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과 한자어
1989년 3월 개정, 확정된 새로운 한글맞춤법에 따라 ‘우뢰’가 ‘우레’로 바뀌고, ‘―읍니다’가 ‘―습니다’로, ‘안성마춤’이 ‘안성맞춤’으로,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뀐 지 30여 년이 흘렀다. 그런데 시인의 무관심으로 인하여 지금도 틀린 말, 비표준어 등을 버젓이 쓴 시가 곧잘 보인다.
“나를 밀어 올리는 것/ 바닥일까, 천정일까?/ 허공의 손발이 되어 한참을 버둥거려도/ 매달린 곁이 보이지 않는다/ 이 부침은 짓눌리며 출렁거릴 뿐,/ 덜미에 표식을 얹는 너는/ 이웃인가, 나라인가?” _2024년 6월호에서
요즘 대학에서 정년을 한 시인이면 원로? 원로는 아니다. 중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책임이 무거운 지도자급이라는 의미에서 중진(重鎭) 시인이라고 부르자. 중진 시인이 나이가 엄청 많아서 89년 개정된 맞춤법을 모른다는 것은 핑계가 될 수 없다. 한 편의 시에서 두 군데나 틀렸다. ‘천정’과 ‘표식’에 빨간 볼펜을 갖다 댄다. 천장, 표지라고 써야 바르다. 일본식 한자어 ‘천정’을 버리고 ‘천장’만 표준어로 쓰게 된 것은 맞춤법 개정안에 포함된 것이지만, ‘식’ 또는 ‘지’로 읽는 한자 識의 바른 사용법은 한글 맞춤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敗北(패배), 復活(부활), 洞察(통찰), 標識(표지), 自家撞着(자가당착),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 十方世界(시방세계), 六月(유월), 十月(시월)… 이런 한자어를 바르게 읽는 것은 맞춤법이 어렵다는 것과 정말 아무 상관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