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면 으레 나오는 단골 뉴스가 있다. 바로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 등의 가축 전염병
이야기이다. 조류인플루엔자는 2003, 2006, 2008, 2010, 2014년과 올해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발생했다. 이제는 거의
토착화되어 매년 나타나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의 원인은 바이러스이다. 사람이 걸리는 독감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바이러스 질병은 종을
달리하는 생물에게는 전염되지 않는다. 하지만 조류인플루엔자는 새뿐만 아니라 소, 돼지, 개와 같은 가축은 물론 사람에게까지 전염이 된다. 또
바이러스 돌연변이에 의한 조류인플루엔자는 독성이 강해 치사율도 높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발생하는 조류인플루엔자는 H5N8형이다. 사람에게도
옮기는 H5N1형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이 병은 어떻게 옮겨질까.
최근에는 철새에 의한 전염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어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할 때마다 엄청난 규모로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철새로 몰아가고 있다.
과연 철새가 조류인플루엔자를 전염시켰을까. 그러나 이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국내에는 저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항시 존재하고 있다. 정부의 검사에서도 수백 건의 저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확인됐다고 한다. 열악한 사육
환경의 '공장식 밀집사육' 때문에 면역력이 약한 닭과 오리가 병에 걸리면서 '저병원성'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쉽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철새가 원인이 아니라 가금류가 원인인 것이다.
올해도 우리나라에는 수백만
마리의 철새가 먼 거리를 날아 찾아왔다.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철새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이 키워온 강인한 철새들은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됐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 철새의 고향에서는 H5N8형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이를 입증한다.
철새에게로 조류인플루엔자의 원인을 돌리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철새 중에서 발견되기도 하지만, 이는 가금류에서 옮겨졌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 국제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과학적 근거 없이 이뤄지는 대량의 예방적 살처분. 마치 이것이 방역의 해답인 것처럼 조류인플루엔자
뉴스에는 살처분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해답이 되지 못한다. 예방적 살처분, 다시 말해 병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근처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대부분의 가금류를 학살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4천만 마리 이상의 닭과 오리들이 살처분됐다고 한다.
TV에 나오는 조류인플루엔자 방제 작업은 끔찍하다. 수만 마리의 닭과 오리들은 포대에 담겨 구덩이에
던져지고 있다. 생지옥이 따로 없다. 그런데 이 장면의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양계장의 모습을 살펴보면, A4용지 크기 밖에 안 되는 좁디좁은 철
사육장에 움직일 틈도 없이 닭을 넣어 놓고 빠른 성장을 위해 계속 인공사료와 항생제를 먹이고 있다. 출하하기 전까지 청소 한 번 안하는 사육장에
갇힌 닭의 온몸에는 배설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맛있게 먹고 있는 닭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없는 닭들이 힘없이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되고, 순식간에 변화해서 대규모로 전염되어 버린 것이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 공장에서 물건처럼 키워지는 생명들. 조류인플루엔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축의 서식
환경을 개선해 면역력을 높일 수 있게 해야 한다. 건강한 사람은 독감에 걸려도 자가면역으로 쉽게 나을 수 있지만, 건강이 안 좋은 사람은 사망할
수도 있다. 가축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키운다면 이렇게 엄청난 재앙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포대에 담겨 매장되는 닭과 오리. 그들은 죽음으로 인간에게 절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목숨을 앗아간 죽음의 바이러스는 조류인플루엔자가
아닌 인간의 욕심 바이러스라고. 그렇다면 그 다음 차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