참 올라 용문산 정상이다. 여러 등산객들이 올랐
다. 용문산 주봉이자 정상을 가섭봉(伽葉峰)이라고 한다.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1682, 조선 숙종 때의 문신ㆍ학자)의 「기언(記言)」 ‘미지산
기(彌智山記)’에 의하면 용문산의 옛 이름인 “미지산 정상에 가섭암(伽葉庵)이 있고, 가섭암
북쪽에 미원암(迷源庵)과 소설암(小雪庵)이 있다.”라고 한다. 용문산 정상에 가섭암이 있어
‘가섭봉’이라고 했을 법하다. 미원은 지금의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이다. 소설산은 넓게는 용
문산을 말하고 좁게는 봉미산이라고 한다.
가섭(伽葉, ‘카시아파’의 음역어)은 석가의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인데 석가가 죽은 뒤 제자들
의 집단을 이끌어 가는 영도자 역할을 해냄으로써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불린다고 한다.
(두산백과)
오늘 산행은 아무래도 눈길이라 꽤 힘이 들었다. 용문봉을 가려던 당초 계획을 바꾸어 그만
하산하자고 합의한다. 조망이 좋다면 용문봉 아래 암봉을 올라 마음껏 즐기련만 미세먼지가
자욱하게 끼였다. 하산! 돌길 내리막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얼었다. 아이젠은 아직까지
엎어지거나 넘어지지 않아 끼지 않았다. 가드레일 목책을 붙잡고도 엉덩이로 뭉개며 내리곤
한다.
조망 좋을 암봉에는 금줄 넘고 꼬박 들려 노송에 가린 건너편 용문봉을 들여다본다. 얼추 내
려왔다. ┫자 갈림길이다. 왼쪽은 사면 내려 계곡길이고, 직진은 능선 길이다. 하산은 왼쪽이
잔재미는 덜하지만 조금 더 가깝다. 이미 금이 간 사발인데 깨진들 어떠랴. 왼쪽 사면을 내린
다. 가파르다. 발바닥이 간지럽도록 눈길을 지친다.
계곡은 눈 속 너덜이라서 지나기가 사납다. 눈 속 너덜 틈에 스틱이고 발이 자주 끼인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계류는 동면이라 코고는 소리로 들린다. 산그늘 진 계곡은 고즈넉하
다. 마당바위가 한가하다. 용각바위는 알아보지 못하였다. 상원사 가는 갈림길 지나고 구름
다리 건너 용문사다. 은행나무 우러르고 절집에 들린다.
용문사에서 정류장 가는 길 양쪽에는 시비와 부처님의 거룩한 말씀 새긴 팻말을 놓았다.
눈 쓸어 판독해보지만 무디고 그 옆 장송의 늠름한 자태에 더 끌린다. 하산 타이밍이 절묘하
다. 버스정류장 도착 16시 42분. 용문 가는 버스가 16시 45분에 있다.
30. 장군봉 가는 길
31. 장군봉 가는 길
32. 오른쪽 멀리 유명산
33. 용문산 서릉
34. 백운봉 능선 서쪽 사면
35. 앞은 용문봉, 그 뒤 오른쪽은 중원산, 그 뒤 왼쪽은 도일봉
36. 가운데가 용문봉
37. 앞이 용문봉
38. 왼쪽은 봉미산, 오른쪽은 문례봉(폭산, 천사봉)
39. 용문봉
40. 마당바위
41. 용문사 은행나무
42. 용문사 일주문 근처의 소나무
첫댓글 겨울산
나체인 체
대롱대롱
섬세한 감동 아롱지다!
하늘하늘
애처로우나 숙연하고
가슴에이는 아픔
쓸쓸한 풍파
너
눈꽃이어라!
작가끼리의 산행. 오붓하고 좋습니다.
굿이에요.
용문산 정상 철조망으로 가면 나중에는 겨울이 아니라도 도저히 진행할 수 없는 절벽이 나타납니다...
멋진 제2의 고향 잘 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