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폭력을 휘두르는 자에 대한 경
1. [세존]
“폭력을(*1) 휘두르는 자로부터 공포가 생깁니다.
싸움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내가 어떻게 두려워했는지,
그 두려움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2. 잦아드는 물에 있는 물고기처럼
전율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서로 반목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에게 두려움이 생겨났습니다.
3. 이 세상 어디나 견고한 것은 없습니다.
어느 방향이든 흔들리고 있습니다.(*2)
나의 처소를 찾지만,
점령되지 않는 곳을(*3) 보지 못했습니다.
4. 그들이 끝까지 반목하는 것을 보고
나에게 혐오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나는 보기 어려운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심장에 박힌 화살을 보았습니다.
5. 어떠한 화살이든 맞은 자는 모든 방향으로 내닫지만,
그 화살을 뽑아버리면,
내닫지도 않고, 주저앉지도(*4) 않습니다.
6. 그 점에서 다음과 같은 배움의 이치가 암송됩니다.
‘세상에는 묶여진 속박들이(*5) 있는데,
그것들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그 감각적 쾌락의 욕망들을 모두 꿰뚫어 보고,
자신을 위해 열반을 배우라’
7. 성자의 삶을 사는 자는 성실해야 하며,
오만하지 않고, 거짓이 없고, 중상하지 않고,
탐욕스러움과 인색함이 가져오는 악함을 건너야 합니다.
8. 마음을 열반에 둔 사람이라면
졸음과 해태와 혼침을 극복하고,
방일을 일삼아서도 안 되고,
교만해서도 안됩니다.
9. 거짓말은 하지 말고,
형상에 애착을 갖지 말고,
교만을 두루 알아서 폭력을 삼가며,
유행해야 합니다.
10. 지나간 것을 즐기지 말고,
새로운 것을 환영하지도 마십시오.
사라져 갈 때 슬퍼하지 말고,
그러한 갈애의 공간에 붙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11. 탐욕은 커다란 거센 물결이라고,
열망은 그 흡인력이라고, 집착은 그 혼란이라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은
그 넘기기 어려운 수렁이라고 나는 말합니다.
12. 성자의 삶을 사는 자는 진실을 떠나지 않고,
거룩한 님은 단단한 땅위에 서 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참으로 고요한 님이라 불립니다.
13. 그는 현명한 자로서 지혜에 통달하고,
가르침을 알아, 집착이 없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행동하고,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14. 이 세상에서 감각적 욕망을 뛰어넘어,
극복하기 어려운 집착을 넘어선 님은
흐름을 끊어, 묶임이 없고,
슬퍼하지 않고,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15. 과거에 있었던 것을 완전히 말려버리고,
미래에 그대에게 아무 것도 생겨나지 않게 하십시오.
그리고 그대가 현재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평안하게 유행할 것입니다.
16. 정신적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
내 것이라는 것이 전혀 없고,
없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다면,
그는 참으로 세상에서 잃을 것이 없습니다.
17. ‘이것은 내 것이다’ 또는 ‘이것은 어떤 다른 자의 것이다’하는 생각이 없다면,
‘내 것이라는 것’이 없으므로, 그는 ‘나에게 없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습니다.
18. 질투(*6)하지 않고, 탐내지 않으며,
동요하지 않고, 모든 면에서 공평하고,
두려움이 없는 님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그의 공덕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19. 동요 없는 지혜로운 님에게는
어떠한 유위의 조작도(*7) 없으니,
그는 유위적인 조작의 노력에서 벗어나
모든 곳에서 안온(*8)을 지켜봅니다.
20. 성자의 삶을 사는 자는
자신이 동등한 자 가운데, 열등한 자 가운데,
또는 우월한 자 가운데 있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고요하고, 관대하고, 얻거나 잃어버리거나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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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1) 폭력에는 신체적 폭력, 언어적 폭력, 정신적 폭력의 세 가지 폭력이 있다.
그 폭력이란 것은 악행을 말하는 것이다.
주해(*2) ‘늙음 등에 의해서’표류한다는 뜻이다.
주해(*3) ‘늙음 등에 의해서 점령되지 않은 곳’을 말한다.
주해(*4) 네 가지 거센 물결(감각적 쾌락, 존재, 견해, 무명)에
가라앉는 것을 말한다.
주해(*5)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五慾樂)에 묶이는 것을 말한다.
주해(*6) 원의는 ‘거친, 어려운, 잔인한’의 뜻이지만
‘남이 이익과 명예와 존경과 자랑과 예경과 공경을 누리는 것을
질투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주해(*7) 원래 ‘잠재적인 형성’이라는 말인데,
역자는 주석의 설명에 따라 유위적 조작으로 번역한다.
공덕에 대한 유의적 조작, 공덕이 아닌 것에 대한 유위적 조작, 부동에 대한 유위적 조작을 말한다.
유위적 조작이란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는
자아관념에 의한 조작을 말한다.
주해(*8) 두려움 없음을 말한다.
쿳다까니까야 (小部阿含) 숫타니파타 451-455쪽.
전재성 역주. 한국 빠알리 성전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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