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최고무력의 무장 봉선여포'가 한족(漢族)이 아니라 몽골계열 유목민이었을 것이라합니다.
여포의 출신지는 오원(五原)으로 오로도스 사막에 가까운 곳으로 현재의 몽골 지역이지요.
여포'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의해 패륜아로 그려진 주요한 이유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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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주요 인물들 가운데 출신지별로 보면, 오직 여포만이 홀로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사에서 여포가 인종적으로 정확히 어떤 계통인지 밝히고 있진 않지만 그의 출신지와 그의 생활에 나타난 관습(유비에 대한 접대)등으로 판단하건데 그가 흉노(대쥬신?)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요. 따라서 여포는 인종적인 측면에서 동탁이나 가후보다도 더욱 천대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동탁이나 가후는 중국인들이 말하는 오랑캐 지역에 살았지만 그래도 한족이었고, 여포의 경우는 중국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토종 오랑캐였던 것이지요. 그래서 여포는 가장 싸움을 잘하지만 가장 경멸스럽고 비굴한 모습으로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나관중‘삼국지’를 편찬한 사람들은 원(元 : 몽골)나라 말기 사람으로 그들에게 원나라는 금수(禽獸)의 무리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원수(怨讐)의 무리였을 것입니다. 이러니 여포가 어떻게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더구나 자신의 상관을 두 번씩이나 죽인 사람이 아닙니까?
제가 보기에 여포는 한족(漢族)을 너무 몰랐던 것 같습니다. 정사의 주석에 보면 여포는“여러 장수들은 자기를 죽이려 하는 사람들밖에 없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장홍(臧洪)이 진림(陳琳)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여포가 (장연의 군대를 격파하고) 지원병을 요청하자 원소는 이를 거부하여 여포가 할 수 없이 원소를 떠나려 하는데 원소는 오히려 자객을 보내 여포를 죽이려 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전말을 봅시다. 원소가 상산 땅에 있던 자신의 강적인 장연(張燕)을 여포를 시켜서 쳐부수었는데 원소는 오히려 여포의 세력이 커질 것을 두려워하여 지원병을 파견하지 않았고 이를 알게 된 여포가 원소를 떠나려하자 원소는 비밀리에 자객을 보내 여포를 죽이려 하지만 실패하지요. 원소는 여포를 철저히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룬 후에는 오히려 여포의 세력이 커질까 두려워 암살하려 한 것이죠. 그런데 이 당시 원소의 행위는 왜 사람들이 비판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군요.
여포는 원소에게서 상당한 충격을 받고 삶의 의욕을 상실하여 자살할 결심을 합니다. 정사의 주석에“본래 장양(張楊)은 여포를 죽여 이각과 곽사가 내걸은 현상금을 차지하려 했는데 여포가 이 소식을 듣고 장양에게‘우리는 한 고향이니 자네가 날 잡아가게, 그러면 이각과 곽사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을게 아닌가?’라고 했다(위서, 여포전).”라는 말이 있지요. 즉 여포는 원소에게 당한 충격으로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하여 “에라,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겠다.”라고 판단하고 죽을 바에는 자기를 팔아 고향 사람(장양) 출세나 시켜주자고 한 것입니다. 얼마나 한족(漢族)들에게 시달렸으면 이런 기막힌 생각을 했을까요?
여포는 한족들이 가진 국민적 정서를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출세를 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 듯합니다. 어쨌든 여포의 차이나 드림(China Dream)은 절반의 성공에 불과했지요. 마치 이민(移民)을 가기 전에 여러 가지를 부지런히 준비해야 하는데 여포는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복잡한 한족사회에서 성공하려니 힘에 부쳤던 것이고 여포가 한족 사회에서 구성한 인간 네트워크(인맥)도 결국은 하류 한족 사회에 불과하니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가 어려웠겠지요. 그러나 저러나 판단은 여포의 몫이니, 주변의 말을 듣고 신중하지 못한 판단을 한 것은 여포의 잘못입니다.
사실 여포는 한족이 아니었으므로 낙양 지역에서 사용된 중국어도 제대로 몰랐을 것이고 문자를 해독할 능력도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중국이 사회주의혁명으로 통일(1949년) 되기 전까지 언어적으로 크게 다른 방언이 7갈래인데 그것을 다시 나누면 270여 개라고 합니다. 더구나 여포는 한족(漢族)이 가진 복잡한 문화적 특성이나 도덕관념 또는 민족적 대의를 알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만의 판단으로 항상 유력자를 선택했을 것입니다(요즘 한국인들이 미국 가서도 똑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주변에 그에게 카운셀링을 해줄 만한 사람이 제대로 없었지요. 이것이 여포의 비극입니다.
여포의 또 다른 비극은 유비(劉備)와의 만남입니다. 여포는 유비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항상 존경하였다고 합니다. 외형적으로 유비는 온후하여, 항상 외로움과 문화적 차이로 인해 힘들어하는 여포에게, 유비는 친아우 같은 존재였습니다. 문제는 유비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죠. 정사에 따르면 여포는 유비를 소개하면서, “유비는 나의 동생”이라고 합니다.
여포가 유비를 좋아한 데는 외형적으로 유비가 온순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스타일이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유비는 여포와 같이“변변치 못한 변방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정사 여포전 주석). 유비의 고향은 탁(涿)으로 현재 베이징 근방입니다. 당시의 베이징은 중원과는 거리가 먼 지역이었죠. 그런데 유비 자신은 한황실의 후예이기 때문에“여포 따위와는 어울릴 수가 없어”라고 생각합니다.
여포는 유비를 자기 아내의 침대에 앉게 하고 아내에게 유비에게 술잔을 따르게 하고 동생으로 삼았습니다. 이 대접은 유목민들에게는 최대의 대접이었고 한족의 입장에서 보면 야만적인 행위입니다(형수가 시동생을 자기 침대에 앉히고 술잔을 따르다니요?). 여포가 순수하게 마음을 열고 유비에게 애정을 보냈지만 유비는 이에 대해서 별 다른 감흥을 가지고 있진 않았고 오히려 이것을 역겨워합니다. 여포는 자기를 배반하고 간 유비의 처자를 보호해줍니다. 문화적 차이가 인간관계를 얼마나 꼬이게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여포는 단순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조조는 여포를 자기 휘하에 두려고 했고, 여포 또한 여러 번 조조에게 투항하려 했으나 조조를 배신한 전력을 가진 진궁이 이를 방해했습니다. 만약 조조에게 여포가 투항했으면, 여포는 별 탈 없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그냥 살았을 것이고 또 천하 통일도 빨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유비는 여포가 조조에게 투항할 경우 자기의 위치도 문제지만 미래에 자신이 천하의 주인이 되는 데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판단한 듯합니다. 유비로서는 조조도 감당하기 힘든 상대인데 여포까지 조조에 합세할 경우에는 대책이 완전히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조조가 여포를 자기 휘하에 두는 것을 철저히 반대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유비는 조조에게 여포를 죽여야 한다고 강경하게 설득하고 이를 관철시킵니다.
유비의 이 같은 행동을 보면서 여포는 한족(漢族)이 어떤 사람들인지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포는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큰 회의를 가졌을 것입니다.
------------------------- 출처 : 김운회' '삼국지 바로읽기' 프레시안(www.pressian.com)
나관중‘삼국지연의’에 진궁'은 천하의 충의지사로 등장하는데 왜 조조를 배신하고 장막과 함께 여포에게로 갔을까요?
진궁은 위기의 상황에서 조조를 배신한 것을 제외하면 대장부다운 의연한 몸가짐을 보여줍니다.
만약에 우리가 아는 식으로 여포가 의부를 두 번씩이나 살해하는 파렴치한이었다거나 "오직 싸움만 잘하는 사나이”였다면 가능한 일은 아니죠.
나관중 ‘삼국지연의’에 나타난 여포의 개인사에 대한 내용은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여포는 장군으로서는 드물게 매우 가정적인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처자(妻子)는 의복(衣服)이라고 말하고 행동하는 유비와는 매우 다르지요
(여자관계가 복잡한 것으로 치면 손권이나 조조, 유비만한 사람도 없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여포는 매우 로맨틱하고 매력적이고 잘 생긴 자수성가형 인물은 아니었을까요?
-------------발췌 인용 : 출처 동일함>
개인적인 사견을 덧붙이면 , 삼국지에서 관우와 장비를 제외한 인물중에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다.
조조도 좋지만 우직하고 자기자신을 가장 믿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의기를 보였던 여포를 좋아한다.
첫댓글유비....정말 싫어하는 인물중에 하나죠, 나름대로 천하를 잡을 운을 타고 났으나 그런것을 다 제외하고 인간적으로만 보면 마치 "선조"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요...손권은 어째 좀 장삿꾼 같은 느낌이라 싫고 조조는 어째 밑에 있기 불안한 인물이라 싫고......관우는 꽉 막힌 느낌이라서 싫고, 조자룡은 어쩐지
유비는 만만하게 볼 인물이 아닙니다. 한번 제대로 백성에게 배푼적이 없으면서도 어딜가나 백성들은 그를 따랐고 그들 수하들은 유비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전자는 사마의나 조조에게도 찰아볼 수 없는 능력입니다. 민중이 그를 의지했다는 점 그리고 그를 친근하게 여겼다는 점.....
능력과 재능이 조조에 비해 쥐뿔도 없었던 유비였지만 민중들은 그를 사모하고 따랐습니다. 유비를 만난 사람들은 이 귀큰 인간에게 뭐가 씌었는지 모르겠지만 눈물로 감격하고 그를 목숨으로써 지키길 마음속 깊이 다짐하였습니다. 유비에겐 조조에겐 결여된 인간적 매력인 德이 있었던 겁니다.
유비는 통치자로써 德이라는 효과적인 무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한 인물로 봐야합니다. 타메를랑님 말씀대로 유비는 표리부동한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조조보다도 더 무서운 인물이죠. 바보인척 하면서 순진한 백성들로 하여금 동정심을 유발시키고, 뭐 하나 제대로 해준 것도 없이 도망다니는 자를 확신해 찬 눈빛으로 바
관우는 조조마저도 탐내는 명장이었고 사실 조조는 관우를 다른 부하들에 비해 더좋은 대우를 약속하면서 그의 수하로 포섭하려고 했지만 결국 관우는 하잘 것 없는 식객처지로 원소에게 가있었던 유비를 잊지 못하고 다시 그에게 돌아갑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억대가 넘는 연봉과 대기업의 중역자리를 마다하고 중소
기업의 고참직원으로 취직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유비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 능력과 권위, 그리고 재물로써 하급자들에게 충성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만, 그들은 진정한 마음으로써 유비를 사모하고 따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비가 가지고 있는 德의 힘이요. 무서운 리더쉽인 것입니다.
^^;; 중국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사람은 [지혜롭게 게으름을 부리는 자]이고 가장 훌륭한 군주는 [백성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군주]가 아닌 [백성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군주]라던가요. 유비의 경우 촉한정통론에 뻥튀기를 입은 바가 많습니다만;; 그래도 바보로 매도할 성질의 인물은 아닌듯 합니다.
생각해보니 삼국지에도 이런 내용에 대해 나온것 같은데 조조가 세력하나없는 유비를 두려워하는것은 항상 조조를 무너뜨리려는 생각을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유비가 촉을 얻으러 갈때도 자신은 항상 조조와 반대되는 행동을 해와서 천하의 민심과 동정을 얻었다는 말을 하죠..그냥보통인물이 아닙니다
뭐, 조조같은 상사가 있으면 신경쇠약 걸릴 것이고 유비같은 상사가 있으면 매번 파산을 거듭하는 꼴을 볼것이고 손권같은 상사가 있으면 답답해서 홧병 걸릴 것 같습니다. --;;; 역시 뭐니뭐니해도 인간이 목숨을 걸고 모시려면 세종대왕님 정도의 카리스마와 덕망이 있으셔야...
첫댓글 유비....정말 싫어하는 인물중에 하나죠, 나름대로 천하를 잡을 운을 타고 났으나 그런것을 다 제외하고 인간적으로만 보면 마치 "선조"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요...손권은 어째 좀 장삿꾼 같은 느낌이라 싫고 조조는 어째 밑에 있기 불안한 인물이라 싫고......관우는 꽉 막힌 느낌이라서 싫고, 조자룡은 어쩐지
어린애 같아서 싫고, 제갈량은 답답해서 싫고......좋아하는 인물은 사마의 정도랄까?
저도 유비 가제일 시름 여포는 제일조아염
개인적으로 삼국지에는 제가 좋아라 할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딱히 뭐 말하자면 강유나 법정,마속 정도가 되겠네여...
조조는 밑에 있기 불안... ㅎㅎ 언제 단물 빨리고 버려질 지 모르니
그래도 한반도에 들어온 부류들은 변신에 성공한 편이죠.
유비는 절대! 바보가 아닙니다. 바보인 척 행세를 한 것 뿐이지요.
유비는 만만하게 볼 인물이 아닙니다. 한번 제대로 백성에게 배푼적이 없으면서도 어딜가나 백성들은 그를 따랐고 그들 수하들은 유비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전자는 사마의나 조조에게도 찰아볼 수 없는 능력입니다. 민중이 그를 의지했다는 점 그리고 그를 친근하게 여겼다는 점.....
능력과 재능이 조조에 비해 쥐뿔도 없었던 유비였지만 민중들은 그를 사모하고 따랐습니다. 유비를 만난 사람들은 이 귀큰 인간에게 뭐가 씌었는지 모르겠지만 눈물로 감격하고 그를 목숨으로써 지키길 마음속 깊이 다짐하였습니다. 유비에겐 조조에겐 결여된 인간적 매력인 德이 있었던 겁니다.
유비는 통치자로써 德이라는 효과적인 무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한 인물로 봐야합니다. 타메를랑님 말씀대로 유비는 표리부동한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조조보다도 더 무서운 인물이죠. 바보인척 하면서 순진한 백성들로 하여금 동정심을 유발시키고, 뭐 하나 제대로 해준 것도 없이 도망다니는 자를 확신해 찬 눈빛으로 바
라보게 하면서 자신에 대한 자발적 충성심을 유도한 점......사실상 다른 여느 제후들이 하는 짓과 다를게 없는 패도를 위한 전쟁을 하면서도 주위로부터 찬탈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통성을 자신과 합치시키면서 민심을 사로잡은 점 등은
단순하게 유비를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여러가지 요소들입니다.
관우는 조조마저도 탐내는 명장이었고 사실 조조는 관우를 다른 부하들에 비해 더좋은 대우를 약속하면서 그의 수하로 포섭하려고 했지만 결국 관우는 하잘 것 없는 식객처지로 원소에게 가있었던 유비를 잊지 못하고 다시 그에게 돌아갑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억대가 넘는 연봉과 대기업의 중역자리를 마다하고 중소
기업의 고참직원으로 취직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유비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 능력과 권위, 그리고 재물로써 하급자들에게 충성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만, 그들은 진정한 마음으로써 유비를 사모하고 따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비가 가지고 있는 德의 힘이요. 무서운 리더쉽인 것입니다.
^^;; 중국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사람은 [지혜롭게 게으름을 부리는 자]이고 가장 훌륭한 군주는 [백성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군주]가 아닌 [백성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군주]라던가요. 유비의 경우 촉한정통론에 뻥튀기를 입은 바가 많습니다만;; 그래도 바보로 매도할 성질의 인물은 아닌듯 합니다.
바보라면 그 악다구니 속에서 살아남지 못했고, 뛰어나지 못했다면 촉한의 황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게 표리부동이죠 뭐
유비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하지않으나 자신의 노선을 확고히 정하여 운을 자기에게 끌어오게 하였죠 이것도 능력이며 공짜로 얻어진게 아니죠 중국에 있는 말에도 아무것도 하지않은듯 하면서도 모든게 잘 되게 하는 군주가 가장 명군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생각해보니 삼국지에도 이런 내용에 대해 나온것 같은데 조조가 세력하나없는 유비를 두려워하는것은 항상 조조를 무너뜨리려는 생각을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유비가 촉을 얻으러 갈때도 자신은 항상 조조와 반대되는 행동을 해와서 천하의 민심과 동정을 얻었다는 말을 하죠..그냥보통인물이 아닙니다
유방도 그렇고 유비도 그렇고(그러고 보니 같은 집안이군여 크게 보면ㅡㅡ;;) 가진건 쥐뿔도 없으면서 야심만 큰 작자들에게 혹하는 짱개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정사를 읽어보면 여포보다 막강한게 마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하실수도있습니다 제가볼떄 마초가 전성기로 따지면 극강의 무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이의 장비가 마초에게 개겼던 연의의 설정상이였다면 장비가 죽을지도모르죠 사실...
그당시 장비의 나이가 50세에 육박했고 마초느 한참 펄펄한 20세였다는걸 감안하면, 그다지 마초도 강하게 느껴지진 않음 ㅡ_-)
뭐, 조조같은 상사가 있으면 신경쇠약 걸릴 것이고 유비같은 상사가 있으면 매번 파산을 거듭하는 꼴을 볼것이고 손권같은 상사가 있으면 답답해서 홧병 걸릴 것 같습니다. --;;; 역시 뭐니뭐니해도 인간이 목숨을 걸고 모시려면 세종대왕님 정도의 카리스마와 덕망이 있으셔야...
음...이 놈 저 놈 다 싫어하시는데, 하지만 동탁이 출동하면 어떨까?(퍽! 철커억! 타타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