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권에 든다는 예보
한영미
비가 쏟아붓고 지나가면 내게도 수위가 생겨난다 젖은 풍경이 먼 곳에서 다가와 한 뼘가량 높아진 생각을 보여준다 잊혀간다는 건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다는 듯
예고도 없이 지인이 문병을 왔다 영향권에 든다는 예보처럼, 시내에 볼일이 있어서...... 말끝이 가랑비로 흐려졌다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캔 커피와 생수병을 쥔 채 나눈 말이 고르지 못한 날씨 얘기가 고작이다 한 시간 남짓이다 몇 시간 걸려와서
스며드는 것들에는 설명이 있지 않다 태도가 본심의 얼룩이라면 불쑥 나타나는 게 마음이다 비가 오는 날은 나이도 마찰지수가 떨어져 시간도 느려진다
근접해 있어도 내게 없는 사람들이 있다 멀리 있어도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시선이 놓지 못하는 것, 일기 불순은 언제나 거기서부터 비롯된다
어느 날은 옷깃만 적시다 가기도 하고, 어느 날은 전신을 흠뻑 적시고도 모자라 나를 흘러넘치기도 한다 비 다녀간 처마 끝, 마지막까지 맺혔다 떨어지는 빗방울 심정이 되어보기도 한다
지하철 입구에서 손을 한번 흔든 지인은, 한 눈금씩 낮아지다 보이지 않는다 비는 그쳤지만 절벅거리는 발소리가 내 안을 오래 거닐고 있다
ㅡ시집 『슈뢰딩거의 이별』 시인동네 2024.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