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부활>은 톨스토이의 3대 대작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중 노년 작품이다. 러시아의 주간지 NiVA에 연재한 것인데, 톨스토이는 당시 러시아 정교회 한 분파인 Dukhobors파의 캐나다 이민 재정착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최초로 돈을 받고 이 소설을 연재했다.
이 소설은 '귀족 청년과 하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통하여 당시 러시아 사회의 치부, 계급사회의 모순, 법률의 허점을 날카롭게 비판하여, 원래 완본은 러시아에서 수많은 삭제가 가해지며 간행되지 못하고, 이 때문에 외국에서 먼저 간행되어 러시아로 밀수되는 형편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의 가차 없는 교회 비판은 기피하는 바가 되어 톨스토이에게 정교회 파문 선고(1910년)를 내리게 되었다.
<부활>은 두 개의 모티브가 동기가 되었다. 하나는 전기 작가 비류코프에서 고백한 자기 체험 고백 내용이다. 톨스토이는 임종 얼마 전에 자신의 전기 작가 비류코프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지금까지 누구한테도 안 한 얘기일세. 이 얘기를 내 전기에 넣어주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두 가지 큰 죄를 지었네. 결혼 전에 아크시니야 등 몇몇 소작인 여자와 관계를 가졌네. 또 하나는 숙모님 댁에서 일하던 가샤라는 하인을 건드린 죄일세. 그녀는 순결한 처녀였는데 내가 유혹했기 때문에 숙모님 댁에서 임신이 탄로나고 쫓겨나서 신세를 망치고 말았네.'
당시 그는 16세 때 카잔 대학에 합격했고 또 페테르부르크 대학 법학사 자격 검정시험을 치러 두 과목에 합격한 후 사교계에 출입하면서 도박과 주색에 빠져 임질에 걸려 고생할 정도로 방탕했다. 그 때 가샤라는 순결한 하인을 건드려 신세를 망쳐놓았던 것이다. 이 체험이 첫 번째 모티브다.
두 번째 모티브는 코니라는 변호사한테서 들은 실화가 바탕이다. 핀란드 어느 별장지기의 딸 로자리아는 대학 갓 졸업한 청년에게 농락당해 임신한 뒤 주인집에서 쫓겨나 매춘부로 전락했다. 페테르부르크 매음굴에 살던 그녀는 술 취한 손님의 돈 100 루블을 훔친 죄로 4개월 금고형을 받는다. 그때 그 재판 배심원 중 하나가 로자리아에게 그 짓을 한 남자였다. 남자는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당시 이 재판의 검사였던 코니를 찾아와 상의한 후, 코니가 만류하는 데도 불구하고 매일 구애해 여자로부터 결국 결혼 승낙을 받아냈다. 그 후 금식기간 끝나면 식을 올리려고 준비하고 있던 터에 신부 될 여자가 발진티푸스로 죽고 말았다.
톨스토이는 변호사 코니한테 이 이야길 듣고 1889년부터 '코니의 이야기'라는 초고를 쓰기 시작하여 1899년 가을에 탈고했다. 이 작품이 <부활>이다. 이런 연유로 로망 롤랑은 이 작품을 톨스토이의 유언서라고 명명했다.
가수 송민도가 '카츄샤의 노래'에서,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떠나가신 첫사랑 도련님과 정든 밤을 못 잊어/ 얼어붙은 마음속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오실 날을 기다리는 가엾어라 카츄샤...'라 노래했는데, <부활> 스토리는 가사 그대로다.
Synopsis(개요)
1958년 서독 Rolf hansen 감독에 의해 <復活. Resurrection>이란 이름으로 상영된 영화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네프르도프는 지방재판소의 배심원으로 어느 날 법정에서 살인 절도 혐의의 한 여인을 만난다. 그 죄수는 10년 전 그가 범했던 카츄샤 마스로바였다. 고아였던 카츄샤는 어머니가 일했던 주인집에서 길러졌고, 그 집 조카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프로도프를 사모한 18세였던 티 없이 맑고 아름다운 처녀였다. 그러나 네프르도프는카츄사를 하루 밤 농락의 대상으로 생각하여 범하고, 카츄샤가 임신하자 몇 푼의 돈을 쥐어주고 내보냈다. 집에서 나온 카츄샤는 사생아를 낳았으나 아이는 곧 죽고 만다.
그녀는 윤락의 구렁텅이에 빠져 창녀로 전락하게 되는데, 26세 때 어떤 부유한 상인이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현장에 있게 되어, 돈을 빼앗기 위해 독살했다는 혐의로 법정에 끌려간다. 카츄샤는 울부짖으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법정 배심관 중 한 사람이 네프로도프였다.
네프로도프는 카츄샤의 감형 운동을 하며 끈질기게 감옥에 드나들면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교도소란 악한 사람들이 수감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도 수감되어 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기 좋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를 만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제도가 사람들을 얽매이게 하고 있다. 범죄자가 죄인이 된 것은 다만 그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환경 때문이다.
배심원들은 죄가 없다는 의견서를 낸다. 그러나 '살해 의도가 없음'을 쓰지 않아, 재판관은 서식의 불비로 해서 그녀를 시베리아로 보내라는 판결을 내린다. 네프르도프는 그녀에 대한 죄책감으로 몸을 떨면서 그녀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거부의 딸 마리아 코르차기나와의 약혼을 파기하고, 은밀히 만나던 유부녀 마리아 바실리에브나와의 관계도 청산한다. 감옥으로 찾아가 카츄샤에게 결혼을 신청하지만, 카츄샤는 증오의 눈길로 그를 바라본다. 형이 확정되어 카츄사가 시베리아 유형 길에 오르자, 네프르도프는 집과 영지를 처분하고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로 따라간다.
1934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영화 <부활>
캬츄사는 시베리아 수형생활 중 잡범들 감방에서 정치범 감방으로 옮겨진다. 거기서 혁명가 시몬슨을 만나고 그로부터 감화를 받아 급기야 네프로도프를 이해하고 용서하기에 이른다. 이때 카투사에게 황제의 특사가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네프르도프는 기쁨에 넘쳐 카투사를 찾아갔으나, 카츄샤는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은 하면서도 특사를 받아들이지 않고, 시몬슨을 따라가 유형 생활을 계속하겠다고 말한다. 네프르도프는 시몬슨을 따라가는 카츄샤를 바라보면서 한없는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집에 돌아와 머리맡에 놓인 성경을 집어 드는데, 거기서 '일곱 번씩 일흔 번씩이라도 용서하라'는 구절을 읽고 큰 감동을 받는다. 그날 밤 성경을 읽던 네프르도프는 하느님의 구원을 확신하고 타인을 위해 제3의 삶을 살 결심을 한다. 자신의 내면 속에는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희열이 자신을 에워쌈을 깨닫는다.
영화는 여기서 끝난다. 기독교인이라면 꼭 한번 보아야 할 영화다.
*1958년 발표된 이 작품은 독일의 롤프 한센 감독이 연출했고, 독일 국민배우인 홀스트 부크홀츠가 25살의 청년기에 출연한 작품이다. 부크훌쯔는 이 영화 출연을 계기로 카츄샤 역 미리암 브루와 사랑에 빠져 1958년 결혼을 했고, 평생 해로했다.
*<부활>은 원작의 유명세 때문에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지에서 수없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1917년, 1918년, 1927년, 1931년, 1934년, 1937년, 1943년, 1944년, 1958년 영화가 나왔고. 마지막으로 러시아에서 1960년에 제작되었다.
(지구문학 2020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