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기온이 강하하여 진안고원길을 서해랑길 56코스로 변경하였다.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길을 걸을 수 있는 멋진 구간이다.
서해바다의 작은 섬들이 그려내는 예쁜 풍경화는 덤이라 할 수 있다.
윤석열의 탄핵이 가결되는 장면에 박수를 보내며 송년 행사를 진행하였다.
서해랑길 56코스는 장항도선장 입구에서 와석노인회관까지 14.2km 구간이다.
장항도선장 입구
45명의 회원들이 전주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하였다.
약 1시간 만에 장항도선장 입구에 내려서 트레킹 채비를 히였다.
서해랑길 56코스 시작점
장산로 육교 아래에 56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었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하였다.
장항제련소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장항제련소의 굴뚝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1936년 일제가 국내의 비철금속(금·은·동 등) 수탈을 위해 세운 아픈 역사의 흔적이다.
이곳은 2010년에 엘에스(LS)메탈 장항공장으로 최종 변경되었다.
장암진성(長巖鎭城)
조선 중종 9년(1514)에 쌓은 조선시대 읍성으로 알려졌다.
성벽은 해발 4∼43m 사이의 산 구릉과 해수면에 임해 석축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복원된 성의 형태가 너무 조잡하여 실망스러웠다.
앞들
산림욕장으로 가는 길에 만난 작은 습지도 마음의 위로를 건네준다.
전망산과 후망산 사이는 옛날 해수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게 물길이 막히면서 자연스레 습지로 변했다.
‘앞들’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앞들을 가로지르는 물 길 위에는 고니떼들이 노닐고 있었다.
마치 권모술수와 허욕이 판치는 인간 세상을 비웃고 있는듯 하다.
습지 너머 전망산(前望山, 56m)이 자신도 보아달라며 고개를 내민다.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징인 장항제련소의 거대한 굴뚝과 함께...
장항송림자연휴양림
장항읍 송림리의 금강이 서해로 흘러드는 하구에 위치하고 있다.
해송이 우거진 숲으로 해변을 따라 길이 약 1.5km 가량 이어진다.
서천을 대표하는 자연경관으로 손꼽으며, 2020년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되었다.
솔바람숲
솔바람숲은 1954년 장항농고 학생들이 묘목을 식재하면서 조성됐다고 한다.
바닷가 모래 날림과 바람으로부터 장항농고와 주변 마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단다.
현재 70년생 곰솔(해송) 약 12,000본과 그 아래서 맥문동이 자라고 있다.
맥문동(麥門冬)
'맥문동'은 뿌리가 보리와 비슷하며 잎이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죽은 맥도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가 허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약재이다.
맥문동이 만개하는 여름에 오면 장관을 이룰듯 하다.
장항스카이워크(1)
바다와 녹음을 한데 아우르는 전망대다.
드넓게 펼쳐지는 서해바다와 서천갯벌 풍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오르려면 입장권(4천원)을 사야 하며, 높이 15m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입장권을 사면 서천사랑상품권(2,000원)을 주고, 경로우대자는 무료입장한다.
장항 스카이워크(2)
전망대는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가도록 만들었다.
전망대에 서면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진다.
금강하구와 서해바다, 그리고 장항제련소까지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기벌포 해전 전망대
스카이워크를 따라 250m를 가면 '기벌포해전전망대'에 닿게 된다.
기벌포는 서천 남서쪽에 걸친 장항 앞바다(금강하구)의 옛 지명이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성을 수호하던 관문이었다.
백제는 관문인 기벌포를 적군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했고, 결국에는 나라가 망했다.
나당연합군이 한반도 패권을 두고 반목해 벌인 최후의 해상 전투도 바로 여기서 펼쳐졌다.
서천갯벌
2021년 고창갯벌 등 3곳의 갯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참고로 서천갯벌은 개발 대신 보전을 택해 지켜낸 소중한 자산이다.
매립과 개발이냐, 생태와 보전이냐의 갈림길에서 서천은 생태와 보전을 택했다.
고심 끝에 내린 판단이 옳았음을 유네스코가 증명해 준 셈이다.
인공염습지
장항 송림리갯벌에 들어선 인공염습지.
1.2ha의 면적에 말뚝을 박아 뻘을 퇴적시킨 후 갈대를 이식한다는 계획이다.
이곳은 한때 서천 주민들이 모래찜질을 즐기던 송림해수욕장이었다.
솔리천을 건너다
솔리천은 수만 마리의 도요새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멸종위기종인 저어새, 노랑부리백로의 서식처이기도 하다.
‘솔리(率里)’는 옛날에 부자가 계속해서 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옥남마을
솔리천을 건너 옥남마을로 들어선다.
많은 사람들을 보자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댄다.
눈발이 날리는 시골길을 지루하게 걸어갔다.
다리도 아프고 어깨가 결리면서 서서히 지쳐갔다.
점심 식사
마을을 벗어난 숲속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눈발이 날리고 찬바람이 불며서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의 사링과 우정으로 금방 따뜻해졌다.
하소마을
바닷가에 인접한 하소마을은 지극히 평화로웠다.
'태양광발전시설을 결사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평화를 깨고 있었다.
죽산리해변
죽산리해변은 온갖 쓰레기들의 몰려 있었다.
쓰레기를 그냥 방치해놓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필립보 신부님과 여인들의 미소가 마을을 정화시키고 있다.
매바위공원
죽산리 해안 끝자락에 매바위공원이 있다.
오랜 풍화작용으로 삼각김밥 형태로 삐죽하게 생겼는데 이름은 그대로 매바위다.
매를 꼭 닮았던 이 바위는 어느 해인가 태풍으로 목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바위 주변 동그란 해안을 따라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쓸쓸하면서도 가슴 후련한 광활한 갯벌과 겨울 바다가 풍기는 묘한 정취에 끌린다.
맹감이 주인을 만나다
바르바라씨가 열매가 주저리주저리 달린 맹감 덩굴을 발견하였다.
어렵게 집으로 가지고 갔는데 이렇게 멋진 장식물이 되었다.
하찮은 것도 주인을 잘 만나면 이렇게 멋지게 변모한다.
아목섬
거위의 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아목섬'이다.
아목섬은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섬이다.
썰물 때 물이 빠지면 길이 만들어지면서 섬까지 연결된다
죽산리의 어민들은 썰물 때 경운기 뒤에 배를 싣고 이 길 끝까지 가서 배를 띄운다.
철새나그네길
죽산리에서 시작되는 방파제길은 '철새나그네길'로 명명되었다.
거센 바람이 몰아쳐서 파도가 길위까지 올라왔다.
길 옆에 오층석탑과 해수관음보살상이 서 있다.
사찰도 없는데 누가 세운 것일까?
탑을 세운 주지와 몇 명의 신도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길을 걷는 길손들의 안녕을 위해 세웠으리라 믿는다.
송석리벌판
눈보라가 몰아치는 송석리 벌판을 걷는다.
소의 먹이가 되는 볏짚은 공룡알이 되어 쌓여있다.
가끔씩 인기척에 놀란 청둥오리떼가 떠득거리며 날아오른다.
와석마을 노인정
송석리 와석마을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마을에 넓은 바위가 누워있다고 해서 ‘눈돌’로 불리다가 한자화되면서 ‘와석(臥石)’이 되었다.
노인정에서 등산화의 흙을 털며 우리를 태우러 올 버스를 기다렸다.
끝과 시작
이곳에서 서해랑길 56코스가 끝나고 57코스가 시작된다.
다시 찾아올 때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신성리갈대밭
트레킹이 너무 일찍 끝나서 신성리갈대밭에 들렀다.
날씨가 춥고 지쳐서 차에서 내린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장항스카이워크에서 받은 상품권으로 군밤을 사서 나눠먹었다.
송년회
전주로 돌아와 '소나무'에 모여서 송년회를 하였다.
TV로 윤석열의 탄핵 장면을 보고 박수를 치며 환호하였다.
내년에도 행복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기대하며 마시고 또 마셨다.
첫댓글 생각보다 상상이 앞서면 행복합니다
믿음은 상상의 종착역이어야 하지요
그래야 감사할 수 있거든요
갑진년 수고하셨고
내년에도 멋진 길 위에서 우정을 더하며 감사하며 걸어봅시다
우리 총무님은 아는것이 끝이 없으십니다.
모두 인테넷의 힘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