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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6 - 그리스의 도시 에페스의 유적을 보고 이즈미르를 구경한후 공항으로!
7월 28일 쿠샤다스 에서 렌트카를 몰고 에페스(에페소스) 에 도착해서는 자원봉사
단체의 차를 타고 셀축 시내 를 거쳐 에페스 Afes 유적 남쪽문에서
내리는데...... 에페스는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언덕배기 에 건설된 도시입니다.
우리 일행은 에페스(에페소스) 남문 에서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오면서 트라야누스의 샘
과 도미티아누스의 신전 을 보고는......
이어 여신 티케 와 메두사 등을 조각한 부조가 유명한 하드리아누스 신전 에 도착합니다
임기의 절반 이상을 로마제국의 영지를 구석구석 순행한 하드리아누스 신전 에서 발길을
멈추고 오랫동안 꼼꼼히 살피고는 맞은편 테라스의 모자이크 여러 유적들의 폐허를
보고는 고대 상가인 바실리카 를 걸어 드디어 전면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건물을 봅니다.
2세기에 해방 노예 로 총독이 된 아버지 셀시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아들이 지었다는
셀시우스도서관 인데 세계 건축사에서도 찬탄을 자아내는 비힐바 없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니 전면에 위풍당당한 앞 문은 코린트식 으로 지어졌는데 화려한데다가....
예지, 덕성, 사려, 학술 을 나타내는 4명 의 여성상 이 서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가 노예제 사회 였으나 노비의 자식은 자자손손 영원한 노비인 조선 과는 달리 노예
라도 열심히 해서 돈을 모으거나 주인에게 인정 을 받으면 해방노예 가 되어 장차
시민으로 신분 상승 이 가능했던..... 로마는 열린사회 였음을 다시 한번 기억해 봅니다.
조선은 1894년 동학농민 전쟁시 아베신조 총리 외고조부 오시마 요시마사 가 4천 일본군
을 이끌고 제물포에 상륙해 조선군의 저지를 받지 않고 서울에 무혈입성한후 경복궁 을
공격해 고종을 포로 로 잡고는 김홍집 친일내각을 세운후 갑오경장 개혁 을 실시합니다.
이노우에 공사가 훈수 를 한 갑오개혁은 반상의 신분차별 철폐, 천민제도 폐지, 노비 해방,
5백년간 이어진 과부 재혼금지제도 철폐 등으로 노비는 비로소 굴레를 벗는데 여자는 아이
도 없이 일찍 남편을 잃어도, 재혼하지 못하고 평생 시부모를 모시고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
해방 노예의 아들 이 지었다는 셀시우스 도서관 은 오래전부터 사진으로 자주 보았던
건물로 내가 여기 서게될 줄이야? 감개가 무량한데 이다지도 아름다우며....
멋진 건축물을 세운 로마 제국 시대 의 그리스인들의 솜씨 가 새삼 놀랍습니다!!
에페소 유적지에서 웅장하고 화려한 “셀시우스 도서관” 을 본후 이어 아직도 전면의 무대
를 포함하여 관중석이 거의 그대로 완벽하게 남아 있는 야외 극장 에 들어서는데 로마는
시청과 광장에 시장, 도로, 상하수도, 목욕탕과 원형극장에 경기장 을 세운걸로 유명합니다.
물경 2만 4천명 을 수용했다고 하니 이 야외 원형극장 은 참으로 그 규모가 엄청난 것이
도시의 시민들을 모두 수용하고도 남았겠다 싶은데.... 그리스나 로마는 시민들이
저녁에 이런 극장에 모여서 희극과 비극, 연극과 노래 를 즐긴 문화생활 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전국 일주여행을 할때 사해를 보고 예루살렘에서 버스를 타고 북상해
갈릴리 호수 남쪽에 로마시대 야외 극장 인 “베이트세안” 에서 그랬던 것 처럼...
이곳 에페스(에페소스) 에서도 낮은 목소리로그 때 처럼 "그네" 를 불러 봅니다!
역시나 엄청 넓은 극장이고 사방으로 트인 공간 임에도 음향효과 가 얼마나 탁월한지
멀리 떨어진 높은 좌석에서도 소리 가 잘 울리네요...
2천년 전의 로마의 옛 건축술 의 우수함 을 새삼스레 온 몸으로 느낍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2천년 전에 뭘 했던 것일까요? 이런 석조 건축물 하나 남겼다면 지금은
큰 관광자산 이 되었을텐데!!! 서울에 한성백제 유적 몽촌토성 정도가 전부이니....
흙과 나무로 지은 건축물 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없어지고 돌로 지은 것만 남나 봅니다?
야외 원형극장 을 나와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왼쪽으로 열주 가 늘어섰는데, 토사로
강이 메워지기 전인 옛날에는 항구 로 가던 이른바 그 아르카디아 거리 인가 보네요?
항구로 향한 대로 양켠에 열주 가 늘어서고... 로마 와 알렉산드리아 정도 규모의 도시
에만 있었다는 그 가로등 등불 이 켜졌다고 합니다!
이 길은 2천년 전에 세기의 연인 클레오파트라 와 안토니우스 가 나란히 걸었다고
하는데 연인들은 등불이 켜진 이 운치있는 길 을 걸으며 무슨 얘기 를 나누었을까요?
옥타비아누스와 전투 를 앞두고 두 사람은 여기 에페스에 전쟁 준비를 위해 왔답니다?
에페스 는 아직도 발굴중 이라 현재 30% 정도가 지상으로 드러났다고 하는데 우린 오늘
그 중에서도 절반 이나 보았을까요?
양쪽에 가로수 밑둥에 흰 페인트 를 칠한 나무가 울창한 길을 따라 입구로 나오는 데....
그 와중에도 평소 쇼핑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와이프가 물건 값이 싸다고 상점에서
가방 을 고르는데....... 하지만 나는 좀 전의 그 봉사 단원(?) 들을 만나면
민망해서 어쩌나 했는데 그새 모두 손님을 태우고는 다시 셀축 으로 나갔나 봅니다?
배낭 여행자 라면 쿠샤다스 에서 오는 미니 버스를 타고 셀축 시내 로 들어가서는
셀축 오토가르 에서 버스를 타야 하겠지만.......
우리 일행 4명은 어제 아침에 마르마리스에서 렌트카 를 빌렸기로 차에 올라탑니다.
에페소 를 나와서 이즈미르 로 가는 도중에 도로 한켠으로 강아지 인형을 파는 노점상도
보이고..... 이윽고 현대자동차 판매소 건물 도 지나쳐서는 이즈미르 시내 로 진입합니다!
이즈미르 Izmir 는 지금은 인구 400만 으로 터키 제3의 도시 이나, 옛날에 그리스 에서
이오니아 인 들이 이주해와 세운 도시로 트로이 와 더불어 번영했다고 합니다.
BC 10 세기 경에는 스미르나 라 불렀다는 데, 이 당시에 "일리어드 와 오디세이" 를 쓴
서양세계 최초의 시인 인 호머(호메로스) 가 살았다고 합니다.
그후 BC 627년에 소아시아의 리디아 의 침입으로 망하지만, 이후 BC 3세기에 그리스인
들이 도시를 재건 하여 로마시대에 번영 했는 데.....
1차 대전후 한때 그리스군에 점령 당하기도 했으나 1923년 터키로 반환 되었다고 합니다.
또 이 도시 이즈미르 는 요한 계시록(묵시록) 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서 서머나
(스미르나) 교회 가 있던 도시로.....
죽으면 보통은 신으로 승격 하는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 하다가 86세에 순교 했다는
폴리카르푸스 주교 를 기리기 위해....
1,600년에 프랑스교구 에서 폴리카르푸스 성당 을 지었다는데 외관이 소박해 보이는
교회로 들어서니......
내부는 유럽 여느 성당처럼 천장의 그림과 조각상들이며 제단이 화려하기 그지없네요!
그러고는 종려나무 우거진 도로 를 지나 아주 적은 터만 남아 있는 고대 유적지 아고라
터를 거쳐서나 항구 로 찾아 갑니다.
이 도시 이즈미르의 옛이름 인 "스미르나는 몰약" 을 뜻한다는 데.... 몰약은 아라비아
에서 나는 가시돋친 나무 인데
쓴 맛임에도 불구하고 향이 좋아 예수님 탄생시 동방박사가 들고 왔던 향료 입니다!
해변에 이르러 코낙 광장 Konak square 에 이르니 유난히도 비둘기떼 가 많은데
중앙에 이즈미르를 상징하는......
시계탑 Izmir Clock Tower, 터키어로는 İzmir Saat Kulesi 이 볼만 합니다.
이 시계탑은 1901년에 세워진 높이는 25미터로 이즈미르시의 상징 이라는데....
술탄 압둘하미트 2세 등극 25주년을 기념 하여 프랑스 건축가 레이몬드 페레가
설계하였으며 시계는 독일 황제 카이저 빌헬름 2세 로 부터 선물받았다고 합니다.
줌후리예트 거리 의 코낙 광장 Konak square 에서 시계탑 을 구경하고 항구 를 찾아가니
옛날의 번영을 잃지 않은 듯 사람들이 많아 활기찬 모습입니다.
그런데...... 해변의 도로 바닥 에 가득한 물결무늬 를 보니 마카오 에서 본 그 포르투칼식
이라 더 반갑네요!
이 도시 파고스 산 정상에는 리시마쿠스가 축성한 카티페 칼레성 이 견고하면서도
조망 이 좋다지만 우린 시간이 없으니....
이제 그만 차를 돌려서는 시내를 빠져나와 이즈미르 멘테레스 공항 으로 향합니다.
마르마리스에서 약속한대로 공항 진입 직전의 Petrol Office (주유소) 에 조금 일찍 도착
하는데, 왠 늙으수그레한 영감님 이 나타나 무어라 그러는데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네요?
그러더니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서는 받으랍니다. 터키어와 영어 가 섞여 나오는데.....
전화기 목소리 는 히어링 이 더 어려운 법이니 우리쪽에서 휴대폰으로 멀리 마르마리스
( 대구에서 서울 거리 ) 의 렌트카 회사 에 전화를 거니 통화가 안되고......
그래서 거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트리오스 렌터카” 랍니다. 그럼 바로 이 영감님이
차를 인수하겠다는 말이지???
우린 마르마리스 렌터카회사 사무실에서 에서 만났던 그 젊은이 가 여기까지 차를 반납
받으러 오는 것 으로 생각 했는데..... 왠 낯선 말도 안 통하는 영감님 이라니!!!
그래도 불안한 마음 에 서류에 사인 을 받고 함께 사진 을 찍는데... 나중에 보니 울마눌이
찍은 사진에는 자동차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달랑 나와 노인의 얼굴만 나와 있습니다?
증거로 사진을 찍는 것이니 자동차 번호판이 나오게 하라고 일일이 말해야 하나! 노인이
아무리 한국어를 못알아 듣는다고 해도 눈치가 없지는 않을 터이니 기분나쁠 것이라?
소 앞에서도 그 소가 일을 잘하는지 귓속말로 한다는 데... 마눌은 내 생각 처럼 "증거를
남겨야 한다" 는 생각은 전혀 없이 단순히 기념 사진 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네요?
영감님이 우리일행 4명을 공항 까지 태워주는 데, 내리고 보니 꼭집어 말하지는 못해도
조금 이상한 느낌 이 듭니다......
역시나 국제공항 건물 이었던 모양이네요? 사전에 그토록 강조 했건만..... 할아버지가
영어가 전혀 안되니 국내선 공항으로 가자는 내 말 을 못알아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우린 이스탄불 로 가는 데, 여기가 Domestic Airport (국내선공항) 가 맞느냐니까,
우찌 의사소통 이 된건지....... 차를 돌려 다른 공항으로 가는데 내려서 물어보니
맞답니다. 해서 안도하고는 헤어지려는데 우연히 자켓 왼쪽 주머니가 열린게 보이네요?
그래서 주머니를 만져 보니 아뿔사? 신용카드가 든 미니지갑 이 없어졌습니다. 하여
“Stop!!!!" 출발하는 차를 다급하게 불러 세우고는 옛날에 군대 점호시간 에 여러차례
해 보았던 차의 의자 밑을 쥐잡기 를 하는데........ 없네요! 포기하고 일어서는 데!!!
”저기 있네“ 마눌이 차 의자 밑 구석 을 가리킵니다. 후유..... 또 한고비 넘겼습니다.
그러니까 에페소에서 나올때 마눌이 10리라를 달래서 지갑을 열어 돈을 꺼내 주고는
잠바 자크를 안 잠갔는데, 운전을 하다가 더워서 옷을 벗었더니 그때 흘렀던 모양입니다.
곧 공항에서 벌어질 사건이지만.... 신용카드를 분실 했더라면 엄청 난처한 일이 벌어질
뻔 하였으니 아찔한 순간 이 아닐수 없습니다.
( 조금 후에 항공권을 다시 끊는 불상사 가 발생하는데 신용카드 가 없다면 어쩐다??? )
선배님 은 그제서야, 저사람을 어찌 믿고 차를 넘기냐며 걱정 을 하십니다. “전화를
해서 확인 을 안하고...” 라고 말꼬리를 흐리시는 데......
아니 좀 전에 보셨잖습니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안되던 것을....... 사실 우리는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 니 비행기 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차를 넘기지 못하면 어떡해야 하나, 그냥 버리고 갈 수도없고 말이지요?
그래서 허츠나 에이비스 등 큰 회사 를 찾게 되지만, 작은 도시 에는 그런 큰 회사의
지점이 없으니..... 지역 렌트카 를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수 없이 이용하는 것이지요!!!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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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http://cafe.daum.net/bpguide)
첫댓글 여행기 읽으며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웃으며 때론 가슴도 졸이며 자~알 읽었습니다.ㅎ
저두 에페소스 도서관유적지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기억이…
유럽 여행하며 저는 특별히 다른데서와 달리 반들반들한 돌로된 골목길 걷는것을 참 좋아합니다.
나라마다 고장마다 조금씩 특색이 있더라구요. 돌바닥 길을 걸으며 사진도 찍고 옛날 그들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그러다 가끔은 여러 색과 무늬로 장식된것 보며 감탄하기도 하구요,
때론 그 사이에서 십자가 모양도 발견합니다.
그들의 신앙을 엿볼수있는 작은 감동이 있지요…
역시 돌로 된 것은 오래 남는것 같아요~ㅎ
길, 건축물,조각품,
성벽등~~~
감사합니다~
서양의 골목길은 작은 돌로 되어 있으니
운치는 있는데..... 캐리어를 끌고 가자면 힘들지요?
하지만 흙으로 된 길은 비가 오면 진흙창이 되니....
저들 로마는 2천여년전 부터 바닥을 1.5 이상 파내고
큰돌, 작은돌, 사금파리, 화산재, 모래를 깔고
마지막 윗부분에 돌로 쪼개 덮은
포장도로를 만들었으니 사통팔달이라.....
계곡에는 굑가을 쌓아 다리를 만드니
사시사철 비가 오나 눈이오나 마차가 달렸지요?
하지만 조선은 망할때 까지 포장 도로가 없었으니
자연 우마차가 없고 짐은 보부상이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날랐으니.... 우마차가 없었던 나라였습니다?
오직 지게에만 의존했으니 상공업이 발달할수 없었지요?
2천 수백년전에 터키에도 로와 수로와 목욕탕과 극장과
경기장을 건설했던 로마문명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물결무늬 바닥 사진보며 덕분에 지나간 여행이 생각났네요.
언제나 다시 여행 할날이 올런지…
광장이나 도로에 물결무늬.....
마카오에서 보았고
또 포르투칼에 가서 리스본과
카스카이스에서 보았던 건데.....
여기 터키 즈미르에서 볼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바다의 파도를 상징하나 본데.....
여행자들에게는 참 낭만적으로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