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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금같이 나오리라† 원문보기 글쓴이: 켈로
날짜: 2014년 11월 2일
본문: 골로새서 3:18~4:1
설교: 이수영 목사(새문안교회 담임)
제목: 주님 중심의 삶
▲이수영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후5:17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새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또 엡4:21-24에서는 이렇게 썼습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리고 골3:10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누구든지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을 들어봅니다: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3:11) 그래서 우리도 그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새 사람을 일컬어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그 뜻에 순종하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이 세상에 탄생한 새 인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인종, 언어, 문화적 배경, 남녀노소, 신분에 상관없이 새로 창조된 백성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어느 곳에 살고 있더라도 궁극적으로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새 인류이니만큼 새로운 인간관계 속에서 새로운 모습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만들어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그 중심에 계시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사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의 모든 인간관계가 주님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중심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지를 가르치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세 가지 기본적인 인간관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중심으로 사는 원리를 제시합니다. 그 세 가지 기본적인 인간관계란 부부간의 관계, 부모자식간의 관계, 주인과 종의 관계를 말합니다. 이 세 기본적 인간관계의 당사자들에게 주는 사도 바울의 명령은 예수 그리스도 이전의 사회질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남편이고 아버지이며 주인인 사람이 아내와 자녀와 종들에 대하여 전권을 쥐고 있고 그들로부터 복종을 받아야 하던 기존질서를 뒤흔드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내, 자녀, 종들보다는 남편, 부모, 주인들에 대한 명령이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 혁명에 가담하는 백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한 세 가지 기본적 인간관계 중 첫 번째는 부부의 관계입니다. 본문 18절을 봅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은 일반적인 관습과의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다음 말입니다: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사도 바울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주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는 마땅한 일이라고 가르치며, 이 도리가 주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아내에게 명령을 하는 주체가 남편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시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아내들이 남편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기 이전에 주님께 복종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주 안에서 마땅한 일이기 때문에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부부는 남편과 아내 둘만 있는 인간관계가 아니라 그 사이에 주님이 계시고 그리스도께서 중심이시며 주인이시고 명령자이시며 남편과 아내는 함께 주님에게 순종하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남녀가 부부가 될 때는 그런 관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새 인류인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서 진짜 중요한 명령은 남편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입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사도 바울은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되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은 남편 쪽에서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아내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생각에는 전혀 사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남편이 사랑이랍시고 일방적으로 자기의 언행을 받아들이기를 강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편들이 아내의 인격과 자유를 존중하며 아내의 감정과 의지를 정확하게 파악해가면서 사랑을 표현하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남편들이 아내야 괴롭든 말든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며 자기 좋은 대로만 행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신자들에게 편지하면서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6:25)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어떻게 자기 자신을 주셨습니까? 교회 즉 하나님께서 구원에로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남편들이 아내들을 사랑한다면 아내들이 어찌 그런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희생적 사랑 없이 아내의 복종만을 요구하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또 같은 에베소서에서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라."(엡6:28, 33) 했습니다. 남편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은 아내를 자기 자신과 꼭 같이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아내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완전히 아내의 것으로 만들라는 뜻입니다. 그런 남편에게 아내들이 전적으로 복종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 안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의 전적인 동등성과 상호존중의 정신이 강조되고 있음을 바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하는 두 번째 기본적인 인간관계는 부모자식간의 관계입니다. 먼저 본문 20절을 봅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명령 또한 전통적인 가르침과 충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이 그 말 뒤에 덧붙인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기쁘게 한다"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거의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 쓰이는 말입니다. 따라서 "주 안에서 기쁘게 한다"는 것은 주 안에 있는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말은 자녀들이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마땅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부부관계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부모자식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사도 바울의 명령의 강조점은 오히려 부모들에게 주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 21절을 봅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여기서도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부모자식간의 관계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녀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부모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격체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의 창조자이시고 주인이신 이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으로부터 일정 기간 자녀들의 양육을 위탁받았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양육을 위탁하신 이가 하나님이식 때문에 그의 뜻대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권리보다는 책임을 강조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하는 세 번째 기본적인 인간관계는 주종간의 관계입니다. 먼저 종의 신분을 가진 신자들에게 하는 명령입니다. 본문 22-23절을 봅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다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종이나 노예들은 주인에게 순종하기는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하지 않고 마지못해 하며 눈가림으로만 하기 십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종들에게 그리스도인은 그 주인이 신자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성심을 다해 섬기라고 명령합니다.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 기쁨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합니다. 상전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종이라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자유인이 되었으니 이제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생각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내면의 자유와 평화를 얻는 것 하고 육신의 주인에게 신실한 종으로 남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주인과 종 사이의 관계에도 주님이 계셔야 함을 가르친 것입니다.
이 명령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곧 우리의 직업의식과 노동의 윤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일이라는 직업관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느 직장에서 어떤 직책에 있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상사의 상격이 어떠하든 고용주의 종교가 무엇이든 불법적이고 부당한 일이 아닌 한 가리지 않고 충성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근본적으로 우리에ㅔ게 할 일을 주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로 여겨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직업과 직무 속에서도 주님이 그 중심에 계신 것이 주 안에서 새 인류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본문 24-25절입니다: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사도 바울은 여기서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첫째는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한 것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성실하게 일한 대가를 세상의 주인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모든 일은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일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만유를 다스리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감격과 기쁨과 감사 속에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불의 속에는 마지못해 순종하고 눈가림으로만 일하는 불성실함도 포함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시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지 않는 사람, 겉치레로만 일하는 척하는 사람을 다 알고 계십니다.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하는 말의 뜻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행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불의의 보응을 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하는 말은 무슨 일에든 성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귀한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의로우시고 모든 것을 정확하게 다 아시는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보응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주인은 불의하고 불공평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상을 주실 이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위한 사도 바울의 마지막 명령은 상전들을 향한 것입니다. 본문 4:1입니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이 세상의 종들이나 주인들이나 모두 하나님 앞에서는 꼭 같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상전들에게는 준엄한 경고가 되며 종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위로가 되는 말입니다. 종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상전들을 넘어서 모든 사람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상관이나 고용주인 사람들은 그들의 상전이 하늘에 계심을 잊지 말고 자기 책임과 관리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일어나야 하는 변화의 핵심은 남편이고 아버지며 주인이던 사람 중심의 삶에서 주님 중심의 삶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명령과 복종의 관계에서 동등과 상호존중의 관계로 바뀌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 중심이 되고 모두가 하나님 앞에 나란히 서는 관계로 바뀌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관계, 부모자식간의 관계, 주종간의 관계는 사도 바울 당대에는 한 가정을 형성하는 기본관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정은 사회의 기본단위입니다. 가정에서의 올바른 관계는 곧 사회에서의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지고 유지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의 관계질서가 새로워지면 사회의 관계질서도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갖게 된 새로운 관계의 삶은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보편적 타당성을 지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평등과 상호존중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주 안에서 새 인류인 우리 그리스도인의 관계적 삶을 아름답게 실천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