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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는 분 혹시 있으신가요?
10월 13일 내 생일입니다. 이런 거 말고 10월 13일은 예전에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실패의 날이에요. 실패의 날 핀란드에 알토 대학이라는 대학이 있고 이 대학 안에 기업가 정신 커뮤니티인 알토스라는 단체가 있어요. 이 알토스라는 단체가 1910년에 만들었습니다. 이 실패의 날 그러니까 사람이 만든 날이 아니라 그러니까 커뮤니티가 만든 날인 거예요.
왜 만들었냐 하면 실패 경험을 서로 공유하고 서로 축하하기 위해서 실제로 이렇게 실패를 하면 막 축하를 하고 교제를 하고 식사를 나누고 또 이렇게 합니다. 우리는 실패를 잘 인정하지 않잖아요. 또 실패를 아주 좀 마치 무능력해서 한 것처럼 이렇게 판단하기도 하고 어쨌든 사회가 실패를 용인하는 그런 공동체가 되고 또 그런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실패의 날을 지정했다고 합니다.
제가 왜 이 실패의 날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러분의 달력에는 없는 날일 거예요. 아내가 저희 집 카렌다에 이렇게 적어놨어요. 저는 10월달이 되면 그 카렌다를 이렇게 보면서 나도 실패해도 되는구나 이런 위로를 받으면서 이렇게 밥을 식사를 합니다.
또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어요. 실제로 우리나라에 실패 연구소가 있어요. 대전에 있는 카이스트라는 대학 안에 실패 연구소가 있고 지금도 매달 잡지가 발행이 됩니다. 우리 옆 사람과 함께 인사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좀 엉뚱한 인사지만 실패를 축하드립니다. 시작
아니 축하해도 된다고요. 이렇게 너무 썰렁하게 하지 마시고 실패를 축하드립니다. 시작
실패를 축하드립니다.
저는 저 자신도 잘 살았으면 좋겠지만 내 주변 사람들도 좀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게 제 항상 이렇게 마음이에요. 그래서 항상 어떻게 하면 나도 잘 살고 내 주변의 사람들도 잘 살게 할까 조금은 진지한 말씀일 수도 있고 어쩌면 여러분과 제가 꼭 들어야 되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님 앞에서 잘 사는가 이 질문을 하고 답을 하면서 말씀을 준비해 봤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냥 열심히 산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고 가만히 있어도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에요. 우리의 자세와 태도에 따라서 해결될 수도 있고 또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걸까요?
그러니까 무엇으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걸까요?
한 분 함께 고민해 보면서 좀 답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성경은 명확하게 말씀하시기를 여러분과 저에 대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어요.
그게 오늘 본문 12절입니다. 12절을 한번 큰 목소리로 같이 읽습니다. 시작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믿게 되면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녀가 되고 또 자녀의 권세도 함께 받게 된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자녀가 되었고 또 자녀의 권세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과 저는 세상에 살 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하고 자녀로 살 때 하나님의 권세를 누리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5절 말씀도 이 말씀을 뒷받침하는데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그러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는 영이 성령이에요. 그래서 성령을 양자의 영이라고도 합니다. 이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양자의 권세도 다 누리고 가질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큰 의미예요. 단순히 우리가 성령을 받고 거듭났다 또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더 나아가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성령이 친히 증거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할 뿐만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의 양자의 권세, 아들의 권세를 누리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신 거예요. 그래서 신앙생활의 성령을 받았느냐 성령으로 거듭났느냐 나지 않았느냐는 큰 의미예요.
완전히 본질을 좌우하기 때문인 거죠. 마치 밥하기 전에 쌀과 밥을 한 이후에 쌀의 차이처럼 내가 성령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이렇게 본질적인 차이를 가르게 됩니다. 우리가 15절 말씀을 새 번역으로 보면 좀 더 충분한 이해가 돼요. 우리 같이 한번 읽어봅니다. 시작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종살이하는 영, 하나님의 종으로 살게 하는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는 영을 우리가 받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된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아빠라고 부르면 아주 이상한 일이잖아요. 왜냐하면 아무 조건도 체결된 게 없어요. 양자로 입양된 게 아니에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과 저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양자의 영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로 기록했어요. 호적에 등록이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성령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본질적으로 중요하고 성령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름에 있어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심지어 이 아빠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구하고 또 아버지가 가진 모든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자격까지도 여러분과 저에게 부여된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삶을 보면 하나님을 좀 두려움으로 섬기는 분들이 많아요. 아마 오늘도 교회 오기 전에 오늘 교회를 안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안 가면 하나님이 나를 벌하실까 봐 두려운 마음에 오신 분도 없잖아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해요.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심각하게 두려워하는 것도 문제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잖아요. 아버지를 마냥 두려움으로 대하는 것이 자녀의 바른 태도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저희 때는 성 선생님한테 정말 이렇게 매를 많이 맞았어요. 저희는 영어 수업이 있는 날 몇십 개의 영어 단어를 외워서 이제 가야 했어요. 왜냐하면 매시간마다 시험을 단어 시험을 쳤기 때문에 그래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그러니까 일단 매를 맞으니까 아프니까 열심히 하고 또 단어를 모른다는 이유로 선택에 맞는 것도 이게 자존심이 상한 일이라서 열심히 하고 또 이 자체가 너무 싫은 거예요.
앞에 야 너 몇 개 틀렸어 하면 10개 10개 맞고 그럼 나는 몇 개 틀리면 또 몇 개 맞아야 돼 이걸 기다리고 대기하는 것 자체도 너무 싫어요. 그래서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어요. 문제는 이렇게 강압적으로 영어를 배운 제가 영어를 잘할까요?
대학을 가고 뭐 이렇게 영어 책을 보고 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겠지만 정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냐는 거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저는 지금도 영어 공부를 해요. 어쩌면 그때 내가 영어를 두려움으로 대한 것이 영어를 잘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왜냐하면 무서워서 공부했기 때문이에요.
아버지와의 관계가 하나님의 관계를 좌우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됐어요. 오늘 말씀을 듣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분명히 인지했어요. 그런데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 맞긴 맞아요.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와 하나님에 대한 감정이 온통 두려움으로 가득하다면 이거는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 거예요. 이 관계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의 이미지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졌냐면 무서운 아버지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만들어졌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의 부모들이 좀 엄격했잖아요. 저희는 그래도 감사한 게 그렇게까지 엄격하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일찍 기독교 문화를 받아 안동이라는 곳에 살았지만 일찍 기독교 문화를 받아들여서 대개 다른 집에 비하면 훨씬 더 이 권위적인 모습이 없어요.
그런데 그래도 여전히 부모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아버지에 대해서 두려움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을 때 하나님도 그렇게 여긴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두렵게 여긴다는 거예요. 아무리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양자 삼아주셨습니다고 해도 이 양자의 삶을 못 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귀한 집에 부잣집에 입양됐는데 그 집이 먹는 음식도 그 집이 가지고 있는 큰 저택도 못 누리고 사는 거예요. 이렇게 사는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 아버지의 관계가 좀 부정적이었던 특히 두려운 관계로 이렇게 아버지를 두려움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저는 아버지의 저희 아버지의 친아들입니다. 안 믿으신 건 아니시죠?
친아들이에요. 혹 의심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앉아서 밥을 먹는 모습만 봐도 100% 친아들이에요. 그래서 아버지가 편해요. 아버지와의 관계가 아주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편해요. 왜냐하면 진짜 아버지이기 때문인 거죠.
여러분 우리는 비록 하나님의 친아들은 아니에요. 친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어요. 근데 하나님이 우리를 양자로 삼아주셨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거예요. 양자이지만 자녀로 살게 하는 영이 성령인 거죠. 그러니까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된다는 거죠.
성령 충만이 어떤 의미냐면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성령으로 내가 충만하다. 이 의미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녀의 권세를 풍성하게 누리며 산다는 의미와도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이 아들에게 주신 그 권세를 가지고 권세를 누리면서 세상을 산다는 의미와도 같은 거예요. 단순히 성령 충만이라는 것은 내가 막 뜨겁고 큰 소리로 기도하고 막 열정적으로 사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자녀의 권세를 충분히 누리는 것도 성령 충만의 한 모습인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막강한 권세가 있습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을 살아야 되냐 하면 이 권세를 가지고 이 땅으로 살아야 살아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교회 생활이 여전히 불편해요. 교회를 좀 오래 다녔는데도 여전히 불편해요. 그렇다고 세상에서의 삶이 편하냐 그것도 아니에요. 불편해요. 세상도 불편하고 이게 그찬일이 그래요. 교회에 와서도 뭔가 좀 꺼림칙한 게 있어 한 주간을 말씀대로 잘 못 살았는데 오늘 내가 예배드리는 게 맞나부터 시작해서 온갖 좀 교회 생활도 약간 불편함이 있어요.
그리고 그러면 직장 생활이 변했냐 그것도 아니에요. 내가 장로인데 내가 권사인데 내가 집사인데 직장 생활에도 약간 불편함이 있어요.
여러분 이 불편함을 깨는 지점이 어디냐 하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거죠. 그냥 내가 세상의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서 그 교회도 불편하고 세상도 불편한 거예요. 애매하게 불편한 거예요.
근데 만약에 여러분과 제가 정말 하나님의 양자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되면 교회 안에서의 불편함도 사라지고 세상의 불편함도 사라진다는 거예요. 진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에서 지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에요.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의 공동체에서 아버지가 명하신 일을 위해서 함께 모여 애쓰고 수고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이에요.
근데 왜 교회가 불편하겠어요?
자녀로 살지 않으니까 교회의 삶이 불편한 거예요. 세상에 불편한 이유도 비슷해요. 진짜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면 불편할 거 없어요. 그 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불편하겠죠. 자기네의 방식으로 살지 않는 우리 때문에 불편한 거죠. 뭐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하고 직장을 사랑하고 주변에 힘들어하는 동료들을 위하고 이렇게 사는 우리를 그 사람들이 불편한 거지 내가 불편할 리가 없는 거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교회에서의 우리의 삶, 세상에서 우리의 삶이 훨씬 더 지금보다 더 떳떳해지고 더 담대해지고 더 여유 있어진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따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면 용기 있게 삽니다.
할렐루야 이거 하나님의 자녀로 살면 용기 있게 살아요. 세상에서 담대함으로 살 수 있어요. 내가 하나님의 자녀니까 내 속이 우주를 만드신 천지만물을 만드신 내 소속이 하나님께 있는 거잖아요. 그 하나님의 자녀가 나인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세상 앞에서 세상의 문제 앞에서 떳떳하고 담대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통 우리가 교회를 이렇게 생활을 비교할 때 이렇게 말하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느냐 마귀의 자료로 사느냐 너무 좀 지나친 비교이기는 하지만 늘 그렇게 비교해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사느냐 마귀의 자녀로 사느냐 여러분 우리가 성도들이 얼마든지 마귀의 자녀로 살 수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이전에 우리의 신분이 마귀의 자녀였기 때문이죠.
성도가 성도로 사는 게 하나님 백성으로 사는 게 왜 힘드냐 하면 우리의 소속이 두 개예요. 하나는 세상 나라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하는데 우리의 땅은 우리의 발은 어디에 머물고 있어요? 세상 나라에 우리의 발이 머물고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의 소속이 두 개예요. 우리는 세상 나라도 살고 하나님 나라도 살고 그래서 늘 혼란이 와요.
그런데 오늘 말씀은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세상의 왕을 임금으로 모시고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라라고 분명하게 말해요. 그러니까 혼란스러운 거 맞지만 하나님의 명령은 분명한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라.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왕인 나라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신 나라에 베드로 사도는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로마의 왕 시저를 임금으로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너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로마의 시민권자를 가진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민권자를 가진 자로 로마에서 너희가 살아라. 로마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동일하게 우리에게 적용돼 대한민국에 살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라는 거예요. 그래야 혼란이 안 온다는 거예요. 그래야 신앙생활이 어렵지 않다는 거예요.
빌립보서 3장 20절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우리는 천국 백성,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자라고 우리의 소속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대한민국 백성으로 사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천국 백성으로 사는 것이 우선이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우선인 거예요. 우리가 실질적으로 복종해야 될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인 거죠. 세상 나라의 법도 지켜야 되지만 정말 우리가 무릎을 꿇고 경배하고 순종해야 될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도는 이 땅의 삶을 살 때 비록 대한민국 백성으로 살아가지만 더 큰 나라인 더 큰 가치인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나라는 없어질 나라 아니에요. 대한민국이 이렇게 5천 년 동안 넘게 지속된다는 건 엄청난 은혜입니다. 수백 년 만에 사라진 나라들이 많아요. 우리나라 역사가 아무리 길어도요. 이 세상 나라는 없어질 나라예요. 세상 나라는 또한 심판받아야 하는 나라예요.
반면에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심판하는 나라예요. 그러니까 세상을 심판하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인 거죠. 더 나아가서 세상 나라가 가진 권세와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나라가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회는 세상에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 속한 공동체로 살아야 되고, 성도는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되는 이게 잘 사는 거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소득이 불분명해서 힘들 때가 많아요. 그래서 교회 생활도 애매하고 직장 생활도 애매한 거예요. 불편한 거예요. 여러분 이게 당연한 일이에요. 그런데 이 불편함이 어느 지점에서 사라지냐 하면 내가 내 소속을 분명할 때라는 거예요. 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다. 이걸로 살면 교회에서의 좀 애매한 삶도 정리가 되고요. 세상에서의 애매한 삶도 정리가 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야 됩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과 19절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풀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명령하셔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이 명령은 생각해 보면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제자로 살게 하기 위한 명령인 거죠.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것은 여러분과 저를 제자로 부르시고 제자로 살게 하기 위한 명령인 거예요.
여러분 제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배운 대로 가르침 받은 대로 사는 사람이 제자인 거죠. 왜 제자가 필요할까요? 왜 제자가 있어야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세상에 알릴 수 있고요. 제자로 사는 이들이 있어야 복음의 가치를 세상에 알릴 수 있어요. 그래서 제자가 되라고 제자로 살라라고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제자는 사명이 분명해요. 또 다른 제자를 가르치는 사명도 받지만 또 한편으로는 살아내야 하는 자, 그러니까 복음의 가치를 가르친 내용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자가 제자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가르치는 자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르치는 내용을 자기의 삶으로 살아내는 자가 곧 제자인 것입니다.
제자는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에서 사는 자가 제자인 거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세상으로 사는 자가 제자인 거예요. 그래서 제자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가르침 안으로 들어간다는 거죠.
그러니까 세상의 가르침과 통치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고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고 하나님의 가르침 안으로 들어가서 사는 것을 제자로 사는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제자로 살아야 교회가 교회로서의 세상에 드러날 수 있어요. 우리가 제자로 살아야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에서 영원한 나라로 저들에게 기억되고 저들이 경험하게 되고 저들이 볼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제자로 살지 않으면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어요. 제자로 사는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알게 되고 깨닫게 되기 때문인 거죠. 그래서 여러분과 저는 제자로 살아야 되고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제자로 살라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제자의 삶과 정말 실천적으로 밀접하게 관계된 것이 있어요. 십자가입니다. 그러니까 제자가 어떻게 말씀을 어떤 방식으로 말씀을 실천해야 되느냐 그러니까 이 십자가를 지는 방식으로 말씀을 실천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십자가를 지는 방식, 십자가를 짓는 곳으로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십자가는 생각보다 실패의 자리, 모멸의 자리, 고통스러운 자리, 외로운 자리에서 등장을 해요. 이 십자가가 우리가 떳떳할 때 뭔가를 많이 가졌을 때 이때 등장하지 않더라고요. 항상 십자가는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등장해 그때 내가 져야 하는 내 몫의 십자가가 내게 등장하더라고요.
이게 어려워요. 그러니까 내가 힘 있고 내가 당당하고 그럴 때 십자가가 내가 져야 될 십자가 내 앞에 등장하지 않아요. 항상 내가 져야 될 십자가는 우리 가정에 져야 하는 십자가도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등장을 하고 교회에서 져야 하는 십자가도 그럴 때 등장하고 내가 세상에서 져야 하는 십자가도 그럴 때 등장하더라. 그래서 제자로 산다는 것은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인 거예요.
그러니까 제자의 삶을 세상에 가장 잘 보여주는 삶의 형태가 십자가인 거죠.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우리는 제자로 그리고 백성으로 그리고 아들로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피조물로 물로도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제자로 사느냐 하나님의 자녀로 사느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느냐가 우리의 가정을 결정하고 교회를 결정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결정하여 우리가 살아내는 이 삶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결정하는 삶이에요.
여러분이 힘쓰고 싸우는 이 삶, 괴롭지만 말씀으로 살려고 한 이 삶, 어렵지만 말씀 붙잡고 살려고 한 이 삶이 하나님의 나라를 결정하고 교회를 결정하는 정말 중요한 삶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정말 강력하게 명령해요. 어렵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라. 어렵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라고 명령해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 가지 자녀로 또 제자로 백성으로 살아야 하기도 하고요. 살아내야 하기도 하고요. 또한 반드시 살아야 됩니다. 살아도 되고 안 되는 게 아니에요. 살아야 되는 거예요. 그럴 때 여러분과 여러분이 교회 올 때 뭔가 기대하고 오시잖아요. 신앙의 어떤 좋은 결말을 기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잖아요.
여러분 우리 우리 신앙의 끝 지점에 엉망인 것이 등장하기를 바라진 않잖아요. 그러니까 이 세 가지 제자로 자녀로 백성으로 살아야 교회든 내 인생이든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들로 하나하나씩 채워갈 수 있어요.
교회가 좋다는 건 교회 안에 백성으로 제자로 또 자녀로 사는 성도들이 많다는 거예요. 가정이 좋은 신앙의 가정이다라는 것은 그 가정의 구성원이 아버지로부터 자녀들까지 다 자녀로 백성으로 이렇게 산다는 의미인 거예요.
아무쪼록 여러분 신앙생활이 힘드시죠. 그래도 성경은 힘든 우리에게 분명히 명령합니다. 백성으로 살아라. 자녀로 살아라. 그리고 제자로 살아라. 우리 교회가 그렇게 살아내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