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夕陽)이 아름다운 것은 말없이 타며 스러지는 낙조(落照)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맥아더가 노병(老兵)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 한 것은 황혼(黃昏)을 맞은 인생의 우아(優雅)함을 은유(隱喩)한 것이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영근 밀알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영겁윤회(永劫輪回)의 우주이치(宇宙理致)인 것이다.
석양의 해가 함몰(陷沒)하기를 거역하고 아침의 태양처럼 강열한 빛을 발하려는 것은 우주법리(宇宙法理)를 거슬리는 모반행위(謀反行爲)다. 익은 벼가 고개를 들고 영근 밀알이 떨어지기를 거부하는 것은 자연이치를 거부하는 반역행위(反逆行爲)다. 익은 것은 고개 숙이고 영근 것은 떨어져야 이치에 맞는 것이다.
이승만 독재(獨裁)와 군사독재(軍事獨裁) 시절(時節) 보안법(保安法)이란 악마의 도검(刀劍)으로 자유와 정의, 민주와 인권을 무자비하게 찌르고 베던 시절, 그 악마의 시절에 악마의 정권을 위해 충정(忠情)을 다하고 국민을 유린(蹂躪)하던 비열한 일당들이 보수원로의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전직 국무총리 7명, 전직 장관 48명, 정당대표가 4명, 전직고위관료 20명 법조계 거물 40명, 전 국회의원 112명, 교육계 28명, 예비역장성 480명, 전직 경찰간부 42명, 전직 외교관 24명, 언론계 12명, 의약계 13명, 종교계 8명, 전 초·중·고 교장 및 교육공무원 85명, 사회단체장 34명, 기타 68명이 이들이다.
독재(獨裁)의 충견(忠犬)노릇에 광분(狂奔)하면서 민주와 자유를 억압하고 정의와 인권을 유린하던 이들 보수원로가 내건 주장은 오만(傲慢)과 편견(偏見)에 가득한 내용이었다. 젊잖게 참여민주주의(參與民主主義)의 진행방향을 지켜보며 과거를 회오(悔悟)하고 개선노력에 일조(一助)해야 할 이들 원로가 느닷없이 정부를 향하여 포문(砲門)을 연 것은 아무래도 순리적(順理的인 모습도 어른의 모습도 아닌 것이다.
어떤 이는 이들 보수원로의 때 아닌 정치참여행위(政治參與行爲)를 보면서 최후의 발악적 망동(發惡的妄動)이니 망령(妄靈)든 광기(狂氣)니 비난하지만 이들 원로가 들고 일어난 데에는 나름의 이유와 바라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보안법이란 칼로 유지되던 독재정권(獨裁政權)에서 부귀광명(富貴光名)과 번화영락(繁華榮樂)을 원도 끝도 없이 향유(享有)하던 이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안위(安危)와 기득권(旣得權)을 지켜온 보안법이란 칼이 고스란히 유지(維持)되어야 안심(安心)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기적(利己的)인 발상이요 욕심에서 비롯된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설령 이들의 내건 이유와 목적이 정당해도 국민이 선택한 정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보수원로(保守元老)의 모습은 조금도 원로답지 않아 보인다. 이들이야말로 이승만 독재에 아부했고 쿠데타에 동조했으며 3공과 5공 시절 온갖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며 민생고(民生苦)를 외면해온 기생충적(寄生蟲的) 존재들이 아니었던가.
이들의 내건 요구조건은 어이가 없다. 국론을 분열시키는 소모적 현안들인 <수도(首都) 이전과 국가보안법폐지 친일(親日) 등 과거사 청산과 언론 개혁 등의 일방적 추진을 중단하고 모든 국력을 경제와 안보 등 시급한 현안 해결에 집중하라.> 는 것이다.
노병(老兵)은 노병(老兵)으로 져야한다. 노병(老病)으로 죽을 수는 없는 일이다. 벼는 고개를 숙여야 이치에 맞고 영근 밀알은 떨어져야 새로운 세대가 움트는 것이다. 이것이 영겁윤회(永劫輪回)의 우주법리(宇宙法理)가 아니던가. 국가보안법(國家保安法)이란 칼날에 걸려 희생자(犧牲者)들이 피를 흘리는 동안 권력과 부귀공명(富貴功名)에 취해있던 이들 보수원로(保守元老)들은 대오각성(大悟覺醒)할일이다. 이성(理性)과 양심(良心)을 회복하여 겸허(謙虛)한 원로(元老)의 참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바란다.